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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동림리에 있는 현대 섬유 미술 및 판화 전문 사립 미술관. 마가미술관은 지방화시대의 도래와 21세기를 겨냥하여 수도권에 인접한 입지 조건으로 경기도 성남시, 수원시, 용인시, 광주시 등 주변의 신도시 주민들에게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섬유 미술(fiber art)과 판화(print making) 작품을 통해 예술 감상과 미적 체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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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할미산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할미산성은 성 내부를 남북으로 양분하는 길이 180m의 공유 벽을 기준으로 북쪽의 내성, 남쪽의 외성으로 구분된다. 북쪽의 내성은 정상부를 포함한 높은 지대에 축조되었고, 남쪽의 외성은 비교적 낮은 지대에 조성되었는데, 형태상 사모형(紗帽形)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651m로, 할미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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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마귀성과 괸돌에 관한 유래담. 1978년에 채록되어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실려 있다. 후일에 비슷한 내용이 채록되어 1990년에 출간된 『용인군지』에 실려 있다. 옛날 용인읍 유방리 상유곡(지장실)의 한 골짜기에 남매가 살고 있었다. 마침 이 동네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한 분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귀할멈과 같아서 동네 사람들은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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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있는 닭고기 생산·가공·유통 전문 업체. 국내 최초의 닭고기 브랜드로 유명한 마니커는 1985년 설립된 우리나라 대표 닭고기 기업이다. 1985년 9월 27일 주식회사 대연식품으로 설립되었으며, 1986년 7월 현재의 본점 위치에 도계 공장을 준공하고 본격적인 도계육 생산과 영업을 시작하였다. 1988년 2월에는 성남·관악영업소를 직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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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옛날 상마곡마을에 마운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승려가 마의를 입고 다녔으며, 또한 이곳이 면 소재지의 북쪽에 있다하여 마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유래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곳에 막골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위치상 막다른 곳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본래 용인군 읍내면 지역이었으나 언남리와 함께 용인읍 내가 되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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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조사 당시에는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 하늘말의 북동쪽에 자리했으나, 유적이 있던 구릉은 단국대학교 신캠퍼스가 들어서면서 일부가 훼손되었고, 나머지는 원형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마북동 고분군1은 단국대학교 신캠퍼스 부지 조성에 따른 사전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지표 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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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마북동 고분군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어, 마북동 산2-2 일대 고분을 마북동 고분군1, 마북동 산46-1 일대를 마북동 고분군2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마북동 고분군2에서는 고려 중기의 석곽묘 4기, 토광묘 4기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녹청자반구병 2, 청자접시 1, 청자대접 10, 토기매병 2, 토기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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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 유구(遺構). 마북동 석축유구는 탄천을 따라 형성된 잔구성 산지의 끝자락 구릉에 축조된 관방(關防) 유적이다. 내부와 주변에서 관련 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구릉의 남측 사면에만 낮게 할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한 점으로 보아, 단기간의 전투 목적을 위한 군사 방어 시설인 보루로 판단된다. 마북동 석축유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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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 유구(遺構). 마북동 석축유구는 탄천을 따라 형성된 잔구성 산지의 끝자락 구릉에 축조된 관방(關防) 유적이다. 내부와 주변에서 관련 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구릉의 남측 사면에만 낮게 할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한 점으로 보아, 단기간의 전투 목적을 위한 군사 방어 시설인 보루로 판단된다. 마북동 석축유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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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정비군. 송덕비군이 있는 마북동 일대는 용인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다. 과거 읍치였던 곳에는 행정의 중심인 관아가 있고, 관아를 중심으로 수령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 군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북동 송덕비군 역시 이런 일반적인 경우이다. 총 14기로 현령 등의 선정 송덕비 10기, 군수 선정비 1기, 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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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마북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분포해 있는데, 각각을 마북동 유물산포지1부터 마북동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한다. 마북동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구성초등학교와 초등학교 북쪽의 충정마을 우림아파트 사이의 경작지 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마북동 유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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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조사 당시에는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 하늘말의 북동쪽에 자리했으나, 유적이 있던 구릉은 단국대학교 신캠퍼스가 들어서면서 일부가 훼손되었고, 나머지는 원형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마북동 고분군1은 단국대학교 신캠퍼스 부지 조성에 따른 사전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지표 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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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를 구성하고 있는 9개 행정동 중 마북동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마북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2005년 10월 31일 용인시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기흥읍과 구성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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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리 용화전에 있는 조선시대 석불입상. 불상은 직육면체의 몸통에 높은 관을 쓰고 있다. 얼굴은 장방형으로 턱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였다. 눈은 크게 치켜뜨고 있으며, 코는 크고 오뚝하게 부각시켰으며, 입은 꼭 다물고 있다. 얼굴에는 볼륨감이 전혀 없고 석인상의 엄격성과 근엄성이 강조되고 있다. 수인(手印)은 복부 부근에서 두 손을 모아 보주 내지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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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리 용화전에 있는 고려 석탑. 마북리의 구성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약 50m 거리에 미륵불 형태의 석불을 모신 용화전(龍華殿)이 있는데, 그 앞쪽에 선정비(善政碑) 10여 기와 함께 서 있다. 방형의 기단석 위에 위아래 구분 없이 석재가 쌓여 있다. 앙련이 조각된 1층 옥개석 위에 얹혀 있는 방형 석재는 대좌형 기단의 상대석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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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리 용화전에 있는 조선시대 석불입상. 불상은 직육면체의 몸통에 높은 관을 쓰고 있다. 얼굴은 장방형으로 턱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였다. 눈은 크게 치켜뜨고 있으며, 코는 크고 오뚝하게 부각시켰으며, 입은 꼭 다물고 있다. 얼굴에는 볼륨감이 전혀 없고 석인상의 엄격성과 근엄성이 강조되고 있다. 수인(手印)은 복부 부근에서 두 손을 모아 보주 내지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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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리 용화전에 있는 고려 석탑. 마북리의 구성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약 50m 거리에 미륵불 형태의 석불을 모신 용화전(龍華殿)이 있는데, 그 앞쪽에 선정비(善政碑) 10여 기와 함께 서 있다. 방형의 기단석 위에 위아래 구분 없이 석재가 쌓여 있다. 앙련이 조각된 1층 옥개석 위에 얹혀 있는 방형 석재는 대좌형 기단의 상대석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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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인성이 바르고 기본이 바로 선 어린이, 소질을 살려 꿈을 가꾸는 어린이, 창의적인 생각으로 탐구하는 어린이, 건강하고 자신감 있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0년대 말 마북리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면서 2000년 10월 2일 9학급으로 개교하였다. 2001년 2월 제1회 졸업식(30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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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 있는 영동고속국도 진·출입로. 1976년 4월 10일 개통되었다. 영동고속국도 인천 기점 47.5㎞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마성영업소에서 관리하며, 입구 차로 3개소, 출구 차로 10개소 등 모두 13개의 차로가 있다. 1일 평균 교통량은 2006년을 기준으로 입구 6,073대, 출구 6,444대 등 총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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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가실과 성밑을 합쳐 한 글자씩 취해 생긴 이름이다. 마성(麻城)을 고유명사로 잘못 알고 서쪽 지역에 있는 할미성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 본래 용인현 포곡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마가리와 성밑을 합치고 포곡면에 소속시켰다. 2005년 포곡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서쪽에 석성산과 할미성이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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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품성을 가진 애국하는 어린이, 소질을 키우는 개성있는 어린이, 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능력있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구성 지역 인구증가로 2003년 3월 1일 7학급으로 개교하였다. 2004년 2월 제1회 졸업식을 하였다. 2004년 3월 13학급으로 증설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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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 있는 영동고속국도 진·출입로. 1976년 4월 10일 개통되었다. 영동고속국도 인천 기점 47.5㎞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마성영업소에서 관리하며, 입구 차로 3개소, 출구 차로 10개소 등 모두 13개의 차로가 있다. 1일 평균 교통량은 2006년을 기준으로 입구 6,073대, 출구 6,444대 등 총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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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하는 법정동. 마평동이라는 이름은 마남리와 마북리에서 ‘마’자와 신평리에서 ‘평’자를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이 지역에서 삼[麻]을 많이 심어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래 양지군 주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남리·마북리·신평리·김량리와 용인군 수여면의 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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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마평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돌무지무덤. 토지박물관은 마평동 돌무지무덤이 북한강·임진강 유역에서 조사된 적석총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 근거로는 장축 방향이 서쪽 가까이에 흐르는 경안천의 방향과 동일한 점, 돌무지무덤의 평면 형태가 길쭉한 점, 돌무지무덤 아래의 기반토가 주변보다 높은 점 등이다. 이런 지적과 함께 돌무지무덤이 군집을 이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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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있었던 삼한 중의 하나. 