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어잡이 어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324
영어공식명칭 Fishweir for Catching Gray Mullet|Sungeojabi Eosal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대 - 숭어잡이 어살 금강하굿둑 완공 후 중단
성격 전통 어로 도구
재질 싸리나무|동아줄|소나무 말뚝
용도 숭어잡이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에서 숭어 등을 잡으려고 설치하던 전통 어로 도구.

[개설]

어살은 싸리나 참대 따위를 날개 모양으로 둘러치거나 꽂아 울타리를 치고 그물이나 발을 엮거나 통발 같은 장치를 설치하여 안에 들어온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여 잡는 전통 어로 도구, 또는 그러한 어로 방식을 말한다. 현재 국가무형유산 ‘전통어로방식-어살’로 지정되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에서는 어살이 주로 부여읍 저석리 서원마을을 비롯한 백마강 연안의 강촌에서 광범위하게 쓰였다. 주로 강폭이 좁고 물살이 빠른 여울목에 어살을 놓고 나서 물고기가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포획하는 식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백마강의 특산물로 유명하던 숭어를 낚는 데에 주로 쓰여 ‘숭어잡이 어살’이라고 불리었다.

[연원 및 변천]

숭어잡이 어살이 부여 지역에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백마강은 일명 창강(倉江)이라 불리며 예로부터 잉어와 숭어가 많이 잡혔다. 특히 ‘창강 잉어’는 사리 때에도 밀물이 들지 않아 맛이 좋기로 유명하였다. 그런 까닭에 저석리 일대에서는 일찍부터 숭어잡이 어살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조선 전기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나 조선 후기 읍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는 숭어와 어살에 대한 기록이 빠짐없이 나타나고 있다.

규모가 큰 어살이 주로 권문세가에 의하여 장악되었던 것으로 보아 어살 어업이 꽤 큰 수익을 냈음을 알 수 있다. 부여 지역을 비롯한 백마강 연안에서는 마을마다 으레 한두 곳씩 어살을 설치하는 ‘살자리’가 있었는데, 살자리에 어살을 놓을 권리는 관의 허가를 획득한 ‘살주’에게만 부여되었다. 이러한 제도는 1970년대까지 유지되었다고 한다.

[어로 방식]

숭어잡이 어살은 물고기의 특성을 잘 헤아려서 포획하는 전통 어로 방식이다. 달빛이 어두운 초승이나 그믐 무렵에 주로 놓았는데, 달이 밝으면 고기가 잘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강물을 거스르는 고기는 그물망을 뚫고 올라오지만, 물살을 따라 내려가던 고기들은 설치된 그물을 피하여 비스듬히 비켜서 헤엄치는데, 하필이면 고기를 유인하는 일명 ‘염통’ 부분으로 자연스레 들어가기 마련이다. 어살은 대개 물살이 거센 여울목에 놓는데, 동아줄을 틀어 싸리나무 회초리로 듬성듬성 발을 엮되 염통은 새끼로 촘촘하게 엮는다. 어살을 매는 방법은 강물을 가로질러 드문드문 소나무 말뚝을 박고 물살이 거센 쪽에 염통을 설치한다. 그리고 들어온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염통 밑에 그물을 쳐 둔다. 이와 같이 어살을 놓으면 염통 뒤에 망을 보는 움막을 짓고 반대편에는 불막을 설치하여 불을 놓는다. 그러면 불빛이 반사되어 고기가 염통 속으로 들어왔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숭어잡이 어살은 다섯 명이 망꾼, 떼질꾼, 뜰채꾼으로 역할을 나누어 고기잡이에 나선다. 망꾼은 염통 뒤에 설치된 망집에서 고기가 들어왔는지 망을 보는 사람이다. 떼질꾼은 불막 앞에서 그물을 걸어 놓은 채 횃불을 가지고 대기하는 역이다. 뜰채꾼은 망꾼의 신호에 따라 뜰채로 고기를 떠내는 역이다.

한밤이 되면 고기가 들기를 기다렸다가 망꾼이 물살의 흐름을 보고 “놋소!”라고 신호를 보내면, 떼질꾼은 물살을 따라 살살 내려오다가 재빨리 잡고 있던 그물을 놓아 입구를 막는다. 이와 동시에 뜰채꾼이 달려들어 염통 안으로 들어간 고기를 떠낸다. 그때그때 어살로 잡은 고기는 살주의 몫으로 20%를 제하고 다섯 명이 동등한 몫으로 분배하는데, 아침 일찍 생선 장수가 와서 전량을 수매하여 갔다고 한다.

[현황]

부여 지역 백마강 연안의 여러 마을에서는 숭어잡이 어살 등의 전통 어로 방식을 통하여 어업 활동을 벌여 왔다. 1970년대 이후 어선을 활용한 연근해 어업이 발달하면서 전통 어로 방식은 상대적으로 쇠퇴하였다. 1990년대에 이르러 금강하굿둑이 완공되면서 바다와 강을 오가는 회유성 어종의 이동이 차단됨에 따라, 이후 숭어잡이는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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