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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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蔚珍郡 |
영어음역 | Uljin-gu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인식 |
[정의]
경상북도 북동쪽 끝에 있는 군.
[지리적 위치]
울진군의 북단(北端)은 국도 7호선 도로가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지나는 북면 나곡리 갈령치 부근 37° 8′ 38″ N이며, 남단(南端)은 국도 7호선 도로가 영덕군 병곡면과 울진군 후포면을 지나는 후포면 금음리 지경(地境) 부근 36° 38′ 24″ N로서 남북간의 위도 차는 30′ 14″이다. 동단(東端)은 전술한 남단에서 약 14㎞ 북쪽에 위치한 기성면 구산리 갈매 부근으로서 129° 28′ 53″ E이며, 서단(西端)은 낙동강의 지류인 광비천이 본류인 낙동강에 합류하는 금강송면 광회리 부근으로 129°4′48″ E로서 동서간의 경도차는 24′5″이다.
이 같은 위치적 특징으로 인해 울진군의 형태는 북쪽의 북면과 남쪽의 매화면을 연결한 남북으로 긴 사각형 형태에 서쪽의 금강송면이 반 타원형으로 덧붙여져 전체적으로 모자 형태의 윤곽을 띠고 있다. 남북의 최대 길이는 55.7㎞이며, 동서는 35.5㎞이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 1172호에 의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된 울진군은 경상북도 동쪽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이 같은 위치적 특성으로 인해 울진군의 북쪽은 강원도 1시와 서쪽과 남쪽은 경상북도 3군과 접경하고 있다. 즉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사곡면·원덕면, 남쪽은 영덕군 창수면·병곡면, 서쪽은 영양군 영양읍과 수비면 및 봉화군 소천면·석포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울진군 경계의 총 길이는 130㎞이며, 이 중 울진군과 가장 긴 접경을 이루는 곳은 영양군으로서 접경 지역이 50㎞에 이르고 있다. 다음으로 봉화군[36.5㎞], 삼척시[26㎞], 영덕군[17.5㎞] 순으로 접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영양군 수비면은 울진군 온정면·매화면·금강송면 등 3개의 면과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접경 거리만도 47㎞에 이르고 있다.
[연혁]
울진군 지역은 고대 부족 국가 당시 파단(波旦)이라 하였고, 예(穢)[강릉], 실직(悉直)[삼척], 파단[울진]을 일컬어 창해삼국(滄海三國)이라 일컬었다. 삼국시대에는 102년(파사왕 23) 10월 신라에 예속되어 우중국(優中國)이라 하였고, 고구려 458년(장수왕 56) 2월에는 고구려 땅이 되었다가 9월에 다시 신라에 영속되었다. 장수왕은 하슬라주(何瑟羅州), 또는 강서주를 설치하면서 영속으로 30개 군현을 두었는데, 인근군으로서는 실직군, 우시군(于尸郡)[영해], 야시홀군(也尸忽郡)[영덕]과 더불어 우진야군(于珍也郡)[울진]이라 하였으며, 고우이군(古于伊郡)이라고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신라 505년(지증왕 8) 2월에 이사부(異斯夫)가 실직을 수복하여 군주가 되고 우진(于珍)이라고 불렀다. 그 후 삼국통일시대에 김유신이 667년경 우진에 당도하니 산천이 맑고 금은보화가 야산에 많다하여 울진(蔚珍)이라 불리었다는 지명 유래설이 있다.
신라 신문왕의 보천태자가 류사강[영해] 밖 울진 장천굴[성류굴]에 들어가 20일간 도를 닦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울진이라는 이름이 705년경에 벌써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57년(경덕왕 16) 12월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국을 9주로 하고 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고구려의 하슬라주를 명주(溟洲)[강릉]라 하고 9군 25현을 거느리게 할 때부터 울진군이라 하였는데, 해전현(海典縣) 또는 해서현(海西縣)이라 하였다.
고려 940년(태조 23)에 울진현(蔚珍縣)이라 하여 현령을 두었다. 평해(平海)는 고구려와 신라 때 근을어현(斤乙於縣)이었다가 이때에 평해현으로 고쳤다. 평해는 이후 1022년(현종 13) 예주(禮州)[영해]로 속하여 다시 근을어현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1172년(명종 2)에 기성현(其城縣)으로 하고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1275년(충령왕 1) 고을사람 황서(黃瑞)가 왕을 따라 원에 들어가서 왕을 호위하여 공을 세우자 현(縣)을 군(郡)으로 하고 평해(平海)라 고쳤다.
조선시대에는 1413년(태종 13) 10월 각도 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울진 지역을 울진현과 평해군으로 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에는 지방관제를 개정하여 현을 없애고 군으로 승격하여 강릉부에 속하다가 다음해인 1896년에 전국을 13도로 나누고 강원도에 속하게 하였다.
근대에 와서는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23부제를 실시하여 현이 군으로 되었고, 그 다음해 8월 4일 칙령 제 36호에 의해 강원도 울진군이 되었다. 1909년 6월 25일에는 법률 제20호에 의해 지분 구역과 명칭 변경에 관한 건에 따라 면과 리가 결정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1913년 12월 29일 공포]에 의해 평해군을 통합하여 울진군이라 하고 15개 면이 8개 면으로 되었다.
현대에는 1953년 1월 19일 면 조례 제15호[1953년 1월 19일 공포]로 평해면에 후포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53년 2월 13일에는 면 조례 제22호[1953년 2월 13일 공포]로 울진면에 죽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로 강원도 관할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되었으며, 이때 온정면 본신리는 영양군 수비면으로 편입되었다.
1967년 5월 28일 군 조례 제204호에 의해 북면에 하당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로 울진면이 울진읍으로 승격되었다. 다음 해 12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10050호로 평해면이 평해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에는 대통령령 제11027호로 서면[현 금강송면] 전곡리 일부가 봉화군 석포면으로 편입되었다. 1986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11874호에 의해 울진읍 죽변출장소가 죽변면으로 승격되고 평해읍 후포출장소가 후포면으로 승격되었다. 1994년 12월 26일 「시군자치구의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에 따라 서면[현 금강송면] 왕피리 일부가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에 편입되었다.
[상징물]
울진군의 군기는 태양과 온천·산·들 그리고 바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어, 깨끗한 자연 환경과 풍부한 관광 자원을 함께 의미하고 있다. 특히 울진군의 한글 이니셜 ‘울’ 자를 이미지화하여 깨끗하고 살기 좋은 환경 울진을 나타내고 있다. ‘울’에서 빨간색은 울진 앞바다의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며, 주황색은 울진의 온천수를 나타낸다. 초록색은 깨끗한 산과 들, 파란색은 울진의 청정한 바다를 상징한다.
울진의 군목은 소나무이다. 일반 소나무와 달리 자생 분포가 한정된 희소목(稀少木)으로 선비의 높은 지조(志操)와 충절(忠節)의 기상으로 ‘문향(文鄕)과 충절(忠節)’의 고장인 울진군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울진군의 군화는 매화로, 고결한 품성을 숭상하는 선비를 상징한다. 화려한 공명보다는 개결(介潔)한 지로로 문향울진(文鄕蔚珍)을 이룩한 선조들이 매화의 함축된 상징과 상통하고 있다.
울진군의 군조는 갈매기다. 이백 리 해안을 접하고 있는 울진군에서 갈매기는 사시사철 동해의 무한한 자원을 바탕으로 바다 위 창공을 비상(飛翔)하는 새이다. 이런 갈매기와 같이 울진군의 희망찬 미래의 낙원을 이룩할 것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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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울진군 인구 및 세대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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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울진의 행정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