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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에 있는 전자통신용 와이어, 케이블 전문 제조업체. 1985년 7월 1일 김민수가 설립하였으며, 1988년 7월에 와이어, 케이블, 와이어 작업설비(wire harness)에 대한 안전 인증 시험 기관(UL: Underwriters Laboratories)의 인증을 획득하였다. 1990년에는 미국 AT&T의 벤더(vendor)와 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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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의 사후인 1823년(순조 32) 예조에서 각 식년(式年)에 서울과 외방에서 충(忠)·효(孝)·열(烈)에 대해 장계(狀啓)로 의정부에 보고한 것을 등급을 나누어 시행한 일이 있었다. 이때 그는 서울에 사는 고(故) 첨지 최상유, 개성부의 고(故) 사인(士人)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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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정옥형과 아들 정응두의 신도비. 정옥형은 1513년(중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검열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대사간,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 데 힘썼으며, 당시 김안로의 권세가 높아지자 조정을 떠나 외지를 돌며 민심을 두루 살피기도 하였다. 1544년(중종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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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근도테크놀러지의 옥외광고물 제작 공장. 1981년 1월 4일에 근도산업을 설립하였으며, 1985년 6월에는 종합 사인 전시 사업장을 강남구 청담동에 개장하였다. 1985년 9월에는 수입품 대체를 위하여 내부용 시트를 개발하여 시판하였다. 1989년 4월에는 (주)근도트레이딩으로 법인 전환을 하였으며, 엄영철이 대표이사로 취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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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에 있는 산. 금박산은 일명 오봉산(五峯山)이라고도 하는데, 『양지현읍지』에는 ‘주동면 추계리에 있는데, 높이가 4리요, 주위가 25리이다’ 라고 되어 있다. 또한『양지현읍지』에는 ‘고서면 봉림산 아래 주곡리에서 북쪽으로 50리 떨어져 있는 주동면의 금박산 아래로 읍을 옮기고 읍호를 추계(秋溪)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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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로 용인에서 성장한 인물. 본관은 김해. 증조부는 김진후(金震厚)[비오, 1738~1814], 할아버지는 김택현(金澤鉉), 아버지는 김제준(金濟俊)[이냐시오, 1796~1839]이고 어머니는 장흥고씨 우르슬라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김재복(金再福), 족보에 올려진 이름은 김지식(金芝植), 어른이 되었을 때의 이름은 김대건(金大建), 세례명은 안드레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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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김덕붕의 선정비. 1571년(선조 4) 양지현감에 부임하여 1576년(선조 9)까지 재임한 김덕붕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의 용동중학교 정문 못 미쳐 동아일레콤 담장에 남향(南向)으로 서 있다. 비신과 이수가 일석(一石)으로, 비좌는 임시로 마련하여 비신을 고정하고 있다. 비의 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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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본관은 온양. 아버지는 정돈지(鄭敦之)이고, 남편은 서흥김씨(瑞興金氏) 통덕랑 김배(金培)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이천(利川)의 거마산으로 피난하였으나 청군(淸軍)이 추격하여 왔다. 이에 욕을 면키 어렵고 그 몸이 더렵혀질까 두려워 두 딸과 함께 연못으로 투신하여 정절을 지켰다. 지금도 이천 자래동에 세 무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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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사근은 농사를 짓다가 1907년 임오교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수백 명의 의병들과 함께 경기도 죽산·광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초에는 정주원 의병부대에 들어가 경기도 용인·죽산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주원 의병부대가 당진 주재소를 습격하는 반일 항전을 일으켰을 때 여본구리 부근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치열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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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용인 출신의 효자. 김상술은 편모 슬하에서 몹시 가난하게 살았으나 효행이 특출하여 늘 노모에게 고깃국을 끓여드리기 위하여 나무와 숯을 구워 용인 장에 내다 팔았다. 대대리에서 용인 장까지는 왕복 30여리가 훨씬 넘었는데, 어느 날 숯을 지고 장에 나와 늦도록 팔지 못하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 겨우 팔았다. 김상술은 서둘러서 고기 한 근을 사 가지고 지게 꼭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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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조선시대 김상술의 효자비. 김상술의 노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온 마을 사람들이 본받게 하고자 세워진 비이다. 양지면 대대리 마을 입구 도로변에 다른 비들과 함께 세워져 있다. 비좌와 월두형의 비신을 갖추고 있는 효자비이다. 비신 앞면에 “효자김상술지비(孝子金相述之碑)”라 새겨져 있다. 원래의 비는 도로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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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용인 출신의 효자. 김상익은 향리에서 글방을 차려 훈장을 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좌수의 직책을 맡아 향치에 힘썼다. 평소 효심이 두터웠기로 마을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던 중 부친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자 몸소 탕약을 끓여 간병하였고, 천수를 다하자 멸성지정(滅性之情)으로 애도하였다. 예에 어긋남이 없이 장례를 마친 후 3년의 거상 중에 하루도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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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상익의 효자비. 양지면 제일리 마을 입구 도로변 오른쪽에 남서향(南西向)으로 세워져 있다. 김상익의 부친에 대한 지극한 효행과 언행을 마을 사람들이 사표로 삼을 수 있도록 마을 입구에 세워졌다. 시멘트 기단 위에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신은 백색 대리석제에 황색 운모가 혼입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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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김호(金灝)이다.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고, 1696년(숙종 22)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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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도원(道源).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거주하였다. 1759년(영조 35) 정시(庭試)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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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염을 시조로 하고 허구년을 파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성(姓)은 원칙적으로 아버지를 따른다. 그러나 유독 어머니의 성을 따라 가문을 창업하고 2천여 년을 이어온 성씨가 있다. 바로 허씨(許氏)다. 김해(金海)·하양(河陽)·양천(陽川)·태인(泰仁) 네 본관의 허씨들의 시조 어머니는 인도 아유타국 출신의 김수로왕의 비 허황옥(許黃玉)이다. 허 황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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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서 여자아이들이 나물을 캐면서 부르던 유희요. 「나물캐는 노래」는 십대의 여자아이들이 들이나 산에서 나물을 캐면서 부르는 유희요의 하나이다. 용인 지역에서는 다양한 가락과 사설로 불리는 「나물캐는 노래」가 불렸는데, 양지면 제일리에서 불리던 「나물캐는 노래」는 4·3조의 경쾌한 가락에 나물 이름들을 열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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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남계술의 선정비. 1902년(고종 39) 3월 8일 양지군수로 부임하여 1903년(고종 40) 2월 4일까지 재임한 남계술의 선정을 기념하여 재임 기간 중인 1902년에 건립되었다. 비좌와 월두형의 비신을 갖추고 있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143㎝로, 비좌 높이는 23㎝, 너비 64㎝, 두께 46㎝이고, 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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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곡리는 양지면 남부에 위치하며, 면소재지인 양지리와 연접하며, 골프장인 양지파인골프클럽이 있다. 1914년에 남촌(南村)과 용곡리(龍谷里)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남곡리라 하였다. 