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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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시기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영주시 교육의 역사와 현황. 영주 지역의 교육은 고려시대의 향교, 조선시대의 향교·서원·서당, 근대의 신식학교, 현대의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설립으로 전개되었다. 영주 지역에 있었던 고려시대 대표적 국립교육기관인 향교로는 영주향교(榮州鄕校)와 순흥향교(順興鄕校)가 있다. 향교는 지방 교육기관으로,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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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시백(金時伯)[1887~1950]은 1907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 중군장 김상태(金尙台)[1864~1912] 진영의 좌선봉에 이어 김상태 의진의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김시백의 본관 김해(金海), 자는 삼궁(三弓), 본명은 김현세(金顯世)이다. 본적지는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이며, 1887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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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45년까지 영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해방운동. 영주 지역의 독립운동(獨立運動)은 1895년(고종 32) 을미의병에서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895년 을미의병기 영천(榮川)·풍기·순흥에서는 의병진이 결성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05년 이후 을사의병과 1907년 이후 정미의병에서 대일항전이 전개되었다. 19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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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문천서당(文川書堂)은 1727년(영조 3) 금의(琴儀)와 정운경(鄭云敬)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향현사(鄕賢祠)가 효시이다. 금의의 본관은 봉화(奉化), 초명은 금극의(琴克儀), 자는 절지(節之)이며, 1220년(고종 7) 벽상공신에 책봉되었다. 금의는 문장이 뛰어나 ‘금학사(琴學士)’라고 불렸다. 정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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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활동. 영주시는 어느 지역보다 덕망있는 학자를 많이 배출한 선비의 고장이다. 소백산 자락에 펼쳐진 영주는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받들어 모신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출발하여 조선시대 최초의 사학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발전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고장이며, 고려 공민왕 때 형부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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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미를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주시의 세거 성씨. 봉화정씨(奉化鄭氏)는 경상북도 봉화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봉화정씨의 시조는 고려 때 호부령을 지낸 정공미(鄭公美)이다. 정공미의 증손자인 정운경(鄭云敬)[1305~1366]은 고려 충숙왕(忠肅王) 당시 내외의 요직을 거치고 공민왕(恭愍王) 때에는 형부상서를 지냈으며 소위 ‘염의선생(廉義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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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고려시대 전통가옥. 삼판서 고택(三判書古宅)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세 명의 판서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판서 고택은 고려시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영주 지역을 대표하는 고적(古蹟)이다. 삼판서 고택은 영주시청에서 북쪽으로 약 2㎞ 거리에 떨어진 구학공원에 있다. 구학공원은 서천변 얕은 구릉에 조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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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계승해나가는 선비정신. 영주시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한 안향(安珦)과 성리학의 나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鄭道傳)의 고향이자, 관학의 부진으로 조선의 교육이 위태롭던 시기 주세붕(周世鵬)이 최초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하여 조선의 수많은 인재와 지도자를 배출한 선비 교육의 요람으로 일컬어져 왔다. 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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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에 있는 조선시대 공립교육기관. 영주향교(榮州鄕校)는 조선시대 영천군(榮川郡) 지역 유생들이 머물며 수학하는 교육 공간이자, 공자(孔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이었다. 옛 영천군 지역의 유력한 재지세력(在地勢力)들은 영주향교를 출입하면서 유학을 공부하고 향사를 주관하였다. 또한, 향론을 형성하는 등 향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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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로 처향을 따라 이거해 온 삼판서인 정운경·황유정·김담의 고택 이야기.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에는 아주 특별한 종택이 있다. 바로 예안[선성] 김씨 종택이다. 삼판서 고택은 원래 영주시 영주동에 있었으나 1961년 영주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2008년 10월 구학공원 내 현재 위치에 복원하였다. ‘삼판서’라는 이름은 이 고택에서 세 명에 달하는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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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에서 공자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그 계승자들에 의해 실천된 학문적 활동과 의례적 행위 일반. 영주시는 ‘선비의 고을’로 불림에 대단한 자부심을 품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최초로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1243~1306]이 바로 영주시 출신이며, 안향을 모시기 위한 우리나라 최초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영주시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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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도복(鄭道復)[1351~1435]은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동생으로 조선 초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정도복의 자는 내지(來之), 호는 일봉(逸峰),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호부령을 지낸 정공미(鄭公美), 증조할아버지는 비서랑을 지낸 정영찬(鄭英粲), 할아버지는 검교군기시정을 지낸 정균(鄭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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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정몽주(鄭夢周)[1337~1392]와 더불어 고려 후기 신진사대부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성계(李成桂)[1335~1408]를 도와 조선 개창을 주도하였다. 분의좌명개국공신(奮義佐命開國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작위는 봉화백(奉化伯)이다. 정도전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증오(曾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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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정운경(鄭云敬)[1305~1366]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아버지로 전교교감, 밀성군지사, 형부상서 등을 지냈으며,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다. 정운경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봉화현호장 정공미(鄭公美), 할아버지는 비서랑동정 정영찬(鄭英粲), 아버지는 검교군기감 정균(鄭均)이며,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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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영주는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영천군(榮川郡)·풍기군(豊基郡) 3개 고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록 작은 고을이었지만 영주는 조선시대 동안 우리나라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지금의 영주 소수서원]이 설립되었으며, 황준량(黃俊良)·박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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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이어져 살아오고 있는 성씨. 토성 중 영주 지역에서 높은 벼슬과 학식을 겸비하여 명망이 높았던 대표적인 세거 성씨는 봉화정씨(奉化鄭氏), 순흥안씨(順興安氏), 풍기진씨(豊基秦氏)이다. 봉화정씨는 고려 때 호부령을 지낸 정공미(鄭公美)를 시조로 하며, 아들 정영찬(鄭英粲)이 비서랑을 지냈고 손자 정균(鄭均)이 검교군기감정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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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부터 1909년까지 영주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민중의 자발적인 무력 항전. 한말 의병운동은 1894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 직전인 1909년 말까지 펼쳐졌는데, 그 특성에 따라 전기의병[1894~1896], 중기의병[1904~1907. 7.], 후기의병[1907. 8.~1909.]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의병은 1894년에 일어난 갑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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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근(黃瑾)[1302~?]은 예문관직제학, 옥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황근의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아버지는 영해부사를 지낸 황원로(黃原老)이며, 어머니는 밀직부사 상호군을 지낸 우팽(禹伻)의 딸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아들은 초계군수를 지낸 황유정(黃有定)[1343~?]이며, 며느리가 정운경(鄭云敬)[1305~1366]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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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유정(黃有定)[1343~?]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사환하였던 문신으로 초계군수·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황유정의 초명은 지정(知定), 호는 미균(米囷),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지정(黃之挺), 할아버지는 영해부사 황원로(黃原老)[1270~?]로 영천(榮川) 초곡[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조암동]에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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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현(黃鉉)[1369~1434]은 조선 태종 대에 출사하여 거듭 과거에 급제한 후 경승부소윤·성균관대사성 등을 지냈다. 황현의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증조할아버지 영해부사 황원로(黃原老)[1270~?]가 영천(榮川)으로 이주한 이래 이 가문은 영천과 봉화 등지의 사족들과 혼인을 이어갔다. 황원로는 단양우씨(丹陽禹氏)와 혼인하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