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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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우리나라 불교는 중국을 거쳐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의 순으로 수용되었는데,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 전진의 아도와 순도가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들어와 불법을 전한 것이 시초이다. 당시의 용인 지역은 백제의 영역이었는데, 백제는 384년(침류왕 1)에 동진(東晋)에서 온 호승(胡僧) 마라난타로부터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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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자의 묘. 이자(李耔)[1480~1533]의 본관은 한산, 호는 음애(陰崖), 시호는 문의(文懿)이며 목은 이색의 후예이다. 이자가 남긴 『음애일록』은 1509년(중종 4) 윤9월부터 시작하여 1516년(중종 11) 12월까지의 기록으로, 당시의 정치상황은 물론이고, 왜구와 교섭한 일, 농사에 관한 옛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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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행(啓行), 호는 송서(松西), 시호는 문간이다. 현감 이희선(李羲先)의 아들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직각·이조참의·이조참판·평안도관찰사·대사간·대사헌·한성판윤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849년 철종이 즉위하자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고종 때 영의정에 올랐고 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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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야(季野). 목은 이색(李穡)의 5세손으로서 증조부는 이숙무(李叔畝), 조부는 지중추원사를 지낸 이형증(李亨增), 외조부는 종사랑(從仕郞) 품계를 지낸 선산(善山) 김관안(金寬安)이다. 부인은 찰방을 지낸 최홍보(崔洪輔)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증광시에 진사로 합격하였다. 이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으며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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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불린(不磷). 고조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증조부는 제학을 지낸 이종학(李種學)이며, 할아버지는 이숙묘(李叔畝)이다. 아버지는 이형증(李亨增)이고, 어머니는 조아(趙雅)의 딸이다. 부인은 선산김씨로, 김관안(金寬安)의 딸이다. 아들은 좌참찬(左參贊) 이자(李耔)이다. 이예견은 성종 대에 활약하였다. 승사랑(承仕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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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501년(연산군 7)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때 함께 급제한 김안국(金安國)·성세창(成世昌) 등과 교유했다. 150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감찰(監察)·이조좌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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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출신의 충신, 효자, 열녀 등에게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는 일. 충, 효, 열행을 표창하기 위하여 정문을 내리는 국가의 특전을 작설지전(綽楔之典)이라고 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예전편」을 보면, “절의와 선행이 있는 자는 장권한다. 효자와 조부모의 봉양에 성심을 다한 손순(遜順), 절부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친 자, 우애와 화목을 지켜 칭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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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생산되는 특색 있는 산물. 지역마다 지형, 기온과 강수량에 차이가 있고 토질이 달라 그 지방의 풍토에 알맞은 특산물이 생산된다. 특히 한국은 예부터 지역성이 강하여 지방 특산물이 많다. 지방 특산물은 곧 관광 토산품으로 중점 육성되어 그 지역의 브랜드가 된다. 현재 도시화, 산업화에 밀려서 우리 고유의 특산물이나 지역 특성 음식들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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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경을 시조로 하고 이자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한산이씨(韓山李氏)의 시조는 고려 숙종 때 호족으로서 권지호장직(權知戶長職)에 오른 이윤경(李允卿)이다. 중시조는 목은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이다. 이곡은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당대의 대문장으로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경학의 대가였다. 이곡의 문하에서 권근·변계량 등의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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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애 이자 선생의 무덤은 2000년 6월 12일 경기도 기념물 제172호로 지정되었다. 음애 이자 선생(1480~1533, 성종 11~중종 28)의 본관은 한산, 문신, 호는 음애이며 1501년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감찰을 지내고 천추사의 서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곧 이조좌랑에 올랐으나 연산군의 난정으로 사직했다. 그 후 15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