남촌은 읍내의 남쪽마을에서, 용곡은 마을 뒷산이 뱀의 혈이어서 뱀의 실이라 하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뱀보다 용이 좋다 하여 용의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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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남곡리 은니골 골짜기 속에 집 터를 닦기 위해 평탄 작업을 한 곳에서 발견된 가마 터로 정확한 유적의 위치와 범위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발굴조사는 되지 않은 상태이다. 남곡리 요지에서 백자편·요도구·가마벽편 등이 발견되고 있다. 백자는 대접과 접시 종류가 대부분이며 문양은 전혀 없다. 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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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이석지의 재실. 초창은 조선 전기에 이루어졌다고 하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서 다시 세웠다. 종도리 장여에 기록된 상량문을 보면 “단기사천이백구십년정유오월십사일입주동월십팔일무오오시상량간좌(檀紀四千二百九十年丁酉五月十四日立柱仝月十八日戊午午時上樑艮坐)”라고 되어 있어 1957년에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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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김황이 이석지의 재사인 남곡재의 중건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남곡재 중건기(南谷齋 重建記)」는 이석지의 후손인 이병운(李柄運)의 부탁으로 영남의 대학자 김황(金榥)[1896~1978]이 남곡재의 중건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記文)이다. 이석지(李釋之)는 고려 후기 이성계 일파가 새로운 왕조를 열고자 했을 때 적극 반대하며, 여러 학사들과 두문동에 들어가 불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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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었던 일본인 농장. 단파농장은 토지 개간 및 일반 농업 경영, 조림(造林) 및 토지의 매매, 대차(貸借), 농산물 가공 판매 등과 관련된 사업을 하였던 일본인 농장이다. 1923년 5월 3일 단파직태랑(丹波直太郞)이 자본금 70,000원으로 설립한 합자 회사로,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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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대리는 양지면 북쪽 이천시 도척면 추곡리와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용화산 밑의 큰 터라는 뜻으로, ‘한터’ 혹은 ‘대대(大垈)’라 하였다. 본래 양지군 주북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무장동·사기동을 병합하여 대대리라 하고 용인군 내사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내사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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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로 행해지는 달집 태우기 놀이. 대대리 동홰놀이는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는 산신제→동홰놀이→줄다리기→뒤풀이의 순서로 이루어지는 대동제 놀이의 하나이다. 동홰는 “온 마을을 비출 수 있는 규모의 횃불”이란 뜻으로, 일반적으로 정월 14일에서 16일 사이에서 길일을 택하여, 달이 뜰 때 주민 모두가 달맞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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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2리 아래한터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산제사, 또는 산치성이라고 부르는 ‘대대리 아래한터 산신제’는 호랑이와 산신령이 마을을 수호해 준다고 믿어서 수백 년 전부터 지내 온 마을 제사였다. 1970년대까지는 격년제로 9월 그믐이나 10월 1일 중에 택일하여 지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제당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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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대대리 요지는 세 곳에 흩어져 있어, 대대리 요지1·대대리 요지2·대대리 요지3으로 구분되는데, 대대리 요지1은 대대리 사기점을 넘어 광주시 도척면으로 가는 지방도 329호선의 좌측 편 밭에 위치한다. 대대리 요지2는 대대리 요지1에서 광주시 도척면 방향으로 250m 정도 더 가서 도로 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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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1리 한터마을에 있는 서낭당. 한터마을은 윗한터와 아래한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대대1리는 윗한터, 대대2리는 아래한터라고 불린다. 윗한터인 대대1리에는 서낭당이 세 군데나 있다. 말티고개에 있는 서낭당 두 곳과, 마을 입구 비석거리에 있는 ‘큰서낭댕이’가 그곳이다. 말티고개에 있는 두 곳의 서낭당은 주로 개인 치성을 드릴 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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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도깨비불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는 소근곡에 있는 밤나무에서 출현한 도깨비불을 보고 놀란 구연자의 어머니가 경험한 이야기라고 한다. 2005년에 채록되어 『경기민속지』에 수록되었다. 구연자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작은아버지 집을 가려면 소근곡을 지나야 했다. 어머니가 아이(구연자)를 업고 소근곡에 있는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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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1983년 양순이 권사의 사랑방에서 첫 예배를 시작으로 도창교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이영순 전도사와 최신식 목사를 거처 1990년 1월부터 부임하여 2011년 현재까지 김창수 목사가 시무 중이다. 도창교회는 매일 아침 5시 새벽기도와 수요일 오후 7시 30분, 일요일 오전 11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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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전원 시스템 제조업체. Converter, BMP, RMS 등 전기·전자 제품의 파워 관련 전원 시스템 기기를 생산·판매하는 기업이다. 고객과 이해 관계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전원 공급 장치 기술의 개발을 통하여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설립하였다. 1976년 12월 동아전기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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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서 동촌마을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4년에 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1-9에 채록되어 있다. 『용인군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한 편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한 원님이 양지면 양지리에 도임하면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산골짜기로 귀양을 보내나.” 하고 울면서 들어왔다고 한다. 왜 울었느냐면, 쉬웅목이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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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에 있는 반도체 메모리 관련 전문 제조업체. 1995년 9월 7일 (주)메모리앤테스팅으로 설립되었다. 1997년 12월 용인에 사옥을 신축하고 본사를 이전하였으며, 1998년 10월 불량 메모리 칩의 모듈화 방법 특허를 취득하게 된다. 2001년 5월 경기도 중소기업청 벤처기업 지정을 받았으며, 2001년 11월에는 공장을 증축, 확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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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서 모를 찌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 「모찌는 소리」는 모심기 이전에 모를 찌는 과정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모를 찌는 일은 대개 한두 사람이 하는데, 한편에서는 모를 심기 때문에 노래를 부를 만큼 한가하지 않아서, 「모찌는 소리」의 경우 양지면 제일리에서 채록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만큼 용인 지역에서는 구전되는 자료가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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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강상죄인(綱常罪人). 1680년(숙종 6) 수원부 양지현(현재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주인을 죽인 죄인으로서 삼성(三省)에서 추국하자 스스로 시인하고 사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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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초명은 박승업(朴承業),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추탄(秋灘). 