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262 |
---|---|
한자 | 字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규 |
[정의]
1716년(숙종 42)에 이형상이 저술한 한자의 자형과 성운에 대한 연구서.
[개설]
『자학(字學)』의 내제는 ‘자학제강(字學提綱)’으로 1716년(숙종 42)에 쓴 필사본 『갱영록(更永錄)』 9권 가운데 권2에 해당한다. 이형상은 저술 동기를 “육서의 뜻은 각각 취한 바가 있었으나 세월이 오래되면서 와전되어 대부분 그 참된 뜻을 잃어버렸다. 혹은 마음대로 글자체를 변화시킨 것도 있고 혹은 알지 못하여 획을 잘못 쓴 것도 있으며 또한 고금에 통용되는 것도 있다”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이는 육서의 체계가 혼란되고 글자체의 변종과 그 음운의 착란을 바로 잡기 위해 자학을 연구했다는 것이다.
『자학』은 한자의 자형과 성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서로, 시대와 지리적 변화에 따라 한자의 자형이 서로 달라지고 성과 운이 달라진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글자 자형을 상사, 상합으로 구분하여 구속의 차이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으며 성운의 차이, 첩운의 상이를 구속에 따라 종합적으로 분류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종 경서에 나타나는 자형의 구속의 차이와 금석문 변체자에 대한 개설적인 소개와 더불어 각종 어록해를 한글로 풀이하고 있다.
특히 『자학』의 ‘천축문자설’에서는 천축문자의 성모도와 ‘외이문자설’에서는 구국소서팔자를 아홉 나라의 문자로 기술하면서 훈민정음의 문자 기원을 범자로 잡고 있어서 지봉 이수광과 동일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
이형상[1653~1733]의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순옹(順翁)이다. 효령대군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성균진사를 지낸 이주하(李柱夏)이다. 1677년(숙종 3) 사마시를 거쳐 1680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호조 좌랑을 지내다가 금산 군수로 부임하여 덕유산의 도적들을 토벌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1703년(숙종 29) 제주 목사로 있을 때 석전제를 지내던 3읍의 성묘를 수리하여 덕망 높은 선비를 뽑아 글을 가르치게 했으며, 몽매한 풍속을 타파하기 위해 129개의 신당을 불태우는 등 불교와 토착 신앙을 배척하고 유교를 권장했다.
1727년(영조 3) 호조 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영천에 호연정(浩然亭)을 세워 학문에 힘쓰면서 『둔서록(遯筮錄)』을 초안했다. 1728년 가선대부가 되고, 소론의 일파인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자 경상도 소모사가 되었으나, 같은 소론으로서 당론을 누설했다는 무고를 받고 잠시 투옥되었다.
벼슬은 한성 부윤에 이르렀고, 1735년 영천의 성남서원에 제향되었으며, 1796년(정조 20) 청백리에 뽑혔다. 1829년(순조 29)에는 제주유생들이 그를 기려 영혜사(永惠祠)에 제향했다.
시조에 깊은 관심을 가져 자료를 널리 모았으며, 시조를 한역한 작품 77수를 남겼다. 저서에 문집 『병와집』·『둔서록』·『강도지(江都志)』·『남환박물지(南宦博物誌)』·『악학편고(樂學便考)』·『예학편고(禮學便考)』·『성리학대전』 등 다수가 있다.
[편찬/간행 경위]
권영철[1978]은 지금까지 『자학』이 포함되어 있는 『갱영록』의 편찬 시기를 ‘1715년(숙종 41)에서 1728년(영조 4) 사이’로 추정하고 있으나 이는 오류이다. 병와가 쓴 『악학편고』「언문반절설 추록[追諺文半切設]」에 “내가 근년에 『악학편고』 4권을 편찬하였고, 또 작년 여름에 친구들의 부탁을 받아 10일 만에 『자학』을 지었다”는 내용과 함께 “1년 뒤인 병신년 7월에 다시 써서 자식들에게 주었다”는 기록에 따르면, 이 책의 편찬 연대인 병신년은 1716년(숙종 42)으로 확정할 수 있다.
[형태/서지]
『자학』은 『갱영록』 9권 가운데 권2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형상의 다른 유고와 함께 영천 호연정 내 병와유고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유고들은 1979년 2월 8일 보물 제 652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구성/내용]
『자학』은 자학제강(字學提綱)·자모생성(字母生成)·자의(字義)·행구의이(行久義異)·형범실이(形犯實異)·이자상사(二字相似)·삼자상사(三字相似)·사자상사(四字相似)·오자상사(五字相似)·이자상합(異字相合)·삼자상합(三字相合)·사자상합(四字相合)·괴자(怪字)·석고자(石鼓字)·항창자(亢倉字)·주례기자(周禮寄字)·예기기자(禮記寄字)·좌전이음(左傳異音)·고속동이(古俗同異)·고금변자(古今變字)·변구행편(變久行便)·오화자(誤畫字)·일자변음(一字變音)·이자변음(二字變音)·성운본시설(聲韻本始說)·첩운(疊韻)·협운설(叶韻說)·반절설(半切說)·방언(方言)·육서(六書)·유가어록(儒家語錄)·수양가은어(修養家隱語)·선가범어(禪家梵語)·한어록(漢語錄)·천축문자설(天竺文字說)·외이문자설(外夷文字說)·왜언(倭言)·추록언문반절(追錄諺文半切)·범자오음가령(梵字五音假令)·성운시종(聲韻始終)·협음(叶音)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모생성’과 ‘자의’에서는 제자 원리를 통해 70개의 글자의 뜻을 풀이하였으며, 한자의 형이나 뜻의 변화와 글자체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2~5자로 구분하여 유사 글자를 대비하였으며, 같은 모양의 글자가 결합된 글자체를 역시 2~5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제시하였다.
