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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과 의왕시 학의동에 걸쳐 있는 산. 동쪽, 서남쪽, 서쪽 방향으로 능선이 뻗어 있고, 남쪽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지만 다른 방향은 경사가 비교적 급하다. 남서쪽으로는 고분재·백운산·광교산을 거쳐 형제봉으로 이어지며, 북쪽으로는 학현·국사봉·청계산으로 이어진다. 이곳의 식생은 대부분 참나무과에 속하며, 기반암은 선캄브리아기의 흑운모편마암이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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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 산하 용인 지역 지부. 바르게살기운동은 우리 민족의 훌륭한 민족정신과 문화적 전통을 발전시켜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사회 규범 체제 및 문화의 재창조, 건전한 국민정신을 확립하기 위한 올바른 의식과 가치관을 기르자는 정신 운동이다.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위하여 진실, 질서, 화합을 바탕으로 자율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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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통삼리에 있던 반도체 전문 벤처기업. 플래시 메모리를 중심으로 USB 드라이브 등 각종 반도체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벤처기업이다. 윤리 경영, 가치 경영, 미래 경영을 원칙으로 반도체 관련 장비의 생산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미래를 선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8년 2월 경기도 부천시에서 자본금 2억 5800만 원으로 주식회사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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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회부(晦父). 1455년(세조 1) 현감으로 있으면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60년(세조 6)에 용인현(龍仁縣)에 현령(縣令)으로 부임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하여 용인현이라 하였으며, 이때부터 현령이 임명되었겠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이 없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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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초명은 박승업(朴承業),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추탄(秋灘). 박은(朴誾)의 증손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장령·사간원정언을 지냈다. 1599년 대사헌 홍여순(洪汝諄)을 탄핵·파면시켰으나, 뒤에 그가 다시 기용되자 사헌부집의 김신국(金藎國), 사간원사간 송일(宋馹)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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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회헌(晦軒). 고려에서 정승을 지낸 박전지(朴全之)의 고손이며, 할아버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며, 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고,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딸이다. 아들은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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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박곡리는 본래 양지군 박곡면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박곡은 바깥쪽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보인다. 즉 본래는 밭골이나 밧골로 불리던 것이 박골로 변화되고 한자로 옮기면서 박곡(朴谷)으로 표기된 것이다. 박석리는 본래 죽주(竹州)에 속했던 지역으로 원래는 대곡부곡(大谷部曲)으로 불리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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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약 2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갈참나무·졸참나무 등 약 200~250종이 자라며,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일그러진 편구형으로 10월경에 익는다. 마을 어귀나 동네의 정자목으로 널리 식재되어 있다. 나무 높이는 22m, 가슴 직경은 1.18m이며, 수령은 약 200년 정도이다. 지상 4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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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석골에 있는 서낭당. 용인시 백암면 박곡리는 과거에 상촌과 박석골, 원터, 청계골, 역골 등 5개 마을로 되어 있었다. 현재의 박곡2리는 ‘박석골’이라 불렀으므로 이곳의 서낭당을 ‘박석골 서낭당’이라고도 한다. 박석골 서낭당은 동제의 대상은 아니고 개인적인 신앙처이자 마을과 마을 간의 경계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박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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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 절터. 양지에서 국도 17호선으로 백암을 지나가다 원대에서 동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박곡리에 이른다. 절터는 마을 동편 대덕산 서쪽 사면에 해당하는 오방낭골의 구릉 평지에 있다. 2011년 현재 주민들이 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고적총람(古蹟總覽)』·『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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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건립된 전통 가옥. 안채는 3칸 전퇴집이었던 것 같으며, 정면 기둥을 제외한 모두가 개조되었다. 우당좌주를 삼아 아래쪽 한 칸은 부엌이고, 머리 쪽은 2칸을 통칸 구들로 쓰고 있다. 부엌 앞 모서리에는 욕실이 반 칸 크기 정도로 지어졌다. 부엌 아래 벽에 개수대와 냉장고가 놓여 있고, 안방 머리 쪽에 장롱이 배치되어 있으며, 안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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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곡리사지에 있었던 조선시대 나한상편. 원래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정봉상이 박곡리사지Ⅰ지구의 대석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약 67m 떨어진 곳에 새로이 안치하였지만 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고 전하며, 주변에서의 소재도 불분명한 상태이다. 나한상편은 박곡리사지Ⅰ지구와 Ⅴ지구에서 주로 확인되는데, 전체적으로 적색을 띠는 곱석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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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곡리사지에 있었던 고려시대 석불입상. 원래 땅 속에 묻혀 있던 것을 마을 주민 정봉상이 박곡리사지Ⅰ지구의 대석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약 67m 떨어진 곳에 새로이 안치하였지만 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고 전하며, 주변에서의 소재도 불분명한 상태이다. 거친 화강암으로 제작된 이 석상은 전체 길이 148㎝, 어깨 폭 70㎝,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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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곡리사지에 있었던 고려시대 석불입상. 원래 땅 속에 묻혀 있던 것을 마을 주민 정봉상이 박곡리사지Ⅰ지구의 대석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약 67m 떨어진 곳에 새로이 안치하였지만 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고 전하며, 주변에서의 소재도 불분명한 상태이다. 거친 화강암으로 제작된 이 석상은 전체 길이 148㎝, 어깨 폭 70㎝,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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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곡리사지에 있었던 고려시대 석불입상. 원래 땅 속에 묻혀 있던 것을 마을 주민 정봉상이 박곡리사지Ⅰ지구의 대석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약 67m 떨어진 곳에 새로이 안치하였지만 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고 전하며, 주변에서의 소재도 불분명한 상태이다. 거친 화강암으로 제작된 이 석상은 전체 길이 148㎝, 어깨 폭 70㎝,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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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곡리사지에 있었던 고려시대 석불입상. 원래 땅 속에 묻혀 있던 것을 마을 주민 정봉상이 박곡리사지Ⅰ지구의 대석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약 67m 떨어진 곳에 새로이 안치하였지만 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고 전하며, 주변에서의 소재도 불분명한 상태이다. 거친 화강암으로 제작된 이 석상은 전체 길이 148㎝, 어깨 폭 70㎝,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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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 절터. 양지에서 국도 17호선으로 백암을 지나가다 원대에서 동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박곡리에 이른다. 절터는 마을 동편 대덕산 서쪽 사면에 해당하는 오방낭골의 구릉 평지에 있다. 2011년 현재 주민들이 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고적총람(古蹟總覽)』·『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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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개신교 순교자. 염광(塩光) 박관준은 1875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출생하였다. 1900년경 개신교 신자가 되었으며, 한방 의술을 배워 1917년 조선의생(朝鮮醫生: 지금의 의사) 면허를 받고 개업하여 193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십자의원을 운영하였다. 개천교회(价川敎會) 장로로 재임하던 중 1935년경부터 일제가 개신교 신자들에게도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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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박관준의 순교를 기리는 비. 박관준 순교추모비는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서 기독교 전파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인들을 흠모하며, 신앙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길이 전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 산84-1[추계로 235]에 있는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 세워져 있다. 와비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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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박관준의 순교를 기리는 비. 박관준 순교추모비는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서 기독교 전파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인들을 흠모하며, 신앙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길이 전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 산84-1[추계로 235]에 있는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 세워져 있다. 와비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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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에 거주한 귀화인. 북쪽 오랑캐 출신으로 광해군 초에 조선에 귀화하여 용인의 고을 5리 안에 있는 장터 큰길가에 7~8년 거주하였는데, 그곳은 크고 작은 행인들이 밤낮으로 오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하 16~18명을 거느리고 밤에 산행을 한다고 칭하면서 무리를 지어 행인이나 짐을 쫓아가 약탈을 일삼았다. 또한 읍내의 원전(元田)을 빼앗아 경작하거나 무성하게 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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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의 열녀. 본관은 연안. 아버지는 이형원, 남편은 박래영이다. 1785년(정조 9)에 출생하여 16세 때에 박래영과 결혼하였다. 그때 시어머니는 이미 작고하였고, 홀시아버지는 병환으로 문밖출입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7년 동안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마침내 세상을 떠났고, 병약하던 남편마저 24세 되던 해인 1809년(순조 9)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멸성지정으로 애통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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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조사·연구·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수집·보존·연구하여 전시하는 시설. 박물관에는 고고·역사박물관을 포함하여, 미술관·과학관·민속관 등 다양한 종류의 박물관이 있다. 경기도 용인시에는 공립의 경기도박물관을 비롯하여, 호암미술관·한국민속박물관 등과 함께 많은 전문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즉 둥지박물관(둥지만화박물관·둥지생활사박물관·둥지서예미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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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 선장마을에 있는 서낭당.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에 있는 선장마을에는 박석고개 서낭당과 배오개 서낭당이 있는데, 이들 서낭당은 각각 포곡읍과 모현읍의 경계 지점인 박석고개와 배오개고개에 있다. 박석고개는 일명 ‘고밀고개’라고도 하며, 선장마을 사람들이 모현장을 갈 때 주로 이용하던 고갯길이었다. 박석고개 서낭당이 있는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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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석골에 있는 서낭당. 용인시 백암면 박곡리는 과거에 상촌과 박석골, 원터, 청계골, 역골 등 5개 마을로 되어 있었다. 현재의 박곡2리는 ‘박석골’이라 불렀으므로 이곳의 서낭당을 ‘박석골 서낭당’이라고도 한다. 박석골 서낭당은 동제의 대상은 아니고 개인적인 신앙처이자 마을과 마을 간의 경계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박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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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만기(萬基).