박은(朴誾)의 증손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장령·사간원정언을 지냈다. 1599년 대사헌 홍여순(洪汝諄)을 탄핵·파면시켰으나, 뒤에 그가 다시 기용되자 사헌부집의 김신국(金藎國), 사간원사간 송일(宋馹)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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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개신교 순교자. 염광(塩光) 박관준은 1875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출생하였다. 1900년경 개신교 신자가 되었으며, 한방 의술을 배워 1917년 조선의생(朝鮮醫生: 지금의 의사) 면허를 받고 개업하여 193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십자의원을 운영하였다. 개천교회(价川敎會) 장로로 재임하던 중 1935년경부터 일제가 개신교 신자들에게도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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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박관준의 순교를 기리는 비. 박관준 순교추모비는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서 기독교 전파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인들을 흠모하며, 신앙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길이 전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 산84-1[추계로 235]에 있는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 세워져 있다. 와비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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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열(仲說), 호는 읍취헌(挹翠軒). 아버지는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박담손(朴聃孫)이며, 어머니는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이이(李苡)의 따님이다. 부인은 대제학 신용개(申用漑)의 딸이고, 맏아들은 박인량(朴寅亮)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하여 15세에 이르러서는 문장에 능통하였다. 당시 대제학(大提學)이었던 신용개(申用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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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창근의 선정비. 1873년(고종 10) 윤6월 양지현감으로 부임하여 1875년(고종 12) 7월 진위현감으로 전출한 박창근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양지면사무소 안의 주차장에 청사를 바라보고 좌측에 동향으로 총 7기의 비가 있는데, 그중 여섯 번째 비이다. 비좌와 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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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건립된 6·25전쟁 반공희생자 위령탑. 1950년 9월 21일 밤 9시 15분경 한국전쟁 중에 전세가 불리해진 북한군은 북으로 복귀하면서 용인·광주·수원·오산·남양 등지의 반공인사 187명을 압송하였다. 북한군은 용인에 이르자 구덩이를 파게 한 뒤 압송하던 자들을 학살·매몰하였다. 그 가운데에서 이광섭·박용보 두 사람이 극적으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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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 독조봉 동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여주군 흥천면 복대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복하천의 발원지가 되고 있는 용인시 양지면은 남북고동서저(南北高東西低) 지형 형태에다 주위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성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를 동·서류하는 하천들에 의해서 하곡지가 발달되어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유명한 “이천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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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정수리에서 부녀자들이 빨래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 「빨래 노래」는 부녀자들이 물가에 앉아서 빨래를 하며 부르던 노래이다. 용인 지역에서 전해 오는 「시집살이 노래1」과 같이 고부간의 갈등과 처첩간의 문제를 사설로 늘어놓고 있다. 1979년 처인구 양지면 정수리에 사는 임옥순(여, 45)이 부른 것을 채록하여, 1983년에 출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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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 김대건 신부 관련 성지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동상이다. 1827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온 골배마실과 사제 서품을 받고 처음으로 사목 활동을 펼쳤던 은이성지를 기념하기 위해 1947년 이후 여러 가지 작업이 진행되었다. 1947년에는 은이 벌터에 김대건 신부 기념각을 건립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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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었던 돌 전문 사립 박물관. 2000년 7월 1일 옛 돌 조각을 보면서 선인의 숨결을 느끼고, 역사 체험을 통하여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지역 박물관으로서 지역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개발·발전시키고자 설립하였다. 설립자 천신일이 지난 20여 년간 각 지역에 산재한 석조물 1만여 점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13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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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송명천은 양지현(현재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여 주변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경기관찰사가 조정에 아뢰어 교생(校生)으로 있을 때인 1822년(순조 22) 11월 5일에 조세와 부역을 면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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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문리는 양지리와 마평동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부동과 경계를 이룬다. 1914년에 송동(松洞)과 정문(旌門)의 글자를 하나씩 따서 생겨난 이름이다. 송문리는 옛 양지현 주서면 지역으로 전주유씨 묵계공파와 야성송씨가 세거해온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반정리(盤亭里)와 정문리 송동의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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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 반정마을 주민들이 산제(山祭)를 지내기 위해 결성한 계. 송문리 반정마을 산제계는 매년 음력 9월 13일에 열린다. 이때 해당 연도의 제향 준비와 제관을 정하고 제향 날짜를 결정하는데, 생기복덕을 가려 길일을 택하고 산신하강일을 정하는데, 가능한 음력 시월 초순이나 중순으로 잡는다. 양지면 송문리 반정마을은 전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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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1977년 이상표 장로와 박양수 전도사가 10여 명의 신도와 함께 개척하였으며, 개척 당시 가정집에서 예배를 하였다. 1978년에 건축면적 66㎡ 정도의 교회 건물을 신축하였으며, 1997년에는 건축면적 231㎡ 규모의 교회 건물을 신축하였다. 송문제일교회는 매일 새벽기도와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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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송지렴의 정문(旌門) 및 정려각. 송지렴의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희주(希周)로 송표의 아들이다. 1769년(영조 45)에 양지현에서 태어났다. 가업인 의술을 이어받아 명의로 이름을 남겼다. 효성이 지극한 것을 사림이 상소하여 효자정문이 내려지고 송문리에 정려각을 세웠다. 정려각은 정면 3칸,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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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인시 처인구의 동쪽에 위치하며 이천시 및 광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식금리는 1914년에 생긴 이름으로, 식금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을인 식송(植松)과 금곡(金谷)에서 한 글자씩 따서 식금리라고 하였다. 본래 양지군 주동면(朱東面)에 속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용인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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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고분군.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실시한 용인 지역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는 해발 200~300m 정도 되는 산으로 사면이 둘러싸인 작은 분지이다. 일대에 10여 기의 무덤이 분포했는데, 군부대의 연병장을 가로질러 금박산으로 올라가면 산기슭 중턱의 남쪽 경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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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골프장.