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례만호진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어항단지가 있는 국동(菊洞)은 굿개라고 부르던 지역을 한자로 고친 국포(菊浦)에서 유래한 동의 이름이다. 굿개란 이름은 어민들이 굿을 하던 개(해변)란 뜻으로, 어업을 생계로 하던 어민들에게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는 영역으로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굿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여수의 굿개의 경우도 지금은 국포(菊浦)가 변한 국동으로...
-
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던 수군기지. 1396년 진례만호진이 설립되어 28년간 계속되어 왔으나 1423년(세종 5) 1월 전라감사가 “도내 진례량의 병선을 내례량으로 옮겨 경상도 우수영[거제도]의 서편을 관장하는 남해도, 평산포만호진의 병선과 마주 대하여 봉화로 서로 연락하는 방어선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 는 장계를 조정에 올려 세종이 이를 윤허함으로써 진례만호진...
-
13~16세기에 걸쳐 일본의 해적 집단이 여수 지역을 수시로 침입하여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한 사건. 왜구는 일본의 해적집단으로 일본 중세기의 혼란기에 중앙 통치력이 지방에 미치지 못할 때 가까이는 한국, 멀리는 중국 연안까지 침입하여 큰 해를 주었다. 이 해적들은 주로 서부 일본의 연해민으로서 생활필수품인 쌀 등을 구하기가 어려워 해적활동을 하였다. 우리나라에 왜구의 침입이...
-
조선시대 여수 지역에 설치한 전라좌도 해안 경비를 담당했던 수영(水營). 전라도 지역에 왜구의 침범이 잦아지자 전라좌도 수군을 강화하기 위하여 1479년(성종 10) 정월에 내례만호진(內禮萬戶鎭)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全羅左道水軍節度使營)이 신설되었다. 전라좌수영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내례포(內禮浦)로 기록되어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392년 조선 개국시 여수현령 오흔인(吳欣仁)이 신왕조에 불복하였다 하여 1396년(태조 5)에 여수현과 돌산현이 폐지되고 순천도호부에 속한 여수면이 되었다. 소라포부곡은 소라포면, 율촌부곡은 율촌면이 되었으며 삼일포향은 삼일포면으로 개칭되었다. 또한 돌산현은 여수면으로 흡수되고, 인근 섬들은 낙안, 광양, 흥양[현 고흥] 등에...
-
여수의 선박은 민가의 어선뿐만 아니라 전함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예부터 여수가 어항이면서 조선 초기에 설진된 진례만호진·돌산포만호진·내례만호진, 성종 때 설진된 전라좌수영, 중종 때 설진된 방답첨사진의 관방이 있었고, 여수 근해에 풍부한 어장과 수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수에서 본격적으로 여객선이 운행된 것은 1950년대부터이며,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