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국가 시대부터 통일신라 말기까지 영주 지역의 역사. 영주 지역에는 진한(辰韓) 소국(小國) 가운데 하나인 기저국(己柢國)이 있었다는 학설이 제기되어 있다. 영주 지역은 소백산맥의 남북 지역을 연결하는 군사 및 교통의 요충지로 중시되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북방의 고구려나 남방의 신라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500년(소지마립간 22) 9월 신라의 소지마립간이 날이군...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의 역사. 고려시대에는 여러 차례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고을 명칭의 변경과 승격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영주 지역에는 강주(剛州)·기주(基州)·흥주(興州)·순안현(順安縣)·영주(榮州)·흥녕현(興寧縣)·순흥부(順興府) 등 고을이 두어졌다. 문화적으로도 영주 지역은 고려시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 성리학...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약련(金若鍊)[1730~1802]은 1776년(정조 즉위년) 사도세자(思悼世子)[1735~1762]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한 이응원(李應元)의 상소에 연루되어 삭주로 유배당했다. 김약련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유성(幼成), 호는 두암(斗庵)·인수(忍叟)이다. 아버지는 생원 김지(金墀), 어머니는 생원 박태래(朴...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영주 지역의 역사. 소백산 아래 교통의 요충지였던 영주는 고대부터 삼국의 쟁탈지가 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석사(浮石寺)가 창건되어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이 배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설립되는 등 유교문화를 꽃피워 나갔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기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