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
전근대시기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영주시 교육의 역사와 현황. 영주 지역의 교육은 고려시대의 향교, 조선시대의 향교·서원·서당, 근대의 신식학교, 현대의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설립으로 전개되었다. 영주 지역에 있었던 고려시대 대표적 국립교육기관인 향교로는 영주향교(榮州鄕校)와 순흥향교(順興鄕校)가 있다. 향교는 지방 교육기관으로,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시빈(金始鑌)[1684~1729]은 예조정랑·거창현감·울산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영조 즉위 초 김일경(金一鏡)[1662~1724]이 신임옥사(辛壬獄事) 때 쓴 토역반교문(討逆頒敎文)의 개찬(改撰)을 청원하였다. 김시빈의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휴백(休伯), 호는 백남(白南)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김정휘(金鼎輝), 어머니는...
-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나학천(羅學川)[1658~1731]은 문과 급제 후 병조좌랑·인동부사·좌승지·형조참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숙종 연간에는 남인으로 활발한 정치 활동을 전개하였다. 나학천의 본관은 수성(壽城), 자는 사도(師道), 호는 창주(滄洲)이다. 할아버지는 증 이조참판 나이준(羅以俊)[1602~1676],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나수종(羅壽...
-
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서 금성대군과 이보흠이 주도한 단종 복위를 위한 운동. 단종복위운동(端宗復位運動)은 1457년(세조 3) 순흥도호부에 위리안치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도호부사 이보흠(李甫欽)이 향민들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였으나 관노의 고발로 실패한 사건이다. 단종복위운동으로 말미암아 금성대군, 이보흠, 단종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또한, 단종복위운동의 주...
-
1728년 영주 지역에서 이인좌·정희량 등이 영조와 노론을 타도하기 위해 일으킨 난과 영주의 의병활동. 무신난(戊申亂)은 1728년(영조 4)에 발생하였는데,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이인좌(李麟佐)의 난’, 또는 ‘정희량(鄭希亮)의 난’이라고도 한다. 1724년 영조 즉위 후 노론(老論)이 정국을 장악해 가기 시작했고, 반면에 소론(少論)의 입지는 약화되어...
-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송광벽(宋光壁)[1628~1701]은 문과 급제 후 청송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숙종 연간 상소를 올려 인현왕후 복위를 청원하였으며, 낙향한 후에는 축대를 쌓고 매월 초하루에 분향망배 했는데, 그 자리를 ‘공진대(供辰臺)’라고 부른다. 송광벽의 자는 문성(文星), 호는 응봉(鷹峯), 본관은 야성(冶城)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종직...
-
조선시대부터 개항기까지 두 차례에 걸쳐 영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구역.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는 1413년(태종 13)과 1683년(숙종 9) 두 차례에 걸쳐 설치되었으며, 1895년(고종 32)까지 존속했던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단산면·부석면과 봉화군 봉화읍·물야면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조선 정부는 1413년(태종 13)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
조선 전기 경상도 순흥도호부에서 단종복위운동을 전개한 금성대군과 참여한 선비들의 절의 정신.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순흥 지역에서는 안향(安珦)을 필두로 많은 학자와 관료들이 배출되어, 실로 인재의 도량으로 일컬을 만하였다. 하지만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어린 조카 단종(端宗)의 왕위를 찬탈하고 세조(世祖)로 즉위하게 되면서, 순흥 지역은 단종복위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중심지가...
-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신의명(申義命)[1654~1716]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학규·사헌부감찰·강령현감 등을 지냈다. 신의명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안수(安叟), 호는 외암(畏巖)·경옹(敬翁)이다. 아버지는 신양세(申揚世)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김직(金溭)의 딸이다. 부인은 청주정씨(淸州鄭氏)로 서원부원군 정탁(鄭琢)[1526~16...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제단. 영주 금성대군 신단(榮州錦城大君神壇)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순절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도호부사 이보흠(李甫欽) 등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제단이다. 순흥면행정복지센터에서 지방도제931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1.3㎞ 정도 이동하면 도로 좌측 편에 영주 금성대군 신단이 자리 잡고...
-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이달의(李達意)[1616~1705]는 문과 급제 후 함안군수·단천군수·사헌부장령·첨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이달의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이정(以正), 호는 석촌(石村)이다. 아버지는 회양부사를 지낸 이숭언(李崇彦)[1582~1666], 어머니는 무공랑 권집(權集)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성균관학유를 지낸 이휘...
-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장말손 종가 고문서는 조선 전기 문신 장말손(張末孫)[1431~1486]의 종가에 소장된 5종 18점의 고문서이다. 1385년(우왕 11) 장전(張戩)이 올린 소지를 비롯하여 분재기·교지·입안·녹패 등이 소장되어 있어, 고려 말 조선 초의 사회·경제상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장말...
-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장신(張璶)[1629~1711]은 숙종 연간 유일로 천거되었으며, 개령현감 등을 지냈다. 장신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중온(仲溫), 호는 직방재(直方齋)·금강(錦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 참의 장수희(張壽禧)[1516~1586], 할아버지는 진사 장여화(張汝華)[1566~1621], 아버지는 교위를 지낸 장용현(張龍見),...
-
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했던 문신. 정시한(丁時翰)[1625~1707]은 숙종 연간 영남지방에서 활동한 유학자이다. 병자호란 때 풍기 지역으로 피난하였으며, 한동안 부석사에 머물기도 하였다. 정시한의 자는 군익(君翊), 호는 우담(愚潭),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정윤복(丁胤福)[1544~1592], 할아버지는 정호관(丁好寬)[...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전하는 선비 정이간과 숙종의 이야기. 「정이간과 춘추」 이야기에서 나오는 정이간(鄭易簡)은 숙종의 도움으로 과거에 합격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친구의 꼬임에 빠져 낙방하고 말았다고 한다. 숙종은 민심을 살피기 위해, 평복을 입고 잠행을 자주 나갔는데 그때 만난 백성들과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중 글을 읽던 선비와 과거시험과 관련된 이...
-
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영주는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영천군(榮川郡)·풍기군(豊基郡) 3개 고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록 작은 고을이었지만 영주는 조선시대 동안 우리나라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지금의 영주 소수서원]이 설립되었으며, 황준량(黃俊良)·박승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