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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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안산동에 있는 근린공원. ‘지맹이’라고 부르던 장성마을의 동산이 있던 곳으로 예로부터 마을의 공원 역할을 하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2000년 9월 공원지구로 지정되어 조성되었다. 처음에는 안산제2공원으로 지정되었으나 장성마을의 역사가 고려가요 「동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동동」의 뜻을 살리기 위하여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가요 「동동」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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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호동 항호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소호동 항호마을은 남동 방향으로 장성마을, 남서 방향으로 소제마을과 인접하며, 마을 앞에 바다가 있다. 소호동 항호마을 당산(堂山)은 마을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소호동 항호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내는 것을 ‘제만 모신다’라고 한다. 제의 명칭은 그림이 있는 당집에서 모시는 제사라 하여 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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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안산동은 서쪽에 있는 안심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재의 장성마을, 여수마을, 심곡마을과 통합되어 여수군 쌍봉면 안산리가 되었다. 1986년 여천시 쌍봉동 관할의 법정동인 안산동으로 바뀌었고, 1998년 여천시·여천군·여수시가 여수시로 삼여통합됨에 따라 여수시 쌍봉동으로 통합되었다. 안심산의 동쪽과 북쪽 산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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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안산동 장성마을에서 소동패들이 풀을 베거나 논을 맬 때 협동하여 노동하는 모습을 엮은 전래 놀이. 1995년 8월 16일 주민 위개신[남, 74]이 제보한 바에 의하면 장성마을 소동패는 풀베기 및 논매기 작업의 품앗이 조직이었다. 제보자 위개신은 16세에 소동패의 ‘뒤영쪼시’를 했으며, 17세와 18세 때는 대동패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당시 이 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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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조선시대 수군 전선의 정박처 및 수군의 일차적인 제반 업무를 수행하는 항만시설을 포함한 일정한 군사적 공간. 여수 선소유적이 위치하던 곳의 포구는 예로부터 장생포라고 하였다. 장생포는 고려 공민왕 초 왜구가 장생포로 침입해 왔을 때 유탁이라는 장수가 위엄을 갖춘 모습으로 적을 물리쳤다. 이것 때문에 병사와 주민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며 부른 노래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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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춘경(春卿), 호는 성재(誠齋). 유탁은 고려 후기 1311년(충선왕 3)에 태어나 26세인 1337년(충숙왕 6)에 감문위대호군이 되었고, 1341년(충혜왕 2)에 도첨의참리, 전라양광도도순문사, 찬성사까지 승진하였다. 1344년(충혜왕 5)에는 원으로부터 지금의 마산에 본영이 있던 합포만호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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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쌍봉동 일대에 있던 포구. 고려시대부터 현재 여수시청이 들어선 지역을 장생포라고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순천부 선소로 알려졌으며,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쌍봉이라 하였다. 여수국가산업단지 건설로 여천지구출장소에서 여천시로 변했다가, 1998년 삼여통합 후 구여수와 신여수를 구분하여 서여수라 호칭하기도 했지만, 아직 여천과 쌍봉으로 호칭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장생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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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1~7세의 아동들이 건강하게 자랐음을 경축하고 장차 장수하고 유복하기를 기원하면서 벌이는 마을 잔치. 진세는 여수를 중심으로 주로 칠석날에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행했다. 이날 음식을 장만하여 잔칫상을 봐두고 ‘진세턱’으로 마을 어른들을 대접하며 하루를 즐겁게 논다. 유아의 사망률이 높았던 시기에 이렇게 함으로서 그 아이가 비로소 세상에 나아가 무병장수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