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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 은 백암면 백암리에 개장하는 정기적인 재래시장으로, 날짜의 끝에 1, 6이 붙는 날에 주기적으로 열리는 5일장에 속한다. 용인시와 이천시, 안성군을 잇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과거 경상도에서까지 소를 사러 올라올 정도로 큰 쇠전이 열렸던 규모가 큰 시장이었다. 백암장은 백암장이 서는 곳에는 음식점, 채소가게, 어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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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으로부터 물려받아 최근까지 2대째 백암양조장을 운영하였던 김기홍(63세)백암양조장 김기홍 씨 전 대표는 운영할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당시 백암의 경기는 좋아 술도 꽤 팔았지요. 국세청의 간섭도 많아 애를 먹은 적도 있지만 이곳이 농사가 번창한 곳이고 백암의 청미천에 사금이 나와 유흥업소가 늘어나고 소비가 많았던 곳이었지요. 이 양조장에서는 탁주와 약주를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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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좌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부에 청미천이 흐르고 있다. 가재가 많이 나기에 가재울 또는 가좌동이라 하였다. 본래 죽산군 원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근삼면 석곡리 일부와 원일면 미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좌리라 해서 용인군 원삼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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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창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북단, 즉 이천시 마장면·호법면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가창리는 1914년 붙여진 이름으로, 가곡과 신창(新倉)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가창리라 하였다. 가곡은 사람들이 순박하고 부지런하므로 인근에서 일을 많이 하는 마을이라 하여, ‘농사지을 가[稼]’ 자를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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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종형 부도. 가창리 농장 뒤편의 울창한 숲길을 따라 200여 미터를 오르면 정원사가 있고, 정원사 왼쪽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150m 정도 더 올라가면 오솔길 한편에 아담한 부도 1기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 대대적으로 유행한 석종형(石鍾形) 부도로, 어깨가 넓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진적으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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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 용화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불입상. 가창리 석불입상은 가창리의 용화사(龍華寺) 뒤편에 지은 보호각 안에 안치되어 있다. 보호각은 김호창이 처음 세웠고, 이후에 퇴락된 것을 지금의 용화사 주지가 개축하였다. 불상은 신체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화강암 일석(一石)으로 조성된 대형 불상에 속한다. 난형(卵形)의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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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안리는 백암면 동남단, 즉 안성시 일죽면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 양지군에 속한 고안부곡(高安部曲)이 있었기에, 고안부곡 또는 고안이라 하였다. 본래 고안부곡이라 하다가 조선시대에 고안면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주천과 백동·입동·중상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안리라 하고 용인군 외사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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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 대주천 마을에서 남동쪽 진위천 방향으로 뻗어나간 나지막한 구릉 말단부에 위치한다. 채집된 유물들은 외면에 사격자문을 전면 타날 시문한 후 횡침선을 돌린 연질의 백제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지표에 노출된 토양이 마사토인 점으로 보아 유적의 상당한 부분이 유실되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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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태종실록(太宗實錄)』권28에, "용구(龍駒)와 처인(處仁)을 병합하여 용인(龍仁)으로 하고 광주(廣州) 임내인 주계(朱溪)·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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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 호는 석천(石川). 시호는 문헌(文憲).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곽돈효(郭敦孝)이며, 어머니는 조운경(趙雲卿)의 딸이다. 곽원진은 문과에 급제하고 1306년(충렬왕 32) 총랑(摠郞)으로서 원 황제의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성절사로 파견되었다. 당시는 고려가 정치적으로 몽고의 간섭을 받던 시기였다. 여몽관계가 중요했던 시기에 곽원진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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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곽원진의 신도비. 1926년 8월에 곽원진의 후손들에 의해 비가 세워졌다. 비문은 후손 곽찬(郭璨)이 찬(撰)하고 후손인 곽영민(郭泳敏)이 전(篆)하고 후학 이의국(李義國)이 서(書)하였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을 지나는 국도 17호선의 원터마을 못 미쳐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5㎞ 가량 직진하면 청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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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면 가창리에 딸린 자연마을로 행정구역 명칭으로는 가창3리가 된다.가창3리 입구 구백암 표석 이천시 호법면 매곡리와 연결되는 지역으로 예전에는 큰길이 있어 과거 길로도 활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작은 마을이지만 예전에는 많은 민가가 있었을 것이고, 교통 편의상 시장도 형성되었음 직하다. 고문헌 자료에 표기된 ‘배관(排觀)’ ‘배감(排甘)’은 본래 이 지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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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에 있는 합기도 무술 단체. 합기도와 명재남 국사가 창안한 한기도, 합기 무예 등을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 보급하는 단체이다. 합기도 정통 술기의 승계·발전과 한국적인 합기도의 보급·장려를 통하여 많은 국민들이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몸을 지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합기도 무술인 명재남이 1974년 8월 국제연맹합기회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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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근곡리는 백암면 북쪽에 위치한 법정리로, 가창천이 동쪽에서 남류하여 청미천에 유입되고 있다. 1914년에 근삼면과 석곡동의 이름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근곡리라 하였다. 석곡동은 돌실에서 유래했다. 본래 죽산군 근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노동리와 종평리 석곡동, 양지군 박곡면 신창리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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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근삼리는 백암면 동단, 즉 원삼면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1914년에 양준리 등 여러 리가 통합되면서 근삼면의 이름을 따서 근삼리라 하였다. 본래 죽산군 근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영곡리·양준리와 내수곡리·외수곡리·강촌·가이산리의 각 일부와 양지군 고안면의 백동·입동·봉리의 각 일부를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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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 장계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백암면소재지에서 지방도 329호선을 따라 안성 삼죽 방향으로 가면 근삼교를 지나기 전에 장계마을이 있다. 고인돌 유적은 장계 뒷산의 능선(해발 118m)에 위치한다. 유적 주변의 지세는 동쪽에 청미천이 흐르고 이 물줄기를 따라 비교적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확인된 3기 중에 1호의 덮개돌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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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 덕은마을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의 사립 초등 교육 기관. 교육을 통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정명근(鄭明根)은 일제강점기에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포천에 살고 있는 교사 유기헌을 자신의 사랑(舍廊)으로 초빙하여 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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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죽산군 근삼면(近三面) 일부 지역과 원삼면 창동 일부 지역을 병합할 때 근삼면과 창동에서 한 자씩 따서 근창리라 하였다. 근삼면은 죽산군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근일면(近一面), 근이면(近二面), 근삼면(近三面)으로 해서 세 번째 면이란 뜻이며, 창동은 옛 사창(社倉)이 있었기에 유래했다. 본래 죽산군 근삼면 지역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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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 비두와 새말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근창리의 비두와 새말에서는 오래전부터 마을 북쪽에 있는 두무산에서 산신제를 지내 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유력한 성씨나 토박이는 별로 없고, 외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 대부분이나, 두 마을의 이장이 합심하여 ‘산제사(산지사)’라고 부르는 산신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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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산포지. 근창리 유물산포지는 네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근창리 유물산포지1, 근창리 유물산포지2, 근창리 유물산포지3, 근창리 유물산포지4로 구분하고 있다. 근창리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 새터말의 야산 서사면상 경작지 일대에 형성되어 있고, 근창리 유물산포지2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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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상(道常), 호는 기오당(寄傲堂). 충정공 김약시(金若時)의 후손이다. 김우형은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1657년 정언(正言), 1661년 헌납·사간, 이듬해 집의·홍문관교리를 지냈고, 시독관으로 임금 앞에서 통감강목과 대학을 강론하였다. 