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군현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 「고산현(高山縣)」 지도. 『1872년 군현지도』는 고종 9년(1872)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1872년 3월부터 6월까지 전국의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된 지도를 도(道) 별로 수합하였는데, 그 수는 모두 461점으로 경기도 40점, 충청도 52점, 전라도 84점,...
-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군현지도(郡縣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 「전주부(全州府)」 지도. 『1872년 군현지도』는 고종 9년(1872)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1872년 3월부터 6월까지 전국의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된 지도를 도(道) 별로 수합하였는데, 그 수는 모두 461점으로 경기도 40점, 충청도 52점, 전라...
-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부녀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큰 원을 이루어 돌면서 불렀던 유희요. 강강술래는 추석날 밤이나 달 밝은 밤에 부녀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면서 놀았던 놀이이다. 원형으로 돌면서 강강술래 노래를 부르는데 한 사람의 가창자가 보통 2음보의 사설을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강강술래”라는 후렴으로 받는다. 메기는소리의 「강강술래」는 강강술래 놀이를 위한...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현[현 고산면]의 조선 후기 읍지. 『고산읍지(高山邑誌)』[奎一七三九九]는 비교적 적은 분량의 읍지이기는 하나, 여러 항목에서 18세기 후반 이후 고산현의 모습을 전해 준다. 다른 시기의 고산읍지들과 비교해 사회경제적 측면의 정보는 부족하지만, 그 내용과 형식면에서 고산 지역 읍지 편찬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
1871년(고종 8) 이후에 편찬된 전라북도 완주군을 포함하는 전라도 고산현 읍지. 『고산읍지』[想白古 915.14-G69]는 전라도 고산현에서 1871년(고종 8) 이후 편찬하였다. 『고산읍지』[想白古 915.14-G69]는 1책 23장 50면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세로 29.4㎝, 가로 22.2㎝ 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대승사(大勝祠)에 배향된 홍이장의 시문집. 홍이장(洪以將)[1673~1727]의 자는 도운(道運), 호는 광반와(廣胖窩),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부친은 진사 중연(仲衍)이며, 모친은 전주최씨 영량(英亮)의 딸이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효행이 극진했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다. 한수재 권상하(權尙夏)에게 나아가 수학했으며, 남당...
-
전라북도 완주군이 포함되어 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廣輿圖)』의 전주목(全州牧) 지도. 『광여도』는 19세기 전반에 제작된 회화식 전국 군현지도로 각 도별 지도 및 군현별 지도, 군사 요충지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광여도』「전주목」은 현재 전라북도 전주시와 완주군 삼례읍, 봉동읍, 용진읍, 소양면, 상관면, 구이면, 이서면과 익산시 오산면, 왕궁면과...
-
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에 수록되어 있는 고산현 지도. 『광여도(廣輿圖)』는 19세기 초에 제작된 회화식 전국 군현 지도로 각 도별 지도 및 군현별 지도, 군사 요충지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광여도(廣輿圖)』「고산현(高山縣)」은 현재 전라북도 완주군의 고산면, 동상면, 비봉면, 운주면, 화산면, 경천면을 나타낸 지도로 관청 건물과 읍면, 주요 산천과 관련 정보가...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출신의 관인. 구소(具瀟)[1588~1658]의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자회(子晦)이다. 능성구씨의 시조는 구존유(具存裕)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직 구세영(具世英), 할아버지는 무과에 급제해서 우부장을 지낸 구담(具曇), 아버지는 예산현감을 지낸 구대우(具大佑)이다. 외할아버지는 전의이씨 통덕랑 이서(李恕)이다. 장인은 완산이씨 공...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학자. 구영(具塋)[1584~1663]의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字)는 영연(塋然), 호(號)는 죽유이다. 고려의 상장군 구존유(具存裕)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사직을 지낸 구세영(具世英), 할아버지는 구담(具曇), 아버지는 구대윤(具大倫)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 이수윤(李守胤)의 증손녀이다. 구영은 김장생의 문하에 수학...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에 묘소가 있는 관인. 구정려(具廷呂)의 본관은 창원(昌原), 호는 봉암(鳳巖)이며 구종길(具宗吉)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구병(具柄)으로 진사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구환(具煥)으로 진사이고, 할아버지는 구사신(具思愼)으로 생원이며, 아버지는 구원(具愿)으로 진사이다. 외할아버지는 하동정씨 정인겸(鄭仁兼)이다. 부인은 해주오씨 오성관(吳...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구호서원은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삼봉로에 있는 청완초등학교의 사거리에서 봉동읍 방향으로 가다가 도로 왼편에 자리 잡고 있다. 구호서원은 1730(영조 6)년에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의 유림이 공의(公議)를 수렴하여 창건하였다. 1777년(정조 1)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98년(정조 22)에...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유학자. 국동화(鞠東華)[1824~1890]는 완주군 비봉면에서 태어났으며,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었던 유학자이다. 국동화의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백영(百英), 호는 죽헌(竹軒)이다. 국경예(鞠經禮)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국문방(鞠文邦)이고, 아들은 국태환(鞠台煥)이다. 국동화는 1824년(순조 24)에 전라...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유학자. 국태환(鞠台煥)[1846~1914]은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백도리(完州郡 飛鳳面 百島里)에서 태어났으며, 생원시 합격자로서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었다. 국태환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경삼(景三), 호는 쌍괴당(雙槐堂)이다. 우국지사(憂國之士)였던 죽계(竹溪) 국명(鞠溟)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국동화(鞠東華...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 출신의 학자. 권내언(權來彦)[1739~1816]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이(士貽),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충정공(忠正公) 권대민(權大敏)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성(權珹), 할아버지는 권유경(權有經), 아버지는 권세진(權世進)이다. 외할아버지는 풍천노씨 노세붕(盧世鵬)이다. 장인은 옥천조씨 조태정(趙泰鼎)이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 출신 국악인. 권삼득(權三得)[1771~1841]은 안동권씨(安東權氏) 추밀공파 28세손 권래언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권정(權亻+政)이며, 자는 사인(士仁)이고, 호가 삼득(三得)이다. ‘가중호걸(歌中豪傑)’이라 불리기도 한다. 판소리 창본(唱本)에는 권삼보·권선달·권생원 등, 「광대가(廣大歌)」에는 권사인(權士仁)으로 나온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의병. 김덕명(金德明)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완주군 고산현 출신이다. 김덕명은 용력(勇力)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전주로 들어오기 위해 진안을 거쳐 전주로 들어오는 길에 웅치(熊峙)에서 패배하고, 다시 진안에서 금산으로 철수했다가 전주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전라도의 의...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남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관진의 창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남관리 남관진 창건비는 남관진의 창건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1873년(고종 10)에 세워졌다. 남관리 남관진 창건비는 전주-남원 간 도로변 완주군 상관면 남관초등학교의 교차로에서 남관성결교회로 우회전하는 곳에 있다. 남관리 남관진 창건비는 개석[뚜껑돌...
