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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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고소동(姑蘇洞)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작전 계획을 세우고 명령을 내린 곳으로 알려진 고소대(姑蘇臺)가 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마을이 형성되었고, 고소대의 창설로 마을이 번성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근동(芹洞)·수동(樹洞)·정동(井洞)·재동(齋洞)·죽동(竹洞)·행동(杏洞)·지동(枳洞)·남동(南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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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조선시대에는 전라좌수영성의 장대가 있어서 유래된 장동과 지형이 평지라는 데서 유래된 평동 두 마을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여수를 동서로 나누어 동정(東町)과 서정(西町)이라 하면서도 이 지역은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 지역이었기 때문에 일본 왕의 연호를 따서 별도로 소화정(昭和町)이라 하였다. 소화정의 이름과 해방 후 이 지역에 여수군 청사를 비롯한 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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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0년 3월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 재학 중 윤경현(尹炅鉉)·이용기(李容起)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각급 학교에서는 독서회 형태의 항일비밀결사가 결성되었다. 동 단체 역시 그와 같은 배경에서 조직되었으며,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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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법정동. 전라좌수영 당시 동문 밖이 되므로 동문밖 또는 동문외라 하고, 또는 관아가 있으므로 아동(雅洞)이라 하였다. 1946년 동문밖을 동문동(東門洞)으로, 아동을 관동(館洞)으로 고쳤다가 1953년 행정구역 개편 시 주민들의 합의에 따라 동문동과 관동을 합하여 관문동(館門洞)이라 하였다. 본래 여수군 여수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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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활을 쏘는 사정(射亭)이 있으므로 사정이라 하였다가, 해방 이후 궁동(弓洞)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세가 커지면서 이주민이 증가함에 따라 하층민도 함께 증가하였는데, 궁동의 ‘궁’자로 인해 가난하게 살게 된다는 속설의 영향으로 장군산(將軍山)의 장군을 가리키는 ‘호반 무(武)’자를 따서 ‘무사가 영원히 빛을 내라’라는 뜻으로 광무동(光武洞)으로 지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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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여수 지역의 독립운동은 주로 청년과 학생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19년 3·1운동 당시 여수 지역에서는 일부 면에서 산발적 시위는 있었으나 대규모 만세시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3·1운동에 가담했던 재경 여수유학생들이 조직한 맞돕회를 비롯한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항일의 기운이 유지되었는데, 이는 곧 태평양전쟁 후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1942년에 벌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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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1920년대 바다를 매립하면서 지형이 병의 목처럼 보여 ‘병모가지’라 하였다가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교동(喬洞)이 되었다. 본래 여수군 여수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정(上井)·구동(龜洞)·성동(城洞)·하정(下井)·종동(鍾洞)·석정(石井)·천동(川洞)·포동(圃洞)·석교리(石橋里)·교동(喬洞)·추동(秋洞)·탕암(宕岩)·연동(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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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교육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며 사회 개조의 수단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육은 내부의 자연적 성장의 힘과 외부 영향력과의 합력(合力)에 의하여 성립되는 인간 형성의 작용을 의미하며, 타고난 그대로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참되고 가치 있는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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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전라좌수영 시절 군자정(君子亭)이라는 활터가 있어 군자동(君子洞)이라 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에 향교가 있어 예동(禮洞)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본래 여수군 여수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동(樹洞)·정동(井洞)·예동(禮洞)·근동(芹洞)·내동(內洞)·재동(齋洞)·죽동(竹洞)·행동(杏洞)·지동(枳洞)·남동(南洞)·장동(莊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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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오림동에 있는 궁도장. 군자정이 자리한 종고산은 임진왜란 당시 산이 스스로 울어 국난을 알려 주었다 하여 이순신 장군이 종고산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이순신 장군이 기마병을 이끌고 활쏘기 훈련을 하던 장소로 이순신 장군의 얼이 담긴 유서 깊은 곳이다. 이후 300여 년간 장병들의 연무장으로 전승되어 왔으나 1895년(고종 32) 폐지되었다. 이후 1918년에 이르러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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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가뭄에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제사. 예로부터 농사철에 가뭄이 심하면 나라와 민간에서 비 오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문헌에 의하면 이러한 의례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민간에서는 산상·냇가 등에 제단을 세워 신역(神域)으로 정하여 정결히 하고 마을 전체의 공동 행사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제주(祭主)는 마을의 장이나 지방 관청의 장이 맡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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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곤은 1930년 3월 전라남도 여수공립수산학교에서 비밀결사 독서회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김재곤은 1914년 11월 15일 전라남도 여수군 동산동 464번지[현 전라남도 여수시 동산동]에서 태어났다. 