1669년 좌부승지, 이듬해 도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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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전통 가옥. 김인화 가옥은 사랑채를 배치하고 행랑채까지 둔 집으로 박곡리에서는 가장 큰 집 가운데 하나이다. 집의 상량문에 병자년(丙子年)이라 쓴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때인 1936년에 지은 집이다. 이즈음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민족 전체가 수난을 겪던 시기로서, 당시에 농촌에서 이 정도 큰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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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곡리에 있는 전통 가옥. 노성수 가옥은 처음에는 안채만 있었으나 30년 전에 자손이 늘고 살림살이가 많아지면서 사랑채를 지었다. 노성수 가옥에는 현재 마루에 보일러를 깔아 방으로 만들었고, 기존의 부엌도 입식으로 바꾸었다. 마루 천장은 대들보를 드러낸 형태로 개조를 하여 반듯하지 않게 수리되었다. 노성수 가옥은 기역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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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전은 백암농협 기술센터에서 우측으로 돌아가 백암면복지회관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는 쇠전 주변에 닭전이 펼쳐졌다. 쇠전이 융성할 때는 닭전도 덩달아 흥행하였다. 한 평 남짓 크기의 공간에 닭을 펼쳐놓고 부채질만 하는 노점 주인 역시 백암장에 들어온 지 30년이 넘어선다. 예전엔 백암장을 마치면 안성장(2.7)과 광혜원장(3.8), 진천장(5.10)으로 돌았다. 죽암이 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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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리에 속한 마을로 백암2리이다. 속칭 당뒷마을, 당뒷골 등으로 부른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당촌이라 하였다. 예전에 당집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세대수 53호 인구수 14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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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와 이천시 모가면 어농리, 호법면 송갈리에 걸쳐 있는 산. 주 능선은 서쪽과 남쪽 방향인데, 서쪽으로는 이천시와의 경계를 따라 봉의산·뒷동골산·소학산·건지산 등으로 연결되고, 남쪽으로도 역시 이천시와의 경계를 따라 입석재고개·사실터고개·마국산 등으로 이어진다. 북쪽으로는 다리미둥글산 등 작은 능선들이 이어지고, 동쪽은 골프장 건설로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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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집안을 일으킨 데릴사위 이야기. 1983년에 채록되어 1984년에 출간된 『한국구비문학대계』1-9에 실려 있다. 옛날 조선시대, 한 선비가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이참봉의 아들 이선달 집에서 묵게 되었다. 잠을 자는데 밖이 요란해서 나가보니, 한 사람이 창문으로 집안을 엿보고 있었다. 뒷덜미를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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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1리, 백암3리는 백암면의 소재지가 있는 곳이다.백암리 원경 면사무소와 농협, 우체국과 5일장이 서는 시장 등이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백암면의 중심이다.백암면사무소 앞길 1980년대 초반 인구가 증가하면서 편의적으로 동구와 서구로 분리하였다. 동구는 백암1리가 되고 서구는 백암3리가 된다. 우체국에서 백암양조장을 지나 원삼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왼쪽의 면사무소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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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실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다. 증조부는 현령 류위(柳湋), 할아버지는 정랑 류성민(柳成民), 아버지는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었던 류흠(柳흠)이다. 어머니는 참찬 이지완(李志完)의 딸이다. 부인은 심수경(沈守慶)의 증손녀이며, 부사 심은(沈誾)의 딸이다. 외삼촌 이원진(李元鎭)과 고모부 김세렴(金世濂)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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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양조장의 막걸리 원료는 70%의 밀가루와 30%의 쌀을 섞어 만들고 있다. 밀가루에 30% 쌀을 섞으면 밀가루 술보다 공정이 좀 길고 원료비가 다소 많이 들지만 술이 매끄럽고 맑게 되어 맛도 좋아지며 보관 기간도 길어지는 장점이 있다. ① 원료 반죽 - 원료로 들어가는 쌀을 불리고 밀가루 반죽을 한다. ② 증자 - 순수 쌀 막걸리일 경우 일종의 고두밥 만드는 과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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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백암장에는 여러 유형의 장꾼들이 모여들었다. 물건을 점포가 아닌 빈 장소를 찾아 자리를 깔고 물건을 파는 난전상인, 관의 허가를 받지 않은 금지된 품목을 판매하는 잠상, 철 지나 헐고 값이 싼 물건을 파는 마병장수, 닭이나 오리를 어리에 넣어 파는 어리장수, 곡식을 마소에 싣고 다니며 파는 시겟장수, 버스정류장에서 물건을 파는 거리목장수가 그들이다. 이밖에도 물건을 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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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가고 싶은 이유는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장을 가던지 장터에는 장국밥집이 있기 마련이다. 백암장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또 한 곳은 해장국집이었다. 연일 장을 돌다보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새벽까지 걸어 백암장을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숙박비가 아까워 한데서 자다가 아침이면 해장국집을 찾았다. 선지해장국집을 하고 있는 민영기(51) 씨는 “아직도 백암에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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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회헌(晦軒). 고려에서 정승을 지낸 박전지(朴全之)의 고손이며, 할아버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며, 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고,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딸이다. 아들은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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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박곡리는 본래 양지군 박곡면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박곡은 바깥쪽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보인다. 즉 본래는 밭골이나 밧골로 불리던 것이 박골로 변화되고 한자로 옮기면서 박곡(朴谷)으로 표기된 것이다. 박석리는 본래 죽주(竹州)에 속했던 지역으로 원래는 대곡부곡(大谷部曲)으로 불리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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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약 2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갈참나무·졸참나무 등 약 200~250종이 자라며,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일그러진 편구형으로 10월경에 익는다. 마을 어귀나 동네의 정자목으로 널리 식재되어 있다. 나무 높이는 22m, 가슴 직경은 1.18m이며, 수령은 약 200년 정도이다. 지상 4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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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석골에 있는 서낭당. 용인시 백암면 박곡리는 과거에 상촌과 박석골, 원터, 청계골, 역골 등 5개 마을로 되어 있었다. 현재의 박곡2리는 ‘박석골’이라 불렀으므로 이곳의 서낭당을 ‘박석골 서낭당’이라고도 한다. 박석골 서낭당은 동제의 대상은 아니고 개인적인 신앙처이자 마을과 마을 간의 경계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박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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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 절터. 양지에서 국도 17호선으로 백암을 지나가다 원대에서 동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박곡리에 이른다. 절터는 마을 동편 대덕산 서쪽 사면에 해당하는 오방낭골의 구릉 평지에 있다. 2011년 현재 주민들이 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고적총람(古蹟總覽)』·『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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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건립된 전통 가옥. 안채는 3칸 전퇴집이었던 것 같으며, 정면 기둥을 제외한 모두가 개조되었다. 우당좌주를 삼아 아래쪽 한 칸은 부엌이고, 머리 쪽은 2칸을 통칸 구들로 쓰고 있다. 부엌 앞 모서리에는 욕실이 반 칸 크기 정도로 지어졌다. 부엌 아래 벽에 개수대와 냉장고가 놓여 있고, 안방 머리 쪽에 장롱이 배치되어 있으며, 안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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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곡리사지에 있었던 조선시대 나한상편. 원래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정봉상이 박곡리사지Ⅰ지구의 대석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약 67m 떨어진 곳에 새로이 안치하였지만 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고 전하며, 주변에서의 소재도 불분명한 상태이다. 나한상편은 박곡리사지Ⅰ지구와 Ⅴ지구에서 주로 확인되는데, 전체적으로 적색을 띠는 곱석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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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박곡리사지에 있었던 고려시대 석불입상. 원래 땅 속에 묻혀 있던 것을 마을 주민 정봉상이 박곡리사지Ⅰ지구의 대석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약 67m 떨어진 곳에 새로이 안치하였지만 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고 전하며, 주변에서의 소재도 불분명한 상태이다. 거친 화강암으로 제작된 이 석상은 전체 길이 148㎝, 어깨 폭 70㎝,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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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의 열녀. 본관은 연안. 아버지는 이형원, 남편은 박래영이다. 1785년(정조 9)에 출생하여 16세 때에 박래영과 결혼하였다. 그때 시어머니는 이미 작고하였고, 홀시아버지는 병환으로 문밖출입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7년 동안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마침내 세상을 떠났고, 병약하던 남편마저 24세 되던 해인 1809년(순조 9)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멸성지정으로 애통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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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호는 만절당(晩節堂). 