용인이 마한 54개 소국 중 어느 집단에 속하였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소국들인 중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일화국(日華國), 고탄자국(古誕者國) 등이 용인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확실한 것은 3세기 무렵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을 거듭한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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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양조장의 막걸리 원료는 70%의 밀가루와 30%의 쌀을 섞어 만들고 있다. 밀가루에 30% 쌀을 섞으면 밀가루 술보다 공정이 좀 길고 원료비가 다소 많이 들지만 술이 매끄럽고 맑게 되어 맛도 좋아지며 보관 기간도 길어지는 장점이 있다. ① 원료 반죽 - 원료로 들어가는 쌀을 불리고 밀가루 반죽을 한다. ② 증자 - 순수 쌀 막걸리일 경우 일종의 고두밥 만드는 과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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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여종. 조선 중종(中宗)[1488~1544] 때 용인에 사는 이수손(李守孫)의 여종으로서, 이수손이 아내 김씨와 아들 이균(李均)·이돈(李墩)에 의하여 살해당하자 이에 연루되어 관가에 끌려가 문초를 받았다. 이때 막덕의 공초(供招)에 의하면, 김씨가 아들 이균·이돈과 공모하여 이수손을 살해하였다고 하였고, 안성(安城)에 살다가 죽은 유운(柳雲)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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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만들어 먹는 속성 별미장. 경기도 용인시 고기1동에서는 일반적인 장류 외에 ‘맛장’이라는 것을 별도로 만들어 먹고 있다. 이 맛장은 메주가루를 소금물에 타서 걸쭉한 된장같이 덩어리로 만들어 고춧가루를 섞어서 쌈장처럼 만들어 먹는 장이다. 맛장은 별미장이면서, 속성 된장이다. 흔히 간장을 뜨고 남은 보통 된장과는 달리 메주를 빻아 소금 간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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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만기(萬基).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박환(朴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부안임씨(扶安林氏)이다. 박세성은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을 거쳐 홍문관정자·예문관검열·봉교 등을 역임하였다. 1653년 겸설서(兼說書)·전적·감찰·정언 등을 역임하고, 그 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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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번대가 부산진을 침범하였다. 조선 관군은 준비가 잘 된 왜군을 당해내기 어려웠고 왜군은 부산진을 침입한 지 보름 만에 서울까지 점령하였다. 급박한 상황에서 선조는 4월 30일 밤에 서울을 떠났고, 왜군의 1번대와 2번대가 각각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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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원지(源之), 호는 만사(晩沙)이다. 증조부는 심금(沈錦), 할아버지는 심종열(沈宗悅), 아버지는 심설(沈偰)이다. 외조부는 청원도정(靑原都正)이었던 이간(李侃)이고, 부인은 윤종지(尹宗之)의 딸이며, 그의 아들 심익현은 효종의 딸 숙명공주와 결혼해 효종과는 사돈관계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정시문과에 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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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문화. 자는 계창(季昌), 호는 만암(晩菴). 영의정을 지낸 류상운(柳尙運)의 아들이다. 1697년(숙종 23) 과거에 합격하였다가 그 부친이 고시를 주관하면서 아들을 급제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삭과되었다가 1699년 다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첫 부임지인 용인현에서 재임기간 동안 선치하여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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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계형(季亨), 호는 만오(晩悟), 초명은 용구(用九).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한후유(韓後裕)이다. 한용구(韓用龜)[1747~1828]는 영조 대부터 정조, 순조의 3대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1772년(영조 48) 황감제(黃柑製)에 장원 급제하였다. 1773년(영조 49)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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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화(汝和), 호는 만운(晩雲). 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며, 큰아버지 오희인(吳希仁)에게 입양되었다.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의 아우이고, 오달제(吳達濟)의 아버지이다. 선조 말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이 되고, 이해 별시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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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덕수(德水). 일명 방(芳)·윤봉조(尹鳳朝), 자는 만위(晩瑋), 호는 춘호(春湖)·한정(漢汀)·법명(法明). 아버지는 이종백(李種百)의 아들로 이현(李賢)에게 입양되었다. 이정열은 천석꾼의 부자로 3·1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그 해 10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던 강태동(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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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에서 남편을 살해한 여인. 만장은 조선 전기의 여인으로, 양지 사람인 선군(船軍) 정귀생(丁貴生)의 처이다. 1430년(세종 12) 평소 사통하던 선군 이흥(李興)과 공모하여 남편을 살해하였다. 뒤에 붙잡혀 감옥에서 옥사하였고 정부 이흥은 참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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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호는 만절당(晩節堂). 증조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고, 할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며, 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연흥군(延興君) 박고(朴翶)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따님이다. 아들은 찬성사(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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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수익(受益), 호는 만회(晩悔). 할아버지는 관찰사 이지신(李之信), 아버지는 증승지(贈承旨) 이력이다. 광해군 때 스승 조수륜(趙守倫)이 화를 당하여 죽자 스승의 친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는데 그가 예에 따라 습렴을 하였다. 또 인목대비의 폐비론이 일자 그에 대한 잘못을 직언하여 죄를 받았다. 이때 초야에 있으면서 당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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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소속의 교회. 4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다는 몰몬(Mormon)이라는 예언가이자 장군의 이름과 『몰몬경』이라는 경전으로 인해 몰몬교라고 알려진 이 종단의 명칭은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를 거쳐 현재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로 바뀌었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는 현재 미국의 솔트레이크시를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상당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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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만들어 먹는 속성 별미장. 경기도 용인시 고기1동에서는 일반적인 장류 외에 ‘맛장’이라는 것을 별도로 만들어 먹고 있다. 이 맛장은 메주가루를 소금물에 타서 걸쭉한 된장같이 덩어리로 만들어 고춧가루를 섞어서 쌈장처럼 만들어 먹는 장이다. 맛장은 별미장이면서, 속성 된장이다. 흔히 간장을 뜨고 남은 보통 된장과는 달리 메주를 빻아 소금 간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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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경제(景制)이며, 호는 망은(忘隱). 1575년 청백리에 녹선된 이백지(李伯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06년에 진사가 되었고, 덕산현감과 종묘서령(宗廟署令)을 지냈고, 초서와 예서에 능했다. 서법에 대한 책을 간행한 것이 있다고 전하지만 제목은 알 수 없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호암미술관 뒤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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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고매곡과 상마산을 합쳐, 한 글자씩 따서 생긴 이름이다. 본래 용인현 모현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매곡과 상마산을 합쳐 매산리가 되고 모현면에 속하였다. 동쪽, 서쪽, 남쪽에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의 박석고개는 포곡읍과 경계를 이룬다. 박석고개 동쪽에 선장산, 고개 서쪽에 구만이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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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2리에 있던 서낭당. 매산리 서낭당은 모현읍 매산2리의 상마산에서 일산리의 외개일마을로 넘어가는 경계인 동지고개 마루에 있었다. 동지고개에 있다고 하여 ‘동지고개 서낭당’이라고도 불렸다. 이 길은 오포와 추자리·광주로 이어지는 길로, 추자리에서는 사방으로 길이 통하였다. 매산리 사람들은 이 길을 통해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주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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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 있는 약 180년 수령의 팽나무. 일명 달주나무·매태나무·평나무라고도 한다. 낙엽 활엽교목으로 줄기가 곧게 서며, 높이 20m, 지름 1m에 달하고 가지가 넓게 퍼진다. 수피는 회색이며 가지에 잔털이 나 있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에 타원형이며 윗부분에 톱니가 나 있다. 꽃은 잡성화로 5월에 피며, 새로 자란 가지의 밑 부분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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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양(驪陽). 호는 매호(梅湖). 1126년(인종 4)에 일어난 이자겸의 난을 토평한 공으로 여양군(驪陽君)의 봉작을 받은 대장군 진총후(陳寵厚)의 증손이며, 1170년 정중부의 난 때 문신을 보호해 주었던 참지정사(參知政事) 진준(陳俊)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병부상서(兵部尙書) 진광수(陳光脩)이며, 형은 어사대부(御史大夫) 진식(陳湜)과 예빈경(禮賓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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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백암장에는 여러 유형의 장꾼들이 모여들었다. 물건을 점포가 아닌 빈 장소를 찾아 자리를 깔고 물건을 파는 난전상인, 관의 허가를 받지 않은 금지된 품목을 판매하는 잠상, 철 지나 헐고 값이 싼 물건을 파는 마병장수, 닭이나 오리를 어리에 넣어 파는 어리장수, 곡식을 마소에 싣고 다니며 파는 시겟장수, 버스정류장에서 물건을 파는 거리목장수가 그들이다. 이밖에도 물건을 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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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맹리는 맹골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맹골은 막은골〉망골〉맹골로 변화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막힌 골짜기’의 뜻이다. 본래 맹동(孟洞)이라고 표기했는데 1760년[영조 36]의 『여지도서』나 1789년[정조 13]의 『호구총수』 이후 역대 기록에 빠짐없이 나타나고 있다. 본래 죽산군 원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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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는 약 580년 수령의 느티나무.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일그러진 편구형으로 10월에 익으며, 뒷면에 능선이 있고 지름이 4㎜ 정도이다. 잎은 어긋나게 달리고 긴 타원형 또는 난형이며, 잎 끝이 좁고 가장자리에 뚜렷한 톱니가 발달한다. 어릴 때 성장이 빠르고 비옥한 땅에서 잘 자라며 햇볕을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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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건지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내지봉수(內地烽燧). 건지산 봉수는 동쪽으로 안성 망이산 봉수(직선 거리 23㎞), 서쪽으로 용인 석성산 봉수(직선 거리 15.5㎞)와 교신하였다. 봉수가 위치하는 건지산은 산 정상의 중심부가 약간 움푹한 채 남북으로 길게 마안형(馬鞍形)의 능선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석성산 봉수가 마주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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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맹리 유물산포지는 네 곳에 분포되어 있어, 각각을 맹리 유물산포지1, 맹리 유물산포지2, 맹리 유물산포지3, 맹리 유물산포지4로 구분하여 일컫고 있다. 용인시와 음성 간 국도 17호선에서 맹리 행군이마을로 진입하여 동편으로 계속 가면 해발 411m의 건지산에서 남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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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1862년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나 9세에 신갈 김수운에게 한학을 배우고 15세에 서야우(徐野愚)에게 제자의 예를 올리고 가르침을 받았다. 1894년 신갈 금화에 와서 후학을 가르치다 1906년 용인향교(龍仁鄕校)에서 학부대신을 역임한 이도재(李道宰)와 함께 명륜학교를 설립하여 신구 학문 교육에 힘썼다. 1910년 국치를 당함에 만주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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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맹정승 이야기. 1981년에 채록되어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실려 있다. 