김재곤은 여수공립수산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1930년 4월 조병호의 권유를 받아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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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 봉화산에 있는 봉수 터. 봉수란 봉(峰)과 수(燧)로 급보를 전하던 고대의 통신 방법으로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불빛과 연기로 신호를 전달하던 것인데, 야간에는 횃불이 잘 보이지만 주간에는 잘 보이지 않아 대신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대략 10리마다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었다. 돌산도 봉수는 서쪽으로는 백야곶 봉수에 응하고, 북쪽으로 진례산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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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의 종화동·관문동·동산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1998년 여수시의 행정동 통합으로 동산동, 관문동, 종화동을 동문동으로 통합하였다. 동문동의 이름은 조선시대 좌수영성이 있을 때 동문 바깥에 있는 지역이어서 동문 밖이라 하던 고유지명에 근거해서 동문동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여수군 여수면에 소속되었으며, 1941년 여수읍을 동정과 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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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에 있는 동문동의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기관. 전라남도 여수시 동문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종화동사무소, 관문동사무소, 동산동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98년 2월 1일 종화동, 관문동, 동산동이 동문동으로 통합되었고, 1998년 4월 1일 여천시·여천군·여수시의 삼여통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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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산세가 수박처럼 생긴 종고산(鐘鼓山)[199m] 밑에 있어 수박등, 수복동 또는 석성이라 하였다가 1946년 석성을 갈라서 동산동(東山洞)이라 하였다. 일설에는 원래 종산리(鍾山里)와 사동리(社東里)가 있었다고 한다. 종산리는 종고산 중턱에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하였고, 사동리는 숲거리에 공동묘지가 있어 사동(死洞) 또는 국사당(國師堂)이 있어 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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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운동. 동학은 심화되고 있던 봉건 체제의 모순과 열강의 침략 위기 속에서 1860년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시되었다. 동학은 인내천 사상을 내세웠으며, 유·불·선은 물론 민간 신앙과 천주교를 포용한 당시 사회사상의 합성체로 평민은 물론이고 천민에 이르기까지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동학의 교리에는 개벽과 평등의 반봉건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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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둔덕동에 있는 고개.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 고개가 위치한 ‘둔덕’이라는 마을 명칭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지지자료』(여수)에 쌍봉면 대곡리에 둔덕치(屯德峙)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순천)에는 종고산 북쪽에 '둔덕산(屯德山)'이 있고, 그 서쪽에 석창(石倉)이 있는 큰 산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것이 현재 둔덕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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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 청년들이 조직하였던 사회 운동 단체. 3·1운동 때에 서울에서 유학하던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학생들은 여수향우회를 만들어 활약하였다. 3·1운동의 후유증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거나 자퇴하고 피신한 여수향우회 소속 학생들은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 여수 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몇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맞잡고 돕자는 뜻으로 맞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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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창래는 1930년 3월 여수 지역의 비밀결사 조직이었던 여수공립수산학교 독서회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여수공립수산학교 독서회는 1930년 3월 여수 종고산 정상에서 열린 모임에서 발족했는데, 여수 지역의 청년 단체 중 항일 성격을 가진 주요한 단체였다. 박창래는 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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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여수는 전반적으로 오랜 침식을 많이 받은 구릉성 산지가 발달해 있다. 남해안에 발달한 리아스식 해안의 영향으로 곳곳에 반도가 형성되어 있고, 복잡한 해안선과 낮은 해저의 간석지가 많은 지형적인 특징을 띄고 있다. 이곳은 소백산맥의 지리산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곡성과 순천을 지나 여수반도로 뻗어 내려오는 지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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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손대형은 1911년 6월 29일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상정2길 20-5[상정리 263]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손명국이다. 손대형이 참여한 여수수산학교 독서회사건은 1930년 여수공립수산학교의 독서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항일운동이었다.