증조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고, 할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며, 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연흥군(延興君) 박고(朴翶)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따님이다. 아들은 찬성사(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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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1771년(영조 47) 과거에 급제하였다. 통덕랑(通德郞)에 올랐으나 모친께서 병으로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어 병을 돌보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약재를 구하여 탕약을 해드렸다. 병세가 위독해진 뒤에는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리니 수명이 조금 연장되었다. 돌아가신 후에는 졸곡(卒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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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박인영의 정려각. 박인영의 본관은 죽산(竹山)이고, 자는 여안(汝安)으로 박민흥(朴敏興)의 아들이다. 1750년(영조 26)에 옥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행동이 단정하고 효성이 지극하였고, 재덕을 겸비하여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의 효행은 근천지효(根天之孝), 격천지성(格天之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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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에 있는 상류층 전통 가옥. 박재륭 가옥은 지은 지 85년이 된 집으로, 박재륭 가족이 조상대대로 살아온 집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의 마을 형국은 소의 형국인데 이 집은 소의 여물통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에서 부농으로 살았다. 사랑채는 집주인의 동료들이 찾는 공간으로, 서로 시를 짓거나 시조를 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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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유배된 무신. 본관은 죽산. 호는 호곡(壺谷). 조선 건국에 대장군으로서 공이 있어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고, 사헌중승(司憲中丞)을 지냈다. 그러나 1394년(태조 3) 자기는 논공(論功)에서 2등이 되고 이무(李茂)는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책봉된 것을 비방하였다가 도리어 죽주(竹州)[현재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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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맛의 비결 또 하나는 바로 술국이다. 순대를 먹으면서 떠먹는 국물 맛은 허한 속을 달래며 몸에 따뜻한 기운을 돌게 한다. 공기밥을 별도로 주문하지 않아도 밥 반 공기는 공짜로 담아주는 술국이기에 배고픈 장꾼에게는 요기도 된다. 술국은 백암순대와 찰떡궁합이다. 또한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는 순대와 내장이 듬뿍 들어간 순대국밥이 최고다. 그 깊은 맛에 반해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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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의 토속명칭은 ‘배개미’, ‘배가미’ 이다. 지금까지도 토박이들은 백암을 ‘배개미’로, 백암장을 ‘배개미장’이라 부른다. 한자 표기로 ‘白巖’, ‘白岩’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같은 표기는 근대 이후에 사용된 명칭이다. 고문헌의 기록을 보면, ‘배관(排觀)’, ‘배감(排甘)’으로 표기되어 있다. 『동국문헌비고』(1770년) 향시(鄕市)조에 배관(排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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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통합]소속 교회. 선교사 민노아가 기독교 전파와 교회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백봉교회는 경기도 용인시에 최초로 개설된 교회이다. 1894년 이원서, 서경삼, 이덕보 등이 설교를 듣고 예배를 본 것이 백봉교회의 시작이다. 선교사 민노아가 교회를 설립하고, 선교사 피득이 교회를 진흥시켰다. 처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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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봉이라는 이름은 1914년에 생긴 이름으로 잣나무골[栢洞]과 봉리(峰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백봉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백봉리는 본래 죽주(竹州)에 속했던 지역으로 본래 대곡부곡(大谷部曲)으로 불리던 지역으로 생각된다. 1413년(태종 13) 양지현으로 이속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본래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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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백봉리사지에는 3층석탑과 석불 및 주초석 등이 남아 있었으나 석탑 등은 1983년에 대은사가 창건되면서 옮겨졌다. 현재 사지의 흔적이 남아 있던 과수원은 삭토되어 건물이 들어서 있고, 주변 단애 면에서 고려시대의 기와편과 자기편이 깨어진 채 발견되었다. 사지의 중심부와 그 주변이 암반층까지 깎여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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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서낭당.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백봉리에는 백봉2리의 벌말(평촌)과 백동마을(잣나무골), 백봉6리의 사은마을(샛말), 백봉8리의 봉리마을 등에 서낭당이 있었다. 벌말의 서낭당은 광고개 서낭당으로 불리고, 백동마을의 서낭당은 훈고개(큰고개) 서낭당, 사은마을의 서낭당은 숯돌고개 서낭당이라고 불렀다. 이들 서낭당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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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백봉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나누어 분포하는데, 백봉리 1378-1번지의 선사유적1과 백봉리 1380-1번지의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경기도 용인 양지에서 음성으로 가는 국도 17호선을 통해 백암을 지나 백봉초등학교에서 남서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백봉리 4리 속칭 ‘봉리’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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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백봉리 대은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탑재. 이 지역 주민들이 잣나무골이라 부르는 곳에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절터가 있다. 현재 절터에는 건물지와 함께 불상과 대좌(臺座), 탑재, 초석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주변에는 와편(瓦片)이 산재하고 있어 과거에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근래 들어 대은사(大恩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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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 백봉리사지에 있는 조선시대 나한상. 백봉리사지 나한상은 화강암 석재로 제작되었으며, 좌상의 형태이나 두부가 결실되었다. 현고 39㎝, 현폭 30㎝, 두께 16㎝ 정도이다. 백봉리사지 나한상은 박곡리사지에서 옮겨진 것이라고도 전하나, 재질이 화강암인 점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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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도덕인(바르게 행동하고 남을 배려하는 어린이), 자주인(자주적이고 서로돕는 어린이), 창의인(슬기롭게 생각하며 탐구하는 어린이), 건강인(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씩씩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0년 초 이 고장 유지 이해종이 부지 400여평을 학교 설립에 기부하여 이를 토대로 기존 공민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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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농업 지역에서 그랬듯이 백암에서도 논농사는 공동노동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농악’이란 말로 기억되고 있는 두레는 마을 일꾼들의 공동노동을 위한 조직이었다. 용인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백암면의 두레 활동은 타 지역에 비해 왕성했다. 이들 두레는 여름 논매기 시절뿐 아니라 모내기, 보리파종, 곡물 수확 때까지도 협업과 놀이를 하며 일의 능률과 서로간의 화합을 돈독히 다졌다.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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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에 있는 백암지역문화제발굴보전위원회가 매년 음력 7월 15일에 개최하는 민속 축제. 백암 백중 문화제는 400여 년을 이어져 오다 중단된 백암 지역의 오랜 전통인 백암 백중놀이를 2011년부터 30년 만에 부활시켜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하고자 매년 개최되는 경기도 용인시의 대표적인 민속 축제이다. 백중은 한가위 한 달 전인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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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천주교 사회 복지 시설. 백암 성가원은 천주교 수원교구 교구장이 인준한 장애인 사회 복지 시설이다. 장애인의 집 성가원이라고도 불린다. 장애로 인하여 근로 능력을 상실한 사람의 생활, 자활, 교육, 심리를 도와주어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백암 성가원은 198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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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조화롭고 건강한 심신을 바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윤리를 함양하고, 바른 인성과 창의성을 계발하여 21세기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민주 시민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정직, 성실, 봉사이다. 1947년 9월 5일 외사고등공민학교로 출발하여 백암중학교와 병설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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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1930년 9월 신태봉의 사랑방에서 신태봉, 김수덕, 최부억, 신봉업, 신성균, 전도사 이용순 등 6명이 개척 예배를 본 것이 백암교회의 시작이다. 1932년 이몽순 전도사가 헌금을 하고, 신태원이 대지와 목재를 희사하자, 신자들이 노력 봉사하여 초가 교회 건물을 신축, 교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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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물놀이.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는 예전부터 마을마다 다양한 양식의 풍물놀이가 연희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고유문화 말살정책으로 중단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8·15해방 이후 농악이 점차 되살아나면서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진 근대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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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면에 속한 법정리로, 현재 백암면의 면소재지이다.