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를 시조로 하고 공은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공씨 본관은 곡부(曲阜) 단본이다. 1351년(충정왕 3) 공자의 53세손 공소(孔紹)가 고려에 귀화하여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고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져 관향(貫鄕)을 창원(昌原)으로 함으로써 우리나라 공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한국의 창원을 본관으로 같이 할 수 없다 하여, 1794년(...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가뭄에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제사. 예로부터 농사철에 가뭄이 심하면 나라와 민간에서 비 오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문헌에 의하면 이러한 의례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민간에서는 산상·냇가 등에 제단을 세워 신역(神域)으로 정하여 정결히 하고 마을 전체의 공동 행사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제주(祭主)는 마을의 장이나 지방 관청의 장이 맡았...
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세중(世中), 호는 서헌(西軒). 판도판서공 김관 파조의 7세손이다. 김해김씨 여수 입향조 서산(西山) 김은대(金銀戴)의 4세손인 김대(金大)의 둘째아들이다. 김설은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임진왜란의 막바지에 여수 묘도싸움...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웃바구’라고 하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바꾸면서 상암(上岩)이 되었다. 상암은 상암동 고인돌 군락의 바위 중 맨 위쪽에 위치한 바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바위에는 옛날 옛적 금강산을 만들라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금강산으로 가다 멈춰버린 설악산의 울산바위처럼 금강산이 완성되어 멈추어 섰다는 「상암돌」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본래 순천부 삼일면...
방답진을 설치하게 된 배경에는 왜구가 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왜구가 조세를 운반하는 조운선을 주요 노략질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왜구에 대한 방어 대책은 개경이나 한양의 길목인 서해안과 남해 서부 해안에 군사력을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의 기틀이 정비되는 세종에서 성종 때를 기점으로 수군 기지가 전진 배치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왜구의 침략이 남해안을 중심...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인간의 의사·지식·감정 또는 각종 자료를 포함한 정보를 공간적으로 주고받는 작용이나 현상 또는 그 수단이나 기술의 총칭. 넓은 뜻으로는 통신은 인체나 재화(財貨)의 위치적 또는 공간적 이동을 의미하는 운수(transportation)에 대응해서, 서신을 대상으로 하는 우편, 전류나 전파를 매체로 하는 전기 통신, 공간과 수중을 통한 음향 통신, 빛·연기·수기(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