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부 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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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돌산 지역은 조선수군진의 하나로 방답첨사진이 자리하였는데, 진영이 석성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지금도 그 흔적을 마을 곳곳에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전기 중종 때 쌓아진 성의 기록을 보면 주위가 2,182척(尺)(661m), 높이가 13척(3.9m)의 사각형 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오랜 역사를 안은 마을답게 땅이름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담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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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는 357.5㏊의 면적에 537세대 1,415명[남자 715, 여자 700]의 주민이 살고 있는 돌산읍에서 가장 큰 법정리 마을로 돌산읍사무소 소재지이다. 군내리라는 마을 이름은 1896년 돌산도를 중심으로 한 도서 지역이 돌산군이 되면서 ‘군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지어졌다. 돌산이 군이 되었던 것은 당시 완도의 고금도와 흥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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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나대용은 전라좌수군절도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이 왜적 침입에 대비하여 병선 제작을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종제인 나치용과 함께 고향인 순천에서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 지역으로 내려왔다. 나대용은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전라좌수영 수군의 전선을 건조하는 감조군관으로 임명을 받고 선소에서 전선을 제작하게 된다. 선소는 전라좌수영 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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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던 수군기지. 1396년 진례만호진이 설립되어 28년간 계속되어 왔으나 1423년(세종 5) 1월 전라감사가 “도내 진례량의 병선을 내례량으로 옮겨 경상도 우수영[거제도]의 서편을 관장하는 남해도, 평산포만호진의 병선과 마주 대하여 봉화로 서로 연락하는 방어선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 는 장계를 조정에 올려 세종이 이를 윤허함으로써 진례만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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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시대 순천부 선소가 위치했던 자연마을이다. 선소(船所)라는 문자의 의미는 배가 있는 곳 또는 배를 만들었거나 만드는 곳이란 의미이지만, 주로 수군진(水軍鎭)의 군선(軍船)이나 행정 관아의 배를 두는 곳을 선소라 표기했다. 여수시 시전동의 시목, 기전, 선소 3개의 자연마을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마을로 마을의 동편인 계곡을 따라 바닷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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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 선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시전동 선소 당산제는 조선 시대 순천부 선소가 있던 자연 마을인 선소마을에서 행하던 제의이다. 시전동 선소 당산제는 1990년대 후반 중단되었다. 시전동 선소 당산제의 신격은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이며, 당산나무 밑 재단에 진정한다. 당집은 따로 없다. 제관은 1년 동안 궂은일이 없고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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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조선시대 수군 전선의 정박처 및 수군의 일차적인 제반 업무를 수행하는 항만시설을 포함한 일정한 군사적 공간. 여수 선소유적이 위치하던 곳의 포구는 예로부터 장생포라고 하였다. 장생포는 고려 공민왕 초 왜구가 장생포로 침입해 왔을 때 유탁이라는 장수가 위엄을 갖춘 모습으로 적을 물리쳤다. 이것 때문에 병사와 주민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며 부른 노래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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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쌍봉동 일대에 있던 포구. 고려시대부터 현재 여수시청이 들어선 지역을 장생포라고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순천부 선소로 알려졌으며,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쌍봉이라 하였다. 여수국가산업단지 건설로 여천지구출장소에서 여천시로 변했다가, 1998년 삼여통합 후 구여수와 신여수를 구분하여 서여수라 호칭하기도 했지만, 아직 여천과 쌍봉으로 호칭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장생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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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존속한 행정구역. 조수소는 전근대 사회에 존재했던 향·소·부곡의 특수 촌락 집단 가운데 하나인 소의 형태로,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 지역에 존재했다. 사회 발전에 따른 공동체의 통합 및 붕괴 과정에서 국가 제도에 따라 설치된 것으로 본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순천도호부에는 부곡(部曲)이 송림(松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