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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영정」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1070
한자 宋時烈影幀
영어의미역 Song Siyeol's Portrait
이칭/별칭 「송시열상」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 508[황보길 274-78]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조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초상화
제작시기/일시 일제강점기
제작지역 노동서원
서체/기법 지본채색
소장처 노동서원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 508[황보길 274-78]지도보기
소유자 노동서원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노동서원에 있는 일제강점기 제작된 우암 송시열의 초상화.

[개설]

노동서원은 1816년(순조 16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어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13년 지방 유림에 의해 강학소(講學所)가 설립되어 송시열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송시열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그를 추모하여 받드는 수많은 영당 및 서원이 건립되었다. 그 가운데 위패 봉안뿐만 아니라 영정을 봉안하였던 영당 및 사우만 해도 수원의 매곡(梅谷), 정읍의 효암(孝巖), 청주의 화양(華陽), 옥천의 용문(龍門) 등 거의 20여 개소에 이른다.

[형태 및 구성]

화법은 거의 음영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갈색 선으로 안모의 외곽과 주름살을 표현하였다. 숱 많은 눈썹, 강조된 눈매, 굳게 다문 입술은 엄정하면서도 과격한 그의 성품의 말해준다. 그 위의 검은색 복건과 백색 유복, 간결하게 옷주름을 처리한 검은 선이 빚어내는 흑백 대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유학자 송시열의 풍모를 느끼게 한다.

[특징]

『우암연보(尤庵年譜)』에 송시열의 생시도(生時圖) 사본(寫本)이 3본 있었다고 하는데, 이 3본의 기술 내용과 송시열 영정이 합치되지 않아 송시열 생시의 진본을 모본(模本)으로 하여 제작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색채가 조금도 퇴색되지 않고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어 조선시대 초상화 모사와 근대 초상화 연구 자료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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