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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봉과 꽃바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481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구정봉과 꽃바위」 한민에서 발행한 『여기가 부여다』에 수록
관련 지명 구정봉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
관련 지명 꽃바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
채록지 중정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후궁|군졸
모티프 유형 역사적 사실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 일대에서 구정봉의 꽃바위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개설]

「구정봉과 꽃바위」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 일대에서 구정봉에 있는 꽃바위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구정봉과 꽃바위」는 1992년 한민에서 발행한 『여기가 부여다』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서 마을 주민이 구술한 내용이 채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내용]

옛날에 지금의 충청남도 청양군 청남면에서 태어나 자란 한 여인이 임금의 후궁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매우 아름다운 데다 마음씨가 착하여 여러 사람들이 따랐고, 왕비도 여인의 사람됨에 감탄하여 사이좋게 지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든 까닭에 임금이 잘 찾지 않았음에도 여인은 항상 군말 없이 임금을 뒤에서 받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여인은 자신의 삶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여 임금에게 궁 밖으로 나가 살도록 허락하여 달라고 하였다. 임금은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았으나, 여인의 평소 인품을 생각하면 그럴듯도 하여 허락을 하였다.

여인은 특별한 채비 없이 발이 닿는 대로 떠나 사비성(泗沘城) 앞쪽의 구정봉에 올랐다. 구정봉 정상에는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군졸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군졸은 선대부터 구정봉에 살며 사비성으로 들어오는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여인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집안일을 하는 대신 군졸의 집에 함께 살기로 하였다. 군졸은 항상 바쁘게 사는 터라 여인이 군졸의 일을 도우며 집안일을 맡아 하였다.

얼마 후 여인이 군졸에게 사랑을 고백하므로 두 사람은 곧 부부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몇 달 뒤 나당 연합군이 백제에 쳐들어왔다. 나당 연합군의 침입 소식에 군졸은 밤을 지새우며 항상 성 주변을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군졸은 드디어 신라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동시에 강 쪽에서 당나라군이 쳐들어 오고 있었다. 당나라군이 상륙하여 군졸이 있는 곳으로 기어오르자 군졸은 불을 피워 위급함을 사비성에 알린 뒤 한참을 적군과 싸우다가 전사하게 되었다. 여인도 남편과 함께 더불어 싸우다가 당나라군에게 잡히자 자결을 하였다.

두 사람이 죽고 나서 며칠 뒤 사비성이 함락당하고 의자왕(義慈王)이 항복할 때 비가 내렸다. 비가 쏟아지는 중에 산에서는 바위가 하나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바위는 여인이 치마를 두른 것같이 생겼다. 산 정상에서는 두 사람이 살던 집이 무너지고 아래로 굽어보는 바위가 솟았다. 사람들은 산정에 솟은 바위를 ‘군졸바위’라 하고, 아래쪽 바위는 ‘치마바위’라고 하였다. 시간이 흘러 산 정상의 바위는 땅속에 다시 가라앉고 치마바위만 남게 되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 합친 것이라 하여 두 사람의 죽음을 기리고자 치마바위를 ‘꽃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구정봉과 꽃바위」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비극적 결말이 역사적 사실로서 예견되어 있는 상황에서 주된 작중 인물을 임금의 후궁이나 충성스러운 군졸로 설정하여 비극적이지만 망국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거룩한 죽음을 그려 내고 있다. 백제 패망 과정에 대한 안타까움과 백제에 대한 충정심이 반영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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