면소재지 전경 본래의 백암은 죽산군 근삼면의 노동리(老洞里), 배감동(排甘洞)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지금의 위치로 면소재지로 옮긴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양지군 박곡면 기안리(機安里) 지역이었다. 현재의 백암리에는 동구·서구·당촌·지렁골·틀안 등 5개 자연마을이 속해 있다. 2005년도 통계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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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암의 본래 표기는 배관(排觀)이다. 1770년(영조 46)에 간행된 『동국문헌비고』에 배관장(排觀場)이란 명칭이 처음 보이고 이후 각종 『읍지』류에도 동일한 표기가 보인다. 이후 1827년(순조 27)의 『임원경제지』에는 배감(排甘)으로 나타난다. 백암(白岩)의 표기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보이는 표기이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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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00년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초상이나 잔치, 명절날 등에 필요한 술은 그때그때 직접 빚어 사용하였다. 또 사람이 많이 다니는 동네 어귀 주막에서는 음식과 함께 막걸리를 담가 지나가는 여행객들의 지친 몸에 활력을 넣어주곤 하였다. 그러나 1907년 일제에 의해 술에 주세를 부과하고, 1920년대 와서 각 지역마다 주류 제조업자를 지정하여 관리하다 보니 수많은 전통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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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하는 행정면. 본래 죽산군 지역으로 근삼면이라하여 협동·가곡·내창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근일면의 용천상·용천중·구율 등 12개 리와 원삼면의 창동 일부, 북일면의 고목리 일부, 양지군 박곡면의 청계·신창·기안의 3개 리와 같은 군 고안면의 주천·백동 등 5개 리를 병합하여 외사면이 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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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있는 백암면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4개 행정동, 6개 면 중 백암면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백암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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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소속 천주교회. 백암성당은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내 용인제1지구에 소속된 성당이다. 아직까지 주보성인을 정하지 못했으나 용인 지역에서 순교한 한국 순교 성인 가운데 한 분을 모실 계획이었으나 성 요한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모본당(母本堂)인 양지성당으로부터 분가하여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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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돼지를 잡은 뒤 순대를 만들어 먹는 일이 드물어졌으나,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백암마을에서는 돼지나 소를 잡는 날엔 순대를 만들어 먹었다. 백암은 예전부터 축산농가가 많았던 지역적 특성 때문에 집안에 잔치가 있을 경우 돼지나 소를 도축하여 잔치 음식을 만들었으며, 부산물로 나오는 내장은 깨끗이 씻어 야채를 넣어서 순대를 만들었다. 고기만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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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내식품의 순대가 전통의 맛을 지키면서 전국 식탁을 찾아간다면, 외부 손님을 용인으로 불러들이는 순대집도 있다. 백암시장 골목에 위치한 풍성식당, 제일식당, 형제식당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바깥에서 보기에도 허름한 순대집들은 백암장날이 아니라도 항상 손님들로 꽉 차 있다. 절반은 용인 손님, 절반은 타지역 손님으로써 한 번 맛본 사람들을 먼 거리에 상관하지 않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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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순대는 이제 백암에서만 먹을 수 있는 지방 식품이 아니다. 이미 ‘백암순대’라는 브랜드를 확보하였고, 전국적인 유통망도 구축되어 있다. 백암 토박이 신동선(37세) 씨는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10여 년 가까이 백암순대 홍보사업을 폈다. 1990년의 농산물 전시회에 백암순대를 출품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은 후 정부의 개발 제의를 받고, 1997년 백암에 순대공장을 세웠다.이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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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있는 우편 및 금융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직급에 따라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나누거나 기능에 따라서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4급과 5급 우체국은 총괄국으로서 기초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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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있는 전통 재래 시장. 백암장은 조선시대에 죽산현에 속했던 장시로, 배관장(排觀場) 혹은 배감장(排甘場)으로 불리었다. 언제 설시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시적고(市糴考) 향시조(鄕市條)에 ‘배관장’이란 이름이 기록상 처음 등장하여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서울과 수원·안성 등 경기 지역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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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는 함경도와 평안도처럼 추운 지방에서 즐기던 음식이다.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자면 영양식이 필요했고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맛을 낸 순대가 영양 보충식이었다. 요즘은 사계절 언제나 시장 골목부터 대형 유통점 어디에서나 쉽게 먹을 수 있다. 순대는 대표적인 서민층의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지역에 따라 만드는 방법과 맛이 달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순대만큼 전국적으로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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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순대는 조선시대 이래 죽성(현 안성시 죽산면) 지역을 중심으로 만들어 먹던 음식으로, 죽성이 퇴조하면서 인근 고을인 용인시 백암면의 백암장을 통해 전통이 유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경기도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쯤 ‘풍성옥’을 운영하던 함경도 출신의 이억조(여, 1909~1996)가 백암장이 설 때 순대와 국밥을 만들어 팔던 것이 시초라고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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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의 주가를 올린 것은 쇠전(우시장)이었다. 용인뿐만 아니라 인근의 5일장 중에 가장 거래가 왕성하였던 장이 백암장이다. 1918년 말의 조사에 의하면 당시 전국의 우시장은 모두 655개소였다. 당시 단위시장으로 큰 시장으로 유명했던 곳은 함북 명천군의 명천장과 길주군 길주장으로서 거래량이 2만5천두 이상이었다. 그 다음으로 수원군 수원장, 양주군 삼패장 등이 2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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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1980년 백암리 홍약국 2층에서 현 목사인 조복희가 창립 예배를 보았다. 1981년 선교원을 설립, 초중고 학생들에게 주산, 부기, 타자를 무료로 가르치고, 유치원을 설립, 운영하면서 복음 전달과 기도에 노력하였다. 당시 학생이 150여 명에 이르렀으며, 이들이 성장하여 현재 교회의 중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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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교훈은 ‘성실’이며, 조화롭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바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윤리를 함양하고, 바른 인성과 창의성을 계발하여 21세기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민주시민을 기르는 것이 교육목표이다. 1947년 9월 5일 외사공민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1950년 5월 7일 외사공민고등학교 제1회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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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이 바르고 미래핵심역량을 갖춘 홍익인재 육성을 교육의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다. 교육목표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며 더불어 사는 어린이(德), 꿈을 키우며 시간을 관리하는 자율적인 어린이(自), 창의적 지성을 갖춘 슬기로운 어린이(創), 활기차고 부지런하며 건강한 어린이(體) 육성이다. 용인시에서 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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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에 있는 공립 백암초등학교 수정분교장. 나라를 사랑하고 예절 바른 사람, 스스로 공부하는 자주적인 사람, 책임을 다하고 서로 돕는 사람, 탐구하고 창조하는 사람,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으로 기르는 것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와 가창리 지역은 백암초등학교와 거리가 멀어 학교가 필요함에 따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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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보쌈으로 업혀 갔다 장가간 남자 이야기. 1983년 1월 16일에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사는 유용식(남, 65)이 구연한 것을 조희웅이 채록하였고, 1984년에 출간된 『한국구비문학대계』1-9에 실려 있다. 경상도에 큰 부자가 살았다. 부자는 자식교육도 모르고 돈만 알았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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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은 꼭 사거나 팔 물건이 없더라도 구경삼아 시장에 나와 본다. 이것이 농촌시장의 특징이다. 그래서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씨오쟁이 짊어지고 따라간다.”라는 속담도 있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농촌의 마을도 장날이 되면 활기를 띤다. 장터에 이르는 길은 손이나 어깨, 등, 머리 위에 곡식자루, 닭, 계란, 채소 등을 이거나 지고 나오는 농민들로 북적거린다. 장에는 못 보던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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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에서 가장 중심가에 자리 잡은 박호기 씨는 20살 무렵부터 젓갈 몇 종류로 장사를 시작했다. 20여 년을 넘긴 지금은 안성에 자리 잡고, 진천장과 백암장을 오가며 장사를 한다. 재료는 서울 가락동시장에서 구입하다가 젓갈, 반찬류를 만들어 가며 판매한다. 