-
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집대성한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고산현과 전주부 지도. 『대동여지도』는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김정호가 1861년(철종 12)에 편찬·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22첩(帖)의 병풍식[또는 절첩식] 전국 지도첩으로, 남북은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나누고, 동서는 80리 간격으로 19판(版)으로 구성하였다. 1첩 한 면의 남북 길이가 약 3...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송규환 처 안씨 정려. 안씨의 본은 탐진(耽津)으로 이조판서 고은 안지(安止)의 후손이다. 안씨는 예의범절이 분명하고 미모 역시 빼어났다. 격이 맞는 송규환(宋規煥)과 혼인해서 시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극진하게 모시어 군자의 도와 일치하는 섬김이라 칭해졌다.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이름모를 병으로 눕게 되자 약이 된...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에서 도술꾼 국사철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도술꾼 국사철」은 황인덕이 2001년 9월 23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주민 이우인[남, 72세]으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296~302쪽에 「도술꾼 국사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옛날에 국사철이라는 도술꾼이 있었는데 전라감영으로...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경천리[현 경천면 경천리] 출신인 조선 후기 학자 김재희의 시문집. 『동곡집(東谷集)』은 조선 후기 학자인 김재희의 시문집으로, 1901년 손자 김한철(金漢哲)이 편집하여 5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김재희(金在羲)[1823~1887]의 본관은 강진(康津)이며, 자는 문초(文初), 호는 동곡(東谷)이다. 생원(生員)이 된 후 과...
-
전라북도 완주군이 포함된 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고산현 및 전주부를 비롯한 전라도 지도. 『동국여지도』는 조선 후기 문인 화가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서화첩인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海南尹氏家傳古畵帖一括)’에 포함되어 있는 조선전도이다. 윤두서는 1712년 해남으로 거처를 옮겨 1715년에 사망하였으므...
-
조선 후기 철종 연간[1849-1863]에 제작된 전국지도인 『동여도(東輿圖)』에 수록된 전주부와 고산현. 『동여도』는 철종·고종 연간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의 전국 채색지도이다. 분첩절첩식(分疊折帖式) 형태로 총 23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차 1첩과 지도 22첩에 전국 각 지역의 지리 정보가 수록되어 있어 『대동여지도』와...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출신인 김필태의 시문집. 김필태(金必泰)[1728~1792]는 통덕랑(通德郞) 김회통(金會通)의 손자이며, 김천덕(金天德)과 연안(延安) 이만중(李晩重)의 딸 사이에서 1728년(영조 4)에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서 태어났다. 1746년(영조 22) 부친상과 조모상을 연거푸 당했으나, 슬픔 속에서 예제를 다했다. 1754년 병계...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에서 봉동생강의 유래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만덕산하 필유영초」는 황인덕이 2001년 9월 10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 율소마을의 성명 미상의 주민[남, 86세]으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417~418쪽에 「만덕산하 필유영초」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이서구(李書九)[1...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석성 터. 만마관지(萬馬關址)는 전라북도 남원에서 완주군으로 들어가는 호남제일관문(湖南第一關門)으로 조선 후기 순조(純祖) 때 축성된 석성의 터이다. 만마관은 옛 『완산지(完山誌)』의 ‘1811년(순조 11) 전라관찰사(全羅觀察使) 이상황(李相璜)이 부(府)의 동남(東南) 7리(里)에 만마관을 축성...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서 활동했던 근대 한학자 조형승의 시문집. 『만오유고(晩塢遺稿)』는 근대 한학자인 조형승의 시문집으로, 1967년 손자 조성렬(曺成烈)이 2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조형승(曺亨承)[1854~1916]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하경(夏卿), 호는 만오(晩塢)이다. 근대의 한학자로, 전라북도 진안(鎭安郡)에서 태어났...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서 명창 권삼득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판소리 창법 덜렁제를 만든 명창 권삼득의 고향은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이다. 「매미혈의 명기를 타고난 권삼득」의 뒷이야기는 권삼득 부인의 유언으로 할아버지 권세진(權世進)의 묏자리를 정상 아래로 옮겨 더는 권삼득 집안에서는 명창이 태어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매미혈의 명기를...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출신인 오경한의 유고집. 『묵우재유고(默愚齋遺稿)』는 조선 말기의 한학자인 오경한의 유고집으로, 1930년 장남 오진익(吳震翼)이 편집하고 간행했다. 오경한(吳景漢)[1847~1918]의 본관은 낙안(樂安)이며, 자는 장환(章煥), 호는 묵우재(黙遇齋)로 백안(伯顔)의 후손이다. 조선 말기의 한학자로, 전라북도 완주군...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 가척(加尺)마을에 거주한 학자. 박귀엽(朴龜曄)[1769~1835]의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낙서(洛瑞)이고, 호는 어은(漁隱)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박진저(朴振渚), 할아버지는 박태윤(朴太胤)이며, 아버지는 사복시정(司僕寺正) 박홍문(朴弘文)이다. 아들은 이조참판에 증직된 박능현(朴能鉉)이며, 손자는 진사 박해관(朴海寬)이...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관인. 박명(朴命)의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인숙(仁叔) 또는 인원(仁元)이다. 첨의(僉議) 평양군(平陽君) 박천상(朴天祥)의 후손이며, 우의정에 증직된 박거소(朴去疎)의 6세손이다. 박거소의 아들이 평창군에 봉해진 박계선(朴季善)이고, 박계선의 아들이 박명의 고조할아버지인 박윤종(朴胤宗)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좌문(朴佐文), 할...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미리 출신의 학자. 박승욱(朴承郁)[1703~1789]의 본관은 반남(潘南), 초명은 박숭덕(朴崇德), 자는 문숙(文叔), 호는 귀계(龜溪) 혹은 삼호재(三好齋)이다. 박승욱의 고조할아버지는 박정구(朴廷耈), 증조할아버지는 박만고(朴萬古), 할아버지는 박후계(朴后桂), 아버지는 박성규(朴聖揆)이다. 외할아버지는 생원 진천송씨 송사형(宋...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출신의 문인. 박승주(朴承周)[1714~1766]의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종언(從彦), 호는 창주(滄州) 혹은 귀호처사(龜湖處士)이다. 고려 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를 지낸 박상충(朴尙衷)의 후손이다. 박상충은 고려 말 과거에 급제하여 예조정랑을 거쳐 성균관교관을 지냈으며, 북원의 견제하에서 친명정책을 주장하고, 판전교시사를...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출신의 학자. 박응수(朴應壽)[1780~1844]의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字)는 자익(子翼), 호는 국헌(菊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성규(朴聖揆), 할아버지는 박승욱(朴承郁), 아버지는 박종익(朴宗益)이다. 외할아버지는 이진발(李震發)이다. 