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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명화는 용인군 모현면 부계리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을 무렵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의병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가 정확하게 언제 의병에 투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1907년 정미조약이 체결된 이후 용인·광주·양지·죽산·양성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활발히 벌였던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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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장옥은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의병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가 정확하게 언제 의병에 투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1907년 정미조약이 체결된 이후 용인·광주·양지·죽산·양성 등지를 주무대로 의병 활동을 활발히 벌였던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일진회 등의 친일 분자를 처단하는 등 항일 유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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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현수는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참가하였다. 1909년 음력 3월 10일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소운동의 이재봉(李在鳳)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징취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를 끌고 경기도 용인군 고석동(古石洞) 덕현(德峴)으로 가서 군자금 5원을 거두었다. 그 후 이익삼 의병장과 더불어 경기도 용인군 상동면 금현 김종옥(金鍾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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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절터. 1900년대 초기에 조사된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두창리사지의 석탑은 삼층으로 6척 5촌의 크기이고, 사지는 불당사지라 전하며, 초석 3개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 문헌들에 나타나는 ‘불당사’는 실제 사명(寺名)이라기보다 ‘불당골에 있는 절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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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흑자 가마 터. 묵리 요지는 두 곳에 나뉘어 있는데, 묵리 요지1은 15~16세기의 백자 요지이고, 묵리 요지2는 19~20세기의 백자·흑자 요지이다. 이들은 서로 시기상·거리상 서로 연관이 없는 별개의 유적이다. 묵리 요지1은 용인에서 국도 45호선을 통해 이동읍으로 가다가 천리에서 용덕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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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신순용은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의병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가 정확하게 언제 의병에 투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1907년 정미조약이 체결된 후 용인·광주·앙지·죽산·양성 등지를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던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일진회 등의 친일 분자를 처단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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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오명항의 정문. 오명항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영모암(永慕菴)이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으나 문무겸전의 지략이 뛰어났다.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 여씨를 지성으로 모셨다. 모친상을 당하자 마치 어린아이처럼 애통해 하고 3년 동안 묘소를 보살피면서 죽 이외에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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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명은 오경수(吳敬秀)이다. 오인수는 18세부터 포수들이 모여 솜씨를 자랑하는 화포계(火砲契)에 참여하여 늘 1등을 차지하는 등 명포수로 이름을 날렸다.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의병 300명을 이끌고 안성(安城)·죽산(竹山)·양지(陽智) 등지에서 일본 헌병대,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고 경찰 수십 명을 사살하였다. 의병장 정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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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 성륜산록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절터는 이동읍 묵리 산55번지에 있는 용덕사 경내에서 북서쪽으로 난 좁은 오솔길을 따라 구릉을 넘어서 약 250m 쯤 나아가면 있다. 경사면을 정지하여 조성한 공지가 나타난다. 이 곳에 축대와 담장 등이 남아 있는데, 용덕사의 옛터라고도 한다. 정면이 서쪽인 절터의 규모는 70×70m 이다. 절터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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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우덕순은 본래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어매동에 거주하는 농부였는데, 1907년 김순일 의병부대에 필요한 군자금을 확보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1907년 11월과 1908년 7월경에 각각 300냥을 모금하여 의병 활동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당시 의병들에 대한 군자금 및 군수품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헌병에게 체포되어 1908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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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우수안은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어매동에 거주하는 농부였다. 한일의정서 체결과 고문 정치로 대변되는 한일협약이 체결되어 일제의 정치·군사적 간섭이 강화되던 시기에 의병 활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당시 경기도 용인군 지역에서는 일본군 군수물자 수송을 위한 경의선·경원선 철도 부설 추진과 이에 따른 인력 강제동원이 행해지고 있었는데, 이에 저항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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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기도 용인·광주·양지·죽산·양성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진. 경기도 용인 출신의 의병장 이익삼은 1907년 7월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정미조약’이 체결되면서 8월에 군대가 해산되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주로 유격전으로 일제와 전투를 벌였으며, 그 밖에 일진회 등 친일파를 처단하거나, 빈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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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경기도 용인 지역에 일어났던 의병 항쟁. 일본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청일전쟁을 도발하면서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갑오개혁을 추진하면서 내정간섭을 감행하는 양면 전략으로 한국 침략을 강화하였다. 즉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서 침략을 강화하자 극동에 진출해 있던 러시아를 비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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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경기도 용인 지역에 일어났던 의병 항쟁. 1904년 2월, 일본은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시켰으며, 5월 말에는 제1차 한일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1905년 들어 일본은 청과의 봉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한국의 식민지화를 노골화시켜 11월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한국에 파견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하였다. 을사조약은 한국의 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