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
선사시대부터 후삼국시대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시의 역사. 여수 지역에는 삼한시대 마한연맹체의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4세기 후반 백제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전라남도 지역에 위치한 여러 소국들은 백제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백제는 여러 소국들을 곧바로 군현(郡縣)으로 편제하거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소국의 족장세력의 존재를 인정하고...
-
936년 후백제 멸망 이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남도 여수시의 역사. 개성 지역의 호족 세력으로 발전한 왕건(王建)은 918년 고려를 건국하였다. 935년 신라의 투항을 받아들인 후, 936년 후백제를 멸망시켜 후삼국을 완전히 통합하였다. 940년(태조 23) 전국의 행정 구역을 주(州)·부(府)·군(郡)·현(縣)으로 개편하였다. 이에 통일신라시대에 해...
-
이자성을 시조로 하고 이동구(李東耉)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광주이씨(廣州李氏)는 신라 내물왕 때 내사령(內史令)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을 시조로 받드는 성씨이다. 신라 호족의 후예인 이자성은 고려 건국과 더불어 회안호장(淮安戶長)으로 강등되었다. 이에 따라 후손들은 처음에 회안을 본관으로 삼았다가 회안의 현재 지명인 광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
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흔과 유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기계유씨는 신라 때 아찬을 역임한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받든다. 그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은 신라가 망했는데도 고려에 불복하므로 태조가 기계호장(杞溪戶長)을 삼았다. 이에 따라 유의신의 후손들은 기계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유의신의 종파인 동정공파(同正公派)를 비롯하여 월성군파(月城君派)·장사...
-
남북국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김총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을 도와 관직이 인가별감에 이르렀으며, 여수 지역 사람들은 그를 성황신으로 받들고 있다. 1686년(숙종 12) 여산[여수 돌산] 군수였던 김총의 32대손 김노득(金魯得)은 『순천김씨가덕록평양군가찬』에서 신라의 종성인 자신의 선조가 신라의 반역자를 섬길 수 있는가 반문하며 김총이 견훤을 섬긴 것을 부인하고...
-
양을나를 시조로 하고 양성호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남원양씨는 제주 삼성혈(三姓穴)에서 나와 탐라국을 세운 양을나를 시조로 받든다. 양탕(良宕)의 후손 양우량(梁友諒)이 신라에서 공을 세워 남원백(南原伯)에 봉해졌으므로 제주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남원으로 하였다. 병부공파(兵部公派)와 용성군파(龍城君派)가 있다. 남원양씨 최초 입향자는 양성호(梁聖浩)이다. 그는...
-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응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남평문씨(南平文氏)는 신라 자비왕 때 사람인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한다. 문다성은 남평에서 태어나 고려 말 대장군을 거쳐 삼중대광벽상공신으로 남평백에 봉해졌다. 이에 따라 문다성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받들고 관향을 남평으로 하게 되었다. 고려 문종 때 풍산군에 봉해진 문익(文翼)을 중시조로 하며, 문익점...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국립 교육기관. 조선시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과거에는 나라에서 토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현대에는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시대 돌산은 순천부 행정구역에 속하여 방답진(防踏鎭)이 위치하고 있었는...
-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웅도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박씨는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의 후손들이다. 밀양박씨는 신라 경명왕의 제1왕자인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는데, 그는 박혁거세의 30세손이다. 이후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도평의사사사공파(都評議使司使公派)·좌복야공파(左僕射公派)·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판도공파(版圖公派)·좌윤공파(...
-
손순을 시조로 하고 손상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모든 손씨는 신라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촌장(村長) 구례마(俱禮馬)에서 갈라졌는데, 밀양손씨는 신라 모량부(牟梁部) 사람 태자사인(太子舍人) 손학산(孫鶴山)의 아들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후 군사공영파(郡事公榮派)·전농시사공파(典農寺事公派)·사부공파(師傅公派)·중서령공파(中書令公派) 등으로 갈리면서...
-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에 있는 불을 밝혀 항해에 도움을 주는 시설. 화정면 백야도 인근 해상을 항해하는 선박의 위치와 항로 결정, 위험물과 장애물에 대한 경고는 물론, 좁은 수로 또는 항로의 한계 등을 알려주고, 육지의 원근, 소재, 위험 장소를 알리거나 입항 선박에 항구 위치를 알려 주는 항로 표지의 일종이다. 남해안은 많은 어선이 고기잡이를 하기 위해서 왕래하는데, 날씨...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살고 있는 동일 인물을 조상으로 하는 혈족 집단. 성씨는 혈연 관계를 나타내 주는 단위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고(高)씨, 백제의 시조 온조의 부여(夫餘)씨, 신라의 박(朴)·석(昔)·김(金)씨 등을 시발로 귀족 계급에서 먼저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성씨가 많이 늘어났고, 조선시대에는 일부 천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
김품언을 시조로 하고 김득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수원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증손자 김품언(金稟言)을 시조로 하고 있다. 김품언은 고려 때 정난공신(靖亂功臣)으로 태자소보(太子少保)를 지냈으며, 거란군을 토평한 공으로 수성군에 봉해졌다. 김품언의 후손이 식읍을 하사 받은 수성에서 대대로 살면서 본관을 수성의 지금 이름인 수원으로 하였다. 수원김씨 여수 입향조는...
