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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살았던 류당근의 후손이 소장한 조선 후기 과거시험 답안지. 조선 후기 류당근(柳唐根)[1816~1886]이 선향인 용인으로 낙향할 때 가지고 온 문서로 현재 증손 류만희(柳萬熙)가 소장하고 있는 과거시험 답안지. 조선시대 과장에 나아가 과거시험을 본 후 장원이 아닌 경우는 그 답안지를 응시자에게 돌려주었다. 본 답안지는 소과, 대과 두 가지의 답안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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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순조 1) 간행된 여류학자 사주당 이씨의 태교서.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1739~1821]는 여류문장가이며 박학으로 당세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유한규(柳漢奎)와 혼인하여 1남 3녀를 두었는데, 34세 되던 해에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에서 출산한 아들이 유희(柳僖)[1773~1837]이다. 유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음운학자로서 독창적인 방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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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갈담리 선사유적은 세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갈담리 540-4[독점로113번길 18-15] 일원의 유적을 갈담리 선사유적1, 갈담리 580-14 일원을 갈담리 선사유적2, 갈담리 산8[갈월로 33] 일원을 갈담리 선사유적3으로 구분한다. 갈담리 선사유적1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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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강세황의 서첩.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은 조선 후기 영조·정조 연간의 문인이자 서예가이며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서화 평론가로 시·서·화 삼절로 알려져 있다. 당대 최고의 화원인 김홍도(金弘道)·신위(申緯)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강세황 행초 표암 유채』는 끝에 경술년(庚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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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생원. 강숙지는 조선 중기 중종 때의 생원으로서, 용인현에서 살았는데, 도둑 누명을 쓰고 발가락이 뽑히는 형장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더불어 그 아내도 결박당하여 감금되었다가 풀려났다. 이에 명확히 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신(武臣)인 포도장(捕盜將) 이종례(李宗禮)가 함부로 형장을 써서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하였다며 조정에서 이종례를 추고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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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시장. 개천장은 양지와 이천의 경계에 위치했던 장시이다. 개천장은 설시(設市) 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신설되었다가, 경기도 이천 오천장의 설시와 함께 이설·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개시일은 4일과 9일의 5일장이었다. 개천장에서 거래되었던 물품은 쌀·면포·마포·과일·어염·연초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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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구려 때 용인의 지명은 구성(駒城)이었고, 멸오라는 별칭이 있었다. 신라 경덕왕 때 전국 군현을 정비하면서 그 명칭을 거서로 바꾸고 한주(漢州)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구성은 본래 큰 성 또는 높은 성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데, 거서도 크다는 뜻이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그 개칭 시기에 대해서 757년(경덕왕 16)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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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건지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내지봉수(內地烽燧). 건지산 봉수는 동쪽으로 안성 망이산 봉수(직선 거리 23㎞), 서쪽으로 용인 석성산 봉수(직선 거리 15.5㎞)와 교신하였다. 봉수가 위치하는 건지산은 산 정상의 중심부가 약간 움푹한 채 남북으로 길게 마안형(馬鞍形)의 능선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석성산 봉수가 마주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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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경종지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이 의주까지 몽진하는 데 참여하였다. 1597년(선조 30) 임실의 수령으로 재직 중, 이 고을이 새로 병화를 겪어 흩어진 백성들을 소집하고 창고 곡식을 수습하는 일을 결코 예사 사람에게 위임할 수 없는데, 수령된 자의 사람됨이 용렬하여 탕패한 고을을 다스리기에 적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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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시와 편지를 모은 첩(帖). 1680년(숙종 6)에 홍수주(洪受疇)가 경북 영덕으로 떠날 때 친구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장도를 기원하기 위해 지은 증별시(贈別詩)와 편지들을, 조선 후기에 해주오씨 문중에서 묶은 것이다. 첩장(帖裝)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고간(古簡)’으로, 크기는 가로 28.7㎝, 세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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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용인시 수지구 고기2리 관음사에서 서편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광교산에서 뻗어 내린 나지막한 구릉의 끝에 위치한다.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백자는 비교적 양질의 백토를 사용했으며, 유색은 회백색을 띠고 굵은 모래를 받쳐 포개어서 구웠다. 문양 장식은 전혀 없으며 그릇 종류로는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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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용인 고기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용인 고기동 유물산포지1·2·3으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분당에서 국지도 23호선을 따라 경기도 성남시와 용인시의 시계가 지나는 동원교를 건너 분기되는 지방도 14호선으로 진입하여 3.5㎞ 정도를 가면 낙생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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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으로 넘어가는 국도 304호선변의 안골마을 뒤쪽, 해발 170m 정도의 야산에 위치한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용인시 문화유적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으로, 많은 양의 백제 토기편들이 채집되었다고 한다. 채집된 토기편들은 외면에 격자문과 승석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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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의 역사. 고려는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며 현재의 경기도 용인 지역은 고려시대에 용구현(龍句縣)으로 지칭되었다. 고려는 통일 전쟁 기간부터 군현의 주속 관계를 통해 지방을 지배하였다. 통일을 이룬지 4년이 지난 940년(태조 23)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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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유물산포지. 고림동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하고 있는데 각각을 고림동 유물산포지1, 고림동 유물산포지2로 구분하고 있다. 고림동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고림동 758-1답[고림로110번길 23-21] 일원에 위치한다. 해발 222m의 봉두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능선 사이의 곡간 경작지 일대에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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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기흥 IC에서 동쪽으로 국지도 23호선을 따라 500m쯤 나아가 나타나는 ‘강동냉장’의 맞은 동편 구릉에 자리한다.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6점이 채집되었다. 채집된 빗살무늬토기의 바탕흙은 다량의 가는 돌가루에 약간 굵은 돌가루가 조금 섞인 점토질이다. 또 토기의 표면은 매끈하게 다듬었으나 내면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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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고매동 유물산포지는 세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각각을 고매동 유물산포지1, 고매동 유물산포지2, 고매동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하고 있다. 고매동 유물산포지1은 공세천 변의 신고매 주변과 배후의 구릉지 일대에 위치하며 넓은 범위에 걸쳐 유물이 산포되어 있다. 고매동 유물산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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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무덤. 우리나라에서 고분을 비롯한 매장 유적 중 가장 이른 것은 강원도 석회암 동굴 지대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인 흥수굴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매장 유적은 각 시대별로 변화하였다. 신석기시대의 패총 유적에서 발견되는 매장 유구는 주로 토광을 만들고 여러 가지 치레걸이로 장식한 시체를 안치하는 간단한 구조였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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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 대주천 마을에서 남동쪽 진위천 방향으로 뻗어나간 나지막한 구릉 말단부에 위치한다. 채집된 유물들은 외면에 사격자문을 전면 타날 시문한 후 횡침선을 돌린 연질의 백제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지표에 노출된 토양이 마사토인 점으로 보아 유적의 상당한 부분이 유실되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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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태종실록(太宗實錄)』권28에, "용구(龍駒)와 처인(處仁)을 병합하여 용인(龍仁)으로 하고 광주(廣州) 임내인 주계(朱溪)·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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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묘제 중 하나. 고인돌은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예부터 고엔돌·되무덤·도무덤 등으로 부르거나 거북바위·독바위·칠성바위·마귀할멈 바위 등으로 불려진다. 대부분 강이나 바닷가 옆의 평지, 구릉 지대에 있으며 드물게는 산기슭이나 산마루에 있는 경우도 있다. 기능에 따라 제단 고인돌과 무덤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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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는 희성(希聖)·응성(應聖), 호(號)는 휴암(休巖). 창원공씨의 시조인 공소(孔紹)의 5대손이자, 공숙(孔俶)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공의달(孔義達)이다. 어머니는 죽산 박원인(朴元仁)의 딸이며, 처는 파평 윤영세(尹永世)의 딸이다. 공서린은 1507년(중종 2) 진사시를 거쳐 같은 해에 급제하였다. 낭관과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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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공세동 유물산포지는 6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630구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1, 162전 일대를 공세동 유물산포지2, 291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3, 324-2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4, 81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5, 602유 일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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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정옥형과 아들 정응두의 신도비. 정옥형은 1513년(중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검열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대사간,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 데 힘썼으며, 당시 김안로의 권세가 높아지자 조정을 떠나 외지를 돌며 민심을 두루 살피기도 하였다. 1544년(중종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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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字)는 사홍(士弘)·성지(星之). 공서린(孔瑞麟)의 9대손이며, 공원인(孔源仁)의 아들이다. 