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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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때 초대 여수군수 오횡묵의 문집 및 정무 일지. 고종 연간 문인이자 지방관인 오횡묵(吳宖默)[1834~?]이 1897년 5월부터 전라남도 여수군 군수로 있으면서 적은 지방행정에 관한 기록. 3책으로 1책에 시 259수, 2책에 시, 256수 3책에 송(頌) 1, 서(序) 10, 기(記) 7, 제문(祭文) 15, 상량문(上樑文) 1, 전문(箋文) 1, 율령문(律令文) 1, 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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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巨文島)라는 지명은 문자 그대로 ‘큰 학문이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거문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거문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삼도(三島)’라 불렸다. 그러다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이 불법으로 1885년부터 1887년까지 거문도를 점령한 거문도 사건 당시 청나라의 정여창(丁汝昌) 제독(提督)이 거문도에 자주 상륙하여 섬 주민과의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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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효자. 김해김씨 김지혁·김장혁 형제는 아버지가 병이 들자 드리는 약을 맛보았고, 변까지 맛보았다. 상을 당하여 3년 간 몸소 묘 앞에서 나무를 하고 밥을 지어 먹으니 풀이 나지 않았다. 성묘할 때마다 도깨비불이 앞에서 인도하고 나루에 가면 바람이 그쳤다. 어머니 상에 있어서도 또한 그렇게 했다. 형제가 함께 50년을 한 이불을 덮고 살며 효우(孝友)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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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녕을 시조로 하고 오남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동복오씨(同福吳氏)는 고려 고종 때 거란을 토평한 공으로 동복군(同福君)에 봉해진 오녕(吳寧)을 시조로 하고 동복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여수에 최초로 들어온 동복오씨 입향조는 오남(吳南)이다. 오남은 시조의 16세손이고 파조 조서공 오가인(吳可仁)의 6세손으로, 1528년(중종 23) 아우 오빈(吳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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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군신을 상징하는 군기인 둑[纛]에 지내던 제사. 둑제는 군신을 상징하는 깃발에 지내는 제사의식으로 고대부터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둑에 제사를 지낸 데서 유래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둑기의 모습이 확인되지만 둑제의 시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승리의 신인 치우의 머리를 형상화한 둑기는 소의 꼬리나 검은 비단으로 만들어 ‘대조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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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철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시조 유차달(柳車達)은 고려 개국 공신으로 후삼국 통일 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8세손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으며, 유경(柳璥)의 고향인 유주를 식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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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평중(平仲), 호는 죽파(竹坡). 초기의 이름은 박자방(朴自芳)이었다. 밀양박씨 여수 입향조인 박진현(朴振賢)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무과에 올라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으로 있을 때 박자방을 대동하고 화양에 입향하여 임진왜란에 참전했다. 어렸을 때부터 장재(將材)로 소문난 박자방은 정유재란을 당하여 전라좌수영으로 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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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고종과 순종의 장례식에 통곡단을 조직하여 참석한 사건. 1864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왕조 제26대 왕에 등극한 고종은 헤이그밀사사건으로 1907년 퇴위하기까지 43년 동안 실로 내우외환이 겹치는 국난 가운데서 초의한식(草衣寒食)으로 편할 날이 없다가 1919년 1월 일본인에 의한 독살설이 나도는 가운데 서거하였다. 1919년 3월 3일의 고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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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사당. 일제강점기인 1926년 순종의 장례식 때 여수 지역 유림 대표 정충섭, 정영민, 최석주, 최봉삼 등 네 명이 중심이 되어 유림 50여 명을 규합하여 여수 유림 조선통곡단을 결단한다. 그들은 열차편으로 상경하려 했으나 일제 관헌에 의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은밀히 야간에 선박을 이용하여 부산을 거쳐 순종의 장례식에 참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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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여수를 관할하는 순천부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 인물. 서정순의 자는 원중(元仲)이며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순천부사로 부임하여 그 행정력이 여수까지 미쳐 선정을 베풀었으며, 중앙 정치에 참여해서는 함경도의 방곡령 사건 등 외교문제를 처리했고, 갑오개혁 이후 공무아문 대신과 박정양 내각의 법부대신 겸 고등재판소 재판장을 지냈으며, 만민공동회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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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이천(利川). 호는 금호(錦湖). 문익공(文翼公) 서강(徐岡)의 후손이며, 이천서씨 여수 입향조 서진(徐晉)의 7세손인 서음(徐崟)의 아들이다. 서춘무는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임금이 의주로 파천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우위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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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6세기에 걸쳐 일본의 해적 집단이 여수 지역을 수시로 침입하여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한 사건. 왜구는 일본의 해적집단으로 일본 중세기의 혼란기에 중앙 통치력이 지방에 미치지 못할 때 가까이는 한국, 멀리는 중국 연안까지 침입하여 큰 해를 주었다. 이 해적들은 주로 서부 일본의 연해민으로서 생활필수품인 쌀 등을 구하기가 어려워 해적활동을 하였다. 우리나라에 왜구의 침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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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1910년을 전후로 펼쳐졌던 항일 의병운동. 한반도 남해안의 중심 항구인 여수시는 지정학적 이유로 일본의 침략을 많이 받아 왔다. 삼국 시대부터 끊임없이 한반도의 남해안을 침략해 노략질을 일삼아 온 왜구는 고려 후기 여수 지역 장생포에서 유탁(柳濯) 장군에게 격퇴당하였다. 왜구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수많은 침략을 감행하였는데, 이대원(李大源) 장군의 손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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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거문도]에 유배되었다가 사망한 의병. 임병찬(林炳瓚)의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중옥(中玉), 호는 돈헌(遯軒)이다. 아버지는 임용래(林榕來)이다. 임병찬은 1851년(철종 2) 2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옥구군 서면 상평리 남산마을에서 태어났다. 1888년(고종 25) 호남에 큰 흉년이 들자 그해 11월 1,000냥을 내어 백성들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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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항일운동가. 정용수(丁龍洙)는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대표 유림이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정용수를 비롯한 정충섭, 김병순, 정영민, 정병훈 등 전라남도 여수 지역 유림 42명(여성 6명 포함)이 백기통곡단(白旗痛哭團)을 조직하여 상경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여수 유림들에 대한 평판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것은 비록 3·1운동과 같이 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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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제도리에 있는 섬. 임진왜란 당시 옥천육씨(沃川陸氏)가 난을 피해 처음 입도한 뒤 임씨(林氏), 배씨(裵氏), 서씨(徐氏) 등이 차례로 입도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형이 제비와 같다고 하여 1687년(숙종 13) 젤섬 또는 제비여 제리도(濟里島)라 부르기도 하였고, 고종 때 돌산군 설립 당시 지금의 이름으로 불렀다. 최고봉은 105m이다. 섬의 동쪽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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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석가모니 탄생일에 행해지는 풍속. 음력 4월 8일은 불교의 연중 기념일 가운데 가장 큰 부처님오신날이다. 석가모니는 B.C. 563년 4월 8일(음력) 해가 뜰 무렵 북인도 카필라왕국(지금의 네팔 지방)의 국왕 슈도다나(uddhodāna)와 왕비 마야(Māyā)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4월 8일을 ‘초파일’이라 하여 명절처럼 기념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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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흔인과 오시창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해주오씨는 오인유(吳仁裕)와 오현보(吳賢輔)를 각각 시조로 삼은 두 경우가 있다. 오인유는 본래 중국 송나라 학사로 984년 고려에 들어와 검교군기감을 역임하였는데,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으로 삼고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또, 오현보는 고려 고종 때 거란을 토벌한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