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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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관마을과 하관마을을 포함한 관기리(館基里)는 관 터라고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고쳐 부르는 이름으로, 화양면 지역에 있던 곡화목장으로 드나들던 사람들이 묵어가던 여관이 있어서 관(館) 터라 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며, 옛날부터 관리들이 살았던 터이기 때문에 관(官) 터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관기리 지역 주변을 살펴볼 때, 성본마을과 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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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과 화양면에 걸쳐 있는 간척지. 『전라남도 여수군읍지(全羅南道 麗水郡邑誌)』 ‘제언조(堤堰條)’에 나오는 “석보해언(石堡海堰)은 여수면 20리에 있으며, 걸망해언(乬望海堰)은 소라면 30리에 있다.”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여수 지역에서는 18세기 전부터 간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으로 간척이 실시된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이다. 관기평야는 전라남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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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의 산업 중 광업과 공업을 포함하는 업종. 광공업은 광물을 탐사, 채굴, 선광하여 제련하는 광업과 1차 산업에서 얻어진 수확물을 원료로 하여 가공하는 제조업을 함께 지칭하는 말이다. 한국산업분류표의 중분류에 의하면 모두 21개 업종을 광공업에 포함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석탄·원유 및 우라늄광업, 비금속 광물광업, 음·식료품 제조업, 섬유 제품 제조업, 봉제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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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마을에 불과했던 덕양마을이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1930년 여수-광주간 철도가 개통되면서 덕양역이 설치되고 1933년 면 소재지가 옮겨오면서부터이다. 덕양은 이때부터 소라면의 중심지만 아니라 교통의 요지로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소라면에는 일제강점기 때 바다를 막아 조성한 농토가 있었는데 복산간척지가 446,283㎡, 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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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법정리인 대포리에는 대포1구, 대포2구, 대포3구라는 행정리가 있는데 원대포, 구족도, 남해촌, 이상촌, 가마등, 신기, 장전, 노촌, 마전이라는 각각의 마을 이름이 있다. 대포2구에는 구족도와 남해촌, 가마등, 이상촌마을이 있다. 구족도마을은 간척지가 들어서기 전 마을이 해안으로 개의 꼬리 모양으로 늘어서 있어 개꼬랑지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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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황새봉과 율촌면 수암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하천. 하천 중·상류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중성화산암류가 관입되어 있으며, 하류쪽은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인 낙동층군하부에 속하는데 유로를 따라 엷은 충적층이 발달하였다. 많은 지류가 발달되어 있으며, 하류에는 제방을 쌓아 간척한 소라평야가 있다. 하천 연장은 약 13.5㎞로서 여수반도에서 가장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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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장터 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과 화양면 일대에서 농산물을 내다 팔거나 농기구나 일용품을 사기 위하여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그 당시에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덕양장터나 덕양역까지 오려면 농촌 지역에서는 지게에 짐을 지고 걸어와야 했다. 특히 소 거래는 새벽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장에 나온 사람들은 아침을 해결해야 했고, 장터에 일 보러 온 사람들은 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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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양리 지역에는 덕양1구에서 덕양6구까지 여섯 개의 행정리가 있다. 덕양1구로 불리는 상세동마을은 하세동과 더불어 바다로 이어지는 가늘고 긴 골짜기가 있어서 가는 골이라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고쳐 적어서 세동이라 하였다. 1921년 소라공립보통학교와 1925년의 대포 간척지 등이 조성되면서 지금과 같은 마을의 형태를 이루었으며,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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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만든 산이 있으므로 조산 또는 복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복산리의 조산마을에는 전주이씨와 창녕성씨, 대곡마을에는 밀양박씨와 달성서씨, 마산마을은 해주오씨, 달천마을에는 김해김씨·창원황씨·상주박씨, 섬달천에는 경주김씨와 경주최씨가 처음 들어온 입향조로 알려지고 있는 성씨들이다. 본래 여천군 덕안면 지역으로서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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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이름은 마을 뒷산이 길지로 알려진 황새봉과 연결되어 있고, 황새봉의 머리에 해당되어 봉두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여천군 구산면 지역으로서 비봉산 머리쪽이 되므로 봉두 또는 봉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백수·당촌·풍곡리와 덕안면의 의곡·금대·운암리를 병합하여 봉두리라 하여 소라면에 편입되었다.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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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소라포면 사기마을[沙器閭]로 기록되어 있다. 사기를 굽는 곳이란 뜻의 사구실이란 마을 이름을 사기(沙器)라 하다가 여수군 신설시 사곡(沙谷)으로 개칭하였다. 전라북도 옥구에 살던 진주강씨가 1690년경 정착했다고 전하는데,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도자기 가마터가 많아 오랫동안 사구실마을이라 하였는데,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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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행정면. 소라면(召羅面)의 지명 유래는 주삼천과 율촌면 신풍리의 신풍천이 봉두와 대포 지역을 지나 소라천에 유입되어 비단을 짜듯이 교차하면서 바다로 흘러가는 교류지 역할을 하는 포구였다고 하여 부를 소(召)자와 비단 라(羅)자를 따서 부른 소라포구(召羅浦口)가 면의 동북쪽 지역에 있어 유래하였으며, 또한 조선시대에 소라포면(召羅浦面)이라 부른 데서 유래를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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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있는 총 10종의 보호수. 소라면 보호수는 노거수로서 1982년 12월 3일, 2001년 8월 1일, 2004년 8월 6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소라면 보호수로는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다.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높이 20m에 이르며, 마을 부근 및 낮은 산과 하천 주위의 비옥한 저습지에서 자생한다. 뿌리가 발달하여 강풍과 해풍에 강하다. 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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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소라면의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기관.