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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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개항 이후부터 1910년 대한제국기까지 영주 지역의 역사. 1876년(고종 13) 2월 일본과 강제로 체결한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조선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은 안으로는 봉건사회를 극복하고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며, 밖으로는 제국주의 침략을 극복하여 자주적인 사회를 건설해야만 하는 반제 반봉건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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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간행된 조선 후기 영주에 정착한 문신인 오여벌의 시문집. 『경암집(敬菴集)』은 영주에 정착한 오여벌(吳汝橃)[1579~1635]의 시문 등을 엮은 책으로, 오여벌의 교우 관계와 역사·철학에 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오여벌의 자는 경허(景虛), 호는 경암(敬菴)·남악(南岳), 본관은 고창(高敞)이다. 경상도 의령에서 아버지 오운(吳澐)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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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부터 1910년까지 영주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회복운동. 계몽운동(啓蒙運動)은 갑신정변과 독립협회운동으로 대표되는 개화자강계열의 민족운동을 계승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개화자강계열의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을 위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전국적으로 대표적인 단체로는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신민회 등이 있다. 또 계몽운동의 유형으로는 국권 회복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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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의 역사. 고려시대에는 여러 차례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고을 명칭의 변경과 승격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영주 지역에는 강주(剛州)·기주(基州)·흥주(興州)·순안현(順安縣)·영주(榮州)·흥녕현(興寧縣)·순흥부(順興府) 등 고을이 두어졌다. 문화적으로도 영주 지역은 고려시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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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풍경, 풍습, 사적 등을 체험하거나 구경하는 일. 관광이란 사람이 영리추구와는 관계없이 휴식·기분전환·자기 계발을 목적으로 일시적 이동을 하는 가운데, 관광 목적지의 인적·물적 및 기타 여러 측면과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모든 현상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영주시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뿌리 깊은 역사적 전통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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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택진(金澤鎭)[1874~1961]은 1919년 3월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 영주지회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김택진의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원중(源仲), 호는 동려(東黎)이다. 문절공 김담(金淡)[1416~1464]의 17세손이며, 백암(栢巖) 김륵(金玏)[1540~1616]의 13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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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간행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권두문의 시문집. 『남천집(南川集)』은 권두문(權斗文)[1543~1617]의 시문집으로 1864년(고종 1)에 간행되었다. 권두문의 자는 경앙(景仰), 호는 남천(南川),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572년(선조 5)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평창군수·봉상시주부·사섬시정·통례원정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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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의 전통마을인 무섬마을 이야기. 영주 지역의 전통마을인 무섬마을은 행정구역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으며, 영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 현재 무섬마을의 진입로는 서쪽에 위치한 수도교와 동남쪽의 육로가 존재하나, 과거의 무섬마을 진입로는 외나무다리가 유일하였다. 그로 인해 무섬마을의 이름은 ‘물섬’에서 변화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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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서 금성대군과 이보흠이 주도한 단종 복위를 위한 운동. 단종복위운동(端宗復位運動)은 1457년(세조 3) 순흥도호부에 위리안치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도호부사 이보흠(李甫欽)이 향민들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였으나 관노의 고발로 실패한 사건이다. 단종복위운동으로 말미암아 금성대군, 이보흠, 단종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또한, 단종복위운동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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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에 있는 담수회 산하 지회. 담수회 영주지회(淡水會榮州支會)는 1998년 9월 28일 창설되었다. 담수회는 1963년 이순호(李珣鎬) 등 영남 유지 5명이 대구에서 조직한 친목계 모임에서 유래한다. 1963년 10월 10일 달성군 공산면[현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달성서씨(達城徐氏) 재실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초대 회장 이의택(李義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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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산법리에 있는 공원.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은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을 기리기 위해 영주시 풍기읍 산법리에 조성한 공원으로,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현충 시설이 있는 공원이다. 대한광복단은 1913년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경상북도 풍기[현 영주시]에서 결성되어 풍기광복단으로도 불린다. 