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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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시기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영주시 교육의 역사와 현황. 영주 지역의 교육은 고려시대의 향교, 조선시대의 향교·서원·서당, 근대의 신식학교, 현대의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설립으로 전개되었다. 영주 지역에 있었던 고려시대 대표적 국립교육기관인 향교로는 영주향교(榮州鄕校)와 순흥향교(順興鄕校)가 있다. 향교는 지방 교육기관으로,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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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두남(權斗南)[1573~1646]은 광해군 연간에 과거 급제하여 병조의 낭관을 비롯해 교서관박사, 함경도도사, 형조정랑 등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권두남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망(景望), 호는 역락당(亦樂堂)이다. 아버지는 부장을 지낸 권용중(權用中),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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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권성오(權省吾)[1587~1671]는 1612년(광해군 4) 문과 급제 후 칠원현감, 사헌부감찰, 형조정랑 등 관직을 지냈으며, 정묘호란 때 인조를 강화도까지 호가하였다. 권성오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수(子守), 성지(省之), 호는 동암(東巖)이다. 아버지는 경기전참봉을 지낸 권호신(權虎臣)[1558~1629],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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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권창진(權昌震)[1597~1683]은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이괄(李适)의 난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권창진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동언(東彦), 호는 아맹(亞盲)이다. 아버지는 호군을 지낸 권덕영(權德榮), 어머니는 첨정을 지낸 남계홍(南繼洪)의 딸 숙부인 영양남씨(英陽南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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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구정(金九鼎)[1550~1638]은 호조정랑·대구도호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며, 호성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김구정의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경진(景鎭), 호는 서현(西峴)이다. 아버지는 선원전참봉을 지낸 김희준(金希俊), 어머니는 천문습독을 지낸 정효종(鄭孝宗)의 딸 숙부인 동래정씨(東萊鄭氏), 할아버지는 장사랑 김사종(金嗣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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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대현(金大賢)[1553~1602]은 성현도찰방·산음현감 등을 지냈다. 영주 이산서원(伊山書院)의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칠송정(七松亭) 동도회(同道會)를 조직하였다. 김대현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희지(希之), 호는 유연당(悠然堂)이다. 아버지는 장예원사의를 지낸 김농(金農)[1534~1591], 어머니는 군자감첨정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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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륵(金玏)[1540~1616]은 문과 급제 후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황(李滉)[1501~1570]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김륵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 시호는 민절(敏節)이다. 아버지는 생원 김사명(金士明),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인데, 형조좌랑을 지낸 큰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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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김봉조(金奉祖)[1572~1630]는 문과 급제 후 경상도도사·단성현감·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김봉조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백(孝伯), 호는 학호(鶴湖)이다.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1553~1602], 어머니는 충의위 이찬금(李纘金)의 딸 증 정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 할아버지는 장예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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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선(金鍌)[1596~1660]은 1625년(인조 3) 문과에 급제한 이후 형조좌랑·황해도도사·당진현감·흥해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김선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여정(汝精), 호는 고산(孤山)·매학당(梅鶴堂)이다. 아버지는 승사랑 김수선(金首善), 어머니는 여절교위 이희열(李希說)의 딸 단인 진성이씨(眞城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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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김염조(金念祖)[1589~1652]는 과천현감·안산군수·종친부전첨 등을 지낸 문신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켜 과천 지역을 수호하였다. 김염조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수(孝脩), 호는 학음(鶴陰)이다.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1553~1602], 어머니는 충의위 이찬금(李纘金)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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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김영조(金榮祖)[1577~1648]는 문과 급제 후 형조정랑·길주목사·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김영조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중(孝仲), 호는 망와(忘窩)이다.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1553~1602], 어머니는 충의위 이찬금(李纘金)의 딸 증 정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 할아버지는 장예원사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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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김응조(金應祖)[1587~1667]는 선산도호부사·사간원사간·홍문관응교·한성부우윤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응조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징(孝徵), 호는 학사(鶴沙)·아헌(啞軒)이다.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1553~1602], 어머니는 충의위 이찬금(李纘金)의 딸 증 정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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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줄리(內茁里)는 안정면 14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내줄리 하나이다. 자연마을로는 속줄포[내줄, 내줄포, 골줄포], 동명[대추골], 점마 등이 있다. 내줄리 명칭은 내줄마을에서 유래했다. 조선 인조 때 나주정씨(羅州丁氏)들이 강원도 원주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줄풀이 무성해 ‘줄포’라고 붙여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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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류영경(柳永慶)[1550~1608]은 이조판서·좌의정 등을 지낸 문신이며, 호성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류영경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여(善餘), 호는 춘호(春湖)이다. 아버지는 문소전참봉을 지낸 류의(柳儀), 어머니는 사도시첨정을 지낸 노첨(盧僉)의 딸 증 정경부인 교하노씨(交河盧氏), 할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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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박회무(朴檜茂)[1575~1666]는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의금부도사·황산도찰방 등을 지냈다. 병자호란 이후 스스로 ‘숭정야로(崇禎野老)’라고 부르며,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켜나갔다. 박회무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식(仲植), 호는 육우당(六友堂)·숭정야로이다. 아버지는 의금부도사를 지낸 박녹(朴漉)[1542~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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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배상익(裵尙益)[1581~1631]은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으로 문과 급제 후 성균관학유·진주판관 등을 지냈다. 배상익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익재(益哉), 호는 치암(癡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 형조참판 배유(裵裕), 할아버지는 증 형조판서 배무원(裵茂元), 아버지는 나주목사를 지낸 배응경(裵應褧)[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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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성이성(成以性)[1595~1664]은 문과 급제 후 강계부사 등을 지냈으며, 판소리 「춘향가」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성이성의 자는 여습(汝習), 호는 계서(溪西),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성이성의 아버지는 성안의(成安義)[1561~1629]로 승정원우부승지를 지냈다. 어머니는 호조참판 김계선(金繼善)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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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소수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목. 소수서원 소장 판목(紹修書院所藏板木)은 소수서원에 소장하고 있던 판목 4종 902점으로서, 『추원록(追遠錄)』·『죽계지(竹溪誌)』·『육선생유고(六先生遺稿)』·『가례언해서(家禮諺解序)』 등의 판목이 있다. 2004년 소수박물관이 건립되면서 영주 소수서원에 소장하고 있던 판목들도 이관하여 보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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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이상언(李尙彦)[1597~1671]은 문과 급제 후 사간원정언·영암군수·함안군수 등을 지냈다. 이상언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용수(容叟), 호는 성서(城西)이다. 아버지는 성균관학유를 지낸 이휘음(李徽音)[1575~1609], 어머니는 통례원좌통례를 지낸 권두문(權斗文)[1543~1617]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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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진상홍(秦尙弘)[1569~1651]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으로 활약하였고, 전란 후에는 관직에 나아가 내·외직을 두루 거쳤다. 만년에는 학문 연구에 침잠하여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진상홍의 자는 의백(毅伯), 호는 반환당(盤桓堂), 본관은 풍기(豊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과를 지낸 진사원(秦士元),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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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우거한 문신. 황시(黃是)[1555~1626]는 문과 급제 후 병조정랑·병조참의·삼척부사 등을 지냈다. 광해군 즉위 이후 경상도 풍기군으로 낙향하여 학문 활동에 전념하였다. 황시의 자는 시지(是之), 호는 부훤당(負暄堂),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 좌찬성 황희성(黃希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찬성 황사우(黃士祐)[1486~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