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을 재창조한다는 기본 철학 아래 조성된 36홀(파144)의 빼어난 골프 코스를 가진 명문 골프 클럽이다. 코스 설계는 200여 개의 빼어난 세계적인 골프 코스를 설계했던 미국의 로널드 프레임(Ronald Fream)이 맡았다. 로널드 프레임이 자신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손꼽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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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비평가 및 노동 운동가. 안병춘은 1910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에서 6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홀어머니를 따라 외가가 있는 서울 영등포로 올라갔다. 6·25 전쟁 직후 행방 불명이 되어 이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 안병춘은 늦은 나이에 영등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세가 되던 1928년 3월에 졸업한 후 양조장에서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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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문약(文若). 안희묵(安羲黙)[1795~1881]은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다. 안희묵은 어려서부터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에 열중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에 어긋남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할 때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들게 하는 효행을 보였으며, 상을 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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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양지리에 선정된 갱생지도부락.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 말 농업 공황으로 농촌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일환으로 1930년대 들어 농촌진흥운동을 실시하였으며, 농촌경제갱생계획에 따라 갱생지도부락을 선정하였다. 관제기구로 농촌진흥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각 읍면별로 30~40호 단위의 갱생지도부락을 선정하여 5년 기한의 농가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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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맹영을 시조로 하고 송성립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야성(冶城)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冶爐)의 별칭이다. 야성송씨의 시조 송맹영(宋孟英)은 고려 목종 때 사람으로 간의대부와 총부의랑을 역임했으며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받들고 야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시조 송맹영의 아들 송창(宋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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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할아버지는 양우(梁祐), 아버지는 양석륭(梁碩隆)이다. 부인은 전주부윤 권담(權湛)의 딸이고,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가 그의 아들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다. 의정부우찬성 남원부원군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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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 터. 양지관아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로 1899년 당시 양지군수 신용균(申容均)이 만들어 중앙에 올린 『양지군읍지』가 있다. 『양지군읍지』공해조(公廨條)에 따르면 양지관아는 동헌(東軒)이 12칸, 내동헌(內東軒)이 29칸, 책실(冊室)이 4칸, 향장청(鄕長廳)이 4칸이었다. 또한 순교청(巡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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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지면의 소재지로 과거 양지현의 관아(官衙)가 있던 곳이다. 양지는 양지현(陽智縣)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양지는 본래 수주(水州)에 속해 있던 양랑촌부곡으로 1399년(정종 1)에 이를 고쳐서 현이 되면서 생긴 이름이다. 본래 양지현의 관아가 있던 지역으로, 양지현이 군으로 승격되었을 때 군청이 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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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양지리 유물산포지는 모두 다섯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양지리 유물산포지1에서 양지리 유물산포지5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양지리 유물산포지는 용인과 이천을 잇는 국도 43호선에 자리한 양지읍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유물산포지1은 진흥 6차맨션아파트 주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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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하는 행정면. 4개 면을 합하였다는 뜻으로 내사면이 되었다가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양지라는 고유지명으로 변경되었다. 본래 양지군 지역으로서 양지 읍내가 되므로 읍내면이라 하여 교동·암곡·서촌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동면의 삼매·공세·평촌 등 7개 리와 주북면의 정수·대대·계장 등 6개 리, 주서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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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양지면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1읍 4동 6면 중 양지면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양지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기존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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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용인문화원이 양지면의 실상과 문물을 기록으로 남긴 책. 읍면지의 간행은 전국에서 최초로 용인문화원이 시도하고 있는 사업으로, 사료와 지역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기록으로 정리코자 하여 추진하고 있는 향토지의 하나로써 『구성면지』·『수지읍지』에 이어 세 번째로 간행되었다. 양지면은 본래 조선시대에는 양지현의 관아가 있던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용인군과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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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소속 천주교회.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내의 용인제1지구에 소속된 천주교 성당으로 성당 내에 용인대리구가 있다. 인근에는 최초의 한국인 신부였던 김대건 신부의 성장지이자 활동지인 골배마실성지와 은이성지가 있다. 원래 모본당(母本堂)은 미리내성당인데, 1927년에 분가하여 9월 14일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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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우편, 체신, 금융 기관. 전국적인 우체국 망을 통하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민들에게 우편·택배·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1911년 7월 11일에 양지우편소를 열었으며, 1941년 1월 28일 양지우편국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49년 11월 22일 양지우체국으로 이름을 변경하였으며, 2006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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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1907년 3월 5일 조수겸의 집에서 박건식, 이경영, 오심덕, 오태희, 한주희, 정명호, 엄주희 등 10여 명이 모여 예배를 시작하였다. 이듬해 경기도 양지리 암곡마을 416번지에 10평 가량 되는 땅에 초가로 지은 교회당을 세웠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와 박해로 교회 문을 열 수 없었다.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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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어두니고개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유림동에서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양지천의 물줄기는 크게 세 곳에서 흘러나온다. 