세 분의 요리사들과 함께 황태조림에 오징어젓갈, 조개젓갈, 북어조림, 쥐포조림, 총각김치, 배추김치, 갓김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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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와 장평리에 전해져 내려오던 두레패.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해 마을 단위로서 만들어진 것이 두레다. 백암면 용천리와 장평리 일대는 농업이 크게 발전했던 만큼 두레 역시 크게 활성화되었으며, 특히 용천리의 안배미(율리), 골배미(곡율)와 장평리의 주막배미(평율)의 3개 마을 두레는 특히 유명하여 삼형제 두레로 전해진다. 두레 조직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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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농악의 맥을 잇는 상쇠 차용성 씨는 차정범(車正範)의 4대 독자로, 1928년에 백암면 용천리 45번지에서 태어났다. 출생해서 한 번도 이사를 가 본 적 없이 이곳에서 한평생을 살았다. 가족으로는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부인 김공순 여사와의 사이에 4남 4녀를 두고 있다. 백암농악에서 태평소를 불고 있는 차진복(48세) 씨가 세 번째 아들이다. 상쇠 차용성 씨의 풍물은 멀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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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에 있는 천주교 사회 복지 시설. 생명의 집은 천주교 수원교구 교구장이 인준한 미혼 임산부를 위한 사회 복지 시설이다. 생명의 집은 낙태를 줄이고 미혼모와 임산부들을 보호하며 출산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생명의 집에서는 낙태 위기에 있는 미혼 임산부들과 해산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여성들에게 복지 혜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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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에 있는 서울시립 정신 병원. 무의탁자 및 저소득층의 정신 질환자에 대한 전문화된 진료로 의료 보장 기능을 확보하고 시민의 의료 복지 증진 및 공공 의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국민정신 보건 향상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5년 11월 서울시립백암정신병원을 준공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제1차 위·수탁 운영 계약을 체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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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인시 처인구의 동남쪽 하단에 위치하며 안성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석천이라는 지명은 1914년에 생긴 이름으로, 황석리(黃石里)와 사천리(斜川里)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석천이 되었다. 석천리는 본래 준산군 근일이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용인군으로 편입되어 황석리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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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 황덕마을회관에서 남쪽 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가에 자리하는데, 황새울 뒤산 북쪽 경사면에 해당한다. 작은 빗살무늬토기편 3점이 채집되었다. 토기 외면에 베풀어진 문양은 동일계 횡주어골문(橫走魚骨文)으로 단치구(單齒具)를 사용하여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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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가마 터. 석천리 요지는 석천리 요지1·석천리 요지2·석천리 요지3·석천리 요지4의 모두 네 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석천리 요지1은 반계 유형원 묘소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묘소를 조성하면서 가마 터의 퇴적 일부가 노출되었고,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석천리 요지2·석천리 요지3·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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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석천리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각각을 석천리 유물산포지1, 석천리 유물산포지2로 구분한다. 석천리 유물산포지1은 석천리 황새울골을 따라 난 작은 포장도로를 타고 계곡 안쪽으로 진입하다가, 황덕마을회관 앞의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반계 유형원(柳馨遠)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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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축산농가에서 생산하는 돼지고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을 중심으로 27개 축산농가에서 5만여 두를 사육하고 있다. 용인시는 2001년부터 한약재 부산물사료와 고품질 장려금을 지원하는 등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성산한방포크는 인위적인 첨가제가 아닌 한약 사료를 먹이고 특히 항생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등 친환경적으로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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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에 있는 정신 장애인 요양 치료 시설. 만성 정신 장애인들을 보호 및 치료하여 재활 능력을 향상시켜 사회의 구성원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사회 복지 증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0년 5월 28일 사회복지법인 인가를 받아, 1981년 9월 24일 용인군수로부터 시설 허가를 받았다. 1981년 10월 11일 세광종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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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전의 위세에 눌려 잘 기억되고 있지 못하지만 백암장의 싸전도 규모가 컸다. 당시 백암 주민들이 직접 곡식과 채소를 가지고 나가면 장터 입구에 미곡 상인들이 줄을 서 있다가 쌀을 구매했다. 그때는 말이 없어서 됫박으로 팔았는데, 됫박 크기가 대중이 없었기 때문에 미곡 상인들은 되가 다른 두 차이로 이문을 남기기도 했다. 주민들로부터 구매한 상인들은 장터에서 이문을 남기고 판매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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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은 농업 외에 축산업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백암 지역은 수정산, 건지산, 대덕산, 조비산 등이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며 넓은 들판에 초지(草地)를 형성하고 있어 목축업에 최적지이다. 축산 경기가 활발하던 시기에는 마을마다 여러 가구에서 소와 돼지를 대량 사육하였다. 전국 규모의 쇠전(우시장)이 열릴 정도로 컸던 백암장의 배경에는 축산업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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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쇠전 못지않게 융성했다던 싸전은 다른 난전과 다를 바 없이 규모가 작다. 아니 그보다도 더 초라하다. 명색이 싸전이지 쌀은 대형마트에서 팔고 있으므로 난전에서는 취급하지 않는다. 장터에서 멀지 않게 사는 할머니가 직접 재배한 잡곡류만 자루에 담은 채 판다. 백암파출소 옆 좁은 골목 사진관 앞에서 손수 재배한 곡류를 팔고 있는 김씨 할머니는 안성 일죽에서 백암장만 10년째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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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중(汝中). 고려 후기의 성리학자 안향(安珦)의 21세손이다. 안희중(安禧重)[1728~1800]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43년(영조 19) 6월 그믐날 밤 폭우가 쏟아져 사당이 무너지려 하였으나 부모님은 모두 병석에 누워 있었다. 당시 16세였던 안희중은 급히 사당으로 뛰어 들어가 대들보를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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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안희중의 정려각. 안희중의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1728년(영조 4)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는데, 그가 15살 되던 해에 폭우로 사당이 무너져 내리자 들보를 받쳐 들어 신주를 온전히 옮길 수 있도록 하였다. 1750년(영조 26) 조부가 병환에 들자 반 년 동안 간병하였다. 어느 날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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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와 백봉리에 있었던 반공 청년 단체. 국군의 후퇴 이후 북한군에 점령당했던 남한의 여러 지역에서 학생, 청년, 주민들을 중심으로 저항 단체가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저항 단체로는 경기도 고양 파주 지역의 태극단, 강원도 춘성군 남면 가정리 지역의 반공투쟁 공작산악대, 강원도 춘성 북산면 수내리 지역의 반공결사대, 강원도 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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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백암양조장의 생산기술자인 변태동(71세) 씨는 50년 가까이 양조기술자로 일해 왔다. 군대 제대 후 원래 운전기사로 사회 첫발을 내딛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신당동에 있던 명성소주에서 양조기술을 배웠다. 이것이 평생 그로 하여금 술과 함께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소주는 원래 증류식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1960년대 중반에 증류식 소주 제조를 금지하여 고구마로 만든 주정에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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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의 젊은 상인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어제는 여주장(5.10)에 갔다 왔으며 주로 순환하는 곳이 장현(남양주-2.7), 오산(3.8), 장호원(4.8)이라 했으며, 사는 곳은 수원이라 했다. 대체로 개시 손님에게는 조금 싸게 해 줘서라도 그냥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통념이니 좋은 것을 저렴하게 사려면 아침 일찍 오는 것이 물건 싸게 사는 비법이냐는 말에 웃음을 보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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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연안이씨의 정려각. 연안이씨는 이형원의 딸로, 16살 때 박래영과 결혼하였는데, 시어머니는 이미 작고하였고, 시아버지는 병환으로 문밖 출입도 못하고 있었다.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7년여 동안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시아버지는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남편 박래영도 병약하여 24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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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서 대덕산의 오방난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75년 4월 19일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사는 김명환이 구연한 것으로, 1985년에 출간한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다. 오방난골은 용인시 외사면 박곡리의 속명이다. 