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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는 희성(希聖)·응성(應聖), 호(號)는 휴암(休巖). 창원공씨의 시조인 공소(孔紹)의 5대손이자, 공숙(孔俶)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공의달(孔義達)이다. 어머니는 죽산 박원인(朴元仁)의 딸이며, 처는 파평 윤영세(尹永世)의 딸이다. 공서린은 1507년(중종 2) 진사시를 거쳐 같은 해에 급제하였다. 낭관과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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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字)는 사홍(士弘)·성지(星之). 공서린(孔瑞麟)의 9대손이며, 공원인(孔源仁)의 아들이다. 공윤항은 가세가 몹시 빈곤하였으나, 1792년(정조 16) 정조가 초계문신(抄啓文臣)을 직접 시험하는 과강(課講)과 일차유생의 전강을 실시할 때 학문이 뛰어나다고 해서 왕명으로 특별히 전시를 볼 수 있었다. 1794년 알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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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심(伯深), 호는 운소(雲巢).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의 손자이며, 형조판서 김효대(金孝大)의 아들이다. 김사목은 문음(文蔭)으로 관직에 나간 뒤 김제군수를 거쳐, 1772년(영조 48)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부교리, 보덕(輔德), 승정원동부승지를 거쳐 1774년에는 승지가 되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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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개국공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남천로(南天老),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남을번(南乙蕃)이며, 형은 영의정 남재(南在), 아우는 우정승 남지(南贄)이다. 1374년(공민왕 23) 성균시에 급제, 1380년(우왕 6) 사직단직(社稷壇直)이 되고 이어서 삼척지군사(三陟知郡事)가 되어 왜구를 격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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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실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다. 증조부는 현령 류위(柳湋), 할아버지는 정랑 류성민(柳成民), 아버지는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었던 류흠(柳흠)이다. 어머니는 참찬 이지완(李志完)의 딸이다. 부인은 심수경(沈守慶)의 증손녀이며, 부사 심은(沈誾)의 딸이다. 외삼촌 이원진(李元鎭)과 고모부 김세렴(金世濂)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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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회헌(晦軒). 고려에서 정승을 지낸 박전지(朴全之)의 고손이며, 할아버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며, 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고,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딸이다. 아들은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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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유배된 무신. 본관은 죽산. 호는 호곡(壺谷). 조선 건국에 대장군으로서 공이 있어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고, 사헌중승(司憲中丞)을 지냈다. 그러나 1394년(태조 3) 자기는 논공(論功)에서 2등이 되고 이무(李茂)는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책봉된 것을 비방하였다가 도리어 죽주(竹州)[현재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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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화오(華五). 심즙(沈檝)의 아들이다. 심규로는 1782년(정조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97년 집의 이명연(李明淵)의 상소로 조정이 시끄러울 때 교리로서 부교리 이기양(李基讓)·박윤수(朴崙壽)와 함께 이명연에게 제직(除職)한 명을 거두라고 연명소(聯名疏)를 올렸다가 파직됨과 함께 강외(江外)로 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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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의 열녀. 박씨 여인은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살았는데 이웃에 사는 박삼봉이란 자가 밤중에 침입하여 박씨를 겁탈하려 하였다. 이에 박씨는 몸을 빼어 도망하였다가 간수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관찰사 이재학이 이러한 사실을 장계로 아뢰니 풍덕김씨 여인의 예대로 정려하고 박삼봉은 추관(秋官)으로 하여금 신문하여 형벌을 내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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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장. 본관 전주(全州). 자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이다. 할아버지는 부제학 유윤덕(柳潤德)이고, 생부(生父)는 유성(柳城), 양부는 참봉인 유지(柳墀)이다. 유복기(柳復起)와 유복립(柳復立) 형제는 외가에 맡겨져 외조부의 손에서 컸으며 외숙인 학봉 김성일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음보로 종부시주부(宗溥寺主簿)가 되었고, 1592년(선조 25)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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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유생.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때 통덕랑(通德郞) 한홍제(韓弘濟)와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여 반란군이 좌찬고개를 지나지 못하게 막아 공을 세웠다. 유상한(劉相漢)은 이인좌의 난이 평정된 당시에는 포상되지 않았다가 1788년(정조 12) 정조가 당시 반란 진압에 참여하였으나 포상 받지 못한 공신들을 다시 찾을 때 알려져 그 후손이 상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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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중옥(仲玉), 호는 퇴암(退巖). 아버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들은 청주목사(淸州牧使) 윤행엄(尹行儼), 증영의정(贈領議政) 윤행임(尹行恁) 등이 있다. 영조·정조 시대에 활동한 문인으로 청렴한 자세로 이름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하였고 진사시 급제 후 여러 고을의 원을 하였는데 특히 금산군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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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행임(尹行恁)[1762~1801]은 시파(時派)의 중추적인 인물이다. 시파와 벽파(辟派)의 당쟁이 극심하였던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탄핵 또한 빈번하여 자주 유배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성보(聖甫), 호는 방시한재(方是閑齋)·석재(碩齋). 조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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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백눌(伯訥), 호는 풍서(豊墅) 또는 상와(常窩)이다. 증조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이희조(李喜朝), 아버지는 사간원 대사간 이양신(李亮臣)이다. 1747년(영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시강원의 동궁요속(東宮僚屬)에 임명되었고, 장악원정을 거쳐 1788년 동부승지에 특배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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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聲遠). 