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박환(朴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부안임씨(扶安林氏)이다. 박세성은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을 거쳐 홍문관정자·예문관검열·봉교 등을 역임하였다. 1653년 겸설서(兼說書)·전적·감찰·정언 등을 역임하고, 그 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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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이다. 아버지는 교리(校理) 박의(朴猗)이며, 부인은 원두추(元斗樞)의 딸이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주장, 효종의 꾸지람을 받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1차 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기년복(朞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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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인 박세채의 초상화. 관복본은 녹색 단령(團領)을 입은 전신 교의 좌상의 정면상이고, 편복본은 동파관에 도포를 입은 전신 정면 입상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얼굴 모습은 거의 흡사하여 편복본은 관복본의 얼굴을 보고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 두 점 모두 표제나 명문은 보이지 않아 제작 경위나 작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관복본은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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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인 박세채의 초상화. 관복본은 녹색 단령(團領)을 입은 전신 교의 좌상의 정면상이고, 편복본은 동파관에 도포를 입은 전신 정면 입상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얼굴 모습은 거의 흡사하여 편복본은 관복본의 얼굴을 보고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 두 점 모두 표제나 명문은 보이지 않아 제작 경위나 작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관복본은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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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용민의 선정비. 1867년(고종 4) 용인현령으로 부임하여 1869년(고종 6) 9월 친상(親喪)으로 사임한 박용민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있었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南向)으로 서 있다. 비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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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호는 만절당(晩節堂). 증조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고, 할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며, 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연흥군(延興君) 박고(朴翶)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따님이다. 아들은 찬성사(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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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열(仲說), 호는 읍취헌(挹翠軒). 아버지는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박담손(朴聃孫)이며, 어머니는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이이(李苡)의 따님이다. 부인은 대제학 신용개(申用漑)의 딸이고, 맏아들은 박인량(朴寅亮)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하여 15세에 이르러서는 문장에 능통하였다. 당시 대제학(大提學)이었던 신용개(申用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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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어의. 1882년(고종 19)에 유학(幼學)으로서 의약동참(議藥同參)에 차하(差下)되어 내의원에 군직(軍職)으로 직사(職仕)하다가 1883년 어의(御醫)의 신분으로 용인현령(龍仁縣令)이 되었다. 그 이듬해 막중한 대동미(大同米)를 마음대로 대봉(代捧)하고 한 해가 지나도록 납기를 어겼다 하여 직무불이행 죄로 용인현령직에서 파직되었다. 이에 규례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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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말기 문신 박응종의 선정비. 1883년(고종 20) 용인현령으로 부임하여 1885년(고종 22)까지 재임한 박응종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소재하였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으로 서 있다.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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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1771년(영조 47) 과거에 급제하였다. 통덕랑(通德郞)에 올랐으나 모친께서 병으로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어 병을 돌보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약재를 구하여 탕약을 해드렸다. 병세가 위독해진 뒤에는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리니 수명이 조금 연장되었다. 돌아가신 후에는 졸곡(卒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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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박인영의 정려각. 박인영의 본관은 죽산(竹山)이고, 자는 여안(汝安)으로 박민흥(朴敏興)의 아들이다. 1750년(영조 26)에 옥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행동이 단정하고 효성이 지극하였고, 재덕을 겸비하여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의 효행은 근천지효(根天之孝), 격천지성(格天之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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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에 있는 상류층 전통 가옥. 박재륭 가옥은 지은 지 85년이 된 집으로, 박재륭 가족이 조상대대로 살아온 집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의 마을 형국은 소의 형국인데 이 집은 소의 여물통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에서 부농으로 살았다. 사랑채는 집주인의 동료들이 찾는 공간으로, 서로 시를 짓거나 시조를 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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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창근의 선정비. 1873년(고종 10) 윤6월 양지현감으로 부임하여 1875년(고종 12) 7월 진위현감으로 전출한 박창근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양지면사무소 안의 주차장에 청사를 바라보고 좌측에 동향으로 총 7기의 비가 있는데, 그중 여섯 번째 비이다. 비좌와 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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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박춘식은 경기도 용인군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1907년 7월 김봉기 의병부대에 들어가 군자금 확보와 의병 모집 활동을 벌였다. 그는 동료 의병과 함께 광주·양천·지평·가평·춘천·횡성·화천·양구 등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양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가평 실운리에 있는 명례궁(明禮宮) 사음(舍音) 집에서 백미 50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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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유배된 무신. 본관은 죽산. 호는 호곡(壺谷). 조선 건국에 대장군으로서 공이 있어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고, 사헌중승(司憲中丞)을 지냈다. 그러나 1394년(태조 3) 자기는 논공(論功)에서 2등이 되고 이무(李茂)는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책봉된 것을 비방하였다가 도리어 죽주(竹州)[현재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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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 자는 상보(尙甫), 호는 여호(黎湖)·요계(蓼溪)이다. 군수 박태두(朴泰斗)의 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영의정 송상기(宋相琦)의 천거로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가 되었다. 지평(持平)·장령(掌令)·진선(進善)·집의(執義) 등을 지내고, 세자찬선(世子贊善)·이조판서·우찬성(右贊成)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서원을 철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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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술(汝述), 자호(自號)는 수우(守愚). 참봉 박동민(朴東民)의 아들이다. 박환은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여의고 둘째 고모와 숙부 밑에서 자랐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로로 6품직에 특제(特除)되어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인제현감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고을의 군사를 모아 부원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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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실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다. 증조부는 현령 류위(柳湋), 할아버지는 정랑 류성민(柳成民), 아버지는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었던 류흠(柳흠)이다. 어머니는 참찬 이지완(李志完)의 딸이다. 부인은 심수경(沈守慶)의 증손녀이며, 부사 심은(沈誾)의 딸이다. 외삼촌 이원진(李元鎭)과 고모부 김세렴(金世濂)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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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건립된 6·25전쟁 반공희생자 위령탑. 1950년 9월 21일 밤 9시 15분경 한국전쟁 중에 전세가 불리해진 북한군은 북으로 복귀하면서 용인·광주·수원·오산·남양 등지의 반공인사 187명을 압송하였다. 북한군은 용인에 이르자 구덩이를 파게 한 뒤 압송하던 자들을 학살·매몰하였다. 그 가운데에서 이광섭·박용보 두 사람이 극적으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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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있는 장애인 특수 교육 기관.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을 한곳에서 교육하여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2003년 박인선이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창작 및 공연예술 활동을 매개로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교류와 상호 이해 증진은 물론 함께 교육을 통하여 장애인과 취약계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2003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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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습을 시조로 하고 유복립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전주유씨는 완산백(完山伯)으로 봉해진 유습(柳濕)을 시조로 한다. 전주유씨는 보문각직제학을 지낸 2세손 유극서(柳克恕)부터 가문이 번창하였다. 유빈(柳濱)은 홍문관응교를, 유의손(柳義孫)은 이조참판을 지냈다. 참판공 유숭조(柳崇祖)는 공조참의와 황해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증조부 유식(柳軾)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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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반쪽이 신랑이 좋은 아내 맞이한 이야기. 1976년에 채록되어 1990년에 출간한 『용인군지』에 실려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여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보기에도 끔찍한 병신의 모습이었다. 다리만 둘일 뿐 눈도 하나, 귀도 하나, 팔도 하나였다. 그래서 누가 이름을 지은 것도 아니었건만 반쪽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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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는 배추, 무 등의 채소를 소금에 절여 파, 마늘, 고춧가루, 젓국 등의 양념을 넣어 버무려 발효 숙성시킨 것으로, 다른 경기 지역과 마찬가지로 배추김치를 배추속백이라고 불렀다. 또한 싱건지와 짠지를 먹는다. 대표적인 김치를 들라면 열무짠지, 속백이, 깍두기 등을 든다. 일상식에서 짠지나 싱건지를 먹는 것은 경기도 지역의 특징이기도 한데, 서울 음식보다 소박하고 간은 세지도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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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경기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곡동 기와집마을 사람들도 김치를 짠지나 싱건지라고 일컫는데, 충청도에서는 배추김치라 말한다고 하면서 지역적 차이를 이야기한다. 짠지는 봄이나 여름에 먹는 것이며, 싱건지는 묽게 담아 심심하게 먹는 것이다. 무김치는 무짠지라고 하는데, 무 이파리만 자른 후 무를 소금에 절여 김치를 담근다. 무 싱건지를 담글 때는 무의 아래위를 자르지 않고 담근다. 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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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곡동 기와집마을에서는 입동 무렵에 메주를 쑤어서, 정월경에 장을 담근다. 장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이 있으며, 예전만큼 장을 많이 만들지는 않는다. 장의 종류에 따라 장을 담그는 순서가 있는데, 간장, 된장, 고추장 순서로 담근다. 고추장을 먼저 담그지는 않는다. 간장은 가장 으뜸인 것으로 장 중의 으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편 세간날 때에는 간장,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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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갑과 집게 그리고 밤을 담을 자루를 가지고 양달농원 뒷산에 올라 바닥에 널려 있는 밤을 자루 가득 주워 담는다. 