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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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隋城 崔氏 鳳陽里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 |
시대 | 조선/조선,현대/현대 |
집필자 | 서동일 |
개설 시기/일시 | 1580년 - 수성 최씨 봉양리 집성촌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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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수성 최씨 봉양동 집성촌 -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 |
성격 | 집성촌 |
가구수 | 60가구 |
인구(남,여) | 240명 |
[정의]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에 있는 수성 최씨 집성촌.
[개설]
수성(隨城)은 경기도 수원의 옛 이름이다. 수성 최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 김부(金傅)의 13세손이자 본래 김씨(金氏) 성을 가졌던 최영규(崔永奎)이다. 최영규는 고려 원종 때 남조전서·보문각대경을 지냈으며 충렬왕 때 수성백(隋城伯)에 봉해졌다. 그의 묘소는 현재 경기도 화성에 있다. 후손은 주로 경기도 가평·평택·화성, 전라남도 무안·완도·임실·장성 일대에 대대로 살고 있다. 전국적으로 인구는 2000년 현재 1만 5964가구, 5만 1780명이다.
[형성 및 변천]
수성 최씨 봉양동(鳳陽洞) 집성촌의 입향조(入鄕祖)는 최영규의 13세손인 최효건(崔孝騫)[1608~1680]이다. 자(字)는 성허(聖許)이고, 호(號)는 하산(何山)이다. 사헌부감찰·좌승지·경연참찬관 등을 지냈고, 꼿꼿하고 강직한 인품으로 명성이 높았다. 봉양동 집성촌은 1580년에 형성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수성 최씨 봉양리 집성촌은 1930년대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조사한 양주 지역 54개 집성촌에 들어가지 않았다. 1951년 47가구, 1977년 68가구[회천동 전체], 1992년 약 60가구였다. 2000년 현재 양주시에는 수성 최씨가 102가구 331명이 있다. 현재 봉양동에 있는 입향조 최효건의 산소 옆에 ‘증 승정원 좌승지……최공 묘갈명(贈承政院左承旨……崔公墓碣銘)’이라고 새겨진 묘비[높이 108㎝×가로 50.5㎝×두께 17㎝]가 있다. 의정부 좌참찬을 지낸 이재(李縡)가 비문을 지었고,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김근정(金近渟)이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