시호는 충정(忠貞).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의 재종손이며, 영의정 이의현(李宜顯)의 조카이다. 아들인 이경호·이중호 형제를 비롯하여 후손 6명이 대과에 급제하였고, 손자 이재협은 1789년(정조 13)에 영의정을 지냈다. 이보혁이 1728년(영조 4) 성주목사로 있을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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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이숙기(李淑琦)[1429~1489]는 세조와 성종 대에 활동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기개가 넘쳐 무신의 자질이 뛰어났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에 봉해졌고,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는 등 국경을 수비하는 데 힘을 기울인 명장(名將)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근(公瑾). 증조부는 판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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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재학은 조선 후기 영조 대에서 순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이다. 대사간으로 재임할 때는 “오늘날 허다한 하자와 폐단을 이루 거론할 수 없습니다만, 그 병든 근원을 찾으면 오로지 군신상하(君臣上下)가 실(實)이란 하나의 글자를 실행해나가지 않는 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라고 임금께 당대의 폐단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중(聖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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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여고(汝皐). 조부는 인평부원군 이보혁(李普赫), 아버지는 병조판서 이경호(李景祜)이다. 1757년(영조 33) 정시(庭試) 춘당대에서 장원 급제하였고, 사간원지평·홍문관교리 등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1763년(영조 39) 암행어사로 호서 지방을 감찰하였다. 이어 홍문관교리로서 세자시강원필선·문학 등을 겸임하였고, 사헌부헌납·홍문관수찬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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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종(伯宗). 아버지는 이익령(李翼齡)이며, 조부는 이진규(李震奎), 증조부는 이명웅(李命雄), 어머니는 박희인(朴希仁)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시(增廣試)에 병과(丙科) 21인으로 급제하였고, 벼슬로 지평·정언·장령·헌납을 거쳐 형조참판에 이르렀으나 1761년(영조 37)에 파직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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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주국은 건장하고 뛰어난 용모와 강직한 성품으로 부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아 명망이 있었다. 문무의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 문신의 횡포를 감내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아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언(君言), 호는 오백(梧栢).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적(李滴)이며, 어머니는 찬성(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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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조연(趙捐)[1374~1429]은 벼슬에 나간 뒤 파천된 일이 없었고 4대조에 걸쳐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재화를 탐하지 않고 국정에 힘썼다. 문신이면서도 야인 정벌에 무공을 떨치기도 하였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여정(汝靜), 초명은 조경(趙卿). 아버지는 용원부원군(龍原府院君) 조인벽(趙仁璧)이고, 어머니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부친인 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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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조중회는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선조인 생육신 조려(趙旅)의 기상을 이어받아 죽음을 불사하고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영조의 빈번한 사묘(私廟) 참례, 장헌세자(莊獻世子)를 죽게 한 처분 등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였다. 1781년부터 이듬해 죽을 때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 충렬서원의 제32대 원장을 지냈다. 본관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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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의병.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1728]의 난 때 의병을 모집하여, 문성천(文星天)과 함께 죽산현과 양지현 부근의 좌찬현(左贊峴)에서 수백 명의 적을 무찌르는 공을 세웠다.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원종록에 들었으며, 사후인 1788년(정조 12)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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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영조,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국정을 주도하였던 문신으로 오광운(吳光運), 강박(姜樸)에게서 수학하였다.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채응일(蔡膺一)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 이만성(李萬成)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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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조부는 선부전서(選部典書) 상호군(上護軍) 최득평(崔得枰)이고, 아버지는 감찰대부(監察大夫) 최재(崔宰)이며, 어머니는 무안군부인(務安郡夫人) 박씨(朴氏)의 딸이다.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1372년(공민왕 21) 판도사좌랑(版圖司佐郎)이 되어 각 도에서 의염(義鹽)의 염분(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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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계형(季亨), 호는 만오(晩悟), 초명은 용구(用九).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한후유(韓後裕)이다. 한용구(韓用龜)[1747~1828]는 영조 대부터 정조, 순조의 3대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1772년(영조 48) 황감제(黃柑製)에 장원 급제하였다. 1773년(영조 49)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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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보(純甫), 호는 담와(淡窩). 아버지는 참판 홍우전(洪禹傳)이며, 어머니는 대사헌(大司憲) 이상(李翔)의 딸이다. 담와(淡窩) 홍계희(洪啓禧)[1703~1771]는 영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시무에 밝고 경세치용(經世致用)에 관심이 많았던 개혁 실천주의자이다. 스스로 노론 이재(李縡)의 문인이라 했으나 대다수의 이재 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