무장 항일 단체였던 대한광복단은 의병 출신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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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45년까지 영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해방운동. 영주 지역의 독립운동(獨立運動)은 1895년(고종 32) 을미의병에서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895년 을미의병기 영천(榮川)·풍기·순흥에서는 의병진이 결성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05년 이후 을사의병과 1907년 이후 정미의병에서 대일항전이 전개되었다. 19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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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영주 지역에서 이인좌·정희량 등이 영조와 노론을 타도하기 위해 일으킨 난과 영주의 의병활동. 무신난(戊申亂)은 1728년(영조 4)에 발생하였는데,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이인좌(李麟佐)의 난’, 또는 ‘정희량(鄭希亮)의 난’이라고도 한다. 1724년 영조 즉위 후 노론(老論)이 정국을 장악해 가기 시작했고, 반면에 소론(少論)의 입지는 약화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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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지역에서 민중들이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 등을 표현한 노래. 민요(民謠)는 민중의 사상과 감정을 노래로 표현한 것으로 양반 사대부들이 한문으로 된 시가(詩歌)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서를 표현하였다면, 일반 서민들이 중심이 된 기층(基層) 민중들은 문자의 습득이 거의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양반과 같은 문자 생활을 향유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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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제형(朴齊衡)[1882~1948]은 제2차 유림단의거에 참여하고, 신간회 영주지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박제형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순칠(舜七), 호는 철오(鐵塢)이다. 1882년 7월 5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에서 박운수(朴雲壽)의 아들로 태어났다. 박제형은 일찍이 김휘철(金輝轍)[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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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지동리에 있는 고려시대 건립된 누각. 봉서루(鳳棲樓)는 1930년 중건하여 일제강점기 때 순흥면사무소로 사용되었다. 2007년에 철거한 후 옛 자리인 영주시 순흥면 지동리에 옮겨 다시 중건하였다. 순흥면행정복지센터 정문에서 순흥초등학교를 지난 뒤, 회헌로를 타고 약 900m 직진하면 ‘봉서루’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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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계승해나가는 선비정신. 영주시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한 안향(安珦)과 성리학의 나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鄭道傳)의 고향이자, 관학의 부진으로 조선의 교육이 위태롭던 시기 주세붕(周世鵬)이 최초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하여 조선의 수많은 인재와 지도자를 배출한 선비 교육의 요람으로 일컬어져 왔다. 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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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성언근(成彦根)[1740~1818]은 진사 출신으로 영주 지역에 머물면서, 시국 현안과 관련된 각종 상소문을 썼다. 성언근의 자는 숙회(叔晦), 호는 가은(稼隱), 본관(本貫)은 창녕(昌寧)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세찬(成世瓚), 할아버지는 성경인(成景寅), 아버지는 성설(成渫)이며, 어머니는 박천주(朴天柱)의 딸 무안박씨(務安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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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성언집(成彦楫)[1732~1812]은 과거 급제 후 관직에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향촌에서 학문 연구와 인재 양성에 주력하였다. 성언집의 자는 용여(用汝), 호는 남애(南厓),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세벽(成世璧), 할아버지는 성희인(成喜寅), 아버지는 성찬(成澯)인데, 모두 사환에 뜻을 두지 않고 재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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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영호(宋永祜)[1903~1968]는 1925년 김창숙(金昌淑)[1879~1962]이 주도한 제2차 유림단의거에 참여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김창숙과 함께 반독재 투쟁을 전개하였다. 송영호의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보경(普卿), 호는 창주(滄洲)이다. 1903년 7월 22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호문리에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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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재호(宋在祜)[1906~1974]는 1925년 제2차 유림단의거 때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이후 신간회 영주지회와 영주청년동맹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송재호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다. 1906년 10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호문리에서 아버지 송인상(宋仁相)과 어머니 류하회(柳河回)의 2남 중 차남으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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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에 전해내려오는 김두명과 관련된 이야기. 「순흥 김자인과 도둑 괴수」는 인물전설로,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자인(金慈仁)은 영주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인 김두명(金斗明)을 가리킨다. 김두명은 1838년(헌종 4) 자인현감을 지냈기 때문에 ‘김자인’이라고도 불렸다. 「순흥 김자인과 도둑 괴수」는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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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서 전해지는 순결을 의심받은 처녀가 자신의 억울함을 노래하는 민요. 