양지면 남곡리 어두니고개[446.8m]와 양지리 구렁고개 및 기남이고개 옆 363.2m 고지에서 발원하는 세 곳의 물줄기가 월곡에서 합류하여, 동류하면서 송문리, 유림동 고진에서 경안천에 유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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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민주적이고 바른 심성을 가진 어린이,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정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과 희망을 키우자’이다. 1908년 4월 1일 유장근에 의해 세워진 사립 추향학교를 그 기원으로 한다. 1911년 9월 1일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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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종합 휴양 시설. 1969년 8월 11일 용인컨트리구락부로 설립되었다. 1970년 6월 28일 18홀(서코스 3,095m, 남코스 2,855m)의 골프장을 개장하였고, 1974년 7월 야외 수영장을 개장하였다. 1982년 9홀(동코스 2,944m)을 추가 개장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스키장을 개장하였다. 1984년 12월 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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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시대 국립 교육 기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양지향교는 1523년(중종 18)에 초창되었다고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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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래 경기도 용인의 양지향교에서 행해지는 향례. 1523년(중종 18)에 초창된 양지향교의 향례는 현재 대성전(大成殿)에 공자(孔子)를 비롯한 25명의 선성(先聖)과 선현(先賢)들의 위패를 봉안하여 모시고 있다. 양지향교는 1697년(숙종 23)에 중수하고 1792(정조 16)년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그 뒤 1928년, 1967년에 중수하였고 1971년 명륜당을 복원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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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정조 4)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조선 후기인 1780년(정조 4) 수원부 양지현(현재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사는 문덕봉이 김덕희(金德希)와 함께 술에 취해 돌아오는 중에 비틀거리며 쓰러진 김덕희를 무릎으로 쳐서 죽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김덕희의 사인(死因)을 두고 고의인지 과실인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였다. 김덕희 사체에서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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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단묘(壇廟). 여단(厲壇)은 떠돌이 귀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거나, 지방의 부락(富樂)을 지켜주는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는 집 안에 터줏대감을 모셔두는 터주가리가 있듯이 군현 단위의 터줏대감 구실을 하는 지역 신을 모셔두고 제를 올리던 사당이다. 용인현의 경우 조선 서변면의 보수원에 있었고, 양지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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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양지현감·군수 7인의 송덕비군. 양지면사무소 안에 있는 7기의 송덕비는 원래 양지관아 입구 대로변에 세워져 있었다. 이후 도로 확장 공사 등으로 방치되었던 것을 1997년 양지면에서 예산을 확보하여 청사 내로 이전하게 되었다. 송덕비군은 형태상 7기의 비 모두 비좌에 비신 월두형이다. 각각의 비의 크기는 총 높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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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2년(중종 27) 김안국이 지은 양지현 동헌 중수 기문(記文). 『모재집(慕齋集)』에 전하는 작품으로, 권렴(權㻩)이 양지현(陽智縣)의 동헌(東軒)을 중수하고, 김안국(金安國)[1478~1543]에게 부탁하여 받은 기문이다. “양지는 작은 고을이다. 경기 안에 예속되어 공물이 많고 부역의 번거로움이 다른 도의 배나 된다. 땅이 좁고 사람이 적으며, 아전과 노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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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영동고속국도 진·출입로. 1973년 12월 31일 개통되었으며, 영동고속국도 인천 기점 60.8㎞ 지점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다. 한국도로공사 양지영업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입구 차로 3개 소, 출구 차로 4개소 등 모두 7개의 차로가 있다. 1일 평균 교통량은 2006년을 기준으로 입구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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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서 여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인시 양지면 평창리에 사는 윤정현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6년에 출간한 『용인시사』4에 수록하였다. 옛날 어떤 사람이 아들은 있는데 딸이 없어서 딸 하나 낳기를 소원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임신을 하고 딸을 낳게 되었다. 어렵게 얻은 딸이 참으로 예쁘고 귀해서 아들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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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여우 잡은 소금장수 이야기. 1984년에 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1-9에 실려 있다. 비슷한 이야기가 2000년에 출간한 『용인 중부지역의 구비전승』에는 「둔갑한 여우」라는 제목으로 채록되어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소금장수가 소금가마를 짊어지고 산 고개를 넘어가다가 개울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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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에서, 석천리에 있는 황새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5년에 출간한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채록 상황과 설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990년에 출간한 『용인군지』에는 황새가 아닌 뱀을 보고 전개되는 이야기가 채록되어 실려 있으며, 『용인 서부지역의 구비전승』에는 「이야기로 도둑을 쫓은 아주머니」란 제목으로 비슷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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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사립 중학교. 애국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 절약하는 사람, 창조하는 사람, 건강한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2년 2월 25일 학교법인 신생학원의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52년 4월 1일 신생중학교로 개교하면서 초대 안의훈 교장이 취임하였다. 1957년 12월 12일 용동중학교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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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용인시청에서 98호선을 따라 양지 방향으로 가다가 고림교를 지나면 숲원이마을이 있다. 지석묘는 이 곳의 백산수목원 안에 자리한 김해허씨 묘역에 위치한다. 주변 지세를 보면 고인돌은 주북천과 대대천이 합류하는 충적 대지의 편평한 평지에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295㎝, 너비 250㎝, 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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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 있는 청소년 수련 시설. 용인시 청소년수련원은 청소년의 건전한 정서 함양과 체력 향상을 실천하는 체험 활동 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용인시에서 건립하고, 용인시 시설관리공단이 위탁받아 운영하는 종합 수련 시설이다. 아름답게 펼쳐진 자연 환경 속에 다양한 수련 시설을 갖추고 청소년들이 일상의 교육에서 벗어나 대자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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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장. 본관 전주(全州). 자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이다. 할아버지는 부제학 유윤덕(柳潤德)이고, 생부(生父)는 유성(柳城), 양부는 참봉인 유지(柳墀)이다. 유복기(柳復起)와 유복립(柳復立) 형제는 외가에 맡겨져 외조부의 손에서 컸으며 외숙인 학봉 김성일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음보로 종부시주부(宗溥寺主簿)가 되었고, 1592년(선조 25)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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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 유복립의 정려각. 유복립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이다. 1558년(명종 13)에 출생하여, 종부시주부(宗簿侍主簿)로 관도에 올랐다. 