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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김영희의 정려각. 김영희의 본관은 경주로, 조선 후기인 1826년(순조 26)에 경기도 광주시 야곡에서 태어났다. 15세 때인 1840년에 용인현 남동마을로 이사하여 살았다. 가세가 몹시 곤궁하였으나 정성을 다해 양친을 부양하였다. 34세 되던 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모친이 별세하자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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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 매능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치복의 정려각. 김치복 효자정려각(金致福 孝子旌閭閣)은 조선 후기인 1831년(순조 31)에 명정된 김치복 효자정려문부터 1860년(철종 11)에 명정된 권씨 효부정려문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의성김씨 일문에서 나온 효자·열녀·효부인 김치복 효자정려문, 황씨 열녀정려문, 권씨 효부정려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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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이석지의 재실. 초창은 조선 전기에 이루어졌다고 하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서 다시 세웠다. 종도리 장여에 기록된 상량문을 보면 “단기사천이백구십년정유오월십사일입주동월십팔일무오오시상량간좌(檀紀四千二百九十年丁酉五月十四日立柱仝月十八日戊午午時上樑艮坐)”라고 되어 있어 1957년에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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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남구만의 사당. 남구만이 만년에 살았던 고택이 있던 곳으로, 현재 그의 별묘 겸 영당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남구만은 종묘의 숙종 묘에 배향되었으며,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1689년(숙종 15)의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당시 영의정이었던 남구만은 강릉으로 유배를 갔다가 1년여 만에 유배가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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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목원규의 정려각. 목원규의 본관은 사천(泗川)이고, 자는 문유(文有)이다. 1828년(순조 28)에 용인에서 목우석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소 몸가짐이 단정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많은 칭송을 들었다. 그가 별세한 지 18년 만인 1891년(고종 28)에 동몽교관조봉대부(童蒙敎官朝奉大夫)로 증직하여 이듬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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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박인영의 정려각. 박인영의 본관은 죽산(竹山)이고, 자는 여안(汝安)으로 박민흥(朴敏興)의 아들이다. 1750년(영조 26)에 옥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행동이 단정하고 효성이 지극하였고, 재덕을 겸비하여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의 효행은 근천지효(根天之孝), 격천지성(格天之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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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두암산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정암 조광조, 방은 조광보, 회곡 조광좌, 음애 이자 등이 모여 학문을 논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을 사은(四隱)이라 한 것은 정암, 방은, 회곡, 음애가 서로 친하게 지내며 도의(道義)로써 사귀어 더불어 즐거워하고, 농사 짓고[耕], 나무하고[薪], 낚시질하며[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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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에 사족(士族)과 백성이 설립한 경기도 용인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서당은 민간 사설 교육기관으로 오늘날의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이다.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扃堂)에 있으며,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기관이다. 서당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가 증대된 것은 16세기 사림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하는 것으로, 중종(中宗)대 사림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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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경기도 용인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우리나라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조선의 서원은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서 큰 차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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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송지렴의 정문(旌門) 및 정려각. 송지렴의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희주(希周)로 송표의 아들이다. 1769년(영조 45)에 양지현에서 태어났다. 가업인 의술을 이어받아 명의로 이름을 남겼다. 효성이 지극한 것을 사림이 상소하여 효자정문이 내려지고 송문리에 정려각을 세웠다. 정려각은 정면 3칸,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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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열부 순흥안씨의 정려각. 효열부 안씨의 본관은 순흥(順興)이고 안정록(安莛祿)의 딸로, 1834년(순조 34)에 태어났다. 안동권씨 권석기와 결혼하였다. 시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바느질과 길쌈을 하면서 봉양을 극진히 하였다. 24살 되던 해 남편을 잃게 되자 지아비를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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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심대의 정려각. 심대의 본관은 청송으로 자는 공망(公望)이며, 호는 서돈(西敦),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1546년(명종 1)에 태어났으며 1572년(선조 5)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경기감사로 어가를 수행하여 공을 세웠다. 호성(扈聖) 공신에 녹훈되고 영의정에 증직되었으며, 청원부원군(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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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안기명의 정려각. 안기명의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함안군수 안익의 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이 병환으로 눕자 한겨울에도 한강까지 나아가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공양하였으며, 한밤중에 산중에 올라가 기도할 때는 호랑이가 감복하여 보호하였다고 한다. 