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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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平 尹氏 玉井里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
시대 | 조선/조선,현대/현대 |
집필자 | 서동일 |
개설 시기/일시 | 1530년 - 해평윤씨 옥정리 집성촌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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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해평윤씨 옥정동 집성촌 -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
성격 | 집성촌 |
가구수 | 30가구 |
인구(남,여) | 120명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에 있는 해평 윤씨 집성촌.
[개설]
해평(海平)은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이다. 해평윤씨의 시조는 윤군정(尹君正)으로, 고려 고종 및 원종 때에 수사공 상서 좌복야 판공부사를 지냈다. 윤군정의 손자인 윤석(尹碩)이 충숙왕 때에 충근 절의 동덕 찬화 보정 공신에 책록되고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해평윤씨가 시작되었다. 파는 문영공파(文英公派), 충간공파(忠簡公派), 오음공파(梧陰公派), 월정공파(月汀公派), 치천공파(稚川公派), 장주공파(長洲公派), 백사공파(白沙公派)의 7개로 구성된다. 후손은 주로 충청북도 괴산, 충청남도 청양, 황해도 금천 등에서 대대로 살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해평윤씨의 전국 인구는 8,225가구에 2만 6341명이었다.
[형성 및 변천]
해평윤씨 옥정동 집성촌의 입향조(入鄕祖)는 윤응지(尹應之)이다. 시조 윤군정의 14세손으로, 호조판서에 추증되고 후일 해안군(海安君)에 봉해졌다. 윤응지가 1550년 옥정동에 정착한 이후로 후손들이 약 460년간 집성촌을 유지하고 있다.
[현황]
해평윤씨 옥정리 집성촌은 1930년대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파악한 양주 지역 54개 집성촌에 포함되지 않았다. 해평윤씨 옥정동 집성촌의 규모는 1953년 25가구, 1977년 21가구[회천동 전체], 1992~1999년 약 30가구였다. 2000년 현재 경기도에는 해평윤씨가 2241가구 7420명이다. 해평윤씨는 옥정동 외에도 양주시 은현면·남면 일대에서 대대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