공윤항은 가세가 몹시 빈곤하였으나, 1792년(정조 16) 정조가 초계문신(抄啓文臣)을 직접 시험하는 과강(課講)과 일차유생의 전강을 실시할 때 학문이 뛰어나다고 해서 왕명으로 특별히 전시를 볼 수 있었다. 1794년 알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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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1576년(선조 9) 전라도우수사, 1578년 경상도병마절도사, 1591년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방어사로서 용인·금산(錦山)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패주, 사헌부로부터 전란 이후 단 한 번도 용감하게 싸움을 못한 졸장(拙將)이라 하여 탄핵을 받았다. 1595년 우변포장(右邊捕將)·행호군(行護軍)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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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 호는 석천(石川). 시호는 문헌(文憲).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곽돈효(郭敦孝)이며, 어머니는 조운경(趙雲卿)의 딸이다. 곽원진은 문과에 급제하고 1306년(충렬왕 32) 총랑(摠郞)으로서 원 황제의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성절사로 파견되었다. 당시는 고려가 정치적으로 몽고의 간섭을 받던 시기였다. 여몽관계가 중요했던 시기에 곽원진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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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청나라 군대와의 전투. 1637년 1월 4일부터 6일까지 전라병사 김준룡이 광교산에서 청나라 장수 양굴리[楊古利]가 이끄는 청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1636년 12월 1일,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침략하자 인조는 세자와 백관을 대동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이후 인조는 1만 3,000여 명의 군사로 남한산성을 지키도록 하고 도원수·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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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백제의 취락 유적. 구갈동 유적은 경기개발공사에서 시행한 구갈3 택지개발 지역에 위치하며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이후 삼국시대의 원형 수혈유구들은 현 위치에 보존되었으며, 나머지 유구들은 조사 후 모두 훼멸되었다. 이 지역은 조사자에 의해 편의상 A, B, C 세 개 지역으로 나뉘어 보고되었는데,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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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기. 인류가 연모를 사용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0만 년 전이며, 이 시기부터 빙하가 물러간 약 1만년 까지를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전기 구석기는 인류가 연모를 처음 사용한 시기부터 약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는 시점까지다. 중기 구석기는 약 12만 년 전부터 3만 5천 년 전까지이다. 이때 사람들이 만든 연모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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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고구려의 행정 구역. 17세기 중엽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본래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가 빼앗아 구성현으로 삼았다고 서술되어 있고, 19세기 중엽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본래 백제의 멸오였는데 후에 구성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가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조령과 죽령 지역까지 점령하게 됨에 따라 한강 유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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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통신 기관 중 하나로, 조선 초기에 경기도 용인 지역에 금령역(金嶺驛)과 함께 설치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기 중엽)·『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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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유배된 문신. 황보인(皇甫仁)[?~1453]의 사위이며, 홍원숙(洪元淑)의 동서이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한명회(韓明澮)[1415~1487] 등과 함께 문종의 유지를 받드는 황보인·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자 권은은 용인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의금부(義禁府)에서 백호(百戶)를 보내어 쫓아가서 체포하여 변방에 안치하도록 건의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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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하(景賀), 호는 창백헌(蒼白軒)·남애(南厓)·계형(繼亨)이다. 증조부(曾祖父)는 권항(權伉), 할아버지는 권속(權謖), 아버지는 권수(權𢢝)이다. 1710년(숙종 36) 생원(生員)이 되고, 1713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에 등용되어 정자(正字)가 되었다. 1716년 검열,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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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 장계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백암면소재지에서 지방도 329호선을 따라 안성 삼죽 방향으로 가면 근삼교를 지나기 전에 장계마을이 있다. 고인돌 유적은 장계 뒷산의 능선(해발 118m)에 위치한다. 유적 주변의 지세는 동쪽에 청미천이 흐르고 이 물줄기를 따라 비교적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확인된 3기 중에 1호의 덮개돌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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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산포지. 근창리 유물산포지는 네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근창리 유물산포지1, 근창리 유물산포지2, 근창리 유물산포지3, 근창리 유물산포지4로 구분하고 있다. 근창리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 새터말의 야산 서사면상 경작지 일대에 형성되어 있고, 근창리 유물산포지2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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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표시석. ‘금양(禁養)’이란 ‘풀과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여 숲과 나무를 기르는 일’을 의미하므로 금양계(禁養界) 표석은 땔감 채취 등을 금지하는 구역임을 알리기 위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뒷면에는 구역의 범위도 명기되어 있다. 머리 부분이 둥글게 처리된 원수형(圓首形) 비석으로 장방형 대리석제 받침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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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금어리 유물산포지는 경안천의 지류인 금어천을 따라 난 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가다보면 금어리 어매실마을에 이르게 되는데, 이 어매실마을의 남쪽에 길게 뻗은 구릉지에 형성되어 있다. 청동기시대 무문토기편과 통일신라시대의 회색 경질토기호와 완 등의 조각이 채집되었다.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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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의금부 관원들의 계첩. 『금오계첩(金吾契帖)』은 조선 후기에 의금부에서 근무하던 관원들의 모임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계첩(契帖)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해주오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1817년(순조 17) 8월에 의금부에서 근무하던 10여 명이 모여 계회(契會)를 마련하고 이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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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인조 16) 김육이 기묘사화와 관련된 인물들의 전기를 모아 간행한 책. 『기묘록(己卯録)』은 본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를 당한 김정국(金正國)의 『기묘당적(己卯黨籍)』과 기묘팔현(己卯八賢)의 한 사람인 안당(安瑭)의 손자 안로(安璐)가 저술한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기묘당적』은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인물 94인의 생년·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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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지방세력가. 기훤(箕萱)은 신라 말기 안성·죽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방 세력가로 가계나 출생에 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없다. 진성여왕 때 실정이 겹치고 재해가 잇달아 일어나던 가운데 국내의 여러 주와 군에서 공물과 조세를 바치지 않으므로 국고가 비어 재정이 궁핍하였다. 이에 신라 조정이 공부(貢賦)를 독촉하자 889년(진성여왕 3) 전국에서 이에 저항하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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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김덕붕의 선정비. 1571년(선조 4) 양지현감에 부임하여 1576년(선조 9)까지 재임한 김덕붕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의 용동중학교 정문 못 미쳐 동아일레콤 담장에 남향(南向)으로 서 있다. 비신과 이수가 일석(一石)으로, 비좌는 임시로 마련하여 비신을 고정하고 있다. 비의 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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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통신 기관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기 중엽)·『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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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김범문이 용인 지역을 공격하였던 사건. 김범문이 한산주를 공격할 때 한산주의 직할 영현인 거서현이 그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거서현은 지금의 용인 지방으로 비정되고 있으므로 김범문의 난을 당하여 직접적인 전투를 치룬 정병들이 바로 용인 출신의 장정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범문의 할아버지 김주원은 원성왕과의 왕위 계승 경쟁에서 패하여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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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심(伯深), 호는 운소(雲巢).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의 손자이며, 형조판서 김효대(金孝大)의 아들이다. 김사목은 문음(文蔭)으로 관직에 나간 뒤 김제군수를 거쳐, 1772년(영조 48)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부교리, 보덕(輔德), 승정원동부승지를 거쳐 1774년에는 승지가 되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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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사백(斯百), 호는 식암(息庵)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육(金堉)이고, 아버지는 병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이다. 1657년(효종 8) 진사가 되었으며,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장원하여 전적이 된 후 이조좌랑·정언·지평·부교리·수찬·헌납·교리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1674년 겸보덕(兼輔德)에 이어 좌부승지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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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김호(金灝)이다.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고, 1696년(숙종 22)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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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이다. 할아버지는 한성소윤(漢城少尹) 김근(金近), 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이며, 어머니는 진천(鎭川) 송씨 송학(宋翯)의 딸이며, 부인은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수찬,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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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아버지는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아들은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아들 김처는 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죽자 미쳤으며, 김허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실시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로로 나섰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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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상(道常), 호는 기오당(寄傲堂). 