부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묘소를 보살피자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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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안희중의 정려각. 안희중의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1728년(영조 4)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는데, 그가 15살 되던 해에 폭우로 사당이 무너져 내리자 들보를 받쳐 들어 신주를 온전히 옮길 수 있도록 하였다. 1750년(영조 26) 조부가 병환에 들자 반 년 동안 간병하였다. 어느 날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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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시대 국립 교육 기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양지향교는 1523년(중종 18)에 초창되었다고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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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연안이씨의 정려각. 연안이씨는 이형원의 딸로, 16살 때 박래영과 결혼하였는데, 시어머니는 이미 작고하였고, 시아버지는 병환으로 문밖 출입도 못하고 있었다.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7년여 동안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시아버지는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남편 박래영도 병약하여 24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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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정몽주 묘소의 재실. 영모재는 포은 정몽주의 후손들이 묘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한 건물이다. 이러한 용도의 건물을 재실(齋室), 또는 재사(齋舍)라고 하는데,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飮福)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각종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이 주요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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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오명항의 정문. 오명항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영모암(永慕菴)이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으나 문무겸전의 지략이 뛰어났다.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 여씨를 지성으로 모셨다. 모친상을 당하자 마치 어린아이처럼 애통해 하고 3년 동안 묘소를 보살피면서 죽 이외에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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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광조를 모신 서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1519년 기묘사화 때 죽음을 당하였다. 심곡서원은 1650년(효종 원년)에 ‘심곡(深谷)’이라는 사액현판과 토지와 노비 등을 임금에게 하사받았다. 흥선대원군이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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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전통 가옥. ‘용인 전 음애이자 고택(龍仁 傳 陰崖李耔古宅)’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알려진 음애공 이자(李耔)가 살던 집이라고 전하는 전통가옥이다. 고택 좌측에는 근래에 건립된 ‘효문의공부조지묘(孝文懿公不祧之廟)’의 현판이 걸린 사당이 동향하여 있고, 고택에서 동북쪽으로 도로를 건너 지곡동 달래울 신갈승마클럽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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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1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용인 이주국장군 고택(龍仁 李柱國 將軍 古宅)’은 안채의 망와(望瓦)에, “건륭 18년 계유일 조작(乾隆十八年癸酉日 造作)”이란 기록이 있어 1753년(영조 29)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의 이주국 장군 묘소에 못 미처 소로에 인접하여 남서향으로 위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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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 용인향교에 있는 하마비. 하마비란 궁궐, 사묘, 능원, 서원, 향교 등과 같이 행동거지를 정숙하고 단정하게 해야 할 경역 입구에 세워 놓았던 비이다. 원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향교 입구에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향교 관리사 경내로 옮겨 놓았다. 용인향교 하마비는 용인향교 입구에 세워 누구든지 향교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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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오윤겸의 재실. 1636년(인조 14)에 오윤겸이 별세하자 모현촌에서 장사를 지내고 묘소 아래에 재실과 사당을 지었다. 재실은 후손들이 조상의 묘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한 건물이다. 이러한 용도의 건물을 재실(齋室), 또는 재사(齋舍)라고 하는데,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飮福)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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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 유복립의 정려각. 유복립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이다. 1558년(명종 13)에 출생하여, 종부시주부(宗簿侍主簿)로 관도에 올랐다. 유복립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의병장 김천일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 1719년(숙종 45) 대종백(大宗伯) 민진후(閔鎭厚)의 주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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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청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신 윤섬과 그 손자 윤계의 정려문. 윤섬의 본관은 남원이고, 호는 과재(果齋)이다. 1583년(선조 16)에 문과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을 거쳤으며, 1587년(선조 20)에 조선 왕실의 세계(世系)가 명나라에서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은 종계변무(宗系辨誣) 사건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공을 세워 수기광국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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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이계복의 정려각. 이계복의 자는 계운(啓運)으로, 어려서부터 오직 어버이 섬기는 것을 일로 삼아 몸소 살펴 불편함이 없게 하였다. 부친이 학질에 걸려 위독하던 중, 사람 고기를 먹어야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자신의 다리 살점을 베어 부친의 병환을 고쳤다고 전한다. 