유복립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의병장 김천일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 1719년(숙종 45) 대종백(大宗伯) 민진후(閔鎭厚)의 주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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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이재가 지은 임진왜란 의병장 유복립의 정려기.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유복립(柳復立)[1558~1593]에게 정려의 은전이 내려지자, 후손 유심(柳深)의 간청으로 이재(李縡)[1680~1746]가 지은 정려기(旌閭記)이다. 글씨는 이조참판 신만(申晩)이 썼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유복립 정려각 안에 현판으로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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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유무근(柳茂根)이다. 1874년(고종 11)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여 유학(幼學)으로서 1893년(고종 30)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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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풍(德豊). 자는 기지(起之). 증조부는 윤경복(尹景福), 외조부는 윤완(尹完), 조부는 윤춘령(尹春齡)이며, 아버지는 윤집(尹鏶), 부인은 이수길(李綏吉)의 딸이다. 1584년(선조 17)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627년(인조 5)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부사를 역임하였으며, 1635년(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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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던 여성 잠업 교육 기관. 1910년경 송병준(宋秉晙)[1858~1925]이 자신의 별장에서 농업 기술 및 잠업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수산장(授産場)을 설립·교육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경기도에서 잠업 보급을 위하여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 466번지에 도 직영 강습소를 개설하였다. 이 강습소를 일반인은 잠사강습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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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지. 은이[隱里]는 ‘숨겨진 동네’, 또는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이며, 천주교 박해 시기에 숨어 살던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이다. 은이는 소년 시절 김대건이 신앙을 익히고 사제성소의 꿈을 키웠던 곳이다. 당시 숨어살던 교우들은 은이에서 사기를 구어 생계를 유지하던 요지가 산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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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 음다라니마을에 있었던 서당. 1900년대 초 선비 풍서순(馮敍淳)[1874~1957]이 직접 경영하던 서당이다. 일반적인 서당은 강미를 받았으나 풍서순은 끼니가 어려운데도 끝까지 받지 않았고, 이에 학부형들은 감사의 표시로 나무를 해다 주거나 일손을 돕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학동은 보통 5~6명에 불과하였으며, 1~2명이 공부할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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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이익기(李翊奇)의 아들이다.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교리로 출사하였다. 이듬해에는 병조참의에 올랐고, 1884년 사간원 대사간으로 있던 중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조를 요청, 청군의 지원으로 개화당 정부를 타도하였다. 그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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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선명(善鳴).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만상(李萬相), 어머니는 예조판서 오준(吳竣)의 딸이다. 부인은 전라감사 홍주삼(洪柱三)의 딸이며, 아들은 송벽당(松檗堂) 이정신(李正臣)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여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정릉참봉(貞陵參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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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인에 은둔한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남곡(南谷).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낸 이송현(李松賢)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경덕재생(慶德齋生) 이흡(李洽)이며, 어머니는 영천윤씨(永川尹氏) 윤취(尹就)의 딸이다. 이석지(李釋之)는 이곡(李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341년(충혜왕 2)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함께 성균시(成均試)에 급제하여 진사(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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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완 대장과 장사 방울이 이야기. 이완(李浣)[1602~1674]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효종의 북벌정책을 보필하며 국방 체계와 군비, 병력 정비에 기여하였다. 한성부판윤과 공조판서, 형조판서, 수어사를 거쳐 우의정을 지냈다. 무신으로서 현달하였고, 야심찬 북벌정책을 추진했다는 특이한 성격으로 인하여 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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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양지현감을 역임한 문신. 이용신은 1724년(경종 4) 7월 양지현(현재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현감으로 부임하여 1728년(영조 4) 4월까지 역임하였다. 재임 기간에 아이들의 성과 이름을 초록(抄錄)해 두었다가 책(冊)을 만들었다. 그들이 장성하기를 기다렸다가 군액(軍額)에 충정(充定)하여 군영(軍營)에는 수효가 모자람이 없게 하고, 고을에서 백골(白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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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쌍계(雙溪).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는 고려 말기 판도판서(版圖判書)로 있다가 물러나 용인현에 은거하며 조선 건국의 혼란기를 벗어났던 이석지(李釋之)이다. 아버지는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낸 이안직(李安直)이고, 어머니는 문화류씨(文化柳氏)로 판의금(判義禁) 유호(柳滸)의 딸이다. 동생은 제주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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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낙향한 문신. 이종겸은 세종 대 문신으로 활동하다가 세조의 즉위에 따른 혼란과 화를 면하기 위해 형과 함께 문종 때 낙향하였다. 조부인 이석지(李釋之)가 은거했던 용인현 남곡(南谷)으로 내려가 효우당(孝友堂)을 짓고 산수를 읊는 등 한가로운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암곡(岩谷).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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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재원(載元), 호는 허주(虛舟). 아버지는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이시정(李時程)이다. 이천기는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서 일찍부터 학문을 닦았고 예의범절에 밝았다. 1653년(인조 13)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별과로 급제하여 승지(承旨)·한림(翰林)·삼사이랑(三司吏郞)을 역임하였고, 벼슬은 감사(監司)에서 그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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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덕승(德升). 호조참판증영의정(戶曹參判贈領議政) 이정신(李正臣)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전주유씨(全州柳氏)이다. 이현보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1723년(경종 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였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730년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승지(承旨)·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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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 있는 구한말 의병장 임경재를 기리는 동상. 농상공부 주서였던 임경재는 스러져가는 정국을 개탄하며 1907(순종 1) 7월에 이천군 신면 이근풍(李根豊)의 집에서 주창용, 신규희, 조상현 등과 의병으로 나설 것을 결의하고 의병대를 편제하였다. 좌익장이 된 임경재는 용인, 이천, 광주, 죽산 등지를 전전하면서 혁혁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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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용인 지역의 항일의병장. 