세종 때의 명재상 맹사성은 지극히 청렴하고 고결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맹정승은 고향인 온양에서 한양까지 종자도 거느리지 않고 늘 검은소를 타고 다녔다. 맹정승은 한양으로 갈 때면 성환 근처에서 하루를 묵고, 진위현을 거쳐 용인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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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해사(海史), 이명(異名)은 공유(公有)·성호(性浩)이다. 맹철호는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단에 입단하였으며, 4월 만주 각지에 산재한 독립운동 단체를 규합하여 대한독립단을 조직하는 데 참여하였다. 이로써 대한독립단 집안(輯安) 및 환인현(桓仁縣)의 총지단장에 피임되었다. 그 후 일본인 단체인 일민단(日民團)을 격파하고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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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가고 싶은 이유는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장을 가던지 장터에는 장국밥집이 있기 마련이다. 백암장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또 한 곳은 해장국집이었다. 연일 장을 돌다보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새벽까지 걸어 백암장을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숙박비가 아까워 한데서 자다가 아침이면 해장국집을 찾았다. 선지해장국집을 하고 있는 민영기(51) 씨는 “아직도 백암에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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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에 있는 반도체 메모리 관련 전문 제조업체. 1995년 9월 7일 (주)메모리앤테스팅으로 설립되었다. 1997년 12월 용인에 사옥을 신축하고 본사를 이전하였으며, 1998년 10월 불량 메모리 칩의 모듈화 방법 특허를 취득하게 된다. 2001년 5월 경기도 중소기업청 벤처기업 지정을 받았으며, 2001년 11월에는 공장을 증축, 확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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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는 흰콩으로 만드는데, 입동 무렵 쑨다. 이를 ‘메주쑤기’라 한다. 메주를 쑤는 시기는 입동 무렵 김장하기 전에 주로 한다. 하지만 각자 여유 있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되는대로 메주를 만든다. 메주는 콩 1~2말을 도주받아서 쑤고, 자녀들에게도 나눠준다. 메주를 삶을 때 물의 양은 콩의 2~3배 정도 넣고 삶는데, 물은 한번에 다 넣고 삶는다. 물이 너무 적어 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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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역북동과 기흥구 중동을 연결하는 고개. 남사면으로 고개 근처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멱조현천과 금학천이 되어 김량대교 부근에서 경안천에 합류한다. 동백동 택지개발지구인 고개 북서쪽은 최근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고, 고개 동남쪽으로는 용인시청이 입지하는 등 최근 고개 양쪽으로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도로가 확·포장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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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서 메주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메주고개는 멱조현의 속칭으로 용인시 삼가리에서 구성면 어정을 잇는 고개이다. 지금은 용인정신병원 쪽으로 새길이 나서 한적한 고개가 되고 말았지만, 수년 전까지도 이 고개를 넘어야 수원에 닿을 수가 있었다. 멱조라는 이름은 할아버지를 찾아 헤맸다는 뜻에서 유래한다. 메주고개와 관련하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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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역북동과 기흥구 중동을 연결하는 고개. 남사면으로 고개 근처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멱조현천과 금학천이 되어 김량대교 부근에서 경안천에 합류한다. 동백동 택지개발지구인 고개 북서쪽은 최근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고, 고개 동남쪽으로는 용인시청이 입지하는 등 최근 고개 양쪽으로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도로가 확·포장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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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용인의 지명인 구성현(駒城縣)의 다른 이름 용인의 옛 지명중 하나인 구성현(駒城縣)은 본래 고구려의 지명이었는데, 멸오는 그 이칭이다. 『고려사』·『세종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대동지지』·『용인현읍지』(18세기중엽)·『여지도서』(1760)·『용인현읍지』(1842-1843)·『용인현읍지』(1871)·『용인군지도읍지』(1899)·『용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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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고구려의 행정 구역. 17세기 중엽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본래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가 빼앗아 구성현으로 삼았다고 서술되어 있고, 19세기 중엽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본래 백제의 멸오였는데 후에 구성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가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조령과 죽령 지역까지 점령하게 됨에 따라 한강 유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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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원마을은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속하는 마을로 용인 지역의 북단에 자리 잡고 있다. 북쪽은 광주(廣州)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은 같은 리(里)에 속하는 우명동 마을이, 동쪽은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陵坪里)와 이웃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오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쪽을 제외하고 구릉성 산지로 막혀 있는 작은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43번 국도가 동서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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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용인향교에 세워졌던 구한말의 근대 학교. 1894년 기호 지방의 저명한 유학자였던 맹보순(孟輔淳)이 갈천 금화산(현 기흥구 상갈동 상미)에서 사숙(私塾)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1897년 맹보순의 명성에 의한 학생수의 증가로 상촌(현 기흥구 신갈동)에다 새로이 학당을 열었으나 이마저 협소하여 용인향교의 명륜당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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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이용건이 명륜학교를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기록한 일지. 『명륜학교일기』는 1907년(광무 11) 2월 1일부터 시작하여 같은 해 7월 2일까지 만 5개월간의 기록물로, 당시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언남리에 있던 용인향교 안의 명륜학교 관계자로 추정되는 이용건(李容健)이 작성한 일지(日誌)이다. 이용건은 명륜학교의 책임자급 인물일 것이라는 심증만 있을 뿐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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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서 활약한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황희(黃喜)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황윤공(黃允恭)이다. 황진(黃進)[1550~1593]은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591년(선조 24)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미구에 일본이 내침(來侵)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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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명숙(明叔), 호는 야수(野叟)이다.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의 증손 정속(鄭束)의 아들이다. 1447년(세종 29) 생원으로 별시 문과에 정과로 합격,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고, 감찰을 거쳐 1453년(단종 1) 예조좌랑으로 있었으나 궐내에 기생을 불러들여 가무음주한 죄로 장형(杖刑)을 받았다. 1455년(세조 1) 교리로서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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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재상들의 간찰첩. 『명재수간(名宰手簡)』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만년에 10여 년간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1559~1636]에게 이름 있는 재상들이 보낸 간찰들을 묶은 간찰첩(簡札帖)이다. 간찰들은 1640년(인조 18)부터 1659년(효종 10) 사이에 쓰여진 것들로 짐작되며, 모두 18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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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명중(明仲), 호는 죽창(竹窓)·청부(靑鳧).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의 증손이며, 성천부사를 지낸 심익창(沈益昌)의 아들이고, 남종화의 대가인 심사정(沈師正)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사간을 지낸, 포도와 인물을 잘 그린 화가 정유점(鄭維漸)의 사위이다. 1724년 아버지 심익창이 과거 부정사건과 왕세제인 영조를 살해하려는 역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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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에 있는 사립 대학교.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올바른 활용 방법을 연구하고 교수하며, 국가 발전과 민족 문화 창달을 통하여 인류 사회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고 봉사할 인재 양성을 교육목표로 한다. 또한 인격과 교양을 갖춘 기독교 신앙인 양성, 학술 연구와 교수를 통한 전문인 양성, 국가 발전과 민족문화 창달에 공헌할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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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 사전마을에 있었던 사립 강습소. 신교육과 기초 생활에 필요한 지식 습득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사전강습소는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원삼보통학교와 거리가 멀어 초등 교육을 못 받는 학생을 위하여 성균관 박사를 지낸 이명세가 1937년에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 건물은 2칸이었으며 학생이 점차 증가하여 5칸으로 증축하였고,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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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서 모내기를 할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 「모심기 노래」는 지역에 따라 「모내기 소리」, 또는 「이앙가(移秧歌)」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모내기를 할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이다. 용인 지역에서 불리는 「모심기 노래」의 경우 마을마다 모를 심는 작업 과정이나 시각에 따라 사설이나 형식·창법 등이 다르게 나타난다. 1971년 5월에 기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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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사상(士常), 호는 모암(慕菴)·영모당(永慕堂)이다. 고조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 증조부는 오달천(吳達天)이고, 아버지는 오수량(吳遂良)이다. 외할아버지는 여성제(呂聖濟)이고, 부인은 최기창(崔起昌)의 딸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705년(숙종 3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709년 교리를 거쳐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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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희성. 예문대제학을 지낸 이조년(李兆年)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성산군 이포(李褒)이며, 형은 우왕 때 권신인 이인임(李仁任)이다. 태조의 사위인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 이제(李濟)가 그의 아들이다. 밀직사사, 서경부원수 등을 지냈다. 우왕 때 형 이인임이 권력을 남용하여 원성을 사자 여러 차례 충고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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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윤칠(允七), 호는 모은(慕隱). 포은 정몽주의 18세손이고, 아버지는 정구현(鄭九鉉)이다. 정한영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발랐으며, 유가의 법도에 따른 특출한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한영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관직은 종사랑과 감리서주사(監理署主事)를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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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서 모를 찌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 「모찌는 소리」는 모심기 이전에 모를 찌는 과정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모를 찌는 일은 대개 한두 사람이 하는데, 한편에서는 모를 심기 때문에 노래를 부를 만큼 한가하지 않아서, 「모찌는 소리」의 경우 양지면 제일리에서 채록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만큼 용인 지역에서는 구전되는 자료가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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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모현읍소재지의 사거리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쪽으로 가면 오른쪽에 연립주택이 있는 평지가 나타나고, 고인돌은 해발 60m쯤 되는 편평한 곳에 자리한다. 