밤은 어떻게 열리고 또 어떻게 따야 하는지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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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맛의 비결 또 하나는 바로 술국이다. 순대를 먹으면서 떠먹는 국물 맛은 허한 속을 달래며 몸에 따뜻한 기운을 돌게 한다. 공기밥을 별도로 주문하지 않아도 밥 반 공기는 공짜로 담아주는 술국이기에 배고픈 장꾼에게는 요기도 된다. 술국은 백암순대와 찰떡궁합이다. 또한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는 순대와 내장이 듬뿍 들어간 순대국밥이 최고다. 그 깊은 맛에 반해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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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행임(尹行恁)[1762~1801]은 시파(時派)의 중추적인 인물이다. 시파와 벽파(辟派)의 당쟁이 극심하였던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탄핵 또한 빈번하여 자주 유배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성보(聖甫), 호는 방시한재(方是閑齋)·석재(碩齋). 조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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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방축동과 아곡동을 합쳐서 한 글자씩 취해 방아리가 되었다. 본래는 용인현 남촌면의 아곡동(牙谷洞)과 현내면의 방축동을 합쳐서 아곡리라고 하였다. 현내면은 고려시대 처인현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지역이다. 이동저수지 아래 자리하고 있으며 넓은 들을 포용하고 있다. 일부 구릉지를 제외하면 논농사 중심의 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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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 있는 서낭당. 방아리 서낭당은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 있는 서낭당으로, 예전에는 이 서낭당이 있는 고개를 지나야만 방아리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고갯마루에 서낭당이 있다고 하여 ‘서낭당고개’라고 불렀는데, 예전에는 지금보다 조금 높은 언덕이었다고 한다. 방아리로 들어가는 도로에서 5m 정도 올라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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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방아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나누어 분포하는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 144-2전 일대의 방아리 선사유적1과 177-2 일원의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방아리 선사유적1은 용인에서 지방도 333호선으로 남사면 창리에 이르러 창리교를 지나 방축골저수지 방향으로 진행하면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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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방아리 유물산포지는 모두 다섯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방아리 유물산포지1부터 방아리 유물산포지5로 구분하고 있다. 방아리 유물산포지1은 창리에서 방아2리 방죽마을로 넘어가는 서낭당고개의 오른편에 있는 구릉 일대이다. 방아리 유물산포지2는 남사면 방아2리 방죽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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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 있는 약 180년 수령의 팽나무. 일명 달주나무·매태나무·평나무라고도 한다. 낙엽 활엽교목으로 줄기가 곧게 서며, 높이 20m, 지름 1m에 달하고 가지가 넓게 퍼진다. 수피는 회색이며 가지에 잔털이 나 있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에 타원형이며 윗부분에 톱니가 나 있다. 꽃은 잡성화로 5월에 피며, 새로 자란 가지의 밑 부분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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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쓰이는 특유한 단어나 언어적 현상. 용인시는 경기도 중심부에서 약간 동쪽으로 비켜서 동쪽으로는 이천시와 광주시에 맞닿고, 서쪽으로는 수원시와 화성시와 닿았다. 그리고 북쪽과 남쪽으로는 성남시와 안성시와 연접하여 경계를 이루는 지리적 위치에 있다. 용인시는 이런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서울과 더불어 중부 지역 방언(표준어)의 특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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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사용되는 삶의 지혜를 드러내는 짧은 문장의 격언. 속담은 한역되어 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입을 통하여 전해 오며, 지혜나 교훈을 비유적·상징적으로 압축하여 민족 전체가 공유하는 훌륭한 민족적 언어 예술이요 문학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속담의 세 가지 요건을 들자면 첫째, 민중 속에서 생산된 관용적 표현이다. 둘째, 보편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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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방울에 놀란 호랑이 이야기. 1976년에 채록되어 1990년에 출간한 『용인군지』에 실려 있다. 옛날에 이곳저곳 떠돌면서 소금을 팔러 다니는 소금장수가 있었다. 하루는 주막을 찾지 못해 빈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막 잠을 청하려 하자 밖에서 호랑이 소리가 들렸다. 소금장수는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한 가지 꾀를 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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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지사. 자는 중익(仲翼), 호는 방은(方隱). 일명은 조광보(趙廣輔)이다. 조광보(趙光輔)는 식견이 고명(高明)하고 직언을 잘하였다. 연산군 때 임사홍(任士洪)의 집권으로 조정이 혼란하자 그를 죽이라고 무인(武人) 박영(朴英)에게 권하였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1507년(중종 2) 참의(參議) 유숭조(柳崇祖), 호군(護軍) 심정(沈貞), 전(前) 승지(承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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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을 알 수 없는 조광보는 조선 중기의 지사(志士)이며, 일명 광보(廣輔). 호는 방은(方隱)이다. 연산군 때 임사홍(任士洪)이 권력을 장악하여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무인인 박영(朴英)에게 그를 죽이라고 권한 바 있으나 실행되지 못하였다. 1507년(중종 2)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박경(朴耕)의 옥사에 관련, 국청에서 죄인심문을 받을 때, 무오사화 때 연루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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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실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경(儆), 자는 계중(戒中), 호는 서파(西坡)·방편자(方便子)·남악(南嶽). 영의정 유순정(柳順汀)의 11세손이며, 아버지는 목천현감(木川縣監) 유한규(柳漢奎), 어머니는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쓴 사주당(師朱堂) 이씨이다. 영조 대에서 헌종 대까지 살았던 학자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여 『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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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의 토속명칭은 ‘배개미’, ‘배가미’ 이다. 지금까지도 토박이들은 백암을 ‘배개미’로, 백암장을 ‘배개미장’이라 부른다. 한자 표기로 ‘白巖’, ‘白岩’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같은 표기는 근대 이후에 사용된 명칭이다. 고문헌의 기록을 보면, ‘배관(排觀)’, ‘배감(排甘)’으로 표기되어 있다. 『동국문헌비고』(1770년) 향시(鄕市)조에 배관(排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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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13일, 우리 조사팀은 경기도 용인시 지곡동 마을회관을 찾아갔다.지곡2리 마을회관 그 곳에는 어르신 4~5분이 계셔서 얘기를 나누시는 중이셨다. 필자는 식생활 전공이다 보니, 다식판이나 제기 등의 옛 부엌살림을 넣어 전시하고 있는 장식장에 눈길이 갔다. 그래서 자연스레 어르신께 “장식장에 있는 다식판을 보아도 되나요? 라고 여쭈어보았더니, 흔쾌히 보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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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입는 옷.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출생과 동시에 쌀깃에 싸 두었다가 3일 또는 일주일이 지난 후 목욕을 시킨 후에 입히는 옷이다. 입히는 시기는 반드시 정해진 것은 아니었으며, 태어난 후 바로 입히거나 임의대로 입히는 경우도 많았다. 아기의 보온과 위생에 중점을 두고, 품이 크고 넉넉하게 만들어 혈액순환에 좋고 입고 벗기기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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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입는 옷.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출생과 동시에 쌀깃에 싸 두었다가 3일 또는 일주일이 지난 후 목욕을 시킨 후에 입히는 옷이다. 입히는 시기는 반드시 정해진 것은 아니었으며, 태어난 후 바로 입히거나 임의대로 입히는 경우도 많았다. 아기의 보온과 위생에 중점을 두고, 품이 크고 넉넉하게 만들어 혈액순환에 좋고 입고 벗기기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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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어린아이의 배와 아랫도리에 둘러주는 치마같이 만든 옷. 상·하의(上下衣)의 구분이 없는 형태이지만 하의로 볼 수 있다. 고기1동에서는 ‘두렁치’라고도 불렀다. 조선시대 고종 때의 『궁중발기(宮中發記)』라는 책에는 왕자의 삼칠일 의대(衣襨)에 누비두렁이 기록이 남아 있다. 어린아이의 가슴 부위에서 무릎이나 허벅지 정도까지 앞치마와 비슷한 모양으로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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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어린아이의 배와 아랫도리에 둘러주는 치마같이 만든 옷. 상·하의(上下衣)의 구분이 없는 형태이지만 하의로 볼 수 있다. 고기1동에서는 ‘두렁치’라고도 불렀다. 조선시대 고종 때의 『궁중발기(宮中發記)』라는 책에는 왕자의 삼칠일 의대(衣襨)에 누비두렁이 기록이 남아 있다. 어린아이의 가슴 부위에서 무릎이나 허벅지 정도까지 앞치마와 비슷한 모양으로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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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곤산(昆山)[昆陽]. 자는 달지(達之), 시호는 양호(襄胡)이다. 곤산배씨(昆山裵氏)의 시조이다. 어려서부터 담력이 뛰어났으며 궁마(弓馬)와 병법에 능통했다. 1447년(세종 29) 내금위 사용(司勇)에 임명되었고 1454년(단종 2) 무과에 급제했다. 1464년(세조 10)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있을 때 진응사(進鷹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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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설립되었던 비인가 중학교. 1956년 월남하여 선교 활동을 하던 이기구가 설립하였다. 신갈 지역의 정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을 대상으로 중학교 과정을 교육하였다. 1969년 당시 학생 수는 남학생 54명, 여학생 75명으로 총 129명이다. 교사는 4명이며 교실은 4개였다. 당시 재학생을 보면 남학생은 수원 등지의 중학교로 진학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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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 선장마을에 있는 서낭당.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에 있는 선장마을에는 박석고개 서낭당과 배오개 서낭당이 있는데, 이들 서낭당은 각각 포곡읍과 모현읍의 경계 지점인 박석고개와 배오개고개에 있다. 박석고개는 일명 ‘고밀고개’라고도 하며, 선장마을 사람들이 모현장을 갈 때 주로 이용하던 고갯길이었다. 박석고개 서낭당이 있는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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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이애(李薆)[1363~1414]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1396년 태조의 8남 5녀 중 맏딸인 경신공주(慶愼公主)[?~1426]와 혼인하여 상당군(上黨君)과 상당후(上黨候)가 되었다. 본관은 청주(淸州). 아명은 백경(伯卿). 초명은 이저(李佇). 아버지는 청허자(淸虛子) 이거이(李居易)이며, 청평부원군에 봉하여졌다가 공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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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해미(海美). 호는 풍암(楓巖). 백광언은 무과에 급제하여 용맹하고 과감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일찍이 정여립(鄭汝立)의 권세가 높아지자 도내(道內)의 문무사류(文武士類)가 모두 이와 결탁하였으나, 홀로 동조하지 않은 까닭에 미움을 받아 1589년(선조 22) 북청판관(北靑判官)으로 체직(遞職)되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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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영조,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국정을 주도하였던 문신으로 오광운(吳光運), 강박(姜樸)에게서 수학하였다.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채응일(蔡膺一)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 이만성(李萬成)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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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아트 창시자인 백남준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세운 경기도립미술관. 백남준 아트센터는 세계 유일의 미디어아트 전문기관으로 모든 전시는 국제전시와 기획전시로 운영된다. 건립기본계획 수립에는 백남준이 직접 참여하여 스스로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기존의 여느 미술관과 달리 백남준 아트센터는 정지된 전시회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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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백눌(伯訥), 호는 풍서(豊墅) 또는 상와(常窩)이다. 