「쌍금쌍금 쌍가락지」는 영남 민요 중 가장 보편적이며 아름다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순결을 의심받은 처녀가 죽음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하는 노래로, 열녀가 혹은 열녀가 아래의 정렬가(貞烈歌)로 분류되는 유희요이다. 쌍가락지는 혼인의 정표로 주고받는 상징물이다.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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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이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소백산을 오르면서 느낀 감회와 여정 등을 남긴 유산록과 시문 영주 지역의 소백산(小白山)은 1987년 우리나라의 열여덟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해발 1,439.5m, 면적은 322.011㎢로 지리산·설악산·오대산에 이어 산악형 국립공원 가운데 네 번째로 넓은 명산이다. 소백산은 일찍이 망국의 한을 품은 신라의 마지막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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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유림이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전개한 운동. 위정척사운동(衛正斥邪運動)은 “중화(中華)의 명맥을 보전하여 조선이 금수가 되는 것을 막고, 세계의 중심은 화맥을 계승한 조선에 있다.”라는 위정척사론의 기치로 19세기 후반 외세의 침략에 대항한 유림이 집단으로 전개한 상소운동이다. 특히 영주 지역 유림은 18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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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영주 지역 유림 대표들이 국제사회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청원한 독립운동. 1919년 3월 곽종석(郭鍾錫)[1846~1919]을 대표로 한 영남 유림과 김복한(金福漢)[1860~1924]을 대표로 한 호서 유림 등 137명이 유림단의 이름으로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독립청원서」를 보냈다. 이때 영주 지역 출신으로 참가한 인사는 김동진(金東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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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이인행(李仁行)[1758~1833]은 생원시 급제 후 온릉참봉에 천거되었으며, 이후 의금부도사·형조정랑·고산현감·익위사익위 등을 지냈다. 이인행의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공택(公宅), 호는 신야(新野)이다. 아버지는 이관섭(李觀燮), 어머니는 이덕상(李德祥)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 할아버지는 이사덕(李師德), 증조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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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장복규(張復圭)[1826~1896]는 1896년 1월 서상열 의진(徐相烈義陣)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나, 태봉전투(台峰戰鬪)에서 패전한 후 체포되어 총살당하였다. 장복규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성삼(聖三), 호는 사이재(四而齋)이다. 아버지는 장원진(張元鎭),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세조 때 적개공신에 녹훈된 연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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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옥(鄭玉)[1694~1760]은 무신난 때 영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소수서원 원장을 역임하여 학문 진작에 힘썼다. 오광운(吳光運)[1689~1745]과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정옥을 영남 제일의 인물로 평가하였다. 정옥의 자는 자성(子成), 호는 우천(牛川),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정옥의 5대조는 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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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 구학공원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제민루(齊民樓)는 조선 초기 건립된 지방 공립 의료기관으로 의학루(醫學樓)와 영남 선비들의 강학처(講學處)로 활용되었다. 제민루는 2007년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하였다. 제민루는 영주시청에서 북쪽으로 약 2㎞ 거리의 구학공원에 있다. 구학공원은 서천변 얕은 구릉에 조성되어 있는데, 제민루는 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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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희방사역과 죽령 사이에 위치한 도보여행길. 죽령 옛길은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옛길로 소백산국립공원 내에 있다. 1999년에 영주시에서 죽령 옛길을 도보여행길로 복원하였고, 2007년 12월 17일 명승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죽령은 158년(아달라왕 5)에 열린 길이다. 1999년 영주시에서 죽령의 의의를 되살려 보존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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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의 죽령에 전해오는 동종에 관한 이야기. 「죽령재와 상원사 동종」의 무대가 되는 죽령재는 보통 ‘죽령(竹嶺)’이라 일컬으며, ‘대재’라고도 부른다. 고개의 높이는 689m로 고대부터 많은 사람이 죽령을 넘나들었고, 이와 관련된 많은 설화가 지금까지 전해온다. 또 설화의 소재인 동종은 국보 제36호로 지정된 ‘상원사 동종(上院寺銅鍾)’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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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의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지점의 해발고도 696m의 고갯길. 죽령 옛길은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과거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옛길이었으며 소백산국립공원 내에 있다. 죽령 옛길은 ‘대재’라고도 부르며 삼국시대 이래로 봄·가을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또 소백산맥이 영남과 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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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일대에 있는 하천 상류부의 경사 급변점에서 흐르면서 떨어지는 물. 폭포는 주로 산지를 흐르는 계곡에서 경사가 갑자기 급해지는 구간에 발달하는데, 영주시 일대에서는 북서쪽의 소백산맥을 따라 북서-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계곡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희방폭포, 죽계폭포, 죽암폭포, 석천폭포, 연화폭포 등이 있다. 희방폭포는 영주시 풍기읍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