유적의 서쪽에는 경안천이 흐르고 동쪽에는 해발 500m 안팎의 비교적 높은 산들이 있다. 1호 고인돌은 굄돌과 막음돌이 있는 탁자식이며, 덮개돌의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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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모현읍소재지의 사거리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쪽으로 가면 오른쪽에 연립주택이 있는 평지가 나타나고, 고인돌은 해발 60m쯤 되는 편평한 곳에 자리한다. 유적의 서쪽에는 경안천이 흐르고 동쪽에는 해발 500m 안팎의 비교적 높은 산들이 있다. 1호 고인돌은 굄돌과 막음돌이 있는 탁자식이며, 덮개돌의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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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었던 사립 강습소. 문맹 퇴치와 생활에 필요한 기초 교육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독립운동 시기의 강습소는 한문을 주로 가르치는 서당이 아닌 지금의 초등 교육을 담당하는 사설 초등 교육 기관이었다. 모현강습소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인근의 아이들을 모아 교육하던 곳이다. 충렬서원의 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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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었던 사립 고등 공민학교. 교훈은 덕업 실천·학문 연마·건설 용진이었다. 1950년 능원국민학교 이정하 교장이 중등학교가 멀어 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위해 설립 계획을 세웠다. 당시 금성방직 김성곤 사장의 자금 지원을 받았으나 6·25전쟁의 발발로 무산되었다. 이후 1951년 초 주민의 협조를 받아 능원국민학교 건물을 빌어 개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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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하는 행정읍. 이 지역은 본래 쇄포면(灑布面)이라 하였다. 이는 삼으로 직조한 베와 목화에서 뽑아 낸 실로 직조한 무명천을 잿물에 삶아내고 물에 담궜다가 햇볕에 널어 말려 빛이 바래도록 포쇄하던 곳이라고 한데서 연유되었다. 그 뒤 고려 충신 정몽주의 묘가 있게 된 뒤로 충신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모현으로 개칭되었다. 본래 용인군 지역으로 초하·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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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모현읍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3개 읍, 4개 행정동, 4개 면 중 모현읍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모현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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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사무소에 있는 주민의 문화 복지를 위한 편익 시설. 모현읍사무소의 여유 시설과 공간을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문화 복지 편익 시설로 꾸며 주민 공동의 문제를 함께 의논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함으로써 주민 자치를 실현하고 공동체 의식을 향상시켜 나가는 주민 자치 활동의 구심체이다. 주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다양한 문화 교육과 자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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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용인문화원에서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현 모현읍]의 실상을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긴 면지. 모현읍은 용인시 북쪽에 있는 지역으로 광주시와 인접해 있다. 경안천이 면의 중심부를 지나고 광주산맥과 맥을 같이하면서 정몽주 선생 묘를 비롯하여 유현·명문 거족의 유택이 용인시 관내에서도 가장 많은 곳이라는 특성을 지닌 곳이다. 또한 선사시대의 유물인 고인돌과 청동기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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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소속 천주교회. 모현성당은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내 용인제1지구에 소속된 성당이다. 주보성인은 성 바오로이며 매년 6월 29일을 본당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2000년에 모본당(母本堂)인 용인성당에서 분가하여 정식으로 본당을 설립하였다. 일요일에는 3대의 미사를, 토요일에는 어린이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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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에 있는 공립 교육 시설. 초·중·고 학생들에게 야영 수련을 통해 민주 시민의 자질을 육성하고, 야영의 기초 능력을 습득하며, 자연 탐사 활동, 안전 구호 활동, 자연 보호 활동 등 다양한 기능을 익히게 하고 심신의 단련과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78년 한국걸스카우트 서울연맹이 야영장 부지로 매입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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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에 있는 우편 및 금융기관. 1963년 8월 25일 개인이 설립한 별정우체국으로 개국하였으며 이후 도로확장으로 인해 1978년 10월 현위치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로 우편물의 접수, 운송, 배달과 같은 우정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예금이나 보험 등의 금융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우편 업무로는 국내 우편, 국제 우편,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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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1982년 왕산리에서 개척된 교회로 1999년 갈담리 291번지[백옥대로 2318-22]로 새 교회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일본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으며, 중국, 필리핀, 캐나다 등지에 타 교회와 합동으로 선교사를 파견하여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담마을, 남사면의 천사의집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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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교훈은 ‘성실·협동·사랑’이다.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세계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민주 시민을 육성하고, 수요자 중심의 다양화·특성화·차별화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며, 학부모와 학생, 교사가 함께 만족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교육목표이다. 1974년 12월 27일 설립 인가를 받아 1975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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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남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자주적인 어린이, 합리적인 생각으로 탐구 창조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0년대 모현에서 초등교육을 받기 위하여는 용인, 광주 등지로 통학해야 하는 불편이 있어 이 곳 유지 정대용, 이찬 등이 1927년 보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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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안(子安), 호는 눌재(訥齋)·목수(木叟). 영의정 이직(李稷)의 현손이며, 증조부는 이계령(李繼寧)이고, 할아버지는 이숙생(李叔生)이다. 아버지는 정자(正字) 이윤탁(李允濯)이며, 어머니는 신회(申澮)의 딸이다. 부인은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이효언(李孝彦)의 딸이다. 아들은 이염(李爓)이다. 이충건은 1510년(중종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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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목악과 신기리를 합쳐 한 글자씩 따서 생긴 이름이다. 본래 양지현에 속했던 지역이다. 이전에는 죽주에 속했던 목악부곡이 있었던 곳인데 1413년[태종 13]에 죽주에서 양지로 이관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목악리, 신기리와 후동을 합쳐 목신리라고 하였다. 동쪽에는 구봉산[455m]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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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조입상. 목신리 보살입상은 목신리 지방도 392호선 옆 나지막한 구릉 위의 보호각 속에 안치되어 있다. 보호각은 현재 좌우 각 한 칸인 목조 가구 슬레이트 지붕을 얹고 있다. 예전 사진에는 이 보호각의 지붕이 초가로 되어 있다. 보호각 종도리에 묵서로 “광서십사년무자십일월 갑시(光緖十四年戊子十一月初一日 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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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불상. 목신리 마을 앞 높은 단 위에 모셔놓고 마을 사람들이 신앙하고 있는 석불입상으로 현재 경기시도 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상 주변에서 사지로 추정할 만한 유구와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불상 주변에서 간간히 와편(瓦片)들이 발견된다. 불상은 높은 육계(肉髻)에 상호는 원만한 편이나 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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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불상. 목신리 마을 앞 높은 단 위에 모셔놓고 마을 사람들이 신앙하고 있는 석불입상으로 현재 경기시도 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상 주변에서 사지로 추정할 만한 유구와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불상 주변에서 간간히 와편(瓦片)들이 발견된다. 불상은 높은 육계(肉髻)에 상호는 원만한 편이나 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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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에 있는 약 110년 수령의 소나무. 상록 교목으로 꽃은 암수 한 그루로 5월에 피고, 솔방울은 계란형으로 길이 4~5㎝, 지름 3~4㎝이나 나무의 나이에 따라 크기에 차이가 심하다. 소나무는 지역에 따라 동북형, 금강형, 중남부 평지형, 안강형, 중남부 고지형으로 나눈다. 용인 지역은 중남부 고지형에 속하는데, 이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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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 지방도 392호선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죽능리를 지나 후동마을이 나타난다. 후동마을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 새터말이 있는데, 이 곳에 유적이 위치한다. 유적의 주변에는 목신천이 흐르고, 언저리에는 충적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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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목악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부곡은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는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양지현(陽智縣)조에 “본래 수주(水州)에 속한 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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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호암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467년(세조 13) 간행된 보조국사 지눌의 『수심결』 역결서(譯決書). 세조(世祖)[1417~1468]의 명에 의해,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이 쓴 선(禪) 수행의 필독서인 『수심결(修心訣)』을 비현각(丕顯閣)에서 구결(口訣)하고 신미(信眉)가 번역하여, 1467년(세조 13)에 간경도감에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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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허환(虛患)으로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온갖 정성을 다해 돌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 이에 한 의원이 고기를 먹어야 나을 병이라고 조언하니, 추운 겨울에 폭설을 무릅쓰고 개울에 나가 얼음을 깨고 물 속에서 가물치 7마리를 잡아다 탕약을 해드려 낫게 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고생하였을 때는 백방으로 영약을 구하였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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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목원규의 정려각. 목원규의 본관은 사천(泗川)이고, 자는 문유(文有)이다. 1828년(순조 28)에 용인에서 목우석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소 몸가짐이 단정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많은 칭송을 들었다. 그가 별세한 지 18년 만인 1891년(고종 28)에 동몽교관조봉대부(童蒙敎官朝奉大夫)로 증직하여 이듬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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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경노(景魯). 