대한제국 말기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각지에서 의병이 벌떼처럼 일어났는데 용인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3대 독립운동가문을 배출 했을 만큼 용인 지역은 항일투쟁의 선봉에 있었는데, 옥여 임경재 의병장도 대표적인 한일의병의 선구자이다. 항일의병으로 양지군 주동면 평촌동[지금의 양지면 평창리]에 거주하였다. 본명은 경재(景宰), 대대로 무관장(武官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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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었던 양잠업 교육 기관. 누에 기르는 법을 교육하여 농촌 소득 증대를 교육목표로 삼았다. 송병준(宋秉晙)[1858~1925]이 자신의 별장에서 ‘수산장’이라 이름 짓고 잠업 교육을 하다 경기도 지정 잠업 강습소로 변경하여 1915년 양지리에 잠사강습소를 설립하였다. 1930년 잠사강습소가 다른 곳으로 이전함에 따라 편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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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정수산 아래 위치해 정수 또는 증세라고 하였으며, 또한 예로부터 물이 맑다하여 정수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제주고씨가 처음 입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중심이 되는 선내골에 주민들이 23호 정도 밀집되어 있고 가장 처음 정착한 곳이다. 본래 양지현 주북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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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정수리와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에 걸쳐 있는 산. 정수리를 비롯하여 산의 북사면 유수는 도척저수지와 유정천·노곡천·곤지암천을 거쳐 경안천으로 합류하고, 서사면의 유수는 주북천을 거쳐 경안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산의 곳곳에는 낙엽송과 밤나무 조림지가 조성되어 있다. 남쪽에는 용화사를 비롯하여 아시아나컨트리클럽이 있고, 동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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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가중(嘉仲), 호는 월봉(月峰). 할아버지는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이고, 아버지는 병조참판 정수강(丁壽岡)이다. 어머니는 지평(持平) 김언신(金彦辛)의 딸이고, 부인은 김수연(金壽延)의 딸이다. 아들은 정응두(丁應斗)이다. 정옥형(丁玉亨)[1486~1549]은 1513년(중종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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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압해(押海)[현재의 전라남도 나주]. 자는 추경(樞卿). 아버지는 병조판서 정옥형(丁玉亨)이고, 어머니는 김언신(金彦辛)의 딸이다. 1521년(중종 1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34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시강원설서를 거쳐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저작·부수찬·교리·응교를 차례로 역임하고 이조좌랑·정랑·사헌부지평·장령·시강원보덕·사간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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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자는 우문(遇文). 아버지는 정지대(丁志大)이다. 정재위는 효행으로 칭송을 받았으며, 자손을 엄격히 훈도하여 효행의 가통을 세운 인물이다.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추운 겨울에 얼음을 깨고 물속에 들어가 고기를 잡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약초를 캐는 등 정성을 다하였으며, 아침저녁으로 자신의 목숨으로 아버지를 대신하기를 기도하였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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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여주 영릉 참배길에 나선 어가가 지날 때 비가 오다가 이곳에 이르자 날이 활짝 개었다고 하여 개일 ‘제(霽)’자와 날 ‘일(日)’자를 붙여 제일리라 하였다고 전한다. 기록에 의하면 150여 년 전까지 이곳에 개천장(介川場)이 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는 음을 따고, ‘천’은 내(나리)에서 온 것으로 추측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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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백암 방향으로 지나가는 국도 17호선 옛 길을 따라가면 양지 제일리로 들어가는 마을 도로 입구에 ‘김상익 효자비’가 나타난다. 이 도로를 따라 300m 더 진행하면 해발 165m의 낮은 구릉에 이르는데, 유적은 이 구릉의 남사면 일대에 자리한다. 주로 빗살무늬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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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제일리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제일리 유물산포지1, 제일리 유물산포지2로 구분하여 부른다. 제일리 유물산포지1은 용인과 이천을 잇는 국도 42호선상에 있는 미수고개의 남쪽 나지막한 잔구성 구릉 일대에 있다. 서쪽으로는 국도 17호선이 지나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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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설립되었던 사립 강습소. 일제강점기에 양지면 제일리·추계리 지역 아이들이 양지보통학교로 통학하기 힘들자 이곳 유지들이 힘을 모으고 이수영이 부지를 기부하여 설립한 사립 초등교육 기관이다. 이수영은 학창 시절 방학에 고향에 와서 문맹 퇴치 활동을 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 마을에 강습소를 만들어 운영하였다. 나중에 제자들이 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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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된 어린이, 기초와 기본이 튼튼한 어린이, 꾸준히 노력하고 탐구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큰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0년 4월 1일 제일학원이 개설되었고 1946년 10월 양지국민학교 제일분교장이 설립되었다. 1947년 12월 2일 제일국민학교로 개교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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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반란인. 1623년(인조 원년)에 인조반정으로 우부승지에서 파직되어 제천에 유배되어 있던 유효립(柳孝立)은 사람들을 모아 광해군을 상왕(上王)으로 삼고,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도모하였다. 조헌립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출신으로 이 역모에 가담하였다. 하지만 거사 하루 전날, 이 사실을 알게 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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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양지현 주북면 치소가 있던 곳이어서 주북리가 되었다. 본래 양지군 주북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계장리·임원리·박성동·갈현리를 병합하여 용인시 내사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8월 15일 내사면이 양지면으로 개칭되고, 1996년 3월 1일 도농복합으로 용인군이 용인시로 승격,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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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 배실고개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대대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주북천은 양지면 대대리의 말티고개에서 발원하여 남서류하는 대대천(大垈川)의 한 지천이다. 주북리 배실고개 해발 250m 고지에서 발원하여 배실마을, 박성마을을 지나 숲원이마을 남단에서 대대천에 유입되는 수지상 하천이다. 주북천은 박성 북쪽 계곡과 남쪽 고래실에서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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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었던 사립 대학. 농촌 지도자로서 인격을 도야하고 농업 기술을 연마시켜 농업 진흥을 위한 인재 양성을 설립 목적으로 하였다. ‘친자연·친향토·친근로’를 교훈으로 하였다. 1948년 8월 농촌 운동가 주세중이 문교부의 「특별교육령」에 의해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에 2년제 초급 대학인 중앙농림대학을 설립하였다. 초대 학장으로 안재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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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신학대학원. 