충정공 김약시(金若時)의 후손이다. 김우형은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1657년 정언(正言), 1661년 헌납·사간, 이듬해 집의·홍문관교리를 지냈고, 시독관으로 임금 앞에서 통감강목과 대학을 강론하였다. 1669년 좌부승지, 이듬해 도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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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 김균(金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찰방 김성진(金聲振)이다. 처는 정응규(鄭應奎)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성균관에 있을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모하자 몇몇 유생들과 함께 이를 비판하는 복합상소를 올려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하옥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1627년 전주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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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김유의 초상화. 단령(團領)과 오사모(烏紗帽)를 갖춘 전형적인 관복본의 초상화로 얼굴과 몸체 모두 좌안 9분면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 ‘검재김선생화상 육십사세시사(儉齋金先生畵像 六十四歲時寫)’라고 표제를 종서(縱書)하여 검제 김유의 나이 64살 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높은 사모를 썼으며, 짙은 녹색의 단령을 입었다. 두 손은 공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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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이다. 증조부는 김덕수(金德秀), 할아버지는 김비(金棐),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고, 외조부는 조희맹(趙希孟)이다. 아들은 김좌명(金佐明), 손자는 김석주(金錫胄)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후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16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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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이중의 선정비. 1782년(정조 6) 용인에 부임하여 1783년(정조 7)까지 재임한 김이중의 선정을 기념하여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소재하였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 도로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으로 서 있다.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옥개석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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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 일찍이 용인 탁영봉(濯纓峰)의 한림대에서 김구(金龜) 등과 학문을 하였다. 그에 따라 봉우리도 김일손의 호를 따 탁영봉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이 되었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가 되었다가 곧 정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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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학광(學光). 증조는 지중추부사 김영유(金永濡), 할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 아버지는 김세필(金世弼)이며, 외조는 이탁(李鐸)이다. 김저는 1539년(중종 34)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박사, 이조좌랑을 지냈다. 1545년(명종 1)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중형을 받고 안동으로 유배되었으며, 1547(명종 2)년 벽서(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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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광교산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부(秀夫). 할아버지는 전설사별좌(典設司別座) 김영(金瑛)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두남(金斗南)이며, 어머니는 도호부사 김희필(金希弼)의 딸이다. 1608년(선조 41)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황해도·경상도·함경도의 병영에 근무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인동부사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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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숙진(叔珍), 호는 눌암(訥庵). 조부는 김려(金濾), 아버지는 형조참의 김언침(金彦沈)이다. 1567년(명종 22)에 진사가 되고, 156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1570년에 검열(檢閱)이 되고, 이후 대교·봉교·전적·형조정랑·검상·사인·이조정랑 등의 관직과 지평·집의·정언·헌납·사간·수찬·교리·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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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의 금령 전투에서 승리한 의병장. 본관은 언양.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이다. 증조부는 김응복(金應福), 할아버지는 김식(金湜), 아버지는 김중기(金重器)이며, 외할아버지는 이용(李蓉), 부인은 박덕창(朴德昌)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년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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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서흥(瑞興). 자(字)는 여문(汝文), 호(號)는 창죽헌(倉竹軒)이다. 아버지는 충무위 부사과 김린(金燐)이다. 죽산부 양지현(陽智縣) 월노동(月老洞)[현재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에서 태어났다. 1555년(명종 10) 6세 때 서당(書堂)에서 글을 깨우쳐 즉흥시를 지었으며, 9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그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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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도원(道源).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거주하였다. 1759년(영조 35) 정시(庭試)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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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서흥(瑞興). 할아버지는 충무위 부사과 김린(金燐)이고, 아버지는 김충수(金忠守)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아버지 김충수가 4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농민을 규합해 의병을 조직하여 10월 말경에 죽산(竹山)의 청용산(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옥신리 경계)에 주둔하고 있던 왜장(倭將) 후쿠시마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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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숙(平叔). 1735년(영조 11)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찰방(察訪)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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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중(子中), 호는 낙애(樂涯). 1691년(숙종 17) 증광시(增廣試) 문과에 갑과(甲科) 제2위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지사(知事)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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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인 박세채의 초상화. 관복본은 녹색 단령(團領)을 입은 전신 교의 좌상의 정면상이고, 편복본은 동파관에 도포를 입은 전신 정면 입상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얼굴 모습은 거의 흡사하여 편복본은 관복본의 얼굴을 보고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 두 점 모두 표제나 명문은 보이지 않아 제작 경위나 작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관복본은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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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일소(逸少), 호는 일호(一濠), 초명은 영시(永詩). 숙종 연간의 문신 남구만(南九萬)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부사 남진화(南進和)이다. 부인은 심대항(沈大恒)의 딸인 청송(靑松)심씨[1808~1848]이다. 자식은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남주원(南周元), 남시본(南蓍本)이나, 남주원은 백부인 남영서(南永書)에게 양자로 들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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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남곡리 은니골 골짜기 속에 집 터를 닦기 위해 평탄 작업을 한 곳에서 발견된 가마 터로 정확한 유적의 위치와 범위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발굴조사는 되지 않은 상태이다. 남곡리 요지에서 백자편·요도구·가마벽편 등이 발견되고 있다. 백자는 대접과 접시 종류가 대부분이며 문양은 전혀 없다. 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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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또는 미재(美齋). 개국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남식(南烒)이고, 아버지는 현령 남일성(南一星), 어머니는 권박의 딸이다.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문하에서 수학,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5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가주서·전적·사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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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의 남춘희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남구만의 초상화. 남구만 초상은 현재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 파담마을에 사는 남구만의 후손인 남춘희가 소장하고 있다. 본래 남구만 초상은 모두 5본이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충청도 해미(海美) 영당(影堂)에 임진년(壬辰年)에 봉안하였다는 초상은 실전되었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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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도사(道士).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격암(格庵)이다. 남사고는 일찍이 이인(異人)을 만나 공부하다가 진결(眞訣)을 얻어 비술(秘術)에 정통하게 되었고 앞일을 정확하게 예언하기도 하였다. 명종 말기에 이미 1575년(선조 8)의 동서분당(東西分黨)을 예언하였고, 1592년(선조 25)에 백마를 탄 사람이 남쪽으로부터 나라를 침범하리라 하였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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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백제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남곡초등학교에서 남사면사무소로 가는 지방도 333호선을 타고 남쪽으로 가다 보면 후촌교를 건너게 되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오목재마을이 나오고, 남산봉 유물산포지는 이 마을의 뒷산인 해발 104m의 나지막한 남산봉 정상에 자리한다. 동쪽으로는 방아천, 서쪽으로는 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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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자빈(子彬)이다.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승지 남언순(南彦純)이고 아버지는 부호군 남타(南柁)이며, 외조는 장사랑 현덕형(玄德亨)이다. 남구만(南九萬)의 조부이다. 부인은 연산 서주(徐澍)의 딸이다. 남식은 문음(門蔭)으로 집현전참봉을 배수한 이후, 사옹원봉사·장악원직장·사복시주부를 지냈다. 외직으로 무주현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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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있는 조선 중기와 후기의 남양홍씨 집안의 무신 묘역. 남양홍씨 시정공파 무관 묘역에 있는 무신들은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다. 