어머니 연안이씨는 남편 박종익이 1758년(영조 34)에 사망하자 1759년에 남편을 따...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박제망(朴齊望)[1822~1903]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경화(景和), 호는 수월당(水月堂) 혹은 용암(龍巖), 초명(初名)은 제학(齊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승욱(朴承郁), 할아버지는 박종익(朴宗益)이며, 할머니 연안이씨는 남편 박종익이 1758년(영조 34) 사망하자 1759년에 남편을 따라 순절하여 정려(旌閭)를 받...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출신의 문인. 박제문(朴齊文)[1830~1860]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字)는 경모(景謨), 초명(初名)은 제민(齊民)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승욱(朴承郁), 할아버지는 박종익(朴宗益)이며, 할머니 연안이씨는 남편 박종익이 1758년 사망하자 1759년에 남편 박종익을 따라 순절하여 정려(旌閭)를 받았다. 아버지는 감역관을 지낸 박응...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박제효(朴齊孝)[1804~1826]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경칙(景則)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승욱(朴承郁), 할아버지는 박종익(朴宗益)이며, 할머니 연안이씨는 남편 박종익이 1758년 사망하자 1759년에 남편을 따라 순절하여 정려(旌閭)를 받았다. 아버지는 감역관을 지낸 박응수(朴應壽)이며, 어머니는 수원(水原) 사람 백사...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출신의 학자. 박해관(朴海寬)[1824~1901]의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자는 경흠(景欽)이며, 호는 회당(悔堂) 또는 봉계(鳳溪)이다. 박숙정(朴淑貞)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박태윤(朴太胤), 증조할아버지는 사복시정에 증직된 박홍문(朴弘文), 할아버지는 이조참의에 증직된 박귀엽(朴龜曄),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증직된 박능현(朴能鉉)...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원. 반곡사(泮谷祠)는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사는 담양국씨(潭陽鞠氏)들이 덕행과 학문이 뛰어난 담양국씨의 선조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현종 때 창건되었다가 흥선대원군 때 훼철된 뒤에 1967년에 와서 복원되면서 서원으로 이름을 고쳤다. 처음에는 국함(鞠涵)과 국침(鞠沈)만 향사하였으나,...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무신. 배무천(裵茂天)의 자는 중부(仲夫)이며,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아버지는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을 지낸 배욱(裵郁)이다. 배무천은 인조(仁祖) 연간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이후 배무천은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린 일이 문제가 되어 전라도 완주군 비봉면(飛...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원. 백현서원은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서봉리의 고산교차로에서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에 눈기러기로를 따라 420m 정도 이동한 뒤에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관덕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관덕길을 따라 약 455m 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백현서원은 1668년(현종 9)에...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사당. 1545년(인종 2)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그만두고 현재 보광사가 있는 곳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데 전념한 유학자 이언복(李彦福)을 주벽으로 하면서 육대춘(陸大春), 이지성(李至誠), 이지도(李至道), 양몽설(梁夢說), 김준업(金峻業), 유정(柳頲), 이후태(李后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 가운데...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보성사 창건은 조선 후기로 추정되는데, 창건비에 따르면 김형배가 창건했으며, 7년 뒤 다시 중건을 했다. 보성사를 중건하며 법당과 요사채를 보수했으며, 법당의 왼쪽엔 미륵존상을 봉안했다. 보성사는 1994년 건립된 공덕비로 볼 때 이때까지 법등을 이어오다가 1960년대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
-
전라북도 완주군 반곡서원(泮谷書院)에 배향된 고려 후기 무신 국유의 실기(實紀). 『복애선생실기(伏崖先生實紀)』는 고려 후기 무신인 국유의 실기(實紀)로, 1987년 후손 국동렬(鞠東烈)이 1책으로 간행하였다. 국유(鞠襦)[1324~1392]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경덕(敬德), 호는 복애(伏崖)이다.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전록생(田...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봉강서원(鳳岡書院)은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의 용봉초등학교에서 완주로를 따라 가다가 봉강구만길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가면 농협창고가 나오는데,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봉강서원은 1754년(영조 30)에 조선 개국공신이자 태조 이성계의 4남 이방간(李芳幹)을 제향하기 위해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봉산리 봉산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은진임씨[1738~1805]는 현감 임경우(林景佑)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영(林苓)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恩津面) 묵동(墨洞) 출신이다. 은진임씨는 결혼하기 전부터 현숙했다. 국사증과 19세에 결혼했으며, 국사증이 병에 걸리자 좋은 약이라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구해 썼다. 그러나 간...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봉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조영길(趙榮吉)과 조준(趙峻)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서 건립되었다. 조준[1573~1635]의 본관은 양주, 자는 사첨, 호는 유호(柳湖)이다. 대제학 조말생(趙末生)의 후손이다. 외할아버지는 덕수이씨 이대남이다.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 원주에 있던 영원성도 함락되었는데, 이때 조준은 어머니와 형인 조인[1...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서원. 봉양서원은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다. 비봉면 소재지에서 여산 방향으로 약 3㎞쯤 가면 길 오른쪽으로 동리마을로 진입하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마을로 조금만 들어가면 봉양서원이 나온다. 봉양서원의 전신은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세워진 용계서원(龍溪書院)이다. 1701년(숙종 27...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에 전하는 전라감사였던 이서구가 여성의 개가를 금지시키게 된 이야기. 「살인사건 밝혀낸 이서구」는 황인덕이 2001년 8월 7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구암마을의 오용근[남, 71세]으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103~105쪽에 「살인사건 밝혀낸 이서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전라감사...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출신의 조선 말기 한학자 오신익의 시문집. 