백암면을 지나는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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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상산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규헌의 정려각. 이규헌[1669~1731]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1669년에 좌승지 이진하(李鎭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균진사를 거쳐 37세에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이 해에 부친이 병환으로 눕게 되자, 장남의 도리를 저버릴 수 없다 하여 형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관직을 사퇴한 뒤 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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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독정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찬조의 정려각. 이찬조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1584년에 용인에서 태어났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별천선전관(別薦宣傳官)이 되어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송하였다. 1636년에는 의병을 이끌고 지금의 성남시 세곡동 일원에서 청군과 맞서 싸우다 생포되었다. 청태종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항복하지 않고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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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희동의 정려문. 이희동(李喜東)[1663~?]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필만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모친이 위독하여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간병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이자 엄동에 밤마다 목욕재계하고 산천에 기도하였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백 일째 되던 날 밤 꿈에 신선이 나타나서 묘방을 일러 주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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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조선 말기 정한영의 효자비. 정한영(鄭漢永)은 정몽주의 19대손인 정구현(鄭九鉉)의 아들로, 조선 말기인 1862년에 태어났다. 벼슬은 종사량(從仕良)으로 감리서주사를 지냈다. 성품이 바르고 총명하였으며, 평소 정성을 다해 부모를 섬기어 인근에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정한영은 평소 부모를 정성껏 섬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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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조사의 사당. 조사(趙師)의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가천재(嘉川齋)로 태조의 생질이다. 태조가 조선 개국 후 중추부사를 제수하였으나, 고려 공양왕 밑에서 벼슬한 일을 내세워 조정에 나아가지 않고 양양(襄陽)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죽기 전에 후손에게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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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조연의 사당. 조연(趙涓)[1374~1429]은 세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1386년(고려 우왕 12)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392년(고려 공양왕 4)에 봉상대부 공조정랑에 올랐다. 조선 태조 즉위 후 별운검이 되고, 1409년(조선 태종 9)에 길주도안무찰리사 겸 길주목사가 되어 변방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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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원. 충렬서원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동방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중기인 1576년(선조 9)에 지은 서원 건물이다. 그후 마을 이름도 충신을 사모한다고 해서 ‘모현면[현 모현읍]’으로, 정몽주의 묘소와 서원이 있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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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의병장 유복립의 재실. 충모재는 조선 중기의 의병장인 묵계(墨溪) 유복립(柳復立)[1558~1593]의 제향을 받드는 재실이다. 유복립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싸움에서 의병장 김천일 등과 순절하여 후에 충신정려문이 내려졌다. 정려문은 송문리 동구의 산자락에 세워져 있다. 양지면 송문리를 지나는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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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북리 당하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경종지의 사당. 본관이 청주(淸州)인 경종지(慶宗智)는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 충근정량갈성효절협책호성공신(忠勤貞亮竭誠效節協策扈聖功臣) 3등으로 녹선되고 공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양성군으로 봉해졌다. 당시 부인 순흥안씨에게는 정경부인의 첩지가 내려졌다. 원래 사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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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 중대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한구의 정려각. 한구(韓逑)[1376~1447]의 본관은 광주로, 다섯 살 때 부친을 여의고 장성하여 모친상을 당하였다. 이에 두 분을 합장하고 광주의 여막에서 육 년간 상복을 벗지 않고 몸소 상식을 올렸으며, 혹 사람과 더불어 말할 때라도 이가 드러나지 않았고, 상기를 마칠 때까지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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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서원. 이재(李縡)[1680~1746]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천리 노곡(노루실)에 있었던 서원이다.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노론의 중신이자 학자로 활동하던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는 만년에 고향인 경기도 용인의 선영 아래로 퇴거하여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짓고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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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최유경의 사당.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효성과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이름이 높아 태종 때에는 청백리로 녹선되고, 세종 때에는 효자정문이 내려졌다. 이곳에 소재한 사우(祠宇)를 효렴사(孝廉祠)라 한 것은 그의 청렴한 기상과 효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방도 393호선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