임진왜란 때 수원 방어에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책훈(策勳)된 홍제(洪霽), 홍제의 증손자로 1655년(현종 6)에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의 위계에 올랐던 홍하창(洪夏昌), 1668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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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개국공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남천로(南天老),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남을번(南乙蕃)이며, 형은 영의정 남재(南在), 아우는 우정승 남지(南贄)이다. 1374년(공민왕 23) 성균시에 급제, 1380년(우왕 6) 사직단직(社稷壇直)이 되고 이어서 삼척지군사(三陟知郡事)가 되어 왜구를 격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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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의령남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남은·남재 관련 고문서. 「남은유서분재기부남재왕지(南誾遺書分財記附南在王旨)」는 조선의 건국공신인 남은(南誾)[1354~1398]의 재산 상속문서인 분재기(分財記) 형식의 유서 한 점과 남재(南在)[1351~1419]에게 내려진 왕지(王旨) 한 점을 말한다. 남은은 조선을 건국할 때 공을 세워 1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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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무신. 기개와 호기의 대장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로 출생지가 분명하지 않으나, 『용인읍지(龍仁邑誌)』 ‘충효열 인물’ 조항 중에 “용기가 매우 뛰어났으며 이시애(李施愛)를 토벌, 건주위(建州衛)를 정복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라는 기록이 있어 용인 출신임을 가늠하게 한다.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태종의 부마인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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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 자는 중휘(仲輝), 호는 의졸(宜拙). 좌의정 남지(南智)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강원도 평강현감 남식(南烒)이다. 어머니는 연산서씨 증참판 서주(徐澍)의 딸이다. 형은 남일성(南一星)이다. 부인은 청송심씨 감역 심지함(沈之涵)의 딸이다. 아들이 요절하여 남수만(南受萬)으로 뒤를 이었다. 딸이 둘 있는데 장녀는 우의정 민진장(閔鎭長)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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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덕휘(德輝), 호는 의졸(宜拙). 부친은 남식(南烒)[1589~1650]이고, 동생은 남이성(南二星)[1625~1683], 아들은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다. 평소에는 어버이를 공경하는 데 힘을 썼고, 관직에 종사할 때는 절용(節用)을 우선으로 하였으며, 재물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1656년(효종 7) 내시교관(內侍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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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는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양지현(陽智縣)조에 “본래 수주(水州)에 속한 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인데, 본조(本朝: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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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대대리 요지는 세 곳에 흩어져 있어, 대대리 요지1·대대리 요지2·대대리 요지3으로 구분되는데, 대대리 요지1은 대대리 사기점을 넘어 광주시 도척면으로 가는 지방도 329호선의 좌측 편 밭에 위치한다. 대대리 요지2는 대대리 요지1에서 광주시 도척면 방향으로 250m 정도 더 가서 도로 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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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1840년(헌종 6) 관상감 간행 역서. 1840년에 간행된 『경자시헌서(庚子時憲書)』와 1847년에 간행된 『정미시헌서(丁未時憲書)』로 이루어져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불분권 각 1책이며, 목판본이다. 표제는 대청도광이십년세차경자시헌서(大淸道光二十年歲次庚子時憲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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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에서 이동읍으로 이어지는 국도 45호선을 통해 덕성리에 이르러 사챙이마을로 들어서면 좁은 콘크리트 포장 소로가 동편 구릉지까지 이어진다. 이 콘크리트 포장 소로와 연접하는 남쪽 경작지 일대에 유물이 광범위하게 산포하고 있다. 유물산포지 서쪽으로 약 700m 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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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횡구식 석실분. 동백동 고분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과 중동 일원에 건설 중인 용인동백 택지개발지구 내에 위치한다. 동백동 고분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해, 건설 공사에 따른 구제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양상이 밝혀졌다. 출토된 유물은 없다. 고분은 입구가 남단벽에 위치한 횡구식 석실분으로 자연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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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이원명이 야담과 패설(稗說) 등을 수집하여 편찬한 한문소설집. 『동야휘집(東野彙輯)』은 이원명(李源命)[1807~1887]이 역대 야담집을 참고하여 그 형식을 가다듬고 규범을 마련하여 편찬한 한문소설집이다. 이원명은 누구보다 야담 장르의 독자성을 인식하고 그 형식과 내용을 재정비하고자 했는데, 이록(移錄)·차용(借用)·번안(飜案)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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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동천동 유물산포지는 세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각각을 동천동 유물산포지1, 동천동 유물산포지2, 동천동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국지도 23호선을 따라 성남시와 용인시의 시계가 지나는 동원교를 건너 지방도 14호선으로 진입하여 1.5㎞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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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오명신이 편찬한 책. 조선 후기에 오명신(吳命新)[1682~1749]이 조상 선양 사업의 일환으로 선조들과 관련한 기록을 모아 필사하였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2권 1책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동호록(東湖録)이며, 크기는 가로 21㎝, 세로 25.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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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두창리 유물산포지는 세 곳에 나뉘어 분포하는데, 각각을 두창리 유물산포지1에서 두창리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한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 북촌의 목원규 효자 정문이 위치한 작은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뻗어 올라간 능선길을 따라 약 100m 가량 올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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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둔전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정광산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낮은 산자락의 끝부분에 위치한 구릉지 일대에 분포한다. 무궁화아파트 건너편인 둔전5리에 해당하는데, 현재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유적지 주변의 군부대까지 적갈색의 고토양층이 넓게 덮여 있다. 유적의 단애에 나타난 층위 단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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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한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전주이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류익(柳翊),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4남 중 막내로 1651년 용인에서 출생하였다. 류문수는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1682년 영등만호(永登萬戶), 1685년(숙종 11) 토산현감(兎山縣監)을 역임하였다. 1698년(숙종 24)에는 보성군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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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문화. 자는 계창(季昌), 호는 만암(晩菴). 영의정을 지낸 류상운(柳尙運)의 아들이다. 1697년(숙종 23) 과거에 합격하였다가 그 부친이 고시를 주관하면서 아들을 급제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삭과되었다가 1699년 다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첫 부임지인 용인현에서 재임기간 동안 선치하여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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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학원(學源). 찬성사(贊成事) 류만수(柳曼殊)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지낸 류은지(柳殷之)이다. 1445년(세종 27) 류사(柳泗)[1423~1471]는 내금위에 소속되었다가 1447년(세종 29) 오위(五衛) 부사정(副司正)으로 있었다. 이때 죄를 지어 죽은 할아버지 유만수의 녹권이 삭제당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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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 유순정(柳順汀)[1459-1512]의 초상화. 유순정 초상은 유순정이 1506년 중종반정 때의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책록되었을 때 제작된 공신상으로 보인다. 현전하는 유순정 초상은 모두 네 점으로, 표제와 발문이 남아 있는 완전한 형태의 전신상 1점, 표제와 발문이 없는 전신상 1점, 12등분으로 분리되어 훼손이 심한 전신상 1점, 역시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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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실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다. 증조부는 현령 류위(柳湋), 할아버지는 정랑 류성민(柳成民), 아버지는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었던 류흠(柳흠)이다. 어머니는 참찬 이지완(李志完)의 딸이다. 부인은 심수경(沈守慶)의 증손녀이며, 부사 심은(沈誾)의 딸이다. 외삼촌 이원진(李元鎭)과 고모부 김세렴(金世濂)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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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조사 당시에는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 하늘말의 북동쪽에 자리했으나, 유적이 있던 구릉은 단국대학교 신캠퍼스가 들어서면서 일부가 훼손되었고, 나머지는 원형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마북동 고분군1은 단국대학교 신캠퍼스 부지 조성에 따른 사전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지표 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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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마북동 고분군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어, 마북동 산2-2 일대 고분을 마북동 고분군1, 마북동 산46-1 일대를 마북동 고분군2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마북동 고분군2에서는 고려 중기의 석곽묘 4기, 토광묘 4기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녹청자반구병 2, 청자접시 1, 청자대접 10, 토기매병 2, 토기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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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 유구(遺構). 마북동 석축유구는 탄천을 따라 형성된 잔구성 산지의 끝자락 구릉에 축조된 관방(關防) 유적이다. 내부와 주변에서 관련 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구릉의 남측 사면에만 낮게 할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한 점으로 보아, 단기간의 전투 목적을 위한 군사 방어 시설인 보루로 판단된다. 마북동 석축유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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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정비군. 송덕비군이 있는 마북동 일대는 용인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다. 과거 읍치였던 곳에는 행정의 중심인 관아가 있고, 관아를 중심으로 수령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 군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북동 송덕비군 역시 이런 일반적인 경우이다. 총 14기로 현령 등의 선정 송덕비 10기, 군수 선정비 1기, 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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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마북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분포해 있는데, 각각을 마북동 유물산포지1부터 마북동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한다. 