박곡리에 있었던 신라 때의 사찰인 박곡사에 오백의 나한도량전(羅漢度量殿)이 있었다고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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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서 생산되는 전통 민속주. 유씨 가문에서 가양주(家釀酒)로 1880년경부터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947년 경상남도 하동의 양조장에서 유양기가 전통 가양주인 알코올 농도 30% 소주를 생산하면서 ‘옥로주’라는 상표를 붙였다. 이는 술을 증류할 때 증기가 액화되어 옥구슬 같은 이슬방울이 떨어지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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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에 있는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 소속 교회. 1945년 백암성결교회에 다니던 김충실 집사와 아들 이명렬 전도사가 자신들의 집 사랑에서 예배를 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교회이다. 현재 교회의 위쪽 산에 작은 건물을 짓고 기도와 전도를 하였으나 유교 풍습이 강한 지역이라 목회가 어려워 1982년까지 17회나 목회자가 바뀌었다 한다.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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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인시 처인구의 동남쪽 맨 끝에 위치하며 안성 죽산의 비봉산과 경계를 이룬다. 1914년에 옥천(玉泉)과 옥산·상산(上山) 및 하산(下山)을 합쳐 옥천에서 ‘옥’자를 따고 나머지에서 ‘산’자를 취해 생긴 이름이다. 본래 죽산군 근일면과 근이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옥천리·하산리·상산리·아산리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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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옥산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산90번지의 옥산리 선사유적1과 1002번지의 옥산리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옥산리 선사유적1은 백암면 옥산리 청미천 가까이 북쪽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에 유적이 자리한다. 또 도로 25호선 동편 옥산리 옥천마을 뒤편 구릉지 동쪽 경사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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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하산마을에 있는 서낭당. ‘옥산리 하산마을 서낭당’은 국사봉 아래 분터골에 있다고 하여 ‘분터골 서낭댕이’라고도 불린다. 옥산리에는 상산과 하산마을이 있는데, 옥산2리의 속칭이 하산마을이다. 하산마을의 토성은 죽산박씨로, 총 가구수 53호 중 죽산박씨가 45호나 된다. 하산마을 서낭당은 동제의 대상은 아니며 개인 치성만 드리는 제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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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에 있었던 사립 초등 교육 기관. 문맹 퇴치와 생활에 필요한 기초 교육 습득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옥산학원은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백암보통학교와 거리가 멀어 신식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이면호, 안명신, 박한구 등이 추진하여 1929년에 설립되었다. 서당 2곳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야간에 사랑에서 신식 교육을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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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대덕산록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절터에 관한 문헌 기록은 전혀 없고, 고려시대 옹주가 궁궐에서 쫓겨나 이 곳 암자에서 수도하였다는 구전에 따라 ‘옹주암지’라 부른다. 절터는 용인과 이천의 경계를 이루는 대덕산[해발 346.9m]의 남쪽 산록에 자리하며, 산 정상부의 7부 능선에 해당한다. 박곡리 상촌에서 옥로주 공장을 지나 입석재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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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가마 터. 용인 고안리 분청사기 도요지는 고안리 요지라고도 불리며, 15세기 분청사기의 요지이다. 유적의 크기는 가로 30m, 세로 40여m에 이른다. 백암면 고안리의 지내마을 남쪽에 있는 일명 사랑골 안의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다. 근래 유적이 위치하는 구릉의 좌측에 묘지가 조성되면서 많이 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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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백암은 넓은 들판과 넘실대는 하천을 가진 용인 동부 지역의 곡창지대였다. 풍요로운 농촌으로 인근 지역의 부러움을 살 만큼 부촌(富村)이었다. “신갈 처녀 백암에 시집가면 부모 얼굴 퍼진다.”라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척박한 땅의 신갈과 기름지고 넓은 들판을 가진 백암을 비교해서 전하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는 신갈 처녀가 백암으로 시집간 사례가 많지 않다. 다른 지역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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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에 있는 노인요양원. 불교의 자비 정신과 보살상 구현을 설립 이념으로, 65세 이상 국민기초수급권자와 무의무탁 노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인간 존엄성을 유지하며 행복한 삶을 누리고 여생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또한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여 효의 사회화를 위한 실천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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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 있는 한국국악협회 용인지부 소속의 농악 단체. 용인 지역의 전통 농악을 재현하여 보전하고 전승하는 데 그 창립 목적을 두고 있다. 1994년 용인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농악인들을 합쳐 용인시 농악단을 창단하였으며 김문향을 초대 단장으로 위촉하였다. 2004년 차용성이 중심이 되어 용인농악단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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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예장 통합] 소속 교회. 1981년 설립 당시 전 경기도지사였던 박창원이 용천리 방안마을에 토지 500평을 희사하여 부지를 확보하고, 신자들이 힘을 합하여 조립식으로 교회 건물을 신축하였다. 이후 1990년대 초 수해로 인해 멸실되자 1993년 교회 건물을 다시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담임 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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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면소재지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용천1리[율리]·용천2리[중리]·용천3리[상리]·용천4리[곡율] 등 4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용천(湧泉)은 우리말로 ‘솟을 샘’이라고 하는데, 지명 유래가 된 ‘용숫물’이 중리에서 석천리 황새울 넘어가는 곳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용숫물과 관련한 전설도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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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에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 1층 옥신석을 제외한 나머지 탑신은 아주 낮게 이루어져 있으며, 3층은 옥신과 옥개가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어 이곳에 사리장치(舍利藏置)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옥개석은 4단의 층급 받침이 확연하게 표시되어 있으며, 처마선도 직선으로 강건한 맛이 느껴지도록 치석되었다. 옥개석 모서리 처마 부분[轉角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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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마 터. 용천리 요지는 세 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용천리 요지1은 옹기 가마 터로, 가로 15m, 세로 10m 정도이다. 용천리 요지2와 용천리 요지3은 백자 가마 터로, 용천리 요지2는 가로·세로가 각각 50m이며, 용천리 요지3은 폭 25m, 상하 길이 10여m에 이른다. 용천리 요지1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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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중말 마을회관 서북쪽의 야산 산자락 일대에 형성된 유물산포지이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에서 발견된 곳으로, 그 때 다량의 통일신라시대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이런 양상은 2003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이 실시한 지표 조사에서도 다량의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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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에서는 예전부터 마을마다 다양한 양식의 풍물놀이가 연희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고유문화 말살 정책으로 중단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8·15 광복이 되면서 농악이 점차 시작되었고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 크게 번성했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근대화 과정 속에 다시금 퇴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기능을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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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류형원의 묘 류형원(柳馨遠)[1622~1673]의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류형원이 죽은 지 100년 뒤에 영조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위한 제도 개혁을 주장한 『반계수록(磻溪隨錄)』을 높이 평가하여 이를 인쇄하여 세상에 널리 반포하도록 명하였다. 이를 계기로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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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전통 가옥. 윤병해 가옥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다. 윤병해 가옥은 이 마을 초입 어귀 네거리 서쪽 골목에서 바로 서쪽으로 난 작은 골목길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돌아 들어가는 곳에 있다. 윤병해 가옥은 ‘二’자형 집인데, 집 밖에 있는 창고와 빈집 한 채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안채는 5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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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윤병해 가옥에 딸린 건물. 윤병해 별채가옥의 문간채는 5칸 전퇴집이지만 양쪽으로 한 칸씩 내달아 지었다. 5칸잡이로 볼 때 동쪽에 문간방을 두고 다음이 대문간이며 나머지는 모두 창고로 쓰이고 있다. 머리 쪽에 덧단 칸은 창고이고, 아래쪽에는 헛간채를 두었다. 헛간채는 마당 쪽으로 트여 있다. 문간방 안쪽에는 ‘ㄱ’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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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전통 가옥. 