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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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호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경주이씨는 신라 초 6촌의 하나인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급량부] 촌장 표암공(瓢巖公) 알평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후 알평의 36세손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하면서 성암공파(誠菴公派)·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호군공파(護軍公派)·국당공파(菊堂公派)·부정공파(副正公派)·상서공파(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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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은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김해김씨는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을 시조로 받든다. 김해 이후 분관된 사례가 없으나 다만 인도 공주 출신인 수로왕의 비 허황옥(許黃玉)의 간곡한 요청으로 두 아들은 모성을 따라 허씨가 되었다. 김해김씨의 파계는 김유신을 중시조로 하여 분파되었는데, 그 중 김유신 직계인 시조의 51세손 김목경(金牧卿)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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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일승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우리나라 남양홍씨는 639년(영류왕 22)에 당나라로부터 파견된 8학사 중 한 명인 홍천하(洪天河)를 선시조(先始祖)로 전해지고 있다. 홍천하는 당신(唐臣), 당성백(唐城伯), 덕산촌왕(德山村王) 등으로 후대를 받았는데, 그의 10세손 홍은열(洪殷悅)이 고려 개국 공신이 되면서 남양홍씨의 시조가 되었다. 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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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득선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달성서씨는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고 달성군(達成君)에 봉해지고 서씨 성을 받은 서진(徐晋)을 시조로 한다. 서진의 후손은 7세손 때 서제(徐濟)를 파조로 하는 현감공파(縣監公派), 서도(徐渡)를 파조로 하는 학유공파(學諭公派), 서섭(徐涉)을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 서근중(徐近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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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철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시조 유차달(柳車達)은 고려 개국 공신으로 후삼국 통일 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8세손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으며, 유경(柳璥)의 고향인 유주를 식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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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가장리 평촌에 있는 문화유씨 사우. 문화유씨 유용공(柳用恭)[1492~1511]과 유몽정(柳夢井)[1551~1589], 유렴(柳濂)을 배향하고 있다. 이전에는 유공신(柳公信)도 배향하였으나 중건하면서 빠졌다. 유용공은 호가 모강(茅崗)이며 세종 시기에 활동한 명신으로서 청백리였던 유관(柳寬)의 후손이다. 유용공은 한양에서 태어났으나, 나부 모산촌(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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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를 시조로 하고 주법명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중국 하남성 신안면(新安面)에서 태어난 주잠(朱潛)은 주희(朱熹)의 증손으로 몽고의 침입을 피해 아들 주여경(朱餘慶)과 문하생 섭공제(葉公濟) 등 7명의 학사(學士)를 데리고 고려로 망명하였다. 송나라를 무너뜨리고 중원의 주인이 된 원이 고려에도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안 대신 능성(綾城)을 본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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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원인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 이한은 신라에서 사공 벼슬을 지냈으며, 이성계(李成桂)의 21대조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오름으로써 세계가 번성하여 파조도 대단히 많다. 전주이씨 여수 입향조는 양녕대군(讓寧大君) 후손 이원인(李元仁)이다. 이원인은 1580년대에 담양에서 여수시 율촌면 반월리 삼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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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문을 시조로 하고 박만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진원박씨(珍原朴氏)는 고려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한 박진문(朴進文)을 시조로 하고 있다. 진원박씨는 구진박씨(丘珍朴氏)라고도 하는데, 역시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에서 분관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1652년(효종 3) 문강공(文康公) 박광전(朴光前)의 후손 박만칠(朴萬七)이 효종 때 보성에서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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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주호와 강원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진주강씨(晉州姜氏)는 진양강씨(晉陽姜氏)로 부르기도 한다.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의 후손인 강진이 신라 헌강왕 때 태중대부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으로 재임 중에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로 하게 되었다. 진주강씨는 크게 은열공파(殷烈公派), 박사공파(博士公派), 소감공파(少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