마북동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구성초등학교와 초등학교 북쪽의 충정마을 우림아파트 사이의 경작지 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마북동 유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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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마평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돌무지무덤. 토지박물관은 마평동 돌무지무덤이 북한강·임진강 유역에서 조사된 적석총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 근거로는 장축 방향이 서쪽 가까이에 흐르는 경안천의 방향과 동일한 점, 돌무지무덤의 평면 형태가 길쭉한 점, 돌무지무덤 아래의 기반토가 주변보다 높은 점 등이다. 이런 지적과 함께 돌무지무덤이 군집을 이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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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있었던 삼한 중의 하나. 용인이 마한 54개 소국 중 어느 집단에 속하였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소국들인 중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일화국(日華國), 고탄자국(古誕者國) 등이 용인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확실한 것은 3세기 무렵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을 거듭한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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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여종. 조선 중종(中宗)[1488~1544] 때 용인에 사는 이수손(李守孫)의 여종으로서, 이수손이 아내 김씨와 아들 이균(李均)·이돈(李墩)에 의하여 살해당하자 이에 연루되어 관가에 끌려가 문초를 받았다. 이때 막덕의 공초(供招)에 의하면, 김씨가 아들 이균·이돈과 공모하여 이수손을 살해하였다고 하였고, 안성(安城)에 살다가 죽은 유운(柳雲)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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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에서 남편을 살해한 여인. 만장은 조선 전기의 여인으로, 양지 사람인 선군(船軍) 정귀생(丁貴生)의 처이다. 1430년(세종 12) 평소 사통하던 선군 이흥(李興)과 공모하여 남편을 살해하였다. 뒤에 붙잡혀 감옥에서 옥사하였고 정부 이흥은 참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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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맹리 유물산포지는 네 곳에 분포되어 있어, 각각을 맹리 유물산포지1, 맹리 유물산포지2, 맹리 유물산포지3, 맹리 유물산포지4로 구분하여 일컫고 있다. 용인시와 음성 간 국도 17호선에서 맹리 행군이마을로 진입하여 동편으로 계속 가면 해발 411m의 건지산에서 남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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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용인의 지명인 구성현(駒城縣)의 다른 이름 용인의 옛 지명중 하나인 구성현(駒城縣)은 본래 고구려의 지명이었는데, 멸오는 그 이칭이다. 『고려사』·『세종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대동지지』·『용인현읍지』(18세기중엽)·『여지도서』(1760)·『용인현읍지』(1842-1843)·『용인현읍지』(1871)·『용인군지도읍지』(1899)·『용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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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재상들의 간찰첩. 『명재수간(名宰手簡)』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만년에 10여 년간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1559~1636]에게 이름 있는 재상들이 보낸 간찰들을 묶은 간찰첩(簡札帖)이다. 간찰들은 1640년(인조 18)부터 1659년(효종 10) 사이에 쓰여진 것들로 짐작되며, 모두 18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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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 지방도 392호선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죽능리를 지나 후동마을이 나타난다. 후동마을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 새터말이 있는데, 이 곳에 유적이 위치한다. 유적의 주변에는 목신천이 흐르고, 언저리에는 충적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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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목악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부곡은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는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양지현(陽智縣)조에 “본래 수주(水州)에 속한 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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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경노(景魯). 할아버지는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낸 평숙(平叔) 목천수(睦天壽)이고, 아버지는 공집(公集) 목회경(睦會敬)이다. 1747년(영조 23)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61년(영조 37)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사직서령(社稷署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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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부터 1258년까지 몽고가 고려를 침략한 전쟁. 13세기 초에 만주와 중국 북부 지방에서 일어난 몽고는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 과정에서 몽고는 고려에도 침략하여 80여 년 동안 고려의 정치를 간섭하였다. 몽고는 1231년부터 1258년까지 계속 고려를 침략하였다. 몽고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고려를 공격하였다. 이때 광주를 비롯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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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묘봉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분포되어 있어, 묘봉리 선사유적1과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묘봉리 선사유적1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의 하리저수지 동편에 위치한 구릉지(해발 100m) 산43임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의 남쪽으로 이동저수지로 유입되는 묘봉천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시궁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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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묘봉리 유물산포지는 총 네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묘봉리 유물산포지1에서 묘봉리 유물산포지4로 구분한다. 이동읍 송전리에서 동편의 묘봉리 방향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해발 514m의 시궁산에서부터 남쪽으로 흘러나온 완만한 가지 능선들 사이에 이루어진 골짜기들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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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 조사가 실시되어 ‘덕성리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보고된 바가 있다. 이 때 구석기시대 석기들이 채집되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이동읍으로 이어지는 국도 45호선을 통해 덕성리에 이르러 사챙이마을로 들어서면 해발 166m의 능골산이 나타난다. 유적은 이 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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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흑자 가마 터. 묵리 요지는 두 곳에 나뉘어 있는데, 묵리 요지1은 15~16세기의 백자 요지이고, 묵리 요지2는 19~20세기의 백자·흑자 요지이다. 이들은 서로 시기상·거리상 서로 연관이 없는 별개의 유적이다. 묵리 요지1은 용인에서 국도 45호선을 통해 이동읍으로 가다가 천리에서 용덕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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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 적동마을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산포지. 경기도 용인시에서 송전으로 가는 국도 45호선을 따라 가다가 묵리에서 좌회전하여 용덕저수지로 가는 길을 가다 보면 적동마을이 나온다. 적동마을에서 염치 쪽으로 가는 길로 올라가면 라이프아파트 뒤편에 골짝기가 있는데, 묵리 적동 토기산포지는 골짜기의 왼편 산자락 일대에 위치한다.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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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세필과 그 후손들의 묘역. 이 묘역은 이조참판을 지낸 문간공 김세필(金世弼)[1473~1533]의 묘를 중심으로 한 경주김씨의 세장지이다. 김세필은 기묘사화 때 화를 당했고, 김세필의 삼남 김저는 을사사화 때 화를 당하였다. 김세필을 비롯하여 김세필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이곳에 세장되었다. 문간공 김세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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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의병. 1727년(영조3) 청주에서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이 때 문성천은 양지현(지금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거주하던 가의대부(嘉義大夫) 주헌(朱櫶)이 의병을 모집하자 그를 도와 좌찬현(佐贊峴)에서 서울로 진격하는 적을 막고 수백 여 명을 죽였다. 이 일이 임금께 보고되었으나 상을 받지 못하였다가, 1785년 경기관찰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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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강상죄인(綱常罪人). 1680년(숙종 6) 수원부 양지현(현재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주인을 죽인 죄인으로서 삼성(三省)에서 추국하자 스스로 시인하고 사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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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남평. 자는 순해(舜諧) 또는 순서(舜瑞), 호는 휴헌(休軒). 아버지는 현령 문위세(文緯世)이며, 큰아버지인 첨지중추부사 문위지(文緯地)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용인향교의 학생으로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문위세와 함께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용담(龍潭)에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치열한 항전을 벌였고 세 번이나 크게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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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광조의 묘와 신도비.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를 통해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고,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단행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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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문촌리 마을의 포장도로에서 약 200m 떨어진 야산 구릉에 위치하며, 측면 한 곳은 작은 개울과 접해 있다. 지번은 산35-1임, 383-1전, 384-2전, 384-3전 일대에 해당한다. 발굴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가마 터는 잡목 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 가마의 구조물이 지면에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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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원(景園), 호는 황사(黃史), 사호(賜號)는 지당(芝堂)이다. 증조부는 민백흥(閔百興), 할아버지는 민상섭(閔相燮), 아버지는 민치오(閔致五), 외조부는 김원식(金元植)이고, 아들은 민영소(閔泳韶)다.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합격한 뒤, 명성황후가 왕비로 책립되자 중용되기 시작하여 1867년(고종 4) 이조참의로 등용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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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복경(復卿). 시호는 충정(忠正). 민치구(閔致久)의 아들로, 민치록(閔致祿)에게 입양되었으며,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오빠이다. 1860년(철종 11) 명릉참봉에 임명되었고, 1864년(고종 1)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66년 여동생이 왕비로 책봉되자 중용되어 이조참의, 1867년 호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872년 형조판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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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민승호의 묘. 