경성지방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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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사근은 농사를 짓다가 1907년 임오교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수백 명의 의병들과 함께 경기도 죽산·광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초에는 정주원 의병부대에 들어가 경기도 용인·죽산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주원 의병부대가 당진 주재소를 습격하는 반일 항전을 일으켰을 때 여본구리 부근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치열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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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장옥은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의병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가 정확하게 언제 의병에 투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1907년 정미조약이 체결된 이후 용인·광주·양지·죽산·양성 등지를 주무대로 의병 활동을 활발히 벌였던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일진회 등의 친일 분자를 처단하는 등 항일 유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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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김정석은 출생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장한 후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동진리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는 한편 상업에 종사하였다. 그러던 중 1909년 5월 이덕경 부대에 투신하여 의병이 되었다. 이덕경의 의병 활동으로 현재 알려진 것은 주로 군수품 확보 투쟁에 관한 것이다. 1909년 6월 의병장 이덕경 및 동료 의병 1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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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현수는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참가하였다. 1909년 음력 3월 10일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소운동의 이재봉(李在鳳)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징취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를 끌고 경기도 용인군 고석동(古石洞) 덕현(德峴)으로 가서 군자금 5원을 거두었다. 그 후 이익삼 의병장과 더불어 경기도 용인군 상동면 금현 김종옥(金鍾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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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남현수는 경기도 이천군 장면 사곡동으로 이주하여 농사를 짓고 살다가, 1907년 이익삼 의병부대에 투신하였다. 이후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에서 활발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남현수는 부대 내에서 군수품 확보에 힘썼던 것으로 보인다. 1908년 윤2월 의병장 이익삼 등과 함께 경기도 용인군 상동면 금현에 진출하여 김종옥으로부터 백미 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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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신순용은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의병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가 정확하게 언제 의병에 투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1907년 정미조약이 체결된 후 용인·광주·앙지·죽산·양성 등지를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던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일진회 등의 친일 분자를 처단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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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우덕순은 본래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어매동에 거주하는 농부였는데, 1907년 김순일 의병부대에 필요한 군자금을 확보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1907년 11월과 1908년 7월경에 각각 300냥을 모금하여 의병 활동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당시 의병들에 대한 군자금 및 군수품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헌병에게 체포되어 1908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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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우수안은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어매동에 거주하는 농부였다. 한일의정서 체결과 고문 정치로 대변되는 한일협약이 체결되어 일제의 정치·군사적 간섭이 강화되던 시기에 의병 활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당시 경기도 용인군 지역에서는 일본군 군수물자 수송을 위한 경의선·경원선 철도 부설 추진과 이에 따른 인력 강제동원이 행해지고 있었는데, 이에 저항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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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유태수는 박춘식·홍금만·송금봉 등과 함께 김봉기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경기도 광주·용인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는 주로 군자금을 수합하면서 대일 항전을 펼쳤다. 1908년 2월 11일 경기도 용인군 성산리와 마가리에서 군자금 마련에 공을 세웠고, 경기도 광주군 전지리에 있는 서랑청의 집에서 다시 군자금을 수합하다가 피체되었다. 이로써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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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이금만은 1907년 7월 윤성필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경기도 용인·여주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경기도 여주군 일본 경찰분파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 2명을 총기로 사살하는 등 무장 투쟁을 벌였다. 또 경기도 용인군 두미동에 들어가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이다 피체되었다. 그는 1908년 3월 2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종신유형을 받았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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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임허옥은 1907년 8월 윤관문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경기도 용인·안성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비상 수단으로 동지 60여 명과 함께 경기도 용인군 요봉동을 거쳐 곽이동과 업이동에서 군자금품을 징수하였다. 이틀 후 안성군으로 가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탈출하여 그 해 8월 고향으로 돌아왔다. 1908년 4월 다시 의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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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조윤봉은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곡리로 이주하여 살다가 1908년 2월 이익삼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항일 투쟁을 벌였다. 그는 의병 운동에 필요한 군수품을 확보하는 데 매진하였다. 의병이 된 직후 동료 의병 22명과 함께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수반리에 진출하여, 이장 마춘화를 통해 주민으로부터 군자금 25원을 확복하고, 곧이어 같은 면 역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