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생들로 구성된 독서회 회원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여 매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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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전해 내려오는 전래 지명. 여수시 동산동과 덕충동 사이의 산등성이 이름으로, 생긴 모양이 수박처럼 둥글게 생겨서 수박등이라 하였다. 1786년에 만들어진 전라좌수영 전도에도 표기되어 있는 지명이다. 여수시 덕충동 종고산 동쪽 산등성이로 옛날에는 여수 충민사 입구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비탈이 심한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충민로를 끼고 주택지가 되었다. 여수시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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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전해 내려오는 신통력을 가진 샘에 관한 이야기. 과거에 사람들은, 샘은 바로 용신이 관장하고, 그 용신의 신통력이 인간의 생명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여수 지역에도 신통력을 가졌다는 샘에 관한 이야기가 곳곳에 전해지고 있으며, 가뭄해소, 득남, 치병 등에 특효가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의 신비한 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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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심장리 장지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심장리 장지마을은 우리말로 ‘진작지’라고 부르던 곳으로, 진작지는 자갈밭이 긴 해변을 이루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은 높이 솟은 망산을 배경으로 길게 늘어진 포구에 해안선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마을 앞은 바다와 접하며, 비다 건너에 안도가 있다. 심장리 장지마을 당집은 콘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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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여수수산학교 독서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항일운동. 1930년대 여수는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면서 민중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지식인들 사이에 유입되던 사회주의 사상이 민중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일제에 의한 현실사회의 모순을 사회주의의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여수수산학교의 독서회는 사회주의의 함양과 보급을 통한 항일운동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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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동남부 지역에 있는 행정구역. 여수(麗水)라는 명칭은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행정구역 개편 때 해읍현(海邑縣)을 여수현(麗水縣)으로 변경하면서 처음 사용하게 되었는데, 3면이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인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에 속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538년(성왕 16) 구지하성이 관할하는 삽평군(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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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연등동을 관통하고 있는 옛 도로가 왼쪽으로 구부러져 ‘잉구부’라고 한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여수 지역에서는 ‘왼’을 ‘잉’으로 발음하는데, 이를 한자 표기로 바꾸면서 ‘인’을 음이 비슷한 ‘연’으로, 구부는 뜻풀이를 하여 고개란 뜻의 ‘등(嶝)’으로 표기하게 되어 ‘잉구부’가 ‘연등’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등(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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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념 체계. 유교의 교리는 공자의 인의(仁義) 정신으로 윤리 도덕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대도(大道)를 실천하고 보급하여 도의사회(道義社會)를 건설하자는 유학 정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유교는 현실성을 중시하고 현실 문제를 개혁하려는 데 중점을 둔 교학 사상으로 내세나 이면 세계, 사후 세계는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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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던 옛 지명. 일제강점기 여수 최초의 예배당이 세워진 군자동 골목을 이르는 지명이다. 예배당이 있다 하여 예배당골이라 불렀으며 점차 이비당골로 변하였다. 여수예배당은 1906년 김암우(金岩于)가 군자동 꼭대기에 방을 빌려 예배를 하다 1910년 조의환 전도사가 파견되어 4칸짜리 초가를 사들여 문을 열었다. 이 예배당이 있던 군자동 골목을 이비당골이라 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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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전투를 지휘한 무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아버지는 이정(李貞)이고, 어머니는 초계변씨(草溪卞氏)이다. 이순신은 1545년(인종 1) 서울 건천동에서 4남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이백록(李百祿)이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참화를 당한 후로 가세가 기울어 충청남도 아산 외가로 옮겨 살았다. 1576년(선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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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895년 전라좌수영이 폐지되고, 1896년 도서 지방에 돌산군이 신설되고, 1897년 육지 지역에 여수군이 신설됨으로써 순천도호부에서 분리 독립되어 여수·율촌·삼일·소라의 4개 면을 관할하였다. 후에 여수면이 현내면과 쌍봉면으로 분리되는 등 7개 면으로 분할되었다. 1914면 돌산군이 폐지되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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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는 섬. 장군도와 관련된 풍수설이 있는데, 여수항 중심에 있는 장군도를 사이에 두고 세 마리의 용이 다투는 형국이라는 이야기이다. ‘장군도를 두고 다투는 3용’이라는 풍수설에 의하면 장군도는 여의주 삼아 세 마리의 용이 다투는 형국이라고 한다. 그 첫째 용은 예암산[남산]이요, 둘째 용은 돌산도요, 셋째 용이 경호도이다. 여수에 크고 웅장한 산은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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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광무동과 여서동 사이에 있는 산.