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 봉현면 노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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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노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노계서원(蘆溪書院)은 진중길(秦中吉)[1308~?]과 한산두(韓山斗)[1556~1627]를 제향하고 있는 서원으로 1788년(정조 12) 건립된 노계사(蘆溪祠)에서 출발한다. 봉현면행정복지센터에서 지방도제931호선을 타고 석관천을 따라 남쪽으로 8㎞가량 이동하면 서쪽으로 용부교가 나타나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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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좌리(魯佐里)는 영주시 봉현면 7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노좌1리, 노좌2리, 노좌3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노재이[奴者, 魯佐], 사리미[士林里, 백산동], 새마[새말, 새마을], 추월당, 다리목[多來村, 다래골], 상마[上村], 중말[중마을] 등이 있다. 노좌리 명칭은 노재이마을에서 유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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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에 있는 경북지방우정청 산하 우정사업기관. 영주우체국은 영주 지역에서 각종 우정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1905년에 설립된 체신기관이다. 영주우체국은 안정적 수익을 바탕으로 영주시민이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우정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영주우체국은 1905년 6월 15일 영천임시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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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유전리(柳田里)는 영주시 봉현면 7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유전1리와 유전2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진밭[泥田], 버드래이[柳陰洞, 버드래미], 주막거리[송정골], 힛트재[히티재, 재말, 힛트재말], 짤드매기[月峴, 달뜨매기] 등이 있다. 유전리 명칭은 유음동(柳陰洞)과 이전동(泥田洞)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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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노좌리에 있는 산. 자구산(子求山)[757.5m]은 영주시 봉현면 노좌리와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자구산의 동쪽은 영주시이고 서쪽은 예천군이다. 자구산은 영주시의 서쪽에 남북 방향으로 발달한 산맥이다. 자구산의 북쪽 능선을 따라 옥녀봉이 연결되어 있으며 모래재골을 넘어 묘적봉과 도솔봉까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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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과 안정면 사이에 있는 산. 주마산(走馬山)[516.2m]은 영주시 봉현면 노좌리와 안정면 여륵리 사이의 봉우리이다. 예천군 감천면부터 남북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산줄기의 중앙부에 있다.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본래는 나치산 또는 고방산이라고 하였으나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浮石寺)를 짓는데 세 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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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여륵리에 있는 지네바위 유래에 관한 이야기. 「지네바위」는 지네바위의 지명유래전설이다. 지네바위 밑에는 지네가, 지네바위 근처의 못에는 구렁이가, 지네바위 위에는 까치가 살면서 이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자 결국 하늘의 벌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지네바위」는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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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진담(秦澹)[1450~1527]은 사헌부감찰·경산현령·사도시정·양양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진담의 자는 지용(智用), 본관은 풍기(豊基)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계림판관을 역임한 진중길(秦中吉)[1308~?],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진소유(秦小儒), 할아버지는 봉산군수 진호(秦浩)[1367~1425], 아버지는 예문관직제학을 지낸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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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진중길(秦中吉)[1308~?]은 학행으로 천거되어 계림판관을 지냈다. 진중길의 본관은 풍기(豊基), 호는 행정(杏亭)이다. 아버지는 중문지후를 지낸 진효정(秦孝貞), 아들은 사재감부정을 지낸 진소유(秦小儒), 사위는 병부원외랑을 지낸 최림(崔霖), 손자는 조선 전기 사헌부장령을 지낸 진호(秦浩)[1367~142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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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필명을 도시조로 하고 진질명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주시의 세거 성씨. 풍기진씨(豊基秦氏)는 영주시 풍기읍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풍기진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진필명(秦弼明)[624~?]이다. 우리나라 진씨의 근원은 본래 중국 태원 사람으로 당나라 고종 때 병부시랑으로 660년 원정군을 이끌고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킨 후 신라에 귀화한 진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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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겸 의병. 한산두(韓山斗)[1556~1627]는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한산두의 자는 사첨(士瞻), 호는 추월당(秋月堂),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장사랑 한영년(韓永年),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한필(韓珌),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한일취(韓日就), 어머니는 참봉 진황(秦晃)의 딸 영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