민승호(閔升鎬)[1830~1874]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복경(復卿),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민치구(閔致久)의 아들로 민치록(閔致祿)에게 입양되었으며,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오빠이다. 민승호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의 민재궁마을 흥국생명연수원 왼쪽 구릉의 풍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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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말기 문신 민영환의 묘. 민영환(閔泳煥)[1861~1905]은 당대 최고의 권문세가 집안 출신으로 예조판서, 병조판서, 형조판서를 지낸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순국지사이다. 민영환은 빈번한 해외여행으로 새 문물에 일찍 눈을 떠 국가의 제반 제도의 개혁을 시도하였고, 친일적인 각료들과 대립하여 일본의 내정간섭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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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사원(士元), 호는 섬촌(蟾村)·정암(貞庵)이다.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손자이고, 문충공(文忠公) 진후(鎭厚)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연안이씨(延安李氏)로 현감 이덕로(李德老)의 딸이다. 1714년(숙종 40)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권상하(權尙夏)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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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보(聲甫), 호는 오헌(梧軒)이다. 증조부는 민광훈(閔光勳), 할아버지는 민시중(閔蓍重), 아버지는 이조판서 민진주(閔鎭周)이다. 외조부는 정상징(鄭尙徵), 부인은 조태동(趙泰東)의 딸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1715년에는 주부·정랑에 올랐다.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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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峯)이다. 증조부는 민여건(閔汝健), 할아버지는 민기(閔機), 아버지는 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딸이다. 부인은 신승(申昇)의 딸이고 아들은 민진장(閔鎭長), 형제는 민시중(閔蓍重)·민유중(閔維重)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거주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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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유(聖猷), 호는 단암(丹巖)·세심(洗心)이다.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이다. 외할아버지는 송준길(宋浚吉), 부인은 윤지선(尹趾善)의 딸이다. 또한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오빠이자 우참찬 민진후(閔鎭厚)의 동생이다. 아들은 민형수(閔亨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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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치구(稚久).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남이성(南二星)의 딸이고, 외할아버지는 홍처윤(洪處尹)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함으로써 조(祖)·부(父)·자(子) 3대가 장원하여 ‘삼세문장(三世文壯)’이라 일컬어졌다. 장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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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회부(晦父). 1455년(세조 1) 현감으로 있으면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60년(세조 6)에 용인현(龍仁縣)에 현령(縣令)으로 부임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하여 용인현이라 하였으며, 이때부터 현령이 임명되었겠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이 없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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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초명은 박승업(朴承業),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추탄(秋灘). 박은(朴誾)의 증손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장령·사간원정언을 지냈다. 1599년 대사헌 홍여순(洪汝諄)을 탄핵·파면시켰으나, 뒤에 그가 다시 기용되자 사헌부집의 김신국(金藎國), 사간원사간 송일(宋馹)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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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회헌(晦軒). 고려에서 정승을 지낸 박전지(朴全之)의 고손이며, 할아버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며, 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고,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딸이다. 아들은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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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에 거주한 귀화인. 북쪽 오랑캐 출신으로 광해군 초에 조선에 귀화하여 용인의 고을 5리 안에 있는 장터 큰길가에 7~8년 거주하였는데, 그곳은 크고 작은 행인들이 밤낮으로 오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하 16~18명을 거느리고 밤에 산행을 한다고 칭하면서 무리를 지어 행인이나 짐을 쫓아가 약탈을 일삼았다. 또한 읍내의 원전(元田)을 빼앗아 경작하거나 무성하게 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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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만기(萬基).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박환(朴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부안임씨(扶安林氏)이다. 박세성은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을 거쳐 홍문관정자·예문관검열·봉교 등을 역임하였다. 1653년 겸설서(兼說書)·전적·감찰·정언 등을 역임하고, 그 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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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이다. 아버지는 교리(校理) 박의(朴猗)이며, 부인은 원두추(元斗樞)의 딸이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주장, 효종의 꾸지람을 받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1차 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기년복(朞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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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용민의 선정비. 1867년(고종 4) 용인현령으로 부임하여 1869년(고종 6) 9월 친상(親喪)으로 사임한 박용민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있었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南向)으로 서 있다. 비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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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호는 만절당(晩節堂). 증조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고, 할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며, 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연흥군(延興君) 박고(朴翶)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따님이다. 아들은 찬성사(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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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열(仲說), 호는 읍취헌(挹翠軒). 아버지는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박담손(朴聃孫)이며, 어머니는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이이(李苡)의 따님이다. 부인은 대제학 신용개(申用漑)의 딸이고, 맏아들은 박인량(朴寅亮)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하여 15세에 이르러서는 문장에 능통하였다. 당시 대제학(大提學)이었던 신용개(申用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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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어의. 1882년(고종 19)에 유학(幼學)으로서 의약동참(議藥同參)에 차하(差下)되어 내의원에 군직(軍職)으로 직사(職仕)하다가 1883년 어의(御醫)의 신분으로 용인현령(龍仁縣令)이 되었다. 그 이듬해 막중한 대동미(大同米)를 마음대로 대봉(代捧)하고 한 해가 지나도록 납기를 어겼다 하여 직무불이행 죄로 용인현령직에서 파직되었다. 이에 규례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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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창근의 선정비. 1873년(고종 10) 윤6월 양지현감으로 부임하여 1875년(고종 12) 7월 진위현감으로 전출한 박창근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양지면사무소 안의 주차장에 청사를 바라보고 좌측에 동향으로 총 7기의 비가 있는데, 그중 여섯 번째 비이다. 비좌와 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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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유배된 무신. 본관은 죽산. 호는 호곡(壺谷). 조선 건국에 대장군으로서 공이 있어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고, 사헌중승(司憲中丞)을 지냈다. 그러나 1394년(태조 3) 자기는 논공(論功)에서 2등이 되고 이무(李茂)는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책봉된 것을 비방하였다가 도리어 죽주(竹州)[현재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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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 자는 상보(尙甫), 호는 여호(黎湖)·요계(蓼溪)이다. 군수 박태두(朴泰斗)의 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영의정 송상기(宋相琦)의 천거로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가 되었다. 지평(持平)·장령(掌令)·진선(進善)·집의(執義) 등을 지내고, 세자찬선(世子贊善)·이조판서·우찬성(右贊成)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서원을 철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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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술(汝述), 자호(自號)는 수우(守愚). 참봉 박동민(朴東民)의 아들이다. 박환은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여의고 둘째 고모와 숙부 밑에서 자랐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로로 6품직에 특제(特除)되어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인제현감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고을의 군사를 모아 부원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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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방아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나누어 분포하는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 144-2전 일대의 방아리 선사유적1과 177-2 일원의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방아리 선사유적1은 용인에서 지방도 333호선으로 남사면 창리에 이르러 창리교를 지나 방축골저수지 방향으로 진행하면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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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방아리 유물산포지는 모두 다섯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방아리 유물산포지1부터 방아리 유물산포지5로 구분하고 있다. 방아리 유물산포지1은 창리에서 방아2리 방죽마을로 넘어가는 서낭당고개의 오른편에 있는 구릉 일대이다. 방아리 유물산포지2는 남사면 방아2리 방죽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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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곤산(昆山)[昆陽]. 자는 달지(達之), 시호는 양호(襄胡)이다. 곤산배씨(昆山裵氏)의 시조이다. 어려서부터 담력이 뛰어났으며 궁마(弓馬)와 병법에 능통했다. 1447년(세종 29) 내금위 사용(司勇)에 임명되었고 1454년(단종 2) 무과에 급제했다. 1464년(세조 10)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있을 때 진응사(進鷹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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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해미(海美). 호는 풍암(楓巖). 