『삼국유고(三菊遺稿)』는 조선 말기의 한학자인 오신익의 시문집으로, 1959년 후손 오병길(吳秉佶)이 편집하고 간행하였다. 오신익(吳臣翼)[1865~1916]의 본관은 낙안(樂安)이며, 자는 의중(義仲), 호는 국하재(菊下齋)이다. 조선 말기의 한학자로,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부인 광산김씨의 묘비. 정부인 광산김씨의 사망 후, 1833년(순조 33) 묘 앞에 건립된 비석이다. 정부인 광산김씨의 가계와 부군 전주최씨 문충공의 후손 창익의 행적과 차자인 성전이 정려를 받아 효자의 모친이란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상운리 정부인 광산김씨 묘비는 완주 나들목 입구에서 오른...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일임마을에서 진묵대사의 높은 도술과 중태기[버들치]의 유래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생사를 임의로 한 진묵대사-중태기의 유래」는 평소 진묵대사를 제거하고 싶어하던 김봉곡이 봄에 연회를 열었는데 탁발을 마친 진묵대사가 그곳을 지나가자 불러서 술과 생선을 먹여 놓고 봉변을 당하게 하려 했지만 진묵대사가 먹은 물고기를 똥을 누어...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서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우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서봉리 홍우전 신도비는 조선 후기 공조·예조·병조·형조 참판과 춘추관사를 지낸 문인 홍우전[1663~1728]의 신도비로서 1766년(영조 42)에 세워졌다. 비문은 무려 3,700자에 이르는 장문으로 글씨는 당나라 후기 서예가인 안진경의 다보탑비 서체로서 안심사 사적비와...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효자이며 한학자. 소성술(蘇星述)[1804~1879]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군삼(君三), 호는 창유재(昌裕齋)이다. 소세량(蘇世良)의 11대손으로 아들은 소휘식(蘇輝植)이며, 손자는 소학규(蘇學奎)이다. 학자이며 효자로 알려져 있다. 소성술은 어려서부터 효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완주군 용진면을 비롯한 전라도 유생들은...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 범종. 십자각에 걸려 있던 송광사동종은 현재 요사채로 사용하는 관음전[적묵당] 툇마루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송광사동종은 1992년 6월 20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동종은 높이 107㎝, 지름 73㎝이다. 송광사동종은 천판[용뉴·음관과 접촉하고 있는 범종의 머리 부분] 위에...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 내에 있는 나한전. 전주시에서 진안군 방향 26번 국도 소양면을 경유해, 마수교에서 좌회전해 벚꽃터널을 지나 2㎞쯤 가면 왼쪽에 송광사가 있다. 송광사 나한전은 대웅전 뒷면 우측에 있다. 송광사 나한전은 1656년(효종 7)에 조성해 대웅전에 봉안하였던 나한상을 송광사 대웅전을 중건하던 1857년(철종 8)에 새...
-
전라북도 완주군 송광사 대웅전에 있는 인조 연간에 조성된 3기의 목조 불패. 완주 송광사 대웅전의 삼세불 사이 앞쪽에 있는 나무로 만든 3점의 목패[또는 불패]이다. 송광사 목조삼전패는 부분적으로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만든 방법과 형태는 같다. 3개의 목패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것은 크기가 대략 230㎝에 달한다. 이 목패는 인조를 위한 목패인데...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에 있는 조선 중기 승려 벽암당의 사리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의 일주문. 송광사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두 개의 기둥을 한 줄로 세워 그 위에 지붕을 얹은 형태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송광사 입구에 세워 속계와 불계의 경계 역할을 하는 상징물로 조선시대에 지은 것이다. 송광사 일주문은 송광사 경내에 진입하는 첫 건물로 송광사 가람배치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 출신의 조선 중기 학자인 국침의 시문집. 조선 중기 학자인 국침의 시문집으로, 7대손 국진백(鞠鎭百)이 편집하여 1807년에 3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국침(鞠沈)[1576~1654]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심원(深源), 호는 송만(松灣)이다. 국함(鞠涵)의 아우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송표옹(宋瓢翁)·정화곡(...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출신의 문신. 송성룡(宋成龍)[1780~?]의 자는 원서(元瑞),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아버지는 송경한(宋景漢), 할아버지는 송항진(宋恒鎭), 증조할아버지는 송재후(宋載厚), 외할아버지는 의금부도사(義禁府道事)를 지낸 김필태(金必泰)이다. 그리고 장인은 국사영(鞠思永)이다. 송성룡은 33세 때인 1812년(순조 12) 정시...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송영식(宋永植)[1868~1911]의 본관은 진천(鎭川)이며, 자는 치일(致一), 호는 성재(醒齋)이다. 아버지는 1894년(고종 31)의 갑오식년시(甲午式年試) 생원시 합격자인 송순철(宋淳喆)이다. 송영식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작은아버지 송순석(宋淳奭)으로부터 학문을 익혔다. 또한 이름난 유학자였던 구익화(具益和)와...
-
전라북도 완주군 조촌면 원동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인 유화의 시문집. 『수졸재유고(守拙齋遺稿)』는 조선 후기 문신인 유화의 시문집으로, 1834년 후손 유정(柳淀)·유준(柳浚)·유성양(柳聖養)이 편집하여 3권 3책으로 간행하였다. 유화(柳俰)[1631-1697]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숙혜(叔惠), 호는 수졸재(守拙齋)이다. 이이, 성혼,...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관. 심수현(沈壽賢)[1663~1736]의 자는 기숙(耆叔), 호는 지산(止山)이며,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심억(沈檍), 할아버지는 심약한(沈若漢)이고, 아버지는 응교(應敎)를 지낸 심유(沈濡), 어머니는 동지중추부사 조석윤(趙錫胤)의 딸이다. 장인은 이만겸(李萬謙)과 안후진(安後震) 등 두 사람이었다. 심...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학자 겸 관료. 심원빈(沈遠彬)[1850~?]의 자는 경빈(景彬),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양아버지는 심노문(沈魯文), 아버지는 심노숙(沈魯肅), 할아버지는 심인모(沈仁模), 증조할아버지는 심내영(沈來永)이다. 그리고 장인은 서준순(徐準淳), 외할아버지는 윤좌열(尹佐烈)이다. 심원빈은 1850년(철종 1) 전라북도 완주군 고...
-
1592년 7월 9일경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소양평[안덕원]에서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안덕원(安德院)은 전라북도 전주시 산정동에 있던 원(院)의 하나이다. 동시에 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을 지칭하기도 한다. 안덕원마을은 진안 방면에서 완주군 소양면을 지나 전주로 들어오는 초입에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산정동과 금상동 지역에 해당된다. 안덕원마을...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에 있는 안심사의 연혁을 기록하기 위해 세운 비. 안심사는 638년(백제 무왕 39)에 자장법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그 뒤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고, 신라 말 고려 초에 조구(祖求)화상에 의해 재중창되었다. 그 뒤 고려를 거쳐 1601년(선조 34) 수천화상(守天和尙)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1710년(숙종...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 출신의 문신. 양곡(梁穀)[1585~1618]의 자는 종학(種學),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아버지는 1597년(선조 30) 문과 급제자로서 정랑(正郞)을 지낸 양몽열(梁夢說), 할아버지는 양국량(梁國樑), 증조할아버지는 양세준(梁世準), 장인는 황진(黃津)이다. 양곡은 1585년(선조 18)에 전주에서 태어났으며, 30세 때인...