할아버지는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낸 평숙(平叔) 목천수(睦天壽)이고, 아버지는 공집(公集) 목회경(睦會敬)이다. 1747년(영조 23)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61년(영조 37)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사직서령(社稷署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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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서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0년에 출간한 『용인군지』에는 제보자와 채록 날짜만 제시되어 있다.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용인 북부지역의 구비전승』에는 「여자가 산소에 가지 않는 이유」로, 『용인 중부지역의 구비전승』에는 「친정 명당을 빼앗은 딸」·「묘자리 빼앗은 정몽주의 딸」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옛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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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소속의 교회. 4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다는 몰몬(Mormon)이라는 예언가이자 장군의 이름과 『몰몬경』이라는 경전으로 인해 몰몬교라고 알려진 이 종단의 명칭은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를 거쳐 현재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로 바뀌었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는 현재 미국의 솔트레이크시를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상당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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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서 처인성의 사장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5년에 출간한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다. 『용인군지』에도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채록되어 있으며, 『용인 남부지역의 구비전승』에는 「처인성에 일어난 일화」란 재목으로 채록되어 수록되었다. 몽고는 고려 정부가 강화도로 들어가 적극적으로 항쟁할 기미를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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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부터 1258년까지 몽고가 고려를 침략한 전쟁. 13세기 초에 만주와 중국 북부 지방에서 일어난 몽고는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 과정에서 몽고는 고려에도 침략하여 80여 년 동안 고려의 정치를 간섭하였다. 몽고는 1231년부터 1258년까지 계속 고려를 침략하였다. 몽고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고려를 공격하였다. 이때 광주를 비롯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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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정운관(鄭云瓘)의 아들이다.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하여 1362년 예문관의 검열·수찬이 되었다. 이때 김득배(金得培)가 홍건적을 격파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서도 김용(金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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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정운관(鄭云瓘)의 아들이다.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하여 1362년 예문관의 검열·수찬이 되었다. 이때 김득배(金得培)가 홍건적을 격파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서도 김용(金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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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501년(연산군 7)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때 함께 급제한 김안국(金安國)·성세창(成世昌) 등과 교유했다. 150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감찰(監察)·이조좌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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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 비는 내용에 따라 불교유적과 관련된 탑비(塔碑)와 유교유적과 관련된 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탑비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이고, 묘비와 신도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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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묘봉동에서 유래되었으며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같은 명칭으로 이어지고 있다. 묘봉은 방위산 동쪽을 가리키는 ‘묘(卯)’자와 동쪽의 산 봉우리를 가리키는 ‘봉(峰)’자를 써서 묘봉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본래 용인현 하동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묘봉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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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있는 전통 가옥. 묘봉리 가옥은 1955~1960년 사이에 지어졌다. 건축된 이후 새마을사업으로 지붕을 개량했고, 1990년대 들어와서는 벽돌 벽을 쌓으면서 집을 크게 개축했다. 안채의 뼈대는 원래대로 간직되어 있고, 아래채는 근래에 블록으로 신축했다. 묘봉리 가옥의 전면에는 블록으로 담을 쌓아 시선을 차단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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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묘봉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분포되어 있어, 묘봉리 선사유적1과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묘봉리 선사유적1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의 하리저수지 동편에 위치한 구릉지(해발 100m) 산43임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의 남쪽으로 이동저수지로 유입되는 묘봉천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시궁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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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묘봉리 유물산포지는 총 네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묘봉리 유물산포지1에서 묘봉리 유물산포지4로 구분한다. 이동읍 송전리에서 동편의 묘봉리 방향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해발 514m의 시궁산에서부터 남쪽으로 흘러나온 완만한 가지 능선들 사이에 이루어진 골짜기들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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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 비는 내용에 따라 불교유적과 관련된 탑비(塔碑)와 유교유적과 관련된 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탑비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이고, 묘비와 신도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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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일 년에 한 번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서 지내는 제사. 묘사(墓祀)라고도 하는 묘제는 조상의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영혼에 대한 제사인 기제사 등과는 달리 고인의 체백(體魄: 육신)에게 지내는 제사로서, 일 년에 한 번 날을 잡아서 행한다. 원래 3월 상순에 지내도록 되어 있으나 요즘에는 음력 10월에 한 날을 잡아 지내는 것으로 정착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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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일 년에 한 번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서 지내는 제사. 묘사(墓祀)라고도 하는 묘제는 조상의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영혼에 대한 제사인 기제사 등과는 달리 고인의 체백(體魄: 육신)에게 지내는 제사로서, 일 년에 한 번 날을 잡아서 행한다. 원래 3월 상순에 지내도록 되어 있으나 요즘에는 음력 10월에 한 날을 잡아 지내는 것으로 정착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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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 비는 내용에 따라 불교유적과 관련된 탑비(塔碑)와 유교유적과 관련된 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탑비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이고, 묘비와 신도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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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무당이 무속 의식에서 구연하는 사설이나 노래. 무가는 말로 구전되는 구비문학의 일종으로, 굿이란 제한된 상황에서 무당이란 한정된 특수층에 의해 전승되기 때문에 종교적 보수성이 강한 신성을 전제로 한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무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설과 가락이다. 사설은 굿의 성격이나 무당의 성격·신관(神觀)·우주관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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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과 이동읍 천리 원촌 경계에 있는 고개. 지도에는 무네미고개 또는 물넘어고개 등으로 표기되어 있고, 무내미고개·물넘이고개 등으로도 불리며, 옛 지명으로는 수유현(水踰峴)이었다. 2006년 간행된『용인시사』1권에는 수여현(水餘峴)으로 기록이 잘못되어 있다. 북사면의 유수는 남리천을 따라 흐르다가 경안천으로 합류하고, 남사면의 유수는 동막천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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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과 이동읍 천리 원촌 경계에 있는 고개. 지도에는 무네미고개 또는 물넘어고개 등으로 표기되어 있고, 무내미고개·물넘이고개 등으로도 불리며, 옛 지명으로는 수유현(水踰峴)이었다. 2006년 간행된『용인시사』1권에는 수여현(水餘峴)으로 기록이 잘못되어 있다. 북사면의 유수는 남리천을 따라 흐르다가 경안천으로 합류하고, 남사면의 유수는 동막천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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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과 이동읍 천리 원촌 경계에 있는 고개. 지도에는 무네미고개 또는 물넘어고개 등으로 표기되어 있고, 무내미고개·물넘이고개 등으로도 불리며, 옛 지명으로는 수유현(水踰峴)이었다. 2006년 간행된『용인시사』1권에는 수여현(水餘峴)으로 기록이 잘못되어 있다. 북사면의 유수는 남리천을 따라 흐르다가 경안천으로 합류하고, 남사면의 유수는 동막천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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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입는 옷.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출생과 동시에 쌀깃에 싸 두었다가 3일 또는 일주일이 지난 후 목욕을 시킨 후에 입히는 옷이다. 입히는 시기는 반드시 정해진 것은 아니었으며, 태어난 후 바로 입히거나 임의대로 입히는 경우도 많았다. 아기의 보온과 위생에 중점을 두고, 품이 크고 넉넉하게 만들어 혈액순환에 좋고 입고 벗기기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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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무릇을 고추장에 박아 만든 장아찌.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무릇은 야자고(野茨菰)·흥거(興渠)라고도 불리며, 구황식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용인시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봄에 무릇을 채취하여 알뿌리는 버리고 삶아서 매일 물을 갈아주면서 1주일간 우려낸다. 물에 우려낸 무릇을 채반에 널어 바싹 말려둔다. 준비한 간장과 물엿, 고추, 마늘을 넣어 끓여 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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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서 활약한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황희(黃喜)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황윤공(黃允恭)이다. 황진(黃進)[1550~1593]은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591년(선조 24)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미구에 일본이 내침(來侵)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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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와 화성시 동탄면에 걸쳐 있는 산. 주 능선은 남북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북쪽으로는 아흔아홉고개와 부아산으로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삼봉고개를 거쳐 함봉산으로 이어진다. 서쪽의 화성시 동탄면 중리 지역의 유수와 남쪽 신리 지역의 유수는 신리천이 되어 서쪽을 지나 오산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그리고 동사면의 유수는 서리천을 거쳐 진위천으로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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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주국은 건장하고 뛰어난 용모와 강직한 성품으로 부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아 명망이 있었다. 문무의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 문신의 횡포를 감내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아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언(君言), 호는 오백(梧栢).