글자의 형이 괴이한 글자와 금석문에 나타나는 이체자 76자를 또한 제시함으로써 금석문 판독에 활용될 수 있다. 그리고 주례·예기·좌전에 나타는 기이한 글자를 제시하여 이체자를 판독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 외에도 획을 잘 못 쓴 글자, 일자 변음의 글자들을 운에 따라 글자의 성이 달라지는 첩운 글자, 운이 서로 다른 글자 등을 제시하여 행속의 차이를 밝히고 있다.
‘유가어록·수양가은어·선가범어·한어록’ 등에서는 한글로 표음한 자료가 있어서 18세기 한글 연구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천축문자설’과 ‘범자오음가령(梵字五音假令)’에서는 범자를 아음·치음·설음·후음·순음·초음[화회성]·조음으로 구분하여 자모를 소개하고 있다.
『자학』에 실린 ‘구국소서팔자’의 내용은 『악학편고』의 내용을 후에 그대로 옮겨 전사한 동일한 내용이다. 또 ‘왜언’에서는 9개국을 포함한 왜언 등이 왜국의 반자[가나] 및 언문에 함께 쓰이는 것으로써 또한 문자 언문이 있다고 하니 이 둘을 합해 보아야 한다.
“위구르·크메르·파스파는 비길 데 없이 매우 괴이하다. 티베트은 약간 체계가 있으나 심히 박잡하다. 타타르와 투르판은 또한 극히 보잘것 없다. 여진은 여러 방면에 비하여 약간 나으며, 왜언은 촌스럽고 천박하니 모두 가소로운 것이다. 유독 서천은 귀숙되는 바가 있으니 전서(篆書)와 주문(籒文)의 문자 모양과 거의 비슷하다. 어쩌면 각 나라 사람들의 성격이 각각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한글의 우수성을 염두에 두고 다른 변방의 문자와 비교하면서 천축 문자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추록언문반절’에서는 “예전에 세종대왕께서 언문청을 설치하시고 정인지·신숙주·성삼문 등에게 명하시어 전서와 주문을 모방해 28자를 만들어 여러 문자를 만들 수 있게 하였다. 혹은 소리에 어울리게 하거나 뜻을 합하여 그것을 만들었는데 그 문자는 범자를 본떠서 만든 것이다”라고 하여 한글의 기원을 범어라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외이문자설’에는 『서전』 권7 「여오(旅獒)」에 실린 ‘명왕신덕(明王慎德) 사이함빈(四夷咸賓)’ 구절을 주변 아홉 나라의 문자로 기록한 자료가 있다. ‘명왕신덕 사이함빈’에 대응되는 ‘구국소서팔자’는 동아시아권의 고대 문자를 기록한 한국 자료로서 특히 금석 자료가 아닌 기록 자료로 남아 있는 유일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구국의 문자 개황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 역할을 할 수 있어서 그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형상이 쓴 『사이총서(四夷叢書)』에는 여진 항을 두어 조선과 여진과의 관계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어 참고가 된다.
[의의와 평가]
『자학』은 한자의 자형과 성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서이다. 자형의 구속의 차이와 성음의 차이를 분류하여 구속의 차이를 제시하였으며, 한자의 육서에 대한 소개와 석고자(石鼓字) 곧 금석학에서의 이체자형에 대한 내용은 금석문 판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주례를 비롯한 예악서에 나타나는 이체자 및 기이한 글자를 총집 분류하고 있어 이른바 한자 자학의 종합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유가어록·수양가어록·선가범어·한어록’에서는 당시 정음 자료로서 뜻풀이를 한 자료는 국어연구사의 자료로서도 매우 높다.
병와가 1681년(숙종 7)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근무할 때 『노걸대』 등을 학습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한어록’을 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우리말의 실상과 어원을 살피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구개음화, ‘’의 탈락, 오〉우의 변화, 전부모음화, ㄴ탈락 현상 등의 음운 변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국어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특히 ‘천축문자설’에는 범자 오음 가령 항에서 범자를 아음·치음·설음·후음·순음·초음[화회성]·조음으로 구분하여 범자의 성모 분류를 하고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범자는 오른 쪽으로 쓰는 범천(梵天) 혹은 범서(梵書) 문자와 왼쪽으로 쓰는 가로자(伽盧字) 곧 카로슈티자가 그 기원을 같이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몽고자운』의 발문에 “몽고는 처음 위글 문자를 빌려서 썼는데 국사[라마승 파스파]가 새 문자를 만들어 국자라고 불렀다. 문자 모양은 범서[산스크리트 문자]와 같으며 범천의 카로슈티 문자의 변체이다”라고 하고 있다.
‘범자오음가령’에서 범자를 아음·치음·설음·후음·순음·초음[화회성]·조음으로 구분하여 자모를 소개하고 있고, ‘왜이문자설’에서는 명대 가경 대에 왕세정의 『엄주산인사부고』 권168 「완위여편(宛委餘編)」 권13에 구국소서팔자 항에 ‘명왕신덕 사이함빈’에 대응하는 서천·여직·달단·고창·회회·서번·백이·면순·팔백 등 9개국의 문자로 기록한 자료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