교육 이념은 청교도적 경건성과 칼빈주의적 개혁 사상에 입각한 산학사상으로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교육목적은 상기 교육 이념에 입각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의 교단에서 사역할 목회자 양성,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될 선교 일꾼의 양성 및 기독교 문화 창달에 기여할 일꾼을 양성함에 있다. 19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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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최국만은 정주원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51세의 나이로 의병 활동을 하던 그는 1908년 12월 23일 경기도 평택군 남면 월정리 양석환의 집에서 군자금을 징취하였다가 탐지되어 일본인 수사와 헌병대 합동수사대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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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때 『명심보감』을 간행한 추적(秋適)이 낙향하여 처음 살기 시작하였으므로 추계리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추계추씨가 많이 살았으므로 추계라 하였다고 한다. 1413년[태종 13] 추계향에 치소가 옮겨져 추계리는 일시적으로나마 양지현의 치소였다. 본래 양지군 주동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공세동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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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엽을 시조로 하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고려 인종 때 송나라에서 건너온 성씨로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한 추엽이 시조가 되었다. 본관은 개성·강화·파평 등이 문헌에 있으나 오늘날에는 추계추씨와 전주추씨 두 본으로 되어 있다. 추엽의 아들인 추황(秋簧)이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대제학을 지냈고 『명심보감』의 편자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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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의병장 유복립의 재실. 충모재는 조선 중기의 의병장인 묵계(墨溪) 유복립(柳復立)[1558~1593]의 제향을 받드는 재실이다. 유복립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싸움에서 의병장 김천일 등과 순절하여 후에 충신정려문이 내려졌다. 정려문은 송문리 동구의 산자락에 세워져 있다. 양지면 송문리를 지나는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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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방산 전자 및 시스템 개발 제조 회사. (주)코리아일렉콤은 각종 군 전자 장비, 보안, 방공 사격통제 시스템, 탐지 시스템 분야 등에서 연구, 개발로 습득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핵심 첨단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한림에스티는 군 정보의 신뢰성 확보 및 안전성 보장을 위한 보안 장비 개발과 군 장비의 국산화 개발에 초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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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 있는 잔디 전문 제조·관리 업체. 테크노그린은 1999년 2월 5일에 설립되었고, 2003년 11월 5일에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골프장 코스 관리 용역, 골프장 라지패치 관리, 골프장 잡초 관리, 스포츠구장 관리 용역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또한 천연물 및 미생물을 이용한 제초제와 살균제들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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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평촌에서의 ‘평’자와 도창마을에서의 ‘창’자를 합쳐 평창리라 하였다. 평촌은 들말의 한자식 지명으로 풍천임씨의 집성촌이었다. 도창은 예전에 정부의 환곡미를 보관하던 창고와 무신란 때 군수 물자를 저장하던 창고가 있었으므로 도창리라 하였다. 본래 양지현 주동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평촌·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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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 전원택지 개발에 따른 구제 발굴조사의 일원으로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 의해 조사되었으며, 조사 후 기록으로만 보존하였다. 평창리 선사유적은 토양쐐기를 기준으로 위쪽에 퇴적된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 문화층과 토양쐐기 아래의 중기 구석기 후기 문화층으로 구분된다. 후기 구석기 말기의 문화층에서 규질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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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유물산포지. 양지에서 백암 방향으로 가는 국도 17호선에서 평창리로 진입하는 도로가 분기되는데, 분기점에는 대규모의 전원주택 단지가 위치해 있다. 평창리 유물산포지는 이 전원주택 단지(1998년 서울대학교와 경기도박물관에 의해 구석기유적 발굴조사가 이루어짐)가 조성된 구릉 전 지역이다. 조사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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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온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풍천임씨(豊川任氏)의 시조는 본래 중국 소흥부 자계현 사람으로 고려 때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에 오른 임온(任溫)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임온은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풍천에 적을 둔 것으로 전하는데, 이로 인하여 후손들은 풍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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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에 있는 기독교 순교자 기념박물관. 1989년 11월 18일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건립하였으며, 한국 기독교의 수많은 순교자들 중 202명의 사진과 순교 사료를 보존,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한국 교회를 위해 순교한 선조들의 신앙과 정신을 기리고 한국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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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효자. 한신은 세종대에 양지현(陽智縣)에 살면서 사랑과 공경을 다해 부모를 섬겨 효자로 이름이 났다. 아버지가 죽자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면서 하루 세 번 음식 공양하기를 삼 년 동안 멈추지 않았다. 지극한 효성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1431년(세종 13)에 예조에서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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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따뜻한 마음을 지닌 어린이, 꾸준히 슬기를 닦는 어린이, 새로운 생각을 하는 어린이, 튼튼한 체력을 갖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7년 4월 1일 양지초등학교 대대분교장 설립 인가를 받았고, 1953년 7월 16일 한터국민학교로 승격 인가를 받았다. 1955년 3월 25일 제1회 졸업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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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청소년 수련 기관. 1993년 유아들을 위한 수련원으로 문을 열었으며 2007년 현재는 유아, 청소년, 성인 대상으로 연수 활동을 확장하여 운영하고 있다. 한터캠프은 태화산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돌집, 흙집, 방가로 등의 숙박 시설과 하얀집, 꽃나라집, 둥글레집, 영농실습장 등의 교육 시설이 있다. 이곳에서는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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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재치 있는 도둑 이야기. 1984년에 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1-9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일 년에 한두 번만 도둑질을 하는 도둑이 있었다. 이 도둑이 사는 마을에 정승집이 있었는데, 울타리가 높고 튼튼하여 도둑질을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도둑은 빨간 몸뚱이(맨몸)로 광의 창문으로 들어갔다가 어두워서 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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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우의 사당. 관우를 신으로 숭앙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 때부터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사전전고편에는 “무술년(1598) 1월에 명나라 장수 진인이 숭례문 밖 산기슭에 관공묘를 모셨더니 이를 본 모든 관원이 은을 내어 그 사당을 낙성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관우 숭앙 사상이 무속인,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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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거정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던 효우정의 내력을 적은 기문. 『속동문선(續東文選)』권13에 전하는 작품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던 효우정(孝友亭)의 내력을 기록한 기문(記文)이다. 김중호(金仲浩)의 부탁으로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지었다. 고려 말 학자 이석지(李釋之)의 손자인 이종검(李宗儉)·이종겸(李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