백광언은 무과에 급제하여 용맹하고 과감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일찍이 정여립(鄭汝立)의 권세가 높아지자 도내(道內)의 문무사류(文武士類)가 모두 이와 결탁하였으나, 홀로 동조하지 않은 까닭에 미움을 받아 1589년(선조 22) 북청판관(北靑判官)으로 체직(遞職)되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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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백봉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나누어 분포하는데, 백봉리 1378-1번지의 선사유적1과 백봉리 1380-1번지의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경기도 용인 양지에서 음성으로 가는 국도 17호선을 통해 백암을 지나 백봉초등학교에서 남서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백봉리 4리 속칭 ‘봉리’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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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용인 대학교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 일반적으로 백자 대호(白磁大壺)는 보통 높이가 40㎝ 이상 되는 대형으로, 둥글고 유백색(乳白色)의 형태가 둥근 달을 연상하게 하여 일명 ‘달 항아리’라고 불린다. 17세기 후기부터 18세기 전기의 약 1세기 동안[특히 18세기 전기 50년간] 조선 왕조 유일의 관요(官窯)인 사옹원(司饔院)의 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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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조선 후기 순백자 항아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자 둥근 항아리로 ‘달항아리’ 부류에 속한다.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시킨 다음, 백자유를 바르고 고온에서 환원 번조한 전형적인 달항아리이다. 몸통은 원형보다 마름모 형태에 가까우며 비교적 높게 처리된 입과 굽은 크기가 비슷하다. 높이 44.5㎝, 입지름 18.2㎝, 밑지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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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조선 전기 백자병. 연질계의 백자에 조선 전기 특유의 상감 기법으로 연당초문이 시문되어 있다. 순백의 기면에 검은색의 자토를 사용해 상감 문양을 새긴 다음 투명한 백자유를 발라 낮은 온도에서 환원 번조하였다. 조선 전기의 양감이 좋은 전형적인 병 형태를 하고 있으며, 어깨에 당초문대를 돌리고 몸통 3곳에 연꽃을 배치했으며 덩굴 무늬로 연결해 놓았다.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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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조선 전기 백자병. 먼저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병을 만든 다음, 다시 그 위에 장식을 할 수 있는 표면을 덧댄 이중 구조를 한 희귀한 병이다. 몸통에는 대담한 투각 수법으로 모란문을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흑상감법으로 세부를 표현하였으며, 어깨에도 흑상감된 초화문대(草花文帶)를 둘렀다. 기본 형태는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모래를 받쳐 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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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용인 대학교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 백자 청화 산수 화조문 항아리는 청화로 산수 화조문을 그려 넣은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이다. 화원의 솜씨인 듯한 산수 화조문으로 보아 18세기 청화 백자 중 뛰어난 작품의 하나이다. 아가리 부분이 직립되고 장신의 동체를 이룬 이 항아리는 청화의 산수문·화조문·문자명으로 보아 18세기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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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조선 전기 청화백자 병. 순백의 기면에 암청색의 짙은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몸통 가득 운룡문을 그렸다. 담청색의 백자유를 바닥까지 고르게 시유하고 모래를 받쳐 높은 온도에서 환원 번조한 백자병이다. 작고 아담한 병으로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높이 25㎝, 입지름 5.3㎝, 밑지름 7.7㎝이다. 조선 전기에는 극히 드물게 보이는 운룡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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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용인 대학교에 있는 조선 전기 백자 항아리 및 태지석. 백자 태항아리 및 태지석은 16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의 백자 태항아리 및 태지석이다. 태항아리란 왕실의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 태(胎)를 담은 항아리를 말하며, 이 태항아리와 주인공의 이름, 생년월일을 기록한 태지석을 함께 묻었다. 1991년 1월 25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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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1월 경기도 이천의 백현에서 이천 의병과 일본군 수비대간에 벌어진 전투. 1895년 음력 8월 20일 일본 공사관의 주도로 자행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을 기화로 조선의 각계각층에서 반일 기운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년 11월 15일 단발령이 공포되자 반일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고,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서울에서 가까운 이천에서도 의병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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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시첩. 『별장첩(別章帖)』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명준(吳命峻)[1662~?]이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떠나기 전에, 당시 조정 중신과 동료들이 연행(燕行)을 전송하며 지은 시문을 모아 놓은 것이다. 불분권 2첩으로, 필사본이다. 표제는 별장첩(別章帖)이다. 크기는 가로 31㎝, 세로 51㎝이다. 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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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청나라 군대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1627년(인조 5) 후금(後金)[뒤의 청나라]의 1차 침입 때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맹약을 하고 두 나라 관계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나라 이름을 청(淸)으로 고친 후금은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맹약’을 ‘군신(君臣)의 의(義)’로 개조하자고 요청을 해올 뿐 아니라 무리한 세폐와 정병 3만까지 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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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축 산성. 보개산성은 경안천과 신갈천의 분수령을 이루는 보개산 정상부에 위치한 산성이다. 성내 시설물로는 성문과 건물지 등이 확인된다. 성문은 동문지, 남문지와 암문(暗門)의 성격을 가진 남벽 서측의 문지 등 세 곳이지만 원래는 이보다 더 많은 문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성내에서는 주로 도기편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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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보라동 선사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어 분포하는데, 보라동 산96-12임에 있는 보라동 선사유적1과 보라동 488답에 있는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보라동 선사유적1은 2000년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된 바 있는데, 당시에는 수풀이 우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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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청자 가마 터. 보정동 요지는 산3-1번지의 보정동 요지1과 681번지의 보정동 요지2로 나누어져 있는데, 보정동 요지1은 불곡산에서 법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 대치고개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가지능선, 단국대학교 신축건물 뒤편에서 약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남쪽에 탄천의 지류인 옥정천이 흐르고, 주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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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보정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분포하여, 각각을 보정동 유물산포지1, 보정동 유물산포지2, 보정동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한다. 보정동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녹십자 입구에서 남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가다가 도로 서편에 접해 있는 영남하이츠빌라 뒤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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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방어 시설. 지방도 393호선과 국지도 23호선이 만나는 모서리 지점의 구릉(해발 100m)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보정리 보루는 1999년 한신대학교 박물관의 ‘죽전 지구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구릉의 정상부는 약간의 요철이 있으나 비교적 완만하며, 남쪽과 서쪽 사면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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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에 있는 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봉명리 선사유적은 모두 7곳에 분포하여, 봉명리 선사유적1부터 봉명리 선사유적7까지로 구분한다. 이들 유적은 경기도 용인시 부아산에서 진위천까지 이어지는 구릉상에 분포하며 대체로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채집된다. 봉명리 선사유적1은 봉명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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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방어 시설. 봉무리 보루가 있는 남산봉은 남서쪽의 진위천과 봉무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북안에 해당한다. 이곳은 동쪽으로 처인성과 연결되는 완장천과 봉무천이 합류하는 지역과 남서쪽의 평야 지대가 한눈에 조망되는 지리적 요충지에 해당한다. 봉무리 보루는 둘레가 150m로, 남산봉 9부 능선에 남쪽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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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봉무리에는 모두 네 곳의 유물산포지가 위치해 있는데, 각각을 봉무리 유물산포지 1부터 4로 구분할 수 있다. 봉무리 유물산포지1은 봉무리 도장동마을 북쪽에 동쪽으로 뻗은 능선 일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봉무리 유물산포지2는 남사면 북리에서 봉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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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에서 남사면 방면으로 지방도 330호선을 따라가다 삼거리를 이루는 남사초등학교 부근에서 국도 9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향하면 봉무리 기와집마을에 이른다. 유적은 마을 동쪽 구릉지에 자리하는데, 동쪽 마을 도로와 접하여 진위천으로 흘러드는 봉무천이 남류(南流)하고, 서편으로는 낮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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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자기산포지. 경기도 용인에서 남사면 방면으로 330호선을 따라가다 삼거리를 이루는 남사초등학교 부근에서 9호선 북쪽으로 향하면 봉무리 도장골에 이른다. 마을 동편에는 진위천으로 흘러드는 봉무천이 남류(南流)하고, 서편은 낮은 야산이 둘러져 있다. 마을 도로 서편에 농업협동조합 창고가 자리한다. 1996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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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의 관아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전국적으로 5개 망으로 구성되었던 봉수망 중에서 용인의 봉수는 경상도에서 출발하여 충청도를 거쳐 광주 천림산에 도달하는 제2봉에 속해 있었다. 유형에서는 서울의 경봉수와 해륙 변경의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중간 봉수인 내지봉수의 성격을 지녔다. 봉수의 설치 시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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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에서 작성된 산 제사 관련 고문서. 병신년 12월 2일 작성되었는데, 산제사를 위한 절목(節目)이 포함되어 있다. 병신년은 1836년 또는 1896년으로 추정된다. 불분권 1첩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부용대동 산제사제례여축문첩(芙容大洞 山祭祀祭礼與祝文帖)이다. 초부리는 연안이씨와 경주김씨의 집성촌으로 이곳에서는 상하계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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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북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서 봉무리로 이어지는 82호선 옆에 있는 삼주알루미늄공장에서 남쪽 봉무천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마을 도로 동편에 형성된 구릉 하단부에 이른다. 