-
조선 후기 편찬자 미상의 3책으로 구성된 『여지도(輿地圖)』에 있는 전라도 고산현(高山縣) 지도. 『여지도』는 보물 제1592호이며 3책으로 구성된 지도책이다. 1책에는 서구식 세계지도인 천하도지도(天下都地圖), 조선전도인 아국총도(我國摠圖), 청나라의 수도인 북경 지도인 북경도성삼가유시오단팔묘전도(北京都城三街六市五壇八廟全圖), 중국 지도, 의주-북경 사이의 사신로(使臣...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백현 출신인 구정래의 시문집. 『연포당집(蓮浦堂集)』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구정래의 시문집으로, 1889년 6대손 구긍조(具兢祖)가 2권 1책으로 편집하고 간행하였다. 구정래(具鼎來)[1634~1698]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내길(來吉), 호는 연포당(蓮浦堂)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로, 허목(許穆)의 문인이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출신의 관인. 오경린(吳景麟)[1846~1915]의 자는 응서(應瑞), 호는 운치(雲痴), 본관은 낙안(樂安)이다. 아버지는 오도상(吳道常), 아들은 오영익(吳寧翼)이다. 오경린은 1846년(헌종 12)에 태어났으며, 37세 때인 1882년(고종 19) 임오 증광시(壬午增廣試)의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다. 오경린의 아버지 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 오명희(吳命禧)[1655~1719]의 자는 천우(天佑)이고,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아버지는 오시간(吳時幹), 할아버지는 오지인(吳止仁), 증조할아버지는 오순길(吳舜吉), 외할아버지는 정지(鄭祉), 장인은 김취려(金就礪)이다. 오명희는 오늘날의 완주군 지역에서 1655년(효종 5)에 태어났다. 37세 때인 1691년(...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의 금강문. 송광사 금강문은 금강역사를 모시는 문으로 일주문 다음으로 있는 문이다. 송광사 금강문은 사천왕문과 더불어 불법을 수호하고 호위하는 수호신을 모셔 사찰의 주공간인 대웅전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송광사 금강문은 1999년 7월 9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전주시에서 진...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에 있는 조선시대 산성. 완주 위봉산성은 조선 후기에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어진(御眞)을 모시기 위해 돌로 쌓은 산성으로 사적 제471호로 지정되었다. 1675년(숙종 원년)부터 1682년(숙종 8)까지 변란(變亂)에 대비하여 주민들을 입보(入保)[성안에 들어가 보호를 받음]시키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기 위해 산성을...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용진서원은 1680년(숙종 6) 조선 초 청백리 황희(黃喜)와 조선 전기 문신 황수신(黃守身), 조선 중기 문신 김맹(金孟), 이익(李益), 강이온(姜利溫), 인조 때 문신이자 효자 박금(朴嶔)을 배향하기 위해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에 세운 서원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행정복지센터 인근 용진...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종리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인 구치용의 시문집. 조선 후기 학자인 구치용의 시문집으로, 1922년 8세손 구긍조(具兢祖)·구승조(具承祖)와 9세손 구연승(具然昇)이 6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구치용(具致用)[1590~1666]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기지(器之), 호는 우교당(于郊堂) 또는 고산(高山)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출신인 우곡 임상우와 그의 아들 한천재 임낙풍의 시문집. 임상우(林尙愚)[1761~1823]의 자는 민첨(民瞻), 호는 우곡(愚谷)이며, 본관은 조양(兆陽)이다. 부친은 광흡(光洽)이며, 모친은 문화유씨 시곤(時坤)의 딸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총명리에서 태어났으며, 단정하고 총명했다. 18년 동안 부친의 병을 간호했으며, 형제들이...
-
1592년 7월 8일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일대에서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웅치는 전라북도 진안과 전라북도 전주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웅치는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에서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여러 개 노선이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했을 때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두목마을에서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덕봉마을로 넘어가는 덕봉길이...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출신의 무신. 유심(柳諗)[1683~1755]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신백(信伯)이다. 아버지는 월곡(月谷) 유종흥(柳宗興)이다.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출신으로, 한때 완주군 삼례읍에 살았다. 유심이 관직에 기용된 사실은 『승정원일기』 영조 대의 기록에 나온다. 1726년(영조 2) 5월에는 전직 사과(司果)로...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 유영보(柳榮輔)[1776~?]의 자는 흥숙(興叔)이고,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광해군 대에 부제학(副提學), 대사간(大司諫), 형조참판(刑曹參判) 등을 지낸 유숙(柳潚)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유욱(柳頊), 할아버지는 유정한(柳晶漢), 고조할아버지는 유제(柳䜞)이다. 장인은 김경우(金景愚)이다. 유영보는 1776년(영...