윤찬희 가옥은 마을 초입에 있는 집이다. 울타리를 철조망으로 두르고 대문도 철조망으로 만들었는데, 아마도 수해 때 유실된 뒤 고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윤찬희 가옥은 안채만 하나 있다. 안채는 ‘一’자형 전퇴집이다. 부엌 툇간이 구들 사이에 신축되었다. 안방이 동쪽으로 마련되는 좌당우주의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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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소속 교회. 예수의 복음을 전달하여 희망 잃은 주민들의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00년대 초 문맹을 퇴치하고 신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장평리에 봉양학교를 설립, 운영하였던 심원용은 지인을 통해 기독교를 알게 되었고, 안성에서 전도를 한다는 박승명을 초대하여 예배를 올린 것이 율리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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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은혜 갚은 두꺼비 이야기. 1983년 1월 16일에 백암리 노인회관에서 김화진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84년에 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1-9에 수록하였다. 1985년에 출간한 『내 고장 옛 이야기』에도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옛날 어떤 곳에서 한 장수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죽자 큰 누각을 세워 해마다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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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에서는 같은 품목을 파는 난전상인들이 적은데, 의류를 판매하는 곳은 10여 곳이 되는 정도로 많다. 남,여 의류를 파는 의류상인 이필용(64세, 안성), 원윤근(58세, 안성) 부부는 백암장 근처의 형제상회란 곳에서 10여년 동안 같은 의류 장사를 하다 이곳에 장을 펼치게 된 지는 20여 년이 되었다. 부부는 안성에 거주하며 백암장-안성장-죽산장을 고루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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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운(啓運). 아버지는 이기남(李起南)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부인은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이계복은 어려서부터 어버이 섬기는 것을 지성으로 하여, 부모님이 병이 들면 항상 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였으며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였다. 아버지가 학질에 걸렸을 때, 어떤 이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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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이계복의 정려각. 이계복의 자는 계운(啓運)으로, 어려서부터 오직 어버이 섬기는 것을 일로 삼아 몸소 살펴 불편함이 없게 하였다. 부친이 학질에 걸려 위독하던 중, 사람 고기를 먹어야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자신의 다리 살점을 베어 부친의 병환을 고쳤다고 전한다. 백암면을 지나는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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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 정종(定宗)의 열 번째 아들 덕천군(德泉君)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좌승지 이진하(李鎭夏)이다. 이규헌(李奎獻)[1669~1731]은 1705년(숙종 3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아버지가 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향하여 병간호에 전념하였다. 한겨울 아버지가 잉어찜이 먹고 싶다고 하자 20리나 떨어진 곳을 찾아가 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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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상산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규헌의 정려각. 이규헌[1669~1731]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1669년에 좌승지 이진하(李鎭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균진사를 거쳐 37세에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이 해에 부친이 병환으로 눕게 되자, 장남의 도리를 저버릴 수 없다 하여 형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관직을 사퇴한 뒤 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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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定宗)의 열째 아들인 덕천군(德泉君)의 11세손이며, 원종공신(原從功臣) 이기헌(李基獻)과 효자 이규헌(李奎獻)의 조카이다. 이원복은 연로한 아버지를 정성으로 보필하였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늘 곁에서 시중들었을 뿐 아니라, 길을 갈 때는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업고 다녔다. 아버지의 상을 당한 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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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원복의 효행비. 이원복은 부친이 노쇠하여 보행이 어려워지자 늘 업고 다녔으며, 부친 사후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곡묘하였고, 이 기간 중에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와 같은 행실이 조정에 알려져 1736년(영조 12) 정려문이 내려졌다.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상산마을 입구 소로변의 오른쪽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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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하종의 선정을 기리는 비. 일제강점기인 1937년 2월에 이 마을의 거부였던 이하종이 재물을 내어 주변의 이웃들에게 베푼 덕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협동마을의 서쪽 평야를 낀 소로변에 남향(南向)하여 있다.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형 옥개석으로 되어 있다. 총높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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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백암장터는 지금의 장터에 비해 훨씬 컸다. 지금의 도로에서부터 청미천 언덕까지 난전이 이어졌고 길이도 훨씬 길어 백암버스정류장에서 현재의 면사무소 뒤까지 장이 늘어섰다. 장꾼들의 수도 훨씬 많아 한때는 백암장에 나오면 못 구하는 물건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장 구경하랴, 얘기 나누랴, 술 한 잔 하랴, 하루 네 번 다니던 버스 막차를 놓치고 집까지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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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은 단순히 화려한 꽃들을 전시하여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식물원’이라고 이름 붙이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생명 유전자원인 식물종을 가능한 많이 확보하여 일반인들에게 전시하며, 다양한 연구활동을 통해 식물 보전과 산업화를 실현시키고, 더불어 현장 교육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한택식물원은 이러한 식물원의 기본 역할에 충실하면서, 이를 통해 세계적인 식물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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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에는 10여 곳의 잡화상이 있으며 대부분 초로의 여성들이 소규모의 좌판을 펴고 있다. 상도의를 지키려는 듯 한 곳에 몰려 있지 않고 군데군데 거리를 두고 있어 설사 놓치고 간 물건이라도 다시 찾는 번거로움 없이 구입할 수 있게 했다. 판매되는 물품은 대동소이하며 다만 물량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더라도 중형승용차 한 대 분량이 안 될 만큼이다. 우리 생활에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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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에는 7월 백중이면 인근의 주민들이 몰려와 더욱 장사진을 이뤘다. 이 날은 씨름대회가 열리고 사당패들이 들어와 한바탕 놀고 물러났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백중날 여는 동네잔치나 연희가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었다. 그러나 백중장날에 열리는 백암장만큼은 예전의 흥겨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백중이 가까워지면서 세벌 논매기가 끝나게 된다. 따라서 농사의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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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평리는 백암면 남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장평1리[장재]·장평2리[율애]·장평3리[평율]·장평4리[강정] 등 4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장재리(長在里)에서 ‘장’자와 평율리에서 ‘평’자를 따서 장평리라 하였다. 장재는 장재미로 불려왔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장재라 하였다. 본래 마을에 거부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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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 율애마을 뒤쪽에 있는 구릉의 꼭대기에 위치한다. 이 곳은 청미천의 가장자리로 유적의 앞쪽에는 들판이 펼쳐져 있고, 서쪽에는 해발 279m의 정배산과 해발 417m의 석술암산 등 산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북쪽의 용천천과 남쪽의 율곡천이 청미천으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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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장평리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장평리 유물산포지1과 장평리 유물산포지2로 구분하고 있다. 장평리 유물산포지1은 장평리 율애마을 뒤편의 능선 정상부 일대에 형상되어 있다. 유물산포지2는 장평리 유물산포지1이 위치한 능선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간 가지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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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 장자터마을에 있던 서낭당. 장평리 장자터 서낭당은 장평1리의 장자터마을에서 들판으로 넘어가는 나지막한 언덕인 장등고개의 마루에 있었다. 신목과 돌무더기로 된 형태로, 서낭나무는 느티나무 한 그루이며, 그 아래에 돌무더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장평리 장자터 서낭당은 동제의 대상은 아니고 개인적인 치성을 드리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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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이 바르고 충효를 실천하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실력 있는 어린이, 창의성을 발휘해서 노력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4년 4월 백암공립보통학교 부설 장평간이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44년 장평공립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 1996년 3월 장평초등학교로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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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와 석천리에 걸쳐 있는 산. 