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여수군 소라면사무소가 설치되었으며, 1949년 8월 15일 여수시 승격으로 여천군 소라면사무소로 변경되었다. 1998년 4월 1일 여천시·여천군·여수시의 삼여통합으로 여수시 소라면사무소로 변경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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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소재지인 덕양에서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 상세동과 하세동 사이의 간선도로를 걸어가면 장터 입구에 허름한 슬라브 2층 건물이 있는데, 소라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막걸리 주조장이다. 아직도 건물에는 지을 당시에 외벽에 붙였던 타일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지을 당시에는 고급스런 건물이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지금은 막걸리가 소주나 맥주에 밀려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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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지역에 존속한 행정구역. 소라부곡은 전근대 사회에 존재했던 향·소·부곡의 특수 촌락 집단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지역에 존재했다. 사회 발전에 따른 공동체의 통합 및 붕괴 과정에서 국가 제도에 따라 설치되었다가 조선 전기에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순천도호부에는 부곡(部曲)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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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막걸리는 관혼상제나 잔치 또는 노동 때 사용하는 술이었다. 웬만한 농가나 주막에서는 수수나 보리로 막걸리를 빚어 먹거나 파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 강점 이후 일반 가정에서 술을 제조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일제는 한말의 주조업을 중요한 재원으로 주목하게 되었다. 1909년 「주세법」을 공포하여 주조 면허제를 시행하면서 주조업의 규모화·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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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있는 중증 장애인 재활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에덴동산은 사랑과 봉사, 섬김과 나눔의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지적 장애인들에게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길러주고 신체적·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데 두고 있다. 아울러 사회적응훈련과 재활훈련을 통해, 사회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에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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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있는 공립 중학교. 기본 생활의 바른 습관으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람, 심신을 조화롭게 다듬어 슬기롭게 개성을 기르는 사람,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향상으로 창의력을 키우는 사람, 우리 문화와 내 고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자긍심이 높은 사람, 다양한 경험과 인간관계 형성으로 세계화를 주도하는 사람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53년 6월 10일 삼일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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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에 있는 옛 절터.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옛 절터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불교가 한참 성행했던 때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암사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의 당촌 서북쪽 운암마을에 절이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서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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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죽림리의 이름은 말 그대로 마을 주변에 대나무가 많아서 지어졌다고 한다. ‘죽림청풍(竹林淸風) 고사용출(高士聳出)’이라 하여, 예로부터 뛰어난 선비가 많이 배출된 마을로 전해온다. 원죽마을은 죽림마을이 처음 터를 잡았던 곳이다. 신송마을은 저수지 부근에 있는 마을로, 마을 주변에 20여 기의 고인돌이 전해오고 있어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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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담당 기관. 초등학교에서 배운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 보통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로 고등학교 교육의 전단계로서 3년 과정으로 되어 있다. 「초·중등교육법」에는 초등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 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입학 자격은 초등학교 졸업자 또는 외국에서 6년 이상의 학교 교육을 이수했거나 교육위원회가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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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차동 유적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 갑옷. 철제갑주는 2008년 죽림리 차동 2지구 9호 석곽묘에서 발견되었다. 장방형 철판 다수를 상하로 연접하여 원두정(圓頭釘)[대가리가 둥근 못]으로 고정시킨 철판 갑옷으로 횡장방판정결판갑이다. 상부가 결실되어 정확한 형태는 파악할 수 없으나 현재 상하 4단이 남아 있다. 유사한 형태의 합천 옥전 28호분의 출토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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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해발고도가 낮고 기복이 거의 없는 넓은 땅. 평야는 형성 원인에 따라 크게 퇴적평야와 구조평야로 나누어진다. 퇴적평야는 하천의 퇴적 작용으로 형성된 평야로 충적평야라고도 한다. 그리고 구조평야는 지질대의 오랜 침식으로 형성된 평야로 침식평야라고도 한다. 전라남도 여수시의 주요 평야로는 여수시 주삼동과 화장동 일대의 여천평야, 돌산읍의 죽포평야·둔전평야,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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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을 무렵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하세동 경로당 옆을 유병길 할머니가 농기구를 유모차에 싣고 밀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 가시냐’고 물었더니 대뜸 ‘오늘도 밭에 가서 일해야 한다.’며 대답하면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행상 안하시냐고 했더니 행상 안한 지가 몇 년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 오랜만에 뵈었는데 경로당에 가서 행상했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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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쌍둥이마을과 소동패 놀이로 잘 알려진 현천리1구에는 선천·중촌·오룡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현천이라는 마을 이름은 본래 이름이었던 ‘가무내’를 한자로 바꿔 적은 이름이다. ‘가물(검을)현(玄)’과 ‘내천(川)’이라는 훈을 빌려 쓴 이두식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가무내’라는 마을 이름의 뜻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에 물이 적어서 가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