-
백우경을 시조로 하고 백문익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수원백씨의 시조는 백우경(白宇經)이다. 백우경은 당나라에서 신라에 귀화하여 벼슬이 좌복야사공대사도에 이르렀는데, 그의 후손 백휘(白揮)가 고려 목종 때 대사마대장군으로 수원군에 봉해짐으로써 수원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수원백씨의 여수 입향조는 백문익(白文益)이다. 백문익은 정국공신(靖國功臣) 백수장(...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안도(雁島)는 여수시에서 남쪽으로 34㎞ 떨어진 곳에 있는 섬으로 북쪽에 금오도가 있고 남쪽에 연도가 있다. 면적은 3.96㎢, 해안선 길이는 29㎞이며, 섬 중앙에 솟은 상산(上山)[207m)]이 가장 높다. 상산 정상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있는데, 왜구의 침략과 상황을 알리던 요망소로 추정되며 금오도의 심포마을 요망소와 서로 연락을 취했을...
-
중국 당나라의 불교를 배우기 위해 선발된 일본 승려[遣唐請益僧] 엔닌[圓仁][794~864]은 838년 6월 13일 당나라에 파견될 사신의 배[遣唐使船]를 타고 지금의 규슈 후쿠오카를 출발하였다. 엔닌은 천태종의 발상지인 천태산 순례가 좌절되자 장보고가 세운 적산법화원에 머물며 당나라 불교를 배울 방도를 찾다가 840년 불교 성지 가운데 하나인 오대산 대회엄사...
-
통일신라시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설치된 행정구역. 통일신라시대는 통일 후 확대된 영토를 통치하면서 자연히 지방 행정구획의 재편성을 단행하였다. 이 지방 행정조직의 개편은 대개 677년(문무왕 17) 무렵 당의 세력을 밀어내고 687년(신문왕 7)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9주(九州) 5소경(小京)의 제도 형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신라가 단일 정부로서 중앙에서 백제·고구려의...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열 곳과 가장 맛있는 음식 열 가지. 여수 10경, 여수 10미(麗水 十景, 麗水 十味)는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직접 선정하였다. 여수 10경에는 오동도, 거문도와 백도, 금오도 비렁길, 향일암, 여수세계박람회장, 진남관, 여수 밤바다와 산단[여수국가산업단지] 야경, 영취산 진달래, 여수해상케이블카, 이순신대교가 있다. 여수 10미는 돌산갓김치...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국립 중등 교육 기관. 여수 지역은 순천부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향교의 역사가 짧았으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끝난 뒤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897년 여수군(고종 34)이 생기면서 여수향교가 세워졌다. 여수향교는 1897년에 옛 좌수영 지역에 여수군이 설치되면서 창건되었다. 대성전에는 공자가 으뜸으로 모셔져 있으며, 안자(顔子)·...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9세기 중엽 일본 승려 엔닌의 불교 성지 여행기.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는 일본인 특유의 꼼꼼한 기록으로 9세기 중엽 당나라의 정치, 경제, 민속, 종교, 법제, 지리 등 사회상 전반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신라와 발해 및 일본에 관해서도 정사에 나오지 않는 귀중한 자료를 곳곳에 남기고 있다. 특히 일본으로 귀국하던 중에 기착한...
-
여수반도와 도서로 이루어진 여수시는 동쪽으로는 여수수도(麗水水道)를 끼고 경상남도 남해군이 있고, 서쪽은 순천만을 끼고 고흥반도의 동남쪽과 바다로 경계를 이룬다. 또한 남쪽은 남해바다, 북쪽은 순천시와 접하고 있다. 여수반도의 동남단 앞바다에는 대경도(大鏡島)와 소경도(小鏡島)·가장도(加長島)·야도(冶島)·오동도(梧桐島)·돌산도(突山島) 등의 섬들이 천연의 방파제를 이루고 있다....
-
위경을 시조로 하고 위효징과 위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당 태종이 보낸 8학사(八學士) 중 위(魏) 땅에 거주했던 위경(魏鏡)은 신라 조정으로부터 아찬(阿飡) 벼슬까지 부여되고 지금의 장흥인 회주(懷州)에서 문화사절(文化使節)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로 인해 고려 충선왕 때 위경을 회주군(懷州君)으로 봉하니 장흥위씨의 시조가 된다....