증조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이희조(李喜朝), 아버지는 사간원 대사간 이양신(李亮臣)이다. 1747년(영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시강원의 동궁요속(東宮僚屬)에 임명되었고, 장악원정을 거쳐 1788년 동부승지에 특배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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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 백련사는 통일신라시대 801년(애장왕 2)에 신응선사(愼應禪師)가 암자를 지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고려 후기 1389년(공양왕 1)에 승려 천공(泉公)이 절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 무학대사는 이곳 백련암에 18나한상을 조성하고 절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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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 나한전에 있는 조선시대 나한상. 우리나라에서 나한 신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고려시대부터 널리 신앙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광통보제사의 정전을 나한 보전이라 하고, 석가모니와 문수, 보현보살의 삼존과 함께 500나한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나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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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나한을 모신 법당. 나한이란 원래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이며, 부처로부터 아라한이라는 과일을 얻은 불제자들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소승 교법을 수행하는 가장 윗자리를 가리키는 말로서 대승불교의 부처와 같은 경지이다. 나한도량은 부처의 제자 1,255명의 아라한을 상징하며, 18위를 모실 때 18나한전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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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 나한전에 있는 조선시대 나한상. 우리나라에서 나한 신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고려시대부터 널리 신앙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광통보제사의 정전을 나한 보전이라 하고, 석가모니와 문수, 보현보살의 삼존과 함께 500나한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나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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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 나한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목불좌상. 백련사 나한전에는 목불좌상 1구를 포함해, 지불좌상 1구, 석조나한상 16구 등이 안치되어 있다. 백련사 목불좌상은 높이가 40㎝ 정도 되는 작은 크기의 불상으로, 양손을 단정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다. 얼굴은 동안형(童顔形)이며, 머리에는 낮게 퍼진 반월형의 중앙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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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에 있는 조선 후기 지불(紙佛)좌상. 동안의 얼굴은 살이 찐 편이고 머리에는 굵고 큼직한 나발을 부착하였으며, 머리의 중앙에는 계주가 있다. 미간에는 큼직한 백호가 돌출되어 있으며,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꼭 다문 입술은 작고 앙증맞으며, 귀는 단정하다. 대의(大衣)는 이중 착의를 하였고 가슴은 방형으로 크게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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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중창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의 중심 불전. 백련사는 서기 802년(신라 애장왕 2년)에 신응선사가 창건한 용인 지역의 고찰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삼지 않고 대적광전에서 주로 모시는 삼신불(三身佛), 즉 청정법신(淸淨法身)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원만보신(圓滿報身)인 노사나불,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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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 나한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목불좌상. 백련사 나한전에는 목불좌상 1구를 포함해, 지불좌상 1구, 석조나한상 16구 등이 안치되어 있다. 백련사 목불좌상은 높이가 40㎝ 정도 되는 작은 크기의 불상으로, 양손을 단정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다. 얼굴은 동안형(童顔形)이며, 머리에는 낮게 퍼진 반월형의 중앙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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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불두. 현재 백련사 석조불좌상과 함께 놓여져 있다. 신체는 파손되어 그 상태를 알 수 없고 불두만이 남아 있다. 불두는 크게 훼손되어 완전한 모습을 찾을 수 없고, 정면과 좌우 측면에는 세밀하게 조각된 나발이 남아 있다. 현고는 12.2㎝, 폭 9.6㎝, 두께 7.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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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불. 나발의 머리 위에 낮은 육계가 있는데 마모가 심하고, 이마에는 백호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상호는 둥글고 풍만하지만 긴장감이 결여된 모습이다. 귀와 코는 파손되었고, 두터운 입술은 약간 벌리고 있는 듯하다. 가슴 위쪽에 삼도(三道)가 형식적으로 음각되어 있는데, 삼도가 이렇게 가슴 부분에 표현된 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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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불두. 현재 백련사 석조불좌상과 함께 놓여져 있다. 신체는 파손되어 그 상태를 알 수 없고 불두만이 남아 있다. 불두는 크게 훼손되어 완전한 모습을 찾을 수 없고, 정면과 좌우 측면에는 세밀하게 조각된 나발이 남아 있다. 현고는 12.2㎝, 폭 9.6㎝, 두께 7.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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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불. 나발의 머리 위에 낮은 육계가 있는데 마모가 심하고, 이마에는 백호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상호는 둥글고 풍만하지만 긴장감이 결여된 모습이다. 귀와 코는 파손되었고, 두터운 입술은 약간 벌리고 있는 듯하다. 가슴 위쪽에 삼도(三道)가 형식적으로 음각되어 있는데, 삼도가 이렇게 가슴 부분에 표현된 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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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 부지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와 탑비. 백련사 경내에서 100m 정도 떨어진 북쪽 위치에 석종형 부도와 비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부도는 조선시대에 일반적으로 보이는 석종형(石鐘型) 부도로, 탑신부(塔身部)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어 소박하다. 사각의 지대석(地臺石) 중심에 원형의 홈을 파고 그 위에 탑신(塔身)을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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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에 있는 조선 후기 지불(紙佛)좌상. 동안의 얼굴은 살이 찐 편이고 머리에는 굵고 큼직한 나발을 부착하였으며, 머리의 중앙에는 계주가 있다. 미간에는 큼직한 백호가 돌출되어 있으며,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꼭 다문 입술은 작고 앙증맞으며, 귀는 단정하다. 대의(大衣)는 이중 착의를 하였고 가슴은 방형으로 크게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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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백련암의 유래와 경계 지역, 중수 내용을 기록한 문서. 반곽의 크기는 32x22㎝ 정도이며 우철 5정침으로 제본되어 있다. 표지에는 “향수산백련암약사(香秀山白蓮菴略史)”라 기록되어 있으나 ‘향수산’이란 글씨만 희미하게 보일 뿐 나머지 글자는 판독이 어렵다. 면수는 6면이며 장수는 3엽이고 글씨는 행서의 필사본이다. 기록의 서두에는 백련암이 위치한 산명, 암자 명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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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통합]소속 교회. 선교사 민노아가 기독교 전파와 교회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백봉교회는 경기도 용인시에 최초로 개설된 교회이다. 1894년 이원서, 서경삼, 이덕보 등이 설교를 듣고 예배를 본 것이 백봉교회의 시작이다. 선교사 민노아가 교회를 설립하고, 선교사 피득이 교회를 진흥시켰다. 처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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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봉이라는 이름은 1914년에 생긴 이름으로 잣나무골[栢洞]과 봉리(峰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백봉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백봉리는 본래 죽주(竹州)에 속했던 지역으로 본래 대곡부곡(大谷部曲)으로 불리던 지역으로 생각된다. 1413년(태종 13) 양지현으로 이속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본래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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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백봉리사지에는 3층석탑과 석불 및 주초석 등이 남아 있었으나 석탑 등은 1983년에 대은사가 창건되면서 옮겨졌다. 현재 사지의 흔적이 남아 있던 과수원은 삭토되어 건물이 들어서 있고, 주변 단애 면에서 고려시대의 기와편과 자기편이 깨어진 채 발견되었다. 사지의 중심부와 그 주변이 암반층까지 깎여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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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서낭당.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백봉리에는 백봉2리의 벌말(평촌)과 백동마을(잣나무골), 백봉6리의 사은마을(샛말), 백봉8리의 봉리마을 등에 서낭당이 있었다. 벌말의 서낭당은 광고개 서낭당으로 불리고, 백동마을의 서낭당은 훈고개(큰고개) 서낭당, 사은마을의 서낭당은 숯돌고개 서낭당이라고 불렀다. 이들 서낭당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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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백봉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나누어 분포하는데, 백봉리 1378-1번지의 선사유적1과 백봉리 1380-1번지의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경기도 용인 양지에서 음성으로 가는 국도 17호선을 통해 백암을 지나 백봉초등학교에서 남서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백봉리 4리 속칭 ‘봉리’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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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백봉리 대은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탑재. 이 지역 주민들이 잣나무골이라 부르는 곳에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절터가 있다. 현재 절터에는 건물지와 함께 불상과 대좌(臺座), 탑재, 초석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주변에는 와편(瓦片)이 산재하고 있어 과거에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근래 들어 대은사(大恩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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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 백봉리사지에 있는 조선시대 나한상. 백봉리사지 나한상은 화강암 석재로 제작되었으며, 좌상의 형태이나 두부가 결실되었다. 현고 39㎝, 현폭 30㎝, 두께 16㎝ 정도이다. 백봉리사지 나한상은 박곡리사지에서 옮겨진 것이라고도 전하나, 재질이 화강암인 점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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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도덕인(바르게 행동하고 남을 배려하는 어린이), 자주인(자주적이고 서로돕는 어린이), 창의인(슬기롭게 생각하며 탐구하는 어린이), 건강인(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씩씩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0년 초 이 고장 유지 이해종이 부지 400여평을 학교 설립에 기부하여 이를 토대로 기존 공민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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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의이씨 용인 입향조. 이언념은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 일대에 거주하는 전의이씨의 입향조이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정이(靜而), 자호는 백석산인(白石散人)이다. 이언념은 선교랑(宣敎郞)의 벼슬을 지냈다. 1617년(광해군 10)에 충정공(忠貞公) 홍무적(洪茂績)과 더불어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廢母)에 항의하는 상소를 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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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생산되는 반상(飯床). 반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전통상으로 ‘밥상’ 모두를 지칭한다. 작업은 분할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대략 한달에 300~500개 정도 만들어낸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전궁리 266-2번지[각궁로116번길 1]에서 생산되고 있다. 향토지적재산 보유자인 이수자는 4대째 전수되고 있는 가업을 24세에 본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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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생산되는 반상(飯床). 반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전통상으로 ‘밥상’ 모두를 지칭한다. 작업은 분할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대략 한달에 300~500개 정도 만들어낸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전궁리 266-2번지[각궁로116번길 1]에서 생산되고 있다. 