-
조선 중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세거했던 문신. 유응원(柳應元)의 자는 극기(克己)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531년(중종 26)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에 장흥부사(長興府使)를 지낸 유세화(柳世華)의 손자이자 유회(柳會)의 아들이다. 유세화의 동생 유세무(柳世茂)도 1552년(명종 7)에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유응원은 1613년(광해군 5) 증광문과(增廣文...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서 은둔했던 문인. 유종흥(柳宗興)[1652~?]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진보(振甫)이고, 호는 월곡(月谷)이다. 광해군 대에 대사간(大司諫)과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을 지낸 유숙(柳潚)의 증손으로, 부제학(副提學) 유간(柳藖)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별좌(別坐) 김자건(金自鍵)의 딸이다. 유종흥의 조카 유건(柳謇)은 1729...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출신의 종교인. 유중철(柳重哲)[1779~1801]은 아버지 유항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평생을 동정으로 마칠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 같은 뜻을 가진 이순이 루갈다와 동정 부부로 평생을 함께할 것을 맹세하고 혼인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 유항검을 비롯하여 동정부부 이순이 그리고 일가족 4명과 함께...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출신의 종교인. 유항검(柳恒儉)[1756~1801]은 1784년 한국 천주교회 설립된 이후 호남의 사도로 활동했으며, 천주교의 조선 정착에 공헌했다. 장남 유중철이 동정으로 신앙생활을 할 것을 결심하자 이를 받아들이고, 같은 생각을 하는 이순이와 동정 부부로 혼인하여 신앙생활을 하도록 지원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유항검은 가...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서 활동한 종교인. 윤지헌(尹持憲)[1764~1801]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 순교자 윤지충의 동생으로, 1791년 신해박해 이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로 이거한 후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 2014년 복자품(福者品)에 올랐다. 윤지헌은 본관이 해남(海南)이다. 공재 윤두서(尹斗緖)의 증손...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양성의 묘비. 김양성의 자는 백승이요, 1754년(영조 30)에 출생했으며, 관직은 증 가선대부 공조참판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위봉진별장, 남관진별장을 거쳐 승지 가선대부 중추부사 행경희궁위장을 역임하다가 1832년(순조 32) 사망했다. 아들은 김항율, 김광율이 있고 김항율은 가선대부 용양위부호군으로 남고진별...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출신의 문인. 이경유(李慶裕)[1705~1755]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선(子善)으로 완주군 고산면 율곡리(完州郡 高山面 栗谷里) 출신이다. 단성익조 좌명공신 광정대부 정당문학 예문관 대제학 지춘추관사 상호군(端誠翊祚佐命功臣匡靖大夫政堂文學藝文館大提學知春秋館事上護軍) 황강(黃岡) 이문정(李文挺)의 14세손이다. 이문정은 고려 말...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세거했던 문신. 이기경(李基敬)[1713~1787]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백심(伯心), 호는 목산(木山)이다. 이국헌(李國憲)의 증손자이고, 할아버지는 이지억(李祉億), 아버지는 이익열(李翊烈)이며, 어머니는 오대성(吳大成)의 딸이다. 이기경은 일찍부터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상신(相臣) 이상진(李尙眞)의 방손으로,...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현 출신의 문신. 이만첨(李萬瞻)[1689~1731]의 자는 백숭(伯崇),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아버지는 이필(李泌), 할아버지는 이귀징(李龜徵), 증조할아버지는 이완(李衤+完)이다. 외할아버지는 유명하(柳命河), 장인은 박정(朴涏)과 구익형(具益亨) 두 사람이다. 이만첨은 1689년(숙종 15)에 고산현(高山縣), 즉 오늘날...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에 거주했던 서예가. 이삼만(李三晩)[1770~1847]은 서울의 추사 김정희, 평안도 눌인 조광진과 함께 조선 후기의 3대 명필로 이름을 날렸던 서예가이다. 이삼만의 자는 윤원(允遠), 호는 창암(蒼巖),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처음 이름은 규환(奎煥)이었다. 이삼만은 1770년(영조 46)에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에서 도사 우사출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서구보다 나은 도술꾼 우사출」은 황인덕이 2001년 9월 23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일임마을에서 주민 이우인[남, 72세]으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305~308쪽에 「이서구보다 나은 도술꾼 우사출」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조선 후기...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서 활동한 종교인. 이순이(李順伊)[1762~1801]는 한국 천주교회 초기에 입교하여 평생을 동정으로 살기로 결심한 뒤, 유중철과 혼인해서 4년 동안 동정부부로 신앙생활을 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시아버지 유항검, 남편 유중철 등과 함께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했고, 2014년 복자품(福者品)에 올랐다. 이순이는 동...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 이신회(李身晦)[1725~1799]의 호는 가촌(佳村), 자는 회지(晦之)이며,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전의이씨는 완주군 구이면에 세거하던 씨족이었다. 아버지는 이성익(李聖榏), 할아버지는 이하제(李夏濟), 증조할아버지는 이기전(李基全)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일좌(金日佐), 장인은 남일량(南一陽)이다. 이신회는 1725...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무신. 이정표(李廷彪)[1562~?]의 자는 방부(方父),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이순효(李順孝)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공적을 세운 이정란(李廷鸞)은 이정표와 8촌 간이다. 또한 『목산집(木山集)』의 저자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문신 이기경(李基敬)은 바로 그의 6대손이다. 이정표는 1584...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 이주현(李周顯)[1743~?]의 자는 성모(聖謀), 본관은 부평(富平)이다. 아버지는 이성운(李星運), 할아버지는 이삼원(李三元), 증조할아버지는 이정석(李廷奭)이며, 외할아버지는 한세증(韓世增), 장인은 김려(金礪)와 유진한(柳軫漢)이다. 이주현은 1743년(영조 19)에 완주군에서 태어났으며, 1772년(영조 48)...
-
1592년 7월 10일 이후부터 1592년 9월 17일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일대에서 왜군과 싸워 이긴 전투. 이치는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진산면은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진산현이었다. 진산에서 이치를 통과해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운주면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충청남도 논산...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학자. 이항제(李沆齊)[1655~?]는 문묘(文廟)의 숭상과 명륜당(明倫堂)의 중요성을 강조한 완주 출신의 유학자이다. 이항제의 자는 여초(汝初)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이익휘(李益徽)이며, 할아버지는 가선대부용양위부호군(嘉善大夫龍讓衛副護軍) 이문환(李文煥)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충의위부사과(忠義...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출신의 학자. 임낙풍(林樂豊)[1797~1866]의 본관은 조양(兆陽)이며, 자는 경재(慶哉)이고, 호는 한천재(寒泉齋)이다. 아버지는 임상우(林尙愚)이다. 동생은 임낙관(林樂觀)과 임낙성(林樂晟)이다. 아버지 임상우와 함께 효자로 알려져 있다. 임낙풍은 1885년(고종 22)에 정려(旌閭)가 내렸다. 후손 임학수(林學洙),...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출신의 학자. 임상우(林尙愚)[1761~1823]의 본관은 조양(兆陽)이며, 자는 민첨(民瞻)이고, 호는 우곡(愚谷)이다. 아버지는 임광흡(林光洽)이며, 아들은 임낙풍(林樂豊)이다. 임상우는 완주군 구이면 총명리(完州郡 九耳面 聰明里) 출신의 학자로, 아들 임낙풍(林樂豊)과 함께 효자로 알려져 있다. 음양복서(陰陽卜筮), 의약...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출신의 학자. 임유한(林有瀚)[1821~1900]의 본관은 조양(兆陽)이고, 호는 호양재(湖陽齋)이다. 임유한은 조선 후기인 1821년(순조 21)에 태어나서 1900년에 사망했으며, 한학자로 활동하였다. 임유한의 문집 『호양재사고(湖陽齋私稿)』 1책이 전한다. 내용은 시(詩), 서(書), 상량문(上樑文) 등이 수록...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두 차례에 걸쳐 왜군의 침략으로 발생한 사건. 1592년(선조 25) 4월 13일에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하면서 임진왜란은 시작되었다. 1592년 5월 3일에 한양이 함락당하고, 1592년 6월 14일에 평양이 함락되었다.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은 전쟁이 장기화되는 조짐을 보이자 임진강에서 작전회의를 갖고 조선을 분할통치하는 방향으로...