이 구릉 하단 산자락에 조성된 묘목장이 유적지에 해당한다. 채집된 유물은 석영암제 석핵 1점뿐이다. 석핵은 원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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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당나라 두보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시집.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는 흔히 두시언해라고도 불린다. 분류란 두보의 시를 분류하였다는 뜻이고, 두는 두보의 이름이며, 공부란 두보의 관직 이름, 시란 두시의 시를 말한다. 언해란 그 당시 언문이라고 불렸던 훈민정음으로 해체한 것을 뜻한다. 원(元)나라 때 편찬된 『찬주분류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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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경기도 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묘지. 분청사기 상감 ‘정통 4년명’ 김명리 묘지는 조선 시대 성천도호부 부사(成川都護府副使)였던 김명리(金明理)[1368~1438년]의 묘지이다. 2014년 7월 2일 보물 제1830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모양은 상부에서 저부로 내려오면서 직경이 약간 좁아지는 비대칭의 원통형이고 상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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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분청사기 상감 사각 묘지 및 분청사기 인화문 사각 편병은 15세기에 만들어진 분청사기들이다. 2006년 1월 17일 보물 제1450호로 지정되었다. 분청사기 상감 사각 묘지의 높이는 20.5㎝, 폭 12.0㎝이다. 몸통이 세로 방향으로 길쭉한 사각의 통형이다. 몸통의 중간 부분이 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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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원삼면소재지에서 용인 방향으로 지방도 57호선을 따라 가면 사암리주유소가 있고, 이 곳에서 길을 따라 곱등고개 쪽으로 500m쯤 더 가면 오른쪽에 고인돌 유적이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이 곳은 청미천의 가장자리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주변에 청미천의 발원지인 용담저수지가 있다. 8기 가운데 1호는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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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선돌. 용인에서 양지인터체인지 방향으로 지방도 57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이정표가 있고, 사암리 안골 입구에 들어서면 선돌 3기가 나란히 서 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차례로 1호, 2호, 3호로 명명하여 각각의 규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호는 높이 220㎝, 너비 103㎝, 두께 60㎝이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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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좌항리에서 392호선을 타고 사암리 쪽으로 가다 보면 사암교에 이른다. 사암교를 건너기 직전에 북쪽으로 사암천을 따라 난 작은 포장도로로 가면, 북쪽의 해발 432m의 독조봉으로부터 흘러나온 가지 능선 말단부 자락에 넓은 경작지가 있다. 사암리 유물산포지는 이 일대에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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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처인성을 공격해온 원나라 장수. 살리타는 1231년(고종 18) 몽고 사신 저고여(箸古與)가 고려인에게 살해되었다고 여겨 함신진(咸新鎭)을 넘어 고려를 공격해왔다. 그러나 구주(龜州)에서 박서(朴犀)에게 패하였고, 다시 군대를 정비하고 개경 성의문(省義門) 밖까지 침공해왔다. 이에 고려는 살리타가 있는 안북부(安北府)[安州郡]까지 사신을 보내어 강화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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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정립하던 시대의 용인 지역의 역사. 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쇠퇴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마한 군장사회들 중 하나였던 백제가 백제국가로 흥기하게 됨에 따라 그 중심지로부터 불과 30여㎞ 떨어져 있던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 세력권 안으로 흡수·통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용인 지방은 『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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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있었던 신석기시대의 임시 주거 유적.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박물관의 남쪽 해발 100m 이하의 잔구성 구릉에 자리하며, 루터신학교 정문의 동편 구릉에 해당한다. 임시 주거 유적으로서 뚜렷한 주거 형태는 남아 있지 않았다.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빗살무늬토기와 토제품 및 마제석부가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기종은 발(鉢)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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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이 곳에는 고인돌이 2기 있었는데 위쪽에 있는 것을 상지석(上支石), 아래쪽에 있는 것은 하지석(下支石)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이름을 따서 지명도 상하리(上下里)라고 하였다가 상하동으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상지석을 ‘할아버지 바위’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없고, 하지석은 ‘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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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기와 가마 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서 보정동 삼막곡으로 넘어가는 도로 동편 구릉의 남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상현동 요지에서 한신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기와 가마 2기가 발굴되었다. 제1호 가마는 풍화암반층을 굴토하여 가마 바닥을 조성한 반지하식 등요(登窯)로, 소성실(燒成室)은 계단식으로 만들었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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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상현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네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각각을 상현동 유물산포지1부터 상현동 유물산포지4로 구분하여 이르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에서 광주시 방향으로 국도 43호선을 따라 수원과 용인 경계 지역을 지나면 동쪽으로 독바위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상현동 유물산포지1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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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3리 상덕골에 있는 고려시대의 자기산포지. 용인대학교에서 서리로 넘어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상덕골에 이르면 나타나는 남서쪽 밭에 있다. 사적 329호로 지정된 중덕마을 고려백자 가마 터와는 약 700m 거리에 있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 지표 조사에서 보고된 바 있는 유적이다. 1996년 조사에서 중덕 고려백자 가마 터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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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 서거정의 서첩. 『서거정 필적』은 1476년(성종 7) 1월 말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사신 호부 낭중(戶部郞中) 기순(祁順)과 사신 일행을 맞이한 원접사(遠接使) 서거정의 글씨가 함께 실려 있는 서첩이다. 표지에는 ‘천사 사한 진적(天使詞翰眞蹟)’이라 쓰여 있다. 표지를 제외한 첩의 안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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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의 묘지석. 묘지석이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 묘의 위치와 좌향 등을 적어서 묘에 함께 묻은 판석(板石)을 말한다. 지석에는 주인공의 이름과 조상, 관직, 평생의 행적, 가족관계 등을 적어 후세에게 전하려는 것이다. 서거정 묘지석은 서울시 강동구 방이동 묘역이 도시계획으로 이전하면서 1975년 6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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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백자 가마 터. 서리 요지는 두 곳에 나뉘어 있는데, 이 곳은 서리 상반요지라고도 불리는 서리 요지2이다. 서리 요지1과 마찬가지로 고려백자 요지로 서리 고려백자 요지라고도 불린다. 서리 요지2는 좌우변과 위쪽에 산림이 우거져 있어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유적은 폭이 약 45m이고, 상하의 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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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하반 삼막골에 있었던 백제 석실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하반부락 중앙에 보호수로 관리되는 느티나무에서 서남쪽인 ‘부터골’ 방향으로 약 200m 진입하면 삼막골 입구가 나온다. 이 곳에서 북서쪽으로 개설된 삼막골 농로를 따라 약 200m 올라가면 농로가 갑자기 넓어지는 공터가 나타나는데 이 곳이 석실분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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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평보(平甫), 호는 소고(嘯皐)·재간(在澗)·보졸재(保拙齋)·송현(松峴), 시호는 문익(文翼). 증조부는 남원부사 서정리(徐貞履), 조부는 병조참의 서문상(徐文尙), 아버지는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이다. 어머니는 이헌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아들 서지수(徐志修)까지 3대가 대신을 지냈으며, 부인 또한 3대가 대신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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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서천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여섯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서천동 유물산포지1부터 서천동 유물산포지6으로 구분하고 있다. 지방도 343호선에서 외서천마을로 진입하여 소로를 따라 500m 정도 들어가면 소로가 급격히 꺾이는 지역에 소택지가 있는데, 서천동 유물산포지1은 이 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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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오도일의 시문집. 조선 후기 숙종 때 대제학을 지낸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1645~1703]의 시문집으로 1729년(영조 5)에 간행되었다. 1729년(영조 5) 3월 아들인 오수채(吳遂采)에게 분무원종이 녹훈되어 오도일에게는 좌찬성이 추증되었는데, 본집의 총목(總目) 말미에 적힌 간기를 보면 곧이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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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 황덕마을회관에서 남쪽 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가에 자리하는데, 황새울 뒤산 북쪽 경사면에 해당한다. 작은 빗살무늬토기편 3점이 채집되었다. 토기 외면에 베풀어진 문양은 동일계 횡주어골문(橫走魚骨文)으로 단치구(單齒具)를 사용하여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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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가마 터. 석천리 요지는 석천리 요지1·석천리 요지2·석천리 요지3·석천리 요지4의 모두 네 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석천리 요지1은 반계 유형원 묘소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묘소를 조성하면서 가마 터의 퇴적 일부가 노출되었고,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석천리 요지2·석천리 요지3·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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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석천리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각각을 석천리 유물산포지1, 석천리 유물산포지2로 구분한다. 석천리 유물산포지1은 석천리 황새울골을 따라 난 작은 포장도로를 타고 계곡 안쪽으로 진입하다가, 황덕마을회관 앞의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반계 유형원(柳馨遠)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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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지역에 있는 길쭉한 자연석 혹은 일부를 손질하여 세워놓은 돌기둥. 돌을 세웠거나 서있다는 의미에서 선돌 이외에도 입석(立石, 笠石)·삿갓바위[笠岩]·입암(立岩)이라고 부르며 지역에 따라서는 구지바위·할머니탑·할아버지탑·수구막이·수살장군·돌장승 등 여러 가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