향토지적재산 보유자인 이수자는 4대째 전수되고 있는 가업을 24세에 본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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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심(伯深), 호는 운소(雲巢).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의 손자이며, 형조판서 김효대(金孝大)의 아들이다. 김사목은 문음(文蔭)으로 관직에 나간 뒤 김제군수를 거쳐, 1772년(영조 48)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부교리, 보덕(輔德), 승정원동부승지를 거쳐 1774년에는 승지가 되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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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죽계(竹溪). 자는 흥숙(興叔), 호는 우졸재(愚拙齋)·백암(栢巖). 관찰사(觀察使) 안종도(安宗道)의 증손이며, 좌찬성으로 추증된 안세복(安世復)의 손자이며, 순양군(順陽君) 안몽윤(安夢尹)의 아들이다. 첫째 부인은 판서 이경황(李慶滉)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는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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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농업 지역에서 그랬듯이 백암에서도 논농사는 공동노동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농악’이란 말로 기억되고 있는 두레는 마을 일꾼들의 공동노동을 위한 조직이었다. 용인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백암면의 두레 활동은 타 지역에 비해 왕성했다. 이들 두레는 여름 논매기 시절뿐 아니라 모내기, 보리파종, 곡물 수확 때까지도 협업과 놀이를 하며 일의 능률과 서로간의 화합을 돈독히 다졌다.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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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천주교 사회 복지 시설. 백암 성가원은 천주교 수원교구 교구장이 인준한 장애인 사회 복지 시설이다. 장애인의 집 성가원이라고도 불린다. 장애로 인하여 근로 능력을 상실한 사람의 생활, 자활, 교육, 심리를 도와주어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백암 성가원은 198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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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조화롭고 건강한 심신을 바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윤리를 함양하고, 바른 인성과 창의성을 계발하여 21세기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민주 시민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정직, 성실, 봉사이다. 1947년 9월 5일 외사고등공민학교로 출발하여 백암중학교와 병설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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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1930년 9월 신태봉의 사랑방에서 신태봉, 김수덕, 최부억, 신봉업, 신성균, 전도사 이용순 등 6명이 개척 예배를 본 것이 백암교회의 시작이다. 1932년 이몽순 전도사가 헌금을 하고, 신태원이 대지와 목재를 희사하자, 신자들이 노력 봉사하여 초가 교회 건물을 신축, 교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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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물놀이.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는 예전부터 마을마다 다양한 양식의 풍물놀이가 연희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고유문화 말살정책으로 중단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8·15해방 이후 농악이 점차 되살아나면서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진 근대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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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면에 속한 법정리로, 현재 백암면의 면소재지이다.면소재지 전경 본래의 백암은 죽산군 근삼면의 노동리(老洞里), 배감동(排甘洞)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지금의 위치로 면소재지로 옮긴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양지군 박곡면 기안리(機安里) 지역이었다. 현재의 백암리에는 동구·서구·당촌·지렁골·틀안 등 5개 자연마을이 속해 있다. 2005년도 통계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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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암의 본래 표기는 배관(排觀)이다. 1770년(영조 46)에 간행된 『동국문헌비고』에 배관장(排觀場)이란 명칭이 처음 보이고 이후 각종 『읍지』류에도 동일한 표기가 보인다. 이후 1827년(순조 27)의 『임원경제지』에는 배감(排甘)으로 나타난다. 백암(白岩)의 표기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보이는 표기이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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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00년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초상이나 잔치, 명절날 등에 필요한 술은 그때그때 직접 빚어 사용하였다. 또 사람이 많이 다니는 동네 어귀 주막에서는 음식과 함께 막걸리를 담가 지나가는 여행객들의 지친 몸에 활력을 넣어주곤 하였다. 그러나 1907년 일제에 의해 술에 주세를 부과하고, 1920년대 와서 각 지역마다 주류 제조업자를 지정하여 관리하다 보니 수많은 전통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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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하는 행정면. 본래 죽산군 지역으로 근삼면이라하여 협동·가곡·내창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근일면의 용천상·용천중·구율 등 12개 리와 원삼면의 창동 일부, 북일면의 고목리 일부, 양지군 박곡면의 청계·신창·기안의 3개 리와 같은 군 고안면의 주천·백동 등 5개 리를 병합하여 외사면이 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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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있는 백암면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4개 행정동, 6개 면 중 백암면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백암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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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1930년 9월 신태봉의 사랑방에서 신태봉, 김수덕, 최부억, 신봉업, 신성균, 전도사 이용순 등 6명이 개척 예배를 본 것이 백암교회의 시작이다. 1932년 이몽순 전도사가 헌금을 하고, 신태원이 대지와 목재를 희사하자, 신자들이 노력 봉사하여 초가 교회 건물을 신축, 교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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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소속 천주교회. 백암성당은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내 용인제1지구에 소속된 성당이다. 아직까지 주보성인을 정하지 못했으나 용인 지역에서 순교한 한국 순교 성인 가운데 한 분을 모실 계획이었으나 성 요한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모본당(母本堂)인 양지성당으로부터 분가하여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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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돼지를 잡은 뒤 순대를 만들어 먹는 일이 드물어졌으나,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백암마을에서는 돼지나 소를 잡는 날엔 순대를 만들어 먹었다. 백암은 예전부터 축산농가가 많았던 지역적 특성 때문에 집안에 잔치가 있을 경우 돼지나 소를 도축하여 잔치 음식을 만들었으며, 부산물로 나오는 내장은 깨끗이 씻어 야채를 넣어서 순대를 만들었다. 고기만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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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내식품의 순대가 전통의 맛을 지키면서 전국 식탁을 찾아간다면, 외부 손님을 용인으로 불러들이는 순대집도 있다. 백암시장 골목에 위치한 풍성식당, 제일식당, 형제식당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바깥에서 보기에도 허름한 순대집들은 백암장날이 아니라도 항상 손님들로 꽉 차 있다. 절반은 용인 손님, 절반은 타지역 손님으로써 한 번 맛본 사람들을 먼 거리에 상관하지 않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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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순대는 이제 백암에서만 먹을 수 있는 지방 식품이 아니다. 이미 ‘백암순대’라는 브랜드를 확보하였고, 전국적인 유통망도 구축되어 있다. 백암 토박이 신동선(37세) 씨는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10여 년 가까이 백암순대 홍보사업을 폈다. 1990년의 농산물 전시회에 백암순대를 출품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은 후 정부의 개발 제의를 받고, 1997년 백암에 순대공장을 세웠다.이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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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있는 우편 및 금융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직급에 따라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나누거나 기능에 따라서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4급과 5급 우체국은 총괄국으로서 기초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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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있는 전통 재래 시장. 백암장은 조선시대에 죽산현에 속했던 장시로, 배관장(排觀場) 혹은 배감장(排甘場)으로 불리었다. 언제 설시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시적고(市糴考) 향시조(鄕市條)에 ‘배관장’이란 이름이 기록상 처음 등장하여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서울과 수원·안성 등 경기 지역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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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는 함경도와 평안도처럼 추운 지방에서 즐기던 음식이다.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자면 영양식이 필요했고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맛을 낸 순대가 영양 보충식이었다. 요즘은 사계절 언제나 시장 골목부터 대형 유통점 어디에서나 쉽게 먹을 수 있다. 순대는 대표적인 서민층의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지역에 따라 만드는 방법과 맛이 달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순대만큼 전국적으로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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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순대는 조선시대 이래 죽성(현 안성시 죽산면) 지역을 중심으로 만들어 먹던 음식으로, 죽성이 퇴조하면서 인근 고을인 용인시 백암면의 백암장을 통해 전통이 유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경기도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쯤 ‘풍성옥’을 운영하던 함경도 출신의 이억조(여, 1909~1996)가 백암장이 설 때 순대와 국밥을 만들어 팔던 것이 시초라고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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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의 주가를 올린 것은 쇠전(우시장)이었다. 용인뿐만 아니라 인근의 5일장 중에 가장 거래가 왕성하였던 장이 백암장이다. 1918년 말의 조사에 의하면 당시 전국의 우시장은 모두 655개소였다. 당시 단위시장으로 큰 시장으로 유명했던 곳은 함북 명천군의 명천장과 길주군 길주장으로서 거래량이 2만5천두 이상이었다. 그 다음으로 수원군 수원장, 양주군 삼패장 등이 2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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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1980년 백암리 홍약국 2층에서 현 목사인 조복희가 창립 예배를 보았다. 1981년 선교원을 설립, 초중고 학생들에게 주산, 부기, 타자를 무료로 가르치고, 유치원을 설립, 운영하면서 복음 전달과 기도에 노력하였다. 당시 학생이 150여 명에 이르렀으며, 이들이 성장하여 현재 교회의 중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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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교훈은 ‘성실’이며, 조화롭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바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윤리를 함양하고, 바른 인성과 창의성을 계발하여 21세기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민주시민을 기르는 것이 교육목표이다. 1947년 9월 5일 외사공민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1950년 5월 7일 외사공민고등학교 제1회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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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이 바르고 미래핵심역량을 갖춘 홍익인재 육성을 교육의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다. 교육목표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며 더불어 사는 어린이(德), 꿈을 키우며 시간을 관리하는 자율적인 어린이(自), 창의적 지성을 갖춘 슬기로운 어린이(創), 활기차고 부지런하며 건강한 어린이(體) 육성이다. 용인시에서 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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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에 있는 공립 백암초등학교 수정분교장. 나라를 사랑하고 예절 바른 사람, 스스로 공부하는 자주적인 사람, 책임을 다하고 서로 돕는 사람, 탐구하고 창조하는 사람,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으로 기르는 것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와 가창리 지역은 백암초등학교와 거리가 멀어 학교가 필요함에 따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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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1415~1477]은 세종 대부터 성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김반(金泮)의 문인이다. 