주 능선은 전체적으로 북동~남서 방향인데, 남서쪽으로 달기봉과 이어지고, 그곳에서 활처럼 휘어 북동쪽으로 구봉산(정배산의 북서쪽에 위치)과 연결된다. 남쪽의 달기봉에서 갈라진 능선은 동남쪽으로 346고지와 연결된다. 346고지에서 남쪽으로는 멀리 국사봉과 보개산으로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멀리 비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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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있는 제일약품(주)의 제품 생산 공장. 제일약품(주) 백암GMP공장은 1986년 10월 31일 준공되었으며, 1987년 12월에는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기준(KGMP) 적격 업체로 지정되었다. 1999년 5월에는 우수 원료 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기준(BGMP) 적격 업체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 1월에는 우수 의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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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석천리·장평리에 걸쳐 있는 산. 하나의 독립된 산이고, 전체적으로는 경사가 완만한데, 정상부는 남쪽을 향하여 활 시위를 당긴 듯, 북쪽에서 남쪽을 거쳐 동쪽까지 휘어져 있고, 그 남사면은 경사가 급하다. 북사면의 유수는 용천개울을 따라 청미천으로, 그리고 남사면의 유수는 새내와 계천을 거쳐 청미천으로 각각 흘러들고 있다. 서쪽 산자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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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조비산 정상부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조비산 유물산포지는 해발 294m의 조비산 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조비산은 융기로 인해 형성된 암산으로 산정부에는 약간의 평지가 조성되어 있지만, 암반이 튀어나온 부분이 많아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니다. 산 정상 조금 못 미쳐 있는 큰 암석 하단부에서 무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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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조계종 용주사 말사. 조천사는 『용주사 본말사지』에 의하면 1732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마을에 심씨 성을 가진 처자가 지병으로 고생하다 조비산에 올라 약수를 발견하였다. 심씨는 이 물을 매일 산에 올라가 마셨는데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부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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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좌전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좌전고개의 유래」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박포(朴苞)[?~1400]와 관련되어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박포는 조선 전기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의 조전절제사로 전공을 세워 죽성군에 봉해지고 중추부지사가 되었으나, 상작이 낮다고 불평하여 이방원의 미움을 사서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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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오를 시조로 하고 박원형을 조상으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에 세거 성씨. 죽산(竹山)은 조선 시대에는 현재의 경기도 용인시와 안성시 일부가 속해 있던 지명이다. 죽산박씨(竹山朴氏)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 경명왕의 넷째 왕자인 죽성대군(竹城大君) 박언립(朴彦立)으로부터 문호가 열리게 되었다. 『죽산박씨족보』에 의하면 박언립의 아들 박기오(朴奇悟)가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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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의(安令儀)와 안원형(安元衡)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죽산안씨는 구죽산과 신죽산 두 파가 있는데, 구죽산의 시조는 고려의 상서좌복야 안영의(安令儀)이고, 신죽산의 시조는 안향의 증손인 시중(侍中) 안원형(安元衡)이다. 구죽산에서는 고려시대에 공민왕의 국구로서 우문관대제학을 지낸 안극인(安克仁), 그의 아들로 도순문사(都巡問使)를 지낸 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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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리에 속한 마을로 백암4리이다.백암리 북쪽 구백암 사이에 있는 마을로 땅이 질어서 질은 골이 지렁골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는 구백암으로 질러가는 골짜기에 마을이 있어서 지렁골이라 하였다는 등의 속설도 있다. 세대수 67호, 인구수 18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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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와 가창리를 잇는 도로. 시점은 경기도 안성시와의 경계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 사천마을이고, 종점은 경기도 이천시와의 경계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서 출발하여 용천리·근삼리·근창리·내수곡·백암시장·근곡리 등을 지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에 다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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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의 한 귀퉁이에서 철물가게를 열고 있는 김종택(71세, 안성) 씨는 백암장에만 30년을 다녔다. 안성장-일죽장(주래장)-장호원장-죽산장-백암장을 돌며 장사를 했는데 최근 들어 장사가 수월치 않아서 한 군데씩 줄이다가 4~5년 전부터는 안성장과 백암장만 다니고 있다. 처음 백암장에 왔을 때는 양조장 앞에 자리를 잡았고, 후에 싸전거리로 옮겼다가 쇠전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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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쌀은 백암(원삼면 포함)에서 생산되는 용인시의 대표적인 1급 특미(特米)이다. 백암의 관개수원인 청미천(淸渼川)은 원삼면 맹리의 건지산과 좌전고개에서 발원, 동류(東流)하여 백암의 넓은 들판을 적셔 용인의 특산품인 백옥쌀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여기에다 맑은 공기, 긴 일조량, 기름진 옥토 등 천혜의 자연조건에서 과학적인 농법으로 백옥쌀이 생산되고 있다. 백옥쌀은 백암농협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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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리에 속한 마을로 백암5리이다. 속칭 틀안이라고 한다. 기(機)는 ‘틀’의 한자 표기이고 안(安)은 본래 안쪽(內)과 같은 뜻이나, 소리를 따라 기안이라 하였다고 한다. ‘틀’은 ‘들’의 뜻으로 생각된다. 즉 ‘들’이 일반적으로 ‘-뜰‘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 틀안이에서는 ‘-들’이 아니라 ‘들-’으로 앞에 들어 있다. 이때 -들〉-뜰〉-틀의 순서로 발음이 격음화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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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면(白岩面)은 용인시 처인구에 속한 면으로, 용인시의 동남단에 위치한다. 동쪽은 이천시 모가면·일죽면, 서쪽은 용인시 원삼면, 남쪽은 안성시 삼죽면, 북쪽은 이천시 마장면·호법면과 접한다. 본래 죽산군 근삼면에 속했던 지역이었으며, 1914년 4월 1일 전국행정구역 개편 당시 외곽에 있는 4개 면을 합쳤다고 하여 이름을 외사면(外四面)이라 하였다. 1995년 광복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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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충노(忠奴). 피무작금의 성(姓)은 피(皮), 이름은 무작금(蕪作今)이다. 진사 정시익(鄭時翼)의 종으로 죽산도호부 근삼면 외초동(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에서 살았다. 정시익이 여덟 살 무렵 피무작금은 목천(木川)에 있는 여동생 집에 심부름을 가 있었다. 이때 정시익의 부모가 전염병에 걸려 모두 죽자, 이웃들은 병을 두려워하여 감히 돌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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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으로 한약재만 취급하는 약재상은 백암농협 옆에서 시장으로 내려오는 골목 입구 우측에 좌판 한 곳에만 있다. 한약재상인 목진웅(용인시 이동면 출생) 씨는 4년 전 처음 좌판을 펼 때는 백암장(1.6)에서만 장사를 하였으나 5일장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껴 지난 해부터는 여주장(5.10)과 이천장(2.7)을 돌고 있다. 한약재는 주로 토종오가피, 헛개열매, 건삼, 대추, 산초, 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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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에 허적이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10월 9일 백암면 가창리에서 임국재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수록하였다. 조선 후기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허적은 당시 충청도의 외사면이었던 가창리 지경에서 출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허적이 가창리 근방에 있는 수정산 암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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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197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 황석마을의 신철종 전도사가 김형림 집사의 집에서 6명의 교인과 예배를 보면서 황덕교회가 시작되었다. 1980년대 중반 교회 건물을 신축하여 2008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황덕교회는 수요일과 일요일에 예배가 있으며, 봉사활동으로 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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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휴양 시설. 황새울관광농원이 있는 마을 이름이 황새울이다. 옛날에 황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와 서식하던 곳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 마치 황새우리와 같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황새울이라 부른다. 마을을 지나는 실개천 상류에 자리 잡고 있는 농원의 이름도 마을 이름을 따서 황새울관광농원이라 붙였다.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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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자동차 용품 제조업체. 자동차 소비자들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용품을 제공하고자 설립되었다. 1979년 4월에 훠링을 창업하였고, 1985년 7월 자동차 용품 제조업체 훠링을 설립하였다. 1996년 10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공장을 완공하였다. 1999년 3월에 주식회사 훠링으로 법인을 설립하였다.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