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적(李滴)이며, 어머니는 찬성(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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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문인으로서 무인을 능가하는 무예를 가지고 있었다. 야인(野人)을 정벌하여 정세를 편안히 하였으며, 중종의 즉위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으며, 이과(李顆)의 옥사를 다스려서는 정난공신(定難功臣)에 추대되었다. 또한 삼포왜란(三浦倭亂)을 토벌한 공으로 영의정에 오르기도 하였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지옹(智翁), 호는 청천(菁川). 증조부는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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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다른 나라와 상품을 교환하는 활동. 무역을 넓은 의미에서 바라볼 때 그것은 특정 상품의 교환에 의해 경제적 가치를 증가시키는 활동 외에도 모든 재화의 생산요소, 즉 원료·기술·노동 및 자본의 이동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세계 경제의 자유화와 통합화가 심화되는 추세 속에서 전개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무역 활동은 이러한 시각에서 접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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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감자는 무슨 색일까? 정말, 일곱 색깔 무지개색일까? 무지개감자는 어떤 모양일까? 무지개 감자는 어떻게 수확할까?” 직접 농작물 밭에 들어가서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작물들을 직접 만져보고 수확하여 집으로 가져가는 체험프로그램으로 농촌의 진정한 재미인 수확의 즐거움을 함께하는 시간이다. 줄기를 뽑을 때마다 굵고 동그란 감자와 아직 덜 익은 작고 귀여운 감자들이 뿌리에 알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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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인위적으로 형성된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 중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 2007년 10월 현재 경기도 용인시에는 군포당정옥로주(軍浦堂井玉露酒)와 악기장(樂器匠) 등 2건의 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있다. 최근 전라남도 여천 태생으로 자수장(刺繡匠)에 지정되어 있던 황순희는 용인시 소재 무형문화재에서 해제되었다.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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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장. 본관 전주(全州). 자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이다. 할아버지는 부제학 유윤덕(柳潤德)이고, 생부(生父)는 유성(柳城), 양부는 참봉인 유지(柳墀)이다. 유복기(柳復起)와 유복립(柳復立) 형제는 외가에 맡겨져 외조부의 손에서 컸으며 외숙인 학봉 김성일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음보로 종부시주부(宗溥寺主簿)가 되었고, 1592년(선조 25)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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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묵리의 중심을 이루는 마을인 묵동(墨洞)에서 유래되었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묵동이라는 지명이 나타난다. 본래 용인현의 상동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촌, 거문정, 굴암, 한덕, 묵방, 염치와 묵동의 일부를 합쳐서 묵리라고 하였다. 용인에서 가장 깊은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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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 조사가 실시되어 ‘덕성리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보고된 바가 있다. 이 때 구석기시대 석기들이 채집되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이동읍으로 이어지는 국도 45호선을 통해 덕성리에 이르러 사챙이마을로 들어서면 해발 166m의 능골산이 나타난다. 유적은 이 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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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흑자 가마 터. 묵리 요지는 두 곳에 나뉘어 있는데, 묵리 요지1은 15~16세기의 백자 요지이고, 묵리 요지2는 19~20세기의 백자·흑자 요지이다. 이들은 서로 시기상·거리상 서로 연관이 없는 별개의 유적이다. 묵리 요지1은 용인에서 국도 45호선을 통해 이동읍으로 가다가 천리에서 용덕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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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 적동마을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산포지. 경기도 용인시에서 송전으로 가는 국도 45호선을 따라 가다가 묵리에서 좌회전하여 용덕저수지로 가는 길을 가다 보면 적동마을이 나온다. 적동마을에서 염치 쪽으로 가는 길로 올라가면 라이프아파트 뒤편에 골짝기가 있는데, 묵리 적동 토기산포지는 골짜기의 왼편 산자락 일대에 위치한다.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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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는 약 270년 수령의 보호수. 전국 산야의 50~100m 야산에 자생하는 낙엽 활엽교목으로 갈참나무·졸참나무·떡갈나무 등 북반구의 온대에서 열대에 걸쳐 200~250종이 자란다. 참나무는 한 속(屬)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으로 사용되지만 때로는 상수리나무를 뜻하기도 한다. 중부 이남 해발 200m 내외의 양지바른 산기슭에서 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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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보(純甫), 호는 담와(淡窩). 아버지는 참판 홍우전(洪禹傳)이며, 어머니는 대사헌(大司憲) 이상(李翔)의 딸이다. 담와(淡窩) 홍계희(洪啓禧)[1703~1771]는 영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시무에 밝고 경세치용(經世致用)에 관심이 많았던 개혁 실천주의자이다. 스스로 노론 이재(李縡)의 문인이라 했으나 대다수의 이재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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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덕재(德哉), 호는 도곡(陶谷). 증조부는 찬성공 이후연(李後淵), 조부는 파주목사 이정악(李挺岳), 아버지는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이다. 어머니는 정경부인으로 군수 정창징(鄭昌徵)의 딸이고, 홍익한(洪翼漢)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서울 북부 진장방(鎭長坊) 소격동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21세 때 도승지로 있었던 아버지 이세백이 기사환국(己巳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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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호는 지촌(芝村)이다. 증조부는 우의정 이정구(李廷龜),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이명한(李明漢)이며, 아버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다. 1680년(숙종 6) 유일(遺逸)로 전설별검(典設別檢)·의금부도사 등을 거쳐 진천현감(鎭川縣監) 때는 치적을 쌓았다. 1694년 인천현감(仁川縣監)·지평(持平)·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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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세필과 그 후손들의 묘역. 이 묘역은 이조참판을 지낸 문간공 김세필(金世弼)[1473~1533]의 묘를 중심으로 한 경주김씨의 세장지이다. 김세필은 기묘사화 때 화를 당했고, 김세필의 삼남 김저는 을사사화 때 화를 당하였다. 김세필을 비롯하여 김세필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이곳에 세장되었다. 문간공 김세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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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1415~1477]은 세종 대부터 성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김반(金泮)의 문인이다. 뛰어난 학문으로 당대 8대 문장가로 꼽히기도 하였다. 집현전학사였으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짓는 것에 그쳤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에 “중국은 다만 성곽(城郭)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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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용인 전투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부평(富平). 자는 문거(文擧). 군수 이덕일(李德一)의 아들이며,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이자신(李自新)의 외손자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에 등용되어 저작에 올랐다. 1636년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이 되었다. 이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도관찰사 정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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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충렬서원의 원장을 세 차례나 지냈고,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에 있는 덕봉서원의 원장도 역임하였다. 본관은 덕수. 자는 치보(治甫)·자삼(子三). 호는 수곡(睡谷)·수촌(睡村)·포음(浦陰)이다. 아버지는 시정(寺正) 이신하(李紳夏)이고, 할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이식(李植)이다. 증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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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 자는 상보(尙甫), 호는 여호(黎湖)·요계(蓼溪)이다. 군수 박태두(朴泰斗)의 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영의정 송상기(宋相琦)의 천거로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가 되었다. 지평(持平)·장령(掌令)·진선(進善)·집의(執義) 등을 지내고, 세자찬선(世子贊善)·이조판서·우찬성(右贊成)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서원을 철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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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번대가 부산진을 침범하였다. 조선 관군은 준비가 잘 된 왜군을 당해내기 어려웠고 왜군은 부산진을 침입한 지 보름 만에 서울까지 점령하였다. 급박한 상황에서 선조는 4월 30일 밤에 서울을 떠났고, 왜군의 1번대와 2번대가 각각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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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 일찍이 용인 탁영봉(濯纓峰)의 한림대에서 김구(金龜) 등과 학문을 하였다. 그에 따라 봉우리도 김일손의 호를 따 탁영봉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이 되었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가 되었다가 곧 정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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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문인으로서 무인을 능가하는 무예를 가지고 있었다. 야인(野人)을 정벌하여 정세를 편안히 하였으며, 중종의 즉위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으며, 이과(李顆)의 옥사를 다스려서는 정난공신(定難功臣)에 추대되었다. 또한 삼포왜란(三浦倭亂)을 토벌한 공으로 영의정에 오르기도 하였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지옹(智翁), 호는 청천(菁川). 증조부는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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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의병. 1727년(영조3) 청주에서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이 때 문성천은 양지현(지금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거주하던 가의대부(嘉義大夫) 주헌(朱櫶)이 의병을 모집하자 그를 도와 좌찬현(佐贊峴)에서 서울로 진격하는 적을 막고 수백 여 명을 죽였다. 이 일이 임금께 보고되었으나 상을 받지 못하였다가, 1785년 경기관찰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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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과 원삼면 사암리·문촌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의 주 능선은 남북 방향이며, 북쪽으로는 곱등고개(곡돈현)를 거쳐 어은산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멀리 쌍령산으로 이어지며, 낮은 능선이 동쪽의 매봉재로 이어진다. 남동쪽에는 리기다소나무의 조림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의 유수는 서쪽에서는 운학천이 되어 경안천으로, 그리고 동쪽에서는 청미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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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 문수봉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문수사지에 대한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고, 19세기경의 문헌 기록에서 폐사 후 잔존한 모습만을 전하고 있다. 『사탑고적고』에는 “문수사지 등으로 전하며 초석 수개만 남아 있다”라 기록되었고, 『기내사원지』 등에도 유사하게 설명되어 있다. 산봉우리 이름이 ‘문수(文殊)’라는 불교적 지명이고,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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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는 고려 전기 마애보살상 2구. 