-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전라북도각군읍지』중 고산군[현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 해당하는 읍지. 『전라북도각군읍지』 「고산군」1899는 1899년(광무 3) 전국 읍지상송령 이후에 만들어진 전라북도(全羅北道) 26군(郡)의 읍지(邑誌) 중 고산군에 관한 읍지이다. 『전라북도각군읍지』 「고산군」189...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서 이서구의 전생과 환생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는 황인덕이 2001년 9월 1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신기마을 주민 안상렬[남, 72세]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372~373쪽에 「전생 시신을 손수 장사지낸 이서구」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옛...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 정운붕(鄭雲鵬)[1563~?]은 장흥정씨의 시조(始祖)가 되는 인물이다. 장흥정씨는 씨족 전체 구성원이 2015년 기준 26명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희성(希姓) 가운데 하나이다. 정운붕의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만리(萬里)이다. 아버지는 정응진(鄭應辰)이다. 정운붕은 1563년(명종18)에 태어났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현 출신의 문신. 정인한(鄭寅漢)[1851~?]의 자는 인국(仁國)이며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아버지는 정귀조(鄭貴朝)이다. 동생은 정인풍(鄭寅豊), 정인훈(鄭寅勳), 정인수(鄭寅洙), 정인상(鄭寅祥)이다. 정인한은 1851년(철종 2) 전라도 고산현(高山縣)[현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서 김제군수(金堤郡守)를 지낸 정귀조의...
-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송광사의 위상과 가치. [송광사의 내력] 전라북도 완주군의 송광사는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5년(583) 터를 잡고, 경문왕 7년(867) 가지산문(迦智山門)의 3대 조사인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636년 세워진 송광사 개창비에는 그 내용은 보이지 않고,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폐허가 된 이 송광사 터를...
-
전라북도 완주군의 조선 후기 양반 출신 판소리 명창. 권삼득은 1771년(영조 47)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에서 안동권씨 양반 가문의 후예로 출생하였다. 『조선창극사』에는 권삼득이 전라북도 익산군 남산리 출생으로 되어있으나, 1971년 전북대학교 철학과 홍현식 교수에 의해 권삼득의 부친 권래언의 문집인 『이우당유고집(二憂堂遺稿集)』이 발견되고, 가계가...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조옥승(曺玉承)[1828~1892]의 호는 월은(月隱)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할아버지는 진사(進士) 조명계(曺命啓)이고, 아버지는 진사 조석리(曺錫履)이다. 조옥승은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隱世稿)』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신암 조헌승과 우재 조호승이 친족관계인 것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조옥승은 한말의...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학자. 조헌승(曺憲承)[1813~1860]의 호는 신암(信菴)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조헌승은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隱世稿)』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우재 조호승과 월은 조옥승이 친족관계인 것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조헌승의 문집(文集)으로 『신암집(信菴集)』 필사본(筆寫本) 1책을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학자. 조형승(曺亨承)[1854~1916]의 자는 하경(夏卿), 호는 만오(晩塢)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조선 후기와 근대에 활동한 한학자이다. 아버지는 조석희(曺錫羲)이다. 조형승은 충익공 조문택(曺文澤)의 후손으로 문학에 조예가 깊고 성품이 인자했다. 참봉(參奉)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886년(고종 2...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학자. 조호승(曺暠承)[1819~1954]의 호는 우재(愚齋)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완주군 비봉면 월곡리(完州郡 飛鳳面 月谷里) 출신이다. 조호승은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隱世稿)』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신암 조헌승과 월은 조옥승이 친족관계인 것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조호승의 문집으로 『우재집(愚齋集)』 필...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국명의 시문집. 『죽계집(竹溪集)』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국명의 시문집으로, 1915년 후손 국천환(鞠天煥)이 3권 1책으로 편집하고 간행하였다. 국명(鞠溟)[1583~1645]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거원(巨源), 호는 죽계(竹溪)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로,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종리 출신의 조선 중기 문신인 구영의 시문집. 조선 중기 문신인 구영의 시문집으로, 1668년 아들 구치성(具致成)과 구치겸(具致兼)의 편집을 거쳐 제자 윤변(尹抃)이 3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구영(具瑩)[1584~1663]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영연(瑩然), 호는 죽유(竹牖)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광해군 때 나...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에서 진묵대사의 죽음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진묵대사가 죽은 이유」는 황인덕이 2001년 9월 23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일임마을 주민 이우인[남, 72세]으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323~328쪽에 「진묵대사가 죽은 이유」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진묵대사는 생사를...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의 구호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박종열의 시문집. 박종열(朴宗說)[1754~1822]의 자는 회중(晦仲), 호는 창백당(蒼柏堂),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조부 성규(聖揆)는 여호(黎湖) 박필주(朴弼周)의 문인, 부친 승주(承周)는 운평(雲坪) 송능상(宋能相)의 문인으로 대대로 성리학에 힘쓴 가문이었다. 모친은 여산송씨 진사 지탁(之鐸)의 딸...
-
조선 후기 제작한 『청구도(靑邱圖)』에 수록된 고산현과 전주부 지도 『청구도』는 1834년(순조 34)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채색 필사본 전국지도로, 현전하는 3점의 『청구도』가 2008년 12월 22일에 보물 제1594-1호[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제1594-2호[영남대학교 도서관 소장본], 2009년 4월 22일에 보물 제1594-3호[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
1895년(고종 32)에 제작된 『청구요람(靑邱要覽)』에 수록된 전주부와 고산현 지도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분첩식 대축척 전국지도인 『청구도』의 이본으로 알려진 『청구요람』은 국내에 9본(本), 국외에 8본[일본 7본, 미국 1본]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내용은 크게 4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청구도범례(靑邱圖凡例)’가 들어 있는 경...