-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원인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 이한은 신라에서 사공 벼슬을 지냈으며, 이성계(李成桂)의 21대조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오름으로써 세계가 번성하여 파조도 대단히 많다. 전주이씨 여수 입향조는 양녕대군(讓寧大君) 후손 이원인(李元仁)이다. 이원인은 1580년대에 담양에서 여수시 율촌면 반월리 삼산마...
-
양을나를 시조로 하고 양하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제주양씨(濟州梁氏)는 탐라(耽羅) 삼성혈(三姓穴) 설화의 주인공 양을나(良乙那)를 시조로 하는 혈족이다. 처음에는 성으로 양(良)을 쓰다가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559년(진흥왕 20)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입조하나 진흥왕이 많은 상을 내리고 성을 양(梁)으로 하사하였다고 한다. 양탕의 후손으로 양순...
-
돌산향교 가 들어선 지명을 한자로 석전평(石田坪)이라 표기한다. 1896년 돌산군이 건립되자 돌산의 유림들은 가장 먼저 향교 건립에 나서 1897년에 향교가 건립될 수 있었다. 섬이라는 환경 때문에 업신여김을 당하던 밑바탕에는 배우지 못해 무식한 사람이라고 얕보인다는 자괴감이 팽배해 왔던 상황에서 향교가 건립된 것은 이들의 자부심을 세워주기에 충분한 계기가 되었...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절대자를 믿고 숭배하는 일과 그 체계. 여수 지역에는 원시적인 무교(巫敎)에서부터 기독교·불교·유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가 분포되어 있다. 이 종교들은 때때로 지역민들이 실의와 좌절에 빠졌을 때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하고, 역사의 격변 속에서도 굳건한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고, 개인의 인격과 도덕적 심성의 도야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여수에서는...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주호와 강원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진주강씨(晉州姜氏)는 진양강씨(晉陽姜氏)로 부르기도 한다.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의 후손인 강진이 신라 헌강왕 때 태중대부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으로 재임 중에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로 하게 되었다. 진주강씨는 크게 은열공파(殷烈公派), 박사공파(博士公派), 소감공파(少監...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발굴된 진흙으로 빚어 구워서 만든 용기. 재료·제법이 토기와 비슷한 용기류에 도기(陶器)와 자기(磁器)가 있다. 도기는 진흙 태토를 원료로 하는 점에서는 토기와 같으나, 토기보다 훨씬 고열로 굽고 기체(器體) 표면에 인위적으로 유약(釉藥)을 발라서 물의 흡수를 많이 줄인 점이 다르다. 또 자기는 원료부터 토기와는 달리 진흙이 아닌 돌가루를 쓰며, 고열로 구워서...
-
여어매를 시조로 하고 여광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함양여씨(咸陽呂氏)는 당나라 희종 때 신라에 건너와 창성한 여어매(呂御梅)를 시조로 삼는 성씨이다. 최초 정착한 곳이 함양(咸陽) 혹은 성산(星山)이라는 설로 인해 함양여씨와 성산여씨로 갈라진다. 시조 여어매는 고려 때 대장군을 지낸 여임청과 낭장을 지낸 여광유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함양여씨는 여임청의 세 아...
-
통일신라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확대된 영토를 통치하는 데 있어 자연히 지방행정 구획의 재편성을 단행하였다. 지방 행정조직 개편은 677년(문무왕 17) 무렵 당의 세력을 밀어낸 후 687년(신문왕 7)에 걸쳐 완성되었다. 9주(九州) 5소경(五小京)의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신라가 단일정부로서 중앙에서 백제·고구려의 옛 영...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향일암에 얽힌 이야기.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산7번지[향일암로 1]에 있는 향일암은 644년 신라의 원효대사가 원통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1715년(숙종 41)에 향일암으로 개명했으며, 수차례의 훼손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향일암은 주변의 기암괴석과 동백나무 숲, 일출 등을 보려고 많은 관광객이 찾는...
-
전라남도 여수시 흥국사에 있는 조선 중기 불교 경전 및 의식문 등을 다량으로 인쇄하기 위해 제작된 목재 경판 일체. 불교는 삼국시대에 처음 들어온 이래 설법과 간경(刊經)으로 전파되었다. 설법은 승려가 직접 불법을 강설하는 것이며, 간경은 불법의 가르침을 책으로 간행하는 것이다. 초기의 간경은 사람이 직접 붓으로 썼다. 짧게는 수십자에서 길게는 수십만자의 불경을 일일이 사람의 손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