뛰어난 학문으로 당대 8대 문장가로 꼽히기도 하였다. 집현전학사였으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짓는 것에 그쳤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에 “중국은 다만 성곽(城郭)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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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원삼면 등지에서 생산되는 쌀. 1985년에 쌀 계약 재배를 목적으로 추청작목반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농민들의 호응도가 낮아 백암농업협동조합에서 작목반 구성원들에게 특별 영농자금과 종자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계약 재배를 개시했다. 정선된 쌀로 수매를 받은 결과, 1996년에 품질인증을 받았다. 벼의 종류는 조생종인 추청이고, 서울의 상수원 1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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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포도. 1998년부터 포도 재배 농가들이 ‘용인백옥포도연구회’를 결성, 용인시 농업기술센터의 지도 하에 선진 농장 견학과 현장 컨설팅 등을 통해 포도의 품질 개선은 물론 생산성 향상에 매진해온 결과 2007년 2월부터 무가온 재배를 하고 있다. 포도는 무가온 시설 재배법으로 생산하는데, 무가온 시설 재배법이란 온풍기를 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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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시인. 홍사용은 경기도 용인시에서 태어났으나 성장기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머물며, 휘문의숙에 입학하기 전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1919년에 휘문의숙을 졸업하였는데, 기미독립운동 당시 학생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1947년에 사망하였다.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노작(露雀)·소아(笑啞)·백우(白牛). 아버지는 대한제국 통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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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과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 의왕시 오전동 및 왕곡동에 걸쳐 있는 산. 흔히 백운산은 정상부 북단의 562.5m 고지를 말하며, 이곳에 지적측량 삼각점이 있다. 남동쪽으로는 광교산과 490고지를 거쳐 형제봉으로 이어지며, 북동쪽으로는 고분재·바라산·학현·국사봉·청계산으로 이어진다. 북서쪽의 유수는 백운저수지에 모였다가 학의천을 거쳐 안양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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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1569~1618]은 5세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9세 때 시를 지을 줄 알았으며, 12세 때 아버지를 잃고 더욱 시 공부에 전념하였다. 학문은 유성룡(柳成龍)에게 나아가 배웠으며, 시는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하나인 이달(李達)에게서 배웠다. 이달은 둘째 형의 친구로서 당시 강원도 원주의 손곡리(蓀谷里)에 살고 있었는데, 허균에게 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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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백인(白仁), 호는 소암(素庵). 충신으로 정려된 최잠(崔潛)의 후손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위독할 때는 대변을 맛보기도 하고, 자신을 대신 죽게 해달라고 목욕재계하고 기도하였다. 아버지가 목숨이 위태로울 때에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시게 하여 목숨을 연명하게 하였다. 또 어머니가 위독하자 정성을 다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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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 있는 대한불교 천태종 소속 사찰. 1967년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永春面) 구인사(救仁寺)에서 박상월(朴上月)이 창시한 불교 종단으로 한국 불교 27개 종단의 하나이다. 처음에는 ‘천태종대각불교포교원’으로 종교 단체 등록을 하였다가 1969년 ‘대한불교천태종’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석가불을 본존불로,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을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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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조선 후기 순백자 항아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자 둥근 항아리로 ‘달항아리’ 부류에 속한다.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시킨 다음, 백자유를 바르고 고온에서 환원 번조한 전형적인 달항아리이다. 몸통은 원형보다 마름모 형태에 가까우며 비교적 높게 처리된 입과 굽은 크기가 비슷하다. 높이 44.5㎝, 입지름 18.2㎝, 밑지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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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조선 전기 백자병. 연질계의 백자에 조선 전기 특유의 상감 기법으로 연당초문이 시문되어 있다. 순백의 기면에 검은색의 자토를 사용해 상감 문양을 새긴 다음 투명한 백자유를 발라 낮은 온도에서 환원 번조하였다. 조선 전기의 양감이 좋은 전형적인 병 형태를 하고 있으며, 어깨에 당초문대를 돌리고 몸통 3곳에 연꽃을 배치했으며 덩굴 무늬로 연결해 놓았다.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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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조선 전기 백자병. 먼저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병을 만든 다음, 다시 그 위에 장식을 할 수 있는 표면을 덧댄 이중 구조를 한 희귀한 병이다. 몸통에는 대담한 투각 수법으로 모란문을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흑상감법으로 세부를 표현하였으며, 어깨에도 흑상감된 초화문대(草花文帶)를 둘렀다. 기본 형태는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모래를 받쳐 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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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종(伯宗). 아버지는 이익령(李翼齡)이며, 조부는 이진규(李震奎), 증조부는 이명웅(李命雄), 어머니는 박희인(朴希仁)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시(增廣試)에 병과(丙科) 21인으로 급제하였고, 벼슬로 지평·정언·장령·헌납을 거쳐 형조참판에 이르렀으나 1761년(영조 37)에 파직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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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백창(伯昌).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 한현모(韓顯謨)이다. 백창(伯昌) 한후유(韓後裕)[1713~1791]는 숙종 대부터 정조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1748년(영조 24) 35세 때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1751년(영조 27)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을 제수 받은 후, 세손좌종사(世孫佐從史)·사복시주부(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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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유야(悠也), 호는 백치(白痴). 아버지는 대사간 이사경(李士慶)이다. 1618년(광해군 10)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이 되어 시관(試官) 김륜(金崙)과 임건(林健) 등의 잘못을 탄핵하였다. 이어서 호조정랑·직강·사서를 거쳐 평양서윤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첨정(僉正)으로 있을 때 명나라 장수 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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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하갈동에 있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교회. 백향목교회는 1963년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보라리 양달말이에서 할머니 전도부인의 신앙 모임에서 출발하였다. 1969년 9월 26일 충광교회로 설립되었다. 제1대 교역자로 김연식 전도사, 제2대 교역자로 이남묵 전도사, 제3대 교역자로 김용도 전도사, 제4대 교역자로 김문선 목사, 제5대 교역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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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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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1월 경기도 이천의 백현에서 이천 의병과 일본군 수비대간에 벌어진 전투. 1895년 음력 8월 20일 일본 공사관의 주도로 자행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을 기화로 조선의 각계각층에서 반일 기운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년 11월 15일 단발령이 공포되자 반일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고,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서울에서 가까운 이천에서도 의병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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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이다. 증조부는 김덕수(金德秀), 할아버지는 김비(金棐),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고, 외조부는 조희맹(趙希孟)이다. 아들은 김좌명(金佐明), 손자는 김석주(金錫胄)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후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16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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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유방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교회에 헌신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사랑과 진리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버들교회는 1980년 3월 17일에 설립되었으며, 1998년 7월 16일에 현재의 교회 건물을 건축하였다. 국내 선교 활동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프리카 중북부에 있는 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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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영조,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국정을 주도하였던 문신으로 오광운(吳光運), 강박(姜樸)에게서 수학하였다.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채응일(蔡膺一)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 이만성(李萬成)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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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영조,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국정을 주도하였던 문신으로 오광운(吳光運), 강박(姜樸)에게서 수학하였다.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채응일(蔡膺一)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 이만성(李萬成)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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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곡식가루에 호박 같은 것을 섞어서 된 풀처럼 쑨 음식. 범벅은 쌀 등의 곡식가루가 부족하여 떡을 만들기 어려울 때 다른 재료를 함께 혼합하여 만들었는데, 끼니를 잇기 어려웠던 시기에는 구황음식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누렇게 익은 호박을 씻어 물을 붓고 끓여 푹 삶아 으깨고 삶은 팥, 삶은 콩 등을 함께 넣어 끓이다가 찹쌀가루를 넣어서 쑨다. 호박범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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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덕수(德水). 일명 방(芳)·윤봉조(尹鳳朝), 자는 만위(晩瑋), 호는 춘호(春湖)·한정(漢汀)·법명(法明). 아버지는 이종백(李種百)의 아들로 이현(李賢)에게 입양되었다. 이정열은 천석꾼의 부자로 3·1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그 해 10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던 강태동(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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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길에 있던 법무부 산하 법무 행정 연구와 법무 공무원 교육 연수 기관. 법무연수원은 검찰, 보호 관찰, 소년 보호, 출입국 관리 및 교정 등 법무부 소속 공무원에 대한 교육 훈련과 법무 행정 발전을 위한 조사·연구 업무를 담당하는 종합적인 교육·연구 기관이다. ‘높은 이상, 알찬 연수, 힘찬 전진’이라는 원훈 아래 심도 있는 교육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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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명지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486년(성종 17) 간행된 보조국사 지눌의 수행 지침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는 지눌(知訥)[1158~1210]이 입적하기 한 해 전인 1209년(52세), 곧 사상적으로 가장 원숙한 시기에 당나라 승려 종밀(宗密)의 『법집별행록(法集別行錄)』의 번잡한 내용을 간략히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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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청덕동과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걸쳐 있는 산. 『조선지명지』에는 읍내면 상마곡, 동변면 수청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제학이 쓴 『용인의 산수 이야기』에는 천태교학의 법화경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 능선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300m 정도의 봉우리들이 연속되어 있으며, 북서쪽에는 무등재, 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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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에서 시집살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2년에 채록되어 1984년에 출간된 『한국구비문학대계』1-9에 실려 있다. 