문수사지는 원삼면 문촌리 문수산에 있으며, 지금은 우물과 맷돌 자국이 있는 자연암반, 건물지만이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마애보살상은 문수사지에서 북서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약 50m 정도 오르면 있다. 이곳에는 남쪽을 향해 ㄱ자형의 단애(斷崖)가 형성되어 있는데, 마애보살상은 단애의 서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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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와 동림리에 걸쳐 있는 산. 정상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남북으로 길며, 남서쪽에 있는 안골고개 방향으로 완만한 경사의 능선이 이어진다. 산의 동쪽에는 능골고개가 있고, 남서쪽에는 안골고개가 있으며, 남동쪽에는 능원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개울이 있고, 그 북쪽으로는 능원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산의 북서쪽 골짜기에는 포은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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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는 고려 전기 마애보살상 2구. 문수사지는 원삼면 문촌리 문수산에 있으며, 지금은 우물과 맷돌 자국이 있는 자연암반, 건물지만이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마애보살상은 문수사지에서 북서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약 50m 정도 오르면 있다. 이곳에는 남쪽을 향해 ㄱ자형의 단애(斷崖)가 형성되어 있는데, 마애보살상은 단애의 서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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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영조,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국정을 주도하였던 문신으로 오광운(吳光運), 강박(姜樸)에게서 수학하였다.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채응일(蔡膺一)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 이만성(李萬成)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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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최규서(崔奎瑞)[1650~1735]는 경기도 광주시 출신으로 숙종대에 관직에 나아간 이후 경종대에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당쟁이 격화된 당시 소론의 영수로 활동하였다. 영조 즉위 후 낙향한 80세의 몸으로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대한 대책을 올려 공신에 녹훈되고, 영조의 묘정에 배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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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이다. 아버지는 교리(校理) 박의(朴猗)이며, 부인은 원두추(元斗樞)의 딸이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주장, 효종의 꾸지람을 받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1차 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기년복(朞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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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桂庭). 호조판서 민겸호(閔謙鎬)의 아들이다. 백부(伯父)인 여성부원군 민태호(閔泰鎬)에게 입양되었다. 1877년(고종 14)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으며, 이듬해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정자(正字)·검열(檢閱)·설서(說書)·수찬(修撰)·검상(檢詳)·사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1881년 동부승지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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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문약(文若). 안희묵(安羲黙)[1795~1881]은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다. 안희묵은 어려서부터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에 열중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에 어긋남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할 때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들게 하는 효행을 보였으며, 상을 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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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강상죄인(綱常罪人). 1680년(숙종 6) 수원부 양지현(현재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주인을 죽인 죄인으로서 삼성(三省)에서 추국하자 스스로 시인하고 사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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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의 금령 전투에서 승리한 의병장. 본관은 언양.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이다. 증조부는 김응복(金應福), 할아버지는 김식(金湜), 아버지는 김중기(金重器)이며, 외할아버지는 이용(李蓉), 부인은 박덕창(朴德昌)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년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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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여진(如進), 호는 과재(果齋)이다. 증조부는 윤시영(尹時英), 조부는 윤징(尹澄), 아버지는 윤우신(尹又新)이다. 외조부는 유문윤(柳文潤), 부인은 원경심(元景諶)의 딸이고, 아들은 윤형갑(尹衡甲)이다.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檢閱)·지평(持平) 등을 지냈다. 1587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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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남평. 자는 순해(舜諧) 또는 순서(舜瑞), 호는 휴헌(休軒). 아버지는 현령 문위세(文緯世)이며, 큰아버지인 첨지중추부사 문위지(文緯地)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용인향교의 학생으로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문위세와 함께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용담(龍潭)에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치열한 항전을 벌였고 세 번이나 크게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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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학원(學源). 찬성사(贊成事) 류만수(柳曼殊)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지낸 류은지(柳殷之)이다. 1445년(세종 27) 류사(柳泗)[1423~1471]는 내금위에 소속되었다가 1447년(세종 29) 오위(五衛) 부사정(副司正)으로 있었다. 이때 죄를 지어 죽은 할아버지 유만수의 녹권이 삭제당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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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허환(虛患)으로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온갖 정성을 다해 돌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 이에 한 의원이 고기를 먹어야 나을 병이라고 조언하니, 추운 겨울에 폭설을 무릅쓰고 개울에 나가 얼음을 깨고 물 속에서 가물치 7마리를 잡아다 탕약을 해드려 낫게 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고생하였을 때는 백방으로 영약을 구하였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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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501년(연산군 7)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때 함께 급제한 김안국(金安國)·성세창(成世昌) 등과 교유했다. 150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감찰(監察)·이조좌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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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평보(平甫), 호는 소고(嘯皐)·재간(在澗)·보졸재(保拙齋)·송현(松峴), 시호는 문익(文翼). 증조부는 남원부사 서정리(徐貞履), 조부는 병조참의 서문상(徐文尙), 아버지는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이다. 어머니는 이헌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아들 서지수(徐志修)까지 3대가 대신을 지냈으며, 부인 또한 3대가 대신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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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국문인협회 용인지부에서 매년 개최하는 문학 강좌. 1997년 10월 용인문예회관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 ‘용인문학의 밤’ 행사에 한국문인협회 이철호 부이사장을 초대하여 ‘문학하는 마음, 그 아름답고 축복된 삶’이라는 주제의 문학 강좌를 개설한 것이 그 효시이다. 1998년 제2회 문학 강좌에서는 한국문인협회 신세부 부이사장이 ‘신민족 문학의 방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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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의 문신이자 교육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일(聖一), 호는 심재(心齋)·운정. 아버지는 이명익(李溟翼)이며, 양부는 이건익(李建翼)이다. 강위(姜瑋)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882년(고종 19)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강원도 암행어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치다가 1886년 수구파로 몰려 고금도에 유배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복관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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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의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은진.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또는 우재(尤齋). 증조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 조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선산곽씨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25년(인조 3) 도사 이덕사(李德泗)의 딸 한산이씨와 혼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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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이재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영조의 탕평정치(蕩平政治)에 맞선다는 이유로 자주 파직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만년에는 용인의 한천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등 정계와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한천(寒泉). 진사 이만창(李晩昌)의 아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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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치명(穉明), 호는 종산(鍾山). 증조부는 이숭호(李崇祜), 조부는 이재학(李在學), 아버지는 이규현(李奎鉉), 외조부는 박사소(朴師邵), 처부는 서이순(徐彛淳)이다. 1829년(순조 29) 문과 급제 후 1849년(헌종 15) 성균관대사성을 비롯하여 이조참의·이조참판·경기도관찰사·형조판서를 거쳐 사헌부대사헌을 세 번 역임하였다. 18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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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이익은 효종 대에서 숙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송시열을 추종하여 치열한 사색당쟁 속에서 노론과 성쇠를 같이 하였다. 1659년 정언(正言)이었을 때는 술 마시고 추태를 부리는 대신을 탄핵하여 강직함을 드러냈으며, 1674년 송시열이 유배된 뒤 계속된 탄핵으로 양덕(陽德)으로 귀양 갔다가,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후 1682년 송시열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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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증조할아버지는 조육(趙育)이고,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조충손(趙衷孫)이며, 아버지는 감찰(監察) 조원강(趙元綱)이다. 부인은 첨사(僉使) 이윤동(李允洞)의 딸이다. 아들은 조용(趙容)이다.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한성부 중부 행교동(현재 종로구 경운동)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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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능(幼能)이며, 호는 정관재(靜觀齋)·서호(西湖)다. 증조부는 이계(李啓), 할아버지는 좌의정 이정구(李廷龜), 아버지는 대제학 이명한(李明漢)이다. 외조부는 박동량(朴東亮), 부인은 이행원(李行遠)의 딸이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설서(說書)·대교(待敎)·교리(校理) 등을 거쳐 이조와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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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광조의 묘와 신도비.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를 통해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고,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단행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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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1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교훈은 ‘열(熱)·성(誠)’이다. 