-
조선 중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문인화가. 최명룡(崔命龍)[1567~1621]은 조선 중기의 한학자로 어려서부터 비범해서 12세에 아버지 상을 당했는데 집례를 어른처럼 의젓하게 하므로 모두 탄복했다고 한다. 이정기의 문하에 있을 때 이정기가 말하기를 “최씨의 자제가 나를 가르치러 왔다”고 하며 탄복했다고 한다. 그 후 신중경의 문하에서 수업한 뒤 변산의 절...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무인. 최분손(崔芬孫)[1542~1626]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할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오위장(五衛將)[종2품관] 최건신(崔建臣)이며, 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종4품] 최영서(崔令瑞)이다. 최분손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정3품관],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등의 벼슬을 역임했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문인. 최상성(崔尙聖)[1584~?]의 자는 이화(而化)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완주백(完州伯) 문열공(文烈公) 최순작(崔純爵)의 후손으로 진사(進士)를 지낸 최봉(崔奉)의 아들이다. 부인은 통천김씨(通川金氏)로 생원(生員) 김황(金況)의 딸이고, 할아버지는 참봉 최익한(崔翼漢)이고 외할아버지는 진주소씨(晋州蘇氏) 소순신(蘇舜...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최일관(崔日觀)[1625~1670]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태지(泰之)이다. 완산백(完山伯) 문열공(文烈公) 최순작(崔純爵)의 후손이다.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낸 최잠(崔岑)의 손자이고, 최상제(崔尙悌)의 계자(繼子)로 생부(生父)는 최상성(崔尙聖)이다. 부인은 연안이씨(延安李氏)로 아버지는 이돈중(李惇中)이고 할아버지는...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명나라 출신 무장. 추수경(秋水鏡)[1530~1600]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황제의 명을 받고 총병아장(摠兵亞將)으로 1592년(선조 25) 12월에 조선에 파견되어 1593년 평양성전투를 비롯해 주요 전장터에서 활약했다. 1597년 남원성전투에 참여하였고, 전주를 사수하다가 중상을 입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조선에 남아 전주에 거...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삼현사(三賢祠)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인 유숙의 시문집. 『취흘집(醉吃集)』은 조선 전기 문신인 유숙의 시문집으로, 1882년 약계서당(藥溪書堂)에서 5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유숙(柳潚)[1564~1636]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연숙(淵叔), 호는 취흘(醉吃)이다. 159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에 있는 서원. 학천서원은 고려 말 조선 초 문신 정수홍(鄭守弘)을 주벽으로 하고, 조선 전기 문신 정곤(鄭坤), 병자호란 때 창의한 정달서(鄭達恕), 조선 전기 문신 정임(鄭任), 조선 후기 효자 정사협(鄭斯鋏)를 배향하기 위해 1826년(순조 26)에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에 세운 서원이다.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현에 거주한 학자. 한진석(韓晉錫)[1833~1909]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자는 경삼(景三)이며, 호는 송은(松隱)으로,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아버지는 무과 급제자 한봉교(韓鳳敎)이고, 어머니는 이양억(李瀁檍)의 딸이다. 작은아버지인 생원(生員) 한영교(韓永敎)에게 입후되었다. 한진석은 1870년(고종 7) 사마시에 합격했다...
-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에 수록된 전라도 고산현(全羅道 高山縣) 지도. 『해동지도』는 1750년대 초에 그려진 지도책으로, 후대에 제작된 지도들의 모범이 될 정도로 체계적으로 제작되었으며, 다양한 지리 정보들이 회화식으로 채색되어 있다. 영조 대에 작성된 도별 읍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제작 연대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되며, 도별 읍지를 보완하...
-
1871년과 1895년에 편찬된 『호남읍지』에 수록된 고산현[완주군 고산면] 읍지. 『호남읍지』는 1871년 제1차 총11책[규장각본, 한국교회사연구소본], 1895년 제2차 총18책[규장각본] 등 2차례에 걸쳐서 편찬되었다. 『호남읍지』는 19세기 고종 초기의 정국 운영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자료이다. 고종 연간에는 탕평군주(蕩平君主)를 모범으로 삼아서 다양...
-
조선 후기에 제작된 『호남지도(湖南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고산현(高山縣) 지도 『호남지도』는 전라도 군현을 그린 채색 필사본 지도집으로 보물 제1588호이다. 일명 비변사인방안(備邊司印方眼)지도라고 한다. 제1~6첩에는 전라도 53개 고을의 지도[제주, 대정, 정의 제외]가, 제7첩에는 전라도전도와 전라좌도지도, 전라우도지도 등 3매가 수록되어 있다. 제1~6첩의 53...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원. 호산서원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 1805년 고려 말 충신 정몽주(鄭夢周)를 주벽으로, 조선 후기의 학자 송시열(宋時烈), 김수항(金壽恒), 김동준(金東準), 정숙주(鄭叔周)를 배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교차로에서 전라북도 군산시, 전라북도 익산시 방면으로 좌회...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구사리 출신의 문신. 홍남립(洪南立)[1606~1679]의 자는 탁이(卓爾), 호는 화곡(華谷) 또는 구사재(九思齋)이다. 1606년(선조 39)에 완주군 이서면 구사리에서 태어났다. 구사리는 지금 전주시 덕진구 동산동 산자락 동쪽 근처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1399년(정종 1)의 식년문과 급제자 홍석주(洪錫疇)는 홍남립의 8대...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 홍술해(洪述海)[1722~1777]의 자는 중선(仲善)이고,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수제(洪受濟), 할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홍우전(洪禹傳), 아버지는 이조판서 홍계희(洪啓禧), 양아버지는 큰아버지 홍계손(洪啓孫), 어머니는 김취로(金取魯)의 딸이다. 홍술해는 1750년(영조 26) 진사시에 합격하고...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 홍우전(洪禹傳)[1663~1728]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집중(執中), 호는 구만(龜灣)이다. 홍명원(洪命元)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홍처심(洪處深)이고, 아버지는 정랑 홍수제(洪受濟)이다. 외할아버지는 구치중(具致中), 아들은 홍계희(洪啓禧), 손자는 홍지해(洪趾海)와 홍술해(洪述海)이다. 홍우전은 송시열(宋時...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황운리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인 홍남립의 시문집. 조선 후기 문신인 홍남립의 시문집으로, 1916년 기우만(奇宇萬)이 편집하여 13권 5책으로 간행하였다. 홍남립(洪南立)[1606~1679]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탁이(卓爾), 호는 화곡(華谷)이다. 어려서는 봉곡(鳳谷) 김동준(金東準)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성인이 돼서는 사계...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화암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범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가천리 화암사 동종은 전체 높이가 105㎝이고 입지름이 69㎝인데,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동종 가운데서는 큰 편에 속한다. 종의 형태, 단룡의 용뉴 및 음통, 장식 등에서 신라종의 전통을 이은 고려 후기 종을 재현하려 한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고려...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 출신의 조선 중기 학자인 국함의 시문집. 조선 중기 학자인 국함의 시문집으로, 5대손 국치권(鞠致權)이 편집해서 1913년에 4권 2책으로 간행했다. 국함(鞠涵)[1573~1653]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양원(養源), 호는 환성(喚醒)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송표옹(宋瓢翁)·정화곡(鄭禾谷)·심초정(沈草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