옛날 어느 집에서 인분 치우는 법까지 가르쳐 딸을 시집보내면서 “바둑이 말하기 전, 삼 년 동안은 말을 하지 말아라.” 하고 당부하였다. 시집을 와서 통 말을 안 하자 시아버지가, “아! 인물도 좋고 뭐든지 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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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에서 활동한 천주교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양반 출신으로 1790년대 초 천주교에 입교하였는데, 1801년 신유박해가 끝난 뒤 경기도 용인시에서 약 16㎞쯤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던 40여 명의 신자들을 이끌고 강원도로 옮겨 갔다. 신태보는 이곳에서 기록상 최초로 천주교 신자들만의 마을인 교우촌(敎友村)을 형성하였다. 강원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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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와 참새가 놀고 있는 황금들판에서 가족과 함께 서투른 낫질로 벼를 베어보는 체험을 통해서 자연을 배우고 벼 수확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농업의 중요성과 농민의 생활에 동참해 본다. 땀 흘리며 벼 베기 체험을 마치고 나서 논두렁에 걸터앉아 먹는 가마솥 들밥의 맛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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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분포되어 있는, 조상의 신주, 영정을 모셔 두고 제향을 행하는 장소. 지역에 따라 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이사(里祠)·영당(影堂)·별묘(別廟)·세덕사(世德祠)·유애사(遺愛祠)·생사당(生祠堂)·사당(祠堂) 등으로 불리는 사우(祠宇)는, 조상의 신주와 영정을 모셔 두고 연 수 차례에 걸쳐 제향을 행하는 장소이다. 보통 반가의 사우에서는 부모와 조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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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만들어 먹는 속성 별미장. 경기도 용인시 고기1동에서는 일반적인 장류 외에 ‘맛장’이라는 것을 별도로 만들어 먹고 있다. 이 맛장은 메주가루를 소금물에 타서 걸쭉한 된장같이 덩어리로 만들어 고춧가루를 섞어서 쌈장처럼 만들어 먹는 장이다. 맛장은 별미장이면서, 속성 된장이다. 흔히 간장을 뜨고 남은 보통 된장과는 달리 메주를 빻아 소금 간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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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만들어 먹는 속성 별미장. 경기도 용인시 고기1동에서는 일반적인 장류 외에 ‘맛장’이라는 것을 별도로 만들어 먹고 있다. 이 맛장은 메주가루를 소금물에 타서 걸쭉한 된장같이 덩어리로 만들어 고춧가루를 섞어서 쌈장처럼 만들어 먹는 장이다. 맛장은 별미장이면서, 속성 된장이다. 흔히 간장을 뜨고 남은 보통 된장과는 달리 메주를 빻아 소금 간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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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시첩. 『별장첩(別章帖)』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명준(吳命峻)[1662~?]이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떠나기 전에, 당시 조정 중신과 동료들이 연행(燕行)을 전송하며 지은 시문을 모아 놓은 것이다. 불분권 2첩으로, 필사본이다. 표제는 별장첩(別章帖)이다. 크기는 가로 31㎝, 세로 51㎝이다. 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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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병든 사람을 진단하고 치료하거나 질병의 예방과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및 시설. 병의원은 보건의료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보건의료는 크게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으로 나뉜다. 공적 영역은 중앙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중심이 되며 보건소를 중심으로 한 공중 보건과 보건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민간 영역은 사설 의료 기관이 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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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청나라 군대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1627년(인조 5) 후금(後金)[뒤의 청나라]의 1차 침입 때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맹약을 하고 두 나라 관계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나라 이름을 청(淸)으로 고친 후금은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맹약’을 ‘군신(君臣)의 의(義)’로 개조하자고 요청을 해올 뿐 아니라 무리한 세폐와 정병 3만까지 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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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과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에 걸쳐 있는 산. 옛날 각종 지지를 보면 보개산과 석성산을 같은 산으로 혼동했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현 동쪽에 있는데 높고 험하며 둘레가 942보이다. 안에 작은 우물이 있는데 가뭄이 들면 말라버린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의 할미성이 있는 산을 지칭한 것이다. 『대동지지』에는 “보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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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내지봉수(內地烽燧). 석성산 봉수는 동쪽으로 건지산 봉수(직선 거리 15.5㎞), 북쪽으로 천천산 봉수(18.75㎞)와 교신하였다. 석성산 봉수는 석축으로 규모는 둘레 65.7m, 높이 5m 가량이다. 상부는 평탄한 대지를 이룬다. 봉수대의 동쪽으로는 높이 2.5m 가량의 암반과 암반 사이에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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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축 산성. 보개산성은 경안천과 신갈천의 분수령을 이루는 보개산 정상부에 위치한 산성이다. 성내 시설물로는 성문과 건물지 등이 확인된다. 성문은 동문지, 남문지와 암문(暗門)의 성격을 가진 남벽 서측의 문지 등 세 곳이지만 원래는 이보다 더 많은 문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성내에서는 주로 도기편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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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의 질병 예방·진료·공중위생 향상을 위해 설치된 공공 의료 기관. 지역 주민의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시켜 국민 보건 향상에 이바지하는 지역 보건 의료 기관이다. 보건소의 설치는 「지역보건법」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당해 지방 자치 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데 대개 각 시·군·구에 설치되어 있다. 2007년 현재 용인시는 광역시는 아니지만 행정 편의상 기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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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주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 및 증진하기 위해 행해지는 제반 활동. 보건의료는 크게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으로 나뉜다. 공적 영역은 중앙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가 중심이 되며 보건소를 중심으로 한 공중 보건과 보건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민간 영역은 사설 의료 기관이 주가 되며 대학 병원과 의원을 비롯한 의료 기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보건의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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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운봉(雲峰), 호는 보덕(輔德).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출생하였고, 증조할아버지는 부사(副使) 임세춘(林世春)이고, 할아버지는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임재(林榟)이며, 아버지는 사복시윤(司僕寺尹) 임태순(林台順)이다. 아들은 임인산(林仁山)·임명산(林命山)·임갑산(林甲山)이다. 임정(林整)[1356~1413]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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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위치한 공립고등학교. 교훈은 성실과 창의이며 교육지표는 앎과 함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보라인 양성이다. 교육목표는 올바른 사고로 행동하는 예의바른 교양인(敎養人), 자기 주도적으로 소질을 계발하여 가꾸는 창조인(創造人), 스스로 탐구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자주인(自主人), 자연을 사랑하고 몸과 마음이 튼실 한 건강인(健康人)에 두고 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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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보라산리(甫羅山里)에서 유래되었다. 보라산리는 보라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기록되어 있다. 마을 앞의 큰 고목나무에 보라매가 깃들었기 때문에 보라매, 보라미라고 불리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여 보라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본래 용인현 기곡면 지역이었으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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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보라동 선사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어 분포하는데, 보라동 산96-12임에 있는 보라동 선사유적1과 보라동 488답에 있는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보라동 선사유적1은 2000년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된 바 있는데, 당시에는 수풀이 우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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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양달말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벌이던 마을 굿. ‘보라리 양달말 서낭굿’은 서낭신을 신앙 대상으로 모시고 행해졌던 마을 굿이었다. 오랜 전통을 지니고 지속되어 오다 30여 년 전에 중단되었는데, 근년에 유교식 서낭제로 바뀌어 거행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1970년대 초만 해도 음력 정월 초순으로 날을 잡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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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소속 천주교회. 보라성당은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내 용인제2지구에 소속된 성당으로 주보성인은 성가정으로 지정되었다. 2002년에 모본당(母本堂)인 신갈성당으로부터 분가하여 본당을 설립하였다. 일요일에는 미사를 세 차례 올리며, 그리고 토요일에는 학생 미사와 특전 미사를 거행하고 있다. 또한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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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알찬 품성과 미래를 주도할 인재 육성을 교육지표로, 바른 행동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도덕인), 스스로 배우고 재능을 키워가는 어린이(실력인), 문제를 해결하고 탐구하는 창의적인 어린이(창의인), 튼튼한 몸과 강한 의지를 키우는 어린이(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교육하고 있다. 주변에 한국민속촌이 들어서고 회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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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보쌈으로 업혀 갔다 장가간 남자 이야기. 1983년 1월 16일에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사는 유용식(남, 65)이 구연한 것을 조희웅이 채록하였고, 1984년에 출간된 『한국구비문학대계』1-9에 실려 있다. 경상도에 큰 부자가 살았다. 부자는 자식교육도 모르고 돈만 알았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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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반듯하고 품위 있는 학교 문화의 실현과 정성을 다하는 학습 지도로 세계 시민의 바탕을 갖춘 학생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정성’으로, 마음가짐이 참되고 거짓이 없으며 일을 함에 성의를 다하여 보배롭게 한다는 뜻이다. 2003년 7월 23일 보정고등학교 건축물을 착공하고, 2005년 2월 25일 보정고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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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보정동이라는 이름은 연원마을에 보수원이 있었고 그 곳에 큰 정자가 있었다고 하여 보정리가 되었다. 본래 용인군 서변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보수원·이현·독정리와 구흥면 역촌의 일부를 합쳐 읍삼면(구성)에 편입되었다. 1931년에 용인의 옛 이름을 따라 구성면이라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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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신라 시대에서 통일 신라 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 사거리에서 신갈로 가는 도로를 따라 남하하다 보면 오른편에 삼막곡 저수지로 가는 조그만 도로가 있다. 이 도로를 따라 약 100m 가량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소실봉에서 남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가 보이는데, 고분군은 이 능선 말단부의 남사면을 따라 넓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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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죽전동택지개발지구에 형성된 문화의 거리. 보정동 단대문화의 거리는 죽전택지개발지구의 탄천변에 형성된 문화의 거리이다. 단국대와 죽전역이 인접하여 카페와 레스토랑, 전통찻집 등이 2010년 현재 100개 점포가 영업중이다. 