교육목표는 애국 애족 정신이 투철하고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춘 사람, 능력과 소질을 계발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사람, 기본 생활습관을 잘 준수하며 남을 배려하고 봉사할 줄 아는 사람,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아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 건전한 정신과 체력이 조화를 이룬 사람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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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문촌교회는 선교사들의 순회 전도회에 참석한 박순하와 이은주 등 20여 명의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1906년 8월 16일 이은주의 집에서 창립 예배를 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1909년에 신자들의 힘으로 교회당을 건축하였고, 1954년에 증축하였다. 1984년에는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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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속하는 법정리. 문시랭이라는 우리말 땅이름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1894년에 간행된 『죽산부읍지』에 나타나는 표기이다. 문(文)씨 성을 가진 시랑(侍郞) 벼슬을 한 이가 살았기 때문에 문시랑이라고 했다는 구전이 있다. 본래 죽산군 원삼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석화지를 합쳐 리(里)를 만들고 문촌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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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문촌리 마을의 포장도로에서 약 200m 떨어진 야산 구릉에 위치하며, 측면 한 곳은 작은 개울과 접해 있다. 지번은 산35-1임, 383-1전, 384-2전, 384-3전 일대에 해당한다. 발굴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가마 터는 잡목 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 가마의 구조물이 지면에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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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또는 미재(美齋). 개국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남식(南烒)이고, 아버지는 현령 남일성(南一星), 어머니는 권박의 딸이다.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문하에서 수학,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5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가주서·전적·사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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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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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유(聖猷), 호는 단암(丹巖)·세심(洗心)이다.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이다. 외할아버지는 송준길(宋浚吉), 부인은 윤지선(尹趾善)의 딸이다. 또한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오빠이자 우참찬 민진후(閔鎭厚)의 동생이다. 아들은 민형수(閔亨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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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峯)이다. 증조부는 민여건(閔汝健), 할아버지는 민기(閔機), 아버지는 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딸이다. 부인은 신승(申昇)의 딸이고 아들은 민진장(閔鎭長), 형제는 민시중(閔蓍重)·민유중(閔維重)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거주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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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숙종이 정몽주가 남긴 문집을 읽고 지은 어제시(御製詩). 「문충공문집에서 유상을 보고 느낌이 있어서 지은 찬」의 원 제목은 「문충공문집중견유상유감작찬(文忠公文集中見遺像有感作贊)」이다. 숙종이 포은 정몽주의 문집을 보고 느낌이 있어서 지은 8언 8행의 고시이다. 현재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포은영당의 벽에 시판(詩板)으로 걸려 있다. 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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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행임(尹行恁)[1762~1801]은 시파(時派)의 중추적인 인물이다. 시파와 벽파(辟派)의 당쟁이 극심하였던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탄핵 또한 빈번하여 자주 유배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성보(聖甫), 호는 방시한재(方是閑齋)·석재(碩齋). 조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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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는 희성(希聖)·응성(應聖), 호(號)는 휴암(休巖). 창원공씨의 시조인 공소(孔紹)의 5대손이자, 공숙(孔俶)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공의달(孔義達)이다. 어머니는 죽산 박원인(朴元仁)의 딸이며, 처는 파평 윤영세(尹永世)의 딸이다. 공서린은 1507년(중종 2) 진사시를 거쳐 같은 해에 급제하였다. 낭관과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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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호는 만절당(晩節堂). 증조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고, 할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며, 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연흥군(延興君) 박고(朴翶)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따님이다. 아들은 찬성사(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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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추계추씨의 시조. 본관은 추계. 자는 관중(慣中), 호는 노당(露堂). 추계(秋溪)는 양지현(陽智縣)의 별호로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과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일대를 말한다. 추적(秋適)[1246~1317]은 1260년(원종 1)에 1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뒤 안동서기(安東書記)·직사관(直史館)을 거쳐 좌사간(左司諫)에 올랐다. 1298년(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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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중부대로에 있는 용인문화원에서 운영하는 사회 교육기관. 다양한 문화 강좌 개설하여 취미 생활 및 여가 선용 기회 확대, 잠재적 문화 예술에 대한 능력 발굴 및 기능 향상 등 문화적 욕구 실현을 통한 삶의 질 향상과 복지 창출에 두고 있다. 운영 방향은 문화원 사업 목적에 부응하는 교육 프로그램 설정, 타 문화 센터와 차별화된 전통 문화 강좌, 상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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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문화예술을 즐기고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시설 일체. 문화 시설은 예술인들이 문화예술을 행할 수 있는 장소인 동시에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일체의 시설로서, 크게 공연 시설·전시 시설·문화 복지 시설·도서관으로 나눌 수 있다. 용인시에 있는 문화 시설 중 공연 시설로 분류할 수 있는 곳은 용인문예회관과 용인시 여성회관, 문화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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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문화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 문화 예술 단체. 문화 예술 단체는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연예, 사진, 문학 등 문화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 단체를 말한다. 현재 경기도 용인시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화 예술 단체로서 활동하고 있는 곳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용인지부이다. 이외에 용인문화원과 용인시립예술단, 한국민족예술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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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용인문화복지행정타운 내에 있는 복합 문화 시설. 문화예술원은 용인 시민의 문화 만족과 문화 복지 향상을 위하여 복합 문화 공간으로 문을 열었으며, 문화 예술 단체의 활동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전시 문화 예술의 요람이다. 용인시가 새 청사를 건립하면서 시민들의 문화 복지를 실현하고 다양한 문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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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차달을 시조로 하고 류자화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문화류씨의 본향은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이며, 시조 류차달(柳車達)의 10세손 내지 12세손 대에서 14파로 크게 나뉘는데, 류량을 파조로 하는 충경공파(忠景公派), 류만수(柳曼殊)를 파조로 하는 좌상공파(左相公派), 류관(柳寬)을 파조로 하는 하정공파(夏亭公派), 류원현(柳元顯)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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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중부대로에 있는 용인문화원에서 운영하는 사회 교육기관. 다양한 문화 강좌 개설하여 취미 생활 및 여가 선용 기회 확대, 잠재적 문화 예술에 대한 능력 발굴 및 기능 향상 등 문화적 욕구 실현을 통한 삶의 질 향상과 복지 창출에 두고 있다. 운영 방향은 문화원 사업 목적에 부응하는 교육 프로그램 설정, 타 문화 센터와 차별화된 전통 문화 강좌, 상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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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치구(稚久).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남이성(南二星)의 딸이고, 외할아버지는 홍처윤(洪處尹)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함으로써 조(祖)·부(父)·자(子) 3대가 장원하여 ‘삼세문장(三世文壯)’이라 일컬어졌다. 장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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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과 이동읍 천리 원촌 경계에 있는 고개. 지도에는 무네미고개 또는 물넘어고개 등으로 표기되어 있고, 무내미고개·물넘이고개 등으로도 불리며, 옛 지명으로는 수유현(水踰峴)이었다. 2006년 간행된『용인시사』1권에는 수여현(水餘峴)으로 기록이 잘못되어 있다. 북사면의 유수는 남리천을 따라 흐르다가 경안천으로 합류하고, 남사면의 유수는 동막천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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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물레질을 하면서 부르던 노동요. 「물레 노래」는 부녀자들이 물레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물레질이 성하던 시절에는 부녀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노래였으나 근래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유희요로 불린다. 용인 지역에서 채록된 「물레 노래」의 사설을 보면, 일이 너무 많아 부족한 잠을 호소하거나 사랑을 노래한 것도 있고, 물레에 기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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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민족 자본을 육성하기 위해 벌인 국권 회복 운동. 물산장려운동은 1920년대 민족 자본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취지 하에 조만식, 김동원 등이 평양에서 물산장려회를 조직하면서 촉발되었다. 일제의 수탈 정책 하에 경제적 자립을 꾀하고자 한 이 운동은 국산품 장려 등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1923년에는 전국적 조직체인 물산장려회가 조직되고 각 지방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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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성(汝省), 호는 송음(松陰)·미강(眉江). 할아버지는 절도사 이원, 아버지는 군수 이통(李通)이다. 어머니는 영의정 유전(柳㙉)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19세의 나이로 진사가 되었으나, 당시 폐모론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두문불출하다가 인조반정 후인 1624년(인조 2)에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처음 전적에 임명되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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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 주내마을에 있는 선사시대의 선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 삼층석탑의 인근에 있다. 선돌의 크기는 길이 194㎝, 너비 65㎝, 두께 35~73㎝이고 단면은 직사각형이다. 선돌 주변에는 여러 개의 장대석(長大石)이 놓여 있으며, 앞쪽에는 제단의 기능을 하였던 판자돌이 자리하고 있다. 용인 두창리 선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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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 주내마을에 있는 선사시대의 선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 삼층석탑의 인근에 있다. 선돌의 크기는 길이 194㎝, 너비 65㎝, 두께 35~73㎝이고 단면은 직사각형이다. 선돌 주변에는 여러 개의 장대석(長大石)이 놓여 있으며, 앞쪽에는 제단의 기능을 하였던 판자돌이 자리하고 있다. 용인 두창리 선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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