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산의 이름이 이순신 장군과 연관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의 정상부는 기반암이 차별 침식으로 노출된 암봉들이 나타나며,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연등천을 사이에 두고 종고산과 마주 대하고 있다. 산의 동쪽으로는 연등천이 돌아 흐르며, 진남초등학교 맞은편에는 옛 하구바구가 자리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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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고소동·동문동에 있는 조선 전기 전라좌수영 성지. 1479년(성종 10) 전라좌수영이 창설됨에 따라 전라좌수영성 축조와 함께 관내 청사도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전라좌수영성은 창설 당시에는 둘레가 1.7㎞나 되는 성터로서 여수 진남관 외 78개 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중 기록에 남아 있는 전라좌수영성 내 청사(廳舍) 34개 동은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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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배를 설계하고 만드는 공업. 선체를 건조하고 기관과 의장품을 조립·고정시켜 배를 완성하는 것을 고유의 업무로 하는 산업이며, 기관·의장품을 제작하는 공업을 조선 관련 산업이라고 한다. 선박 건조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오래 되었으며, 철강업과 기계 공업의 발전에 힘입어 종합 공업으로서 근대적 조선업이 확립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이다. 한국에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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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일원에 조성된 도시자연공원. 종고산(鍾鼓山)[220m]은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서 동산동, 연등동, 덕충동에 걸쳐 있는 산이며, 옛날부터 국난이 있을 때마다 산이 종처럼 울어서 종고산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전라좌수영에 봉수로 신호를 전하던 북봉연대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종고공원은 부지 면적 528,060㎡로 조성된 공원이며, 시내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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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동산동·군자동·충무동에 걸쳐 있는 산. 임진왜란 때 산이 스스로 울어 국난을 알려주었다 하여 이순신 장군이 종고산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정상부는 안부가 발달한 완경사 지역이나, 산 전체는 사방으로 급사면을 이루고 있어 크고 작은 하천의 발달이 없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양은 풍화와 침식으로 두터운 유기질층이 발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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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종화동에 있던 포구. 핸드릭 하멜이 전라좌수영을 나와 조선을 탈출하고자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로 향하는 배를 탄 곳이 종포 해변으로 알려졌으며, 일제강점기에 집필된 이광수의 『충무공전서』에선 종포를 새복개로 기술하였다. 종포는 조선시대에 현재의 종화동에 있던 포구를 이르는 지명이다. 종고산(鐘鼓山) 밑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포구라 하여 종개 또는 종포라 하였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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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법정동. 여수군 여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종고산(鐘鼓山) 밑에 있어 ‘종개’ 또는 ‘종포’라 하였다. 1946년 일본식 행정구역으로 명칭이 불리던 ‘동정(東町)’이, 좌수영성을 중심으로 종남동[종화동 지역]·동문동[여수우체국 주변]·관동(파크호텔 주변)·동산동[동산동 지역]으로 나누어졌다. 1953년 종남동을 종화동으로, 동문동과 관동을 통합하여 관문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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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연등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충무동은 바다였던 지역이 매립되어 처음에는 육동(陸洞)이라 하였다. 큰 샘골과 대첩비가 있었던 곳이어서 빗집거리라고 하는 땅이름이 전해지는데, 1946년 동명의 변경에 의하여 충무공의 대첩비가 있는 지역이라고 하여 충무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본래 여수군 여수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종동·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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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연등동에 있는 충무동의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기관. 전라남도 여수시 충무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들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여수시 군자동사무소, 충무동사무소, 연등동사무소로 분할 개칭되었다. 1997년 7월 25일 제1차 행정동 통합 개편에 의해 동산동과 군자동이 종고동사무소로, 교동과 충무동이 통합하여 충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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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종고산과 한산도대첩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한산도대첩은 임진왜란 때인 1592년 7월 한산섬 앞바다에서 경상우수사 원균(元均),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및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이 거느린 조선 수군이 왜수군의 주력 부대를 무찌른 해전이다. 한산도대첩은 진주성대첩·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부른다. 한산도대첩은 왜수군의 주력을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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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에 있는 골목길. 히파리마치는 관문동에 있는 골목 이름으로, 옛 여수극장 앞의 도로를 말한다. 여수시 동산동과 관문동의 경계이며, 도로명은 관문서3길이다. 일제강점기에 발달한 여수의 대표적 홍등가로서, 오가는 행인들을 윤락녀들이 끌어당기며 호객행위를 했기 때문에 끌어당기는 동네라는 뜻의 일본어에서 히파리마치라 하였다. 히파리마치라는 명칭은 끌어당기는 동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