인근 단국대학교와 협약에 의해 단국대 학생들의 문화공연도 함께 열리고 있다. 보정동 탄천변에 죽전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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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청자 가마 터. 보정동 요지는 산3-1번지의 보정동 요지1과 681번지의 보정동 요지2로 나누어져 있는데, 보정동 요지1은 불곡산에서 법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 대치고개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가지능선, 단국대학교 신축건물 뒤편에서 약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남쪽에 탄천의 지류인 옥정천이 흐르고, 주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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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보정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분포하여, 각각을 보정동 유물산포지1, 보정동 유물산포지2, 보정동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한다. 보정동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녹십자 입구에서 남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가다가 도로 서편에 접해 있는 영남하이츠빌라 뒤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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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죽전동택지개발지구에 형성된 문화의 거리. 보정동 단대문화의 거리는 죽전택지개발지구의 탄천변에 형성된 문화의 거리이다. 단국대와 죽전역이 인접하여 카페와 레스토랑, 전통찻집 등이 2010년 현재 100개 점포가 영업중이다. 인근 단국대학교와 협약에 의해 단국대 학생들의 문화공연도 함께 열리고 있다. 보정동 탄천변에 죽전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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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를 구성하고 있는 9개 행정동 중 보정동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보정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2005년 10월 31일 용인시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기흥읍과 구성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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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방어 시설. 지방도 393호선과 국지도 23호선이 만나는 모서리 지점의 구릉(해발 100m)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보정리 보루는 1999년 한신대학교 박물관의 ‘죽전 지구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구릉의 정상부는 약간의 요철이 있으나 비교적 완만하며, 남쪽과 서쪽 사면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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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방어 시설. 지방도 393호선과 국지도 23호선이 만나는 모서리 지점의 구릉(해발 100m)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보정리 보루는 1999년 한신대학교 박물관의 ‘죽전 지구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구릉의 정상부는 약간의 요철이 있으나 비교적 완만하며, 남쪽과 서쪽 사면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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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소속 천주교회. 보정성당은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내 용인제2지구에 소속된 성당으로 주보성인은 소화(小花) 테레사 성녀이다. 죽전지구의 택지 개발 사업으로 천주교 신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2004년 모본당(母本堂)인 죽전성당으로부터 분가하여 본당을 설립하였다. 일요일에는 4대의 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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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창의적인 사고를 갖춘 슬기로운 어린이, 굳센 의지나 체력이 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육지표는 늘 새로운 생각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창의적인 보정 어린이 육성에 두고 있다. 보정초등학교는 기흥구 보정동에 있으면서 수지구 죽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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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평보(平甫), 호는 소고(嘯皐)·재간(在澗)·보졸재(保拙齋)·송현(松峴), 시호는 문익(文翼). 증조부는 남원부사 서정리(徐貞履), 조부는 병조참의 서문상(徐文尙), 아버지는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이다. 어머니는 이헌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아들 서지수(徐志修)까지 3대가 대신을 지냈으며, 부인 또한 3대가 대신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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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우연한 사고 발생 시 일정액의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 인간은 끊임없는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러한 위험에는 태풍·홍수·지진과 같은 자연적 위험, 화재·도난과 같은 인위적 위험, 실업·공항과 같은 사회적 위험 등이 있다. 인간이 이들 위험에 대비하는 방법으로는 위험 회피, 위험 보유, 손실 관리, 위험 이전 등이 있으며 보험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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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1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보현은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오른쪽에 있으면서 이(理)·정(定)·행(行)의 덕을 맡아보며, 여래의 중생(衆生) 제도(制度)의 일을 돕는 보살이다. 모든 보살의 으뜸이며, 특히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다고 한다. 보현정사는 본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었으나 도시 개발이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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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보호 및 증식 가치가 있다고 인정, 특별 관리하는 수목. 특정 목적에 따라 보호 조치가 되고 있는 나무를 보호수라 한다. 즉, 노목·거목·희귀목으로서 명목(名木)·보목(寶木)·당산목(堂山木)·정자목(亭子木)·호안목(護岸木)·기형목(畸型木)·풍치목(風致木) 등으로 보존 또는 증식 가치가 있는 수목을 말한다. 이에 반해서 천연보호림은 학술 연구 등의 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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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복경(復卿). 시호는 충정(忠正). 민치구(閔致久)의 아들로, 민치록(閔致祿)에게 입양되었으며,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오빠이다. 1860년(철종 11) 명릉참봉에 임명되었고, 1864년(고종 1)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66년 여동생이 왕비로 책봉되자 중용되어 이조참의, 1867년 호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872년 형조판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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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설립되었던 사립 중학교. 복음학교는 1952년 강태국 목사가 우리나라 농촌발전을 위하고 기독교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학교이다. 설립 당시 원삼면 미평리, 사암리 일원에 토지를 구입하여 미평리에 복음중학교(인근주민과 설립자가 부르는 명칭)를 설립하고 사암리에 농도원이라는 농장을 건립하여 농장은 김용기 장로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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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 독조봉 동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여주군 흥천면 복대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복하천의 발원지가 되고 있는 용인시 양지면은 남북고동서저(南北高東西低) 지형 형태에다 주위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성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를 동·서류하는 하천들에 의해서 하곡지가 발달되어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유명한 “이천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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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본동마을에 있었던 사립 강습소. 한글과 기초 생활에 필요한 지식 습득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본동강습소는 한자 교육을 담당하던 서당 이외에 새로운 신교육이 필요함에 따라 지역 유지와 주민들이 합심하여 1920년대 후반 오산리 본동마을에 초가 건물을 짓고 설립한 학교이다. 1930년대 초 능원간이학교가 설립되면서 폐교되었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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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은 꼭 사거나 팔 물건이 없더라도 구경삼아 시장에 나와 본다. 이것이 농촌시장의 특징이다. 그래서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씨오쟁이 짊어지고 따라간다.”라는 속담도 있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농촌의 마을도 장날이 되면 활기를 띤다. 장터에 이르는 길은 손이나 어깨, 등, 머리 위에 곡식자루, 닭, 계란, 채소 등을 이거나 지고 나오는 농민들로 북적거린다. 장에는 못 보던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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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면 학일마을에 들어서면 마을회관에 메주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이 메주는 도시와 농촌의 자매결연 행사로 만들어진 결실로 마을에서는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과 마음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마을을 찾아오면 따사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봄이 되면 학일마을의 산과 들에는 나물들이 가득하다. 언덕에 파릇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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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명골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봉명리라고 하였다. 용인의 서촌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봉명동, 외동천과 도촌면의 수세동, 버등이를 합쳐서 봉명리라고 하였다. 통삼천이 중앙을 남류하여 진위천으로 들어간다. 동쪽과 서쪽은 낮은 구릉 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진위천을 경계로 남쪽의 진목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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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에 있는 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봉명리 선사유적은 모두 7곳에 분포하여, 봉명리 선사유적1부터 봉명리 선사유적7까지로 구분한다. 이들 유적은 경기도 용인시 부아산에서 진위천까지 이어지는 구릉상에 분포하며 대체로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채집된다. 봉명리 선사유적1은 봉명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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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에 있는 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봉명리 선사유적은 모두 7곳에 분포하여, 봉명리 선사유적1부터 봉명리 선사유적7까지로 구분한다. 이들 유적은 경기도 용인시 부아산에서 진위천까지 이어지는 구릉상에 분포하며 대체로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채집된다. 봉명리 선사유적1은 봉명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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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에 있는 약 250년수령의 참나무. 낙엽 활엽교목으로 계곡과 산기슭의 비옥한 곳을 좋아하며, 갈참나무·졸참나무·떡갈나무 등 200~250여 종이 북반구의 온대에서 열대에 걸쳐 자란다. 따라서 참나무는 한 속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으로 사용된다. 꽃은 암수 한 그루로 4~5월에 피고 황록색이며, 도토리라고 불리는 견과가 열매이다. 이 열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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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암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또 마을에 봉황이 춤추는 형상의 바위가 있어서 봉무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 등장한 지명이다. 본래 용인현 도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산정리와 내기를 합쳐서 봉무리라고 하였다. 북쪽에 봉암산이 있으며 남쪽에는 진위천이 감싸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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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에서 남사면 방면으로 지방도 330호선을 따라가다 삼거리를 이루는 남사초등학교 부근에서 국도 9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향하면 봉무리 기와집마을에 이른다. 유적은 마을 동쪽 구릉지에 자리하는데, 동쪽 마을 도로와 접하여 진위천으로 흘러드는 봉무천이 남류(南流)하고, 서편으로는 낮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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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및 절터. 당초 조선 말기의 절터로 보고되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약 1만 5,000㎡ 면적에 유물이 산포한다. 채집되는 유물은 9세기경 선해무리굽 초기청자부터 조선시대 분청사기·백자 등 연대 폭이 매우 넓은 것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사람이 거주하였다고 보인다. 건물지 등 생활유적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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