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변항
-
과거 거일2리에서 대게는 지금과 비슷하게 그물을 던져서 잡았다. 그러나 현재 나일론실로 만들어진 그물이 없던 시절 거일2리 사람들은 대게를 잡기 위한 그물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다. 당시 사용하던 그물은 한 폭이 약 50m 정도로 그물은 크게 부자, 망목, 벼리 세 부분으로 나뉜다. 부자는 그물 윗부분에 위치하며 그물이 물 위에 뜨게 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의 부표와...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 있는 민물고기 생태 체험관. 1999년 경상북도수산자원개발연구소 민물고기연구센터가 우리나라 민물고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전파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민물고기전시관을 개관하였다. 이후 2006년 11월 8일 그동안의 전시관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전시관을 크게 개선·확장시킨 민물고기 생태체험관을 건립·개관할 수 있게 되었다....
-
1500년 이후 민가가 형성되고 1900년대 죽변으로 이름을 대외적으로 보내기 시작하면 이곳은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군사적으로 중요성을 인지하여 성을 축조한 것에서 일본인들은 지리적으로 생태적으로 유리한 이곳에 이주지를 만들었고, 이후 동해안의 어류에 따라 사람들은 웃고 울기를 여러 번 그리고 마지막 원자력발전소의 건립에 따른 여러 영향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경상북도 최북단에...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서 북면까지 동해안을 따라 연결되는 국도. 국도 7호선은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개설된 도로로 본래 부산~원산선이라 하였다. 1963년부터 부산~온성 간 도로라 하여 부온선(釜穩線)이라 하였고, 근년에 와서는 동해간선도로(東海幹線道路), 또는 동해선이라고도 한다. 울진군을 통과하는 중심 교통로로서 울진군 구간의 기점은 후포면 금음리이고,...
-
죽변의 지리적 위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이로 인해 신라시대에는 왜적을 막기 위해서 이곳에 죽변성을 쌓고 수군을 상주시켰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인들은 죽변곶에 망루와 등대를 설치하여 러시아군의 동해안 진출을 감시하였다. 죽변곶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등대는 일본인이 러시안군의 침략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그러나 등대의 건립 이...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꽁치를 이용하여 만든 젓갈. 울진에서 봄철에 많이 잡히는 꽁치를 이용하여 만든 젓갈로서, 꽁치젓갈의 젓국[간수]은 김장 및 각종 음식의 양념으로 사용한다. 울진의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기본 양념 중 하나로 꽁치젓갈의 맛으로 그 집의 음식 맛을 평가하기도 한다. 울진에서는 꽁치를 비롯한 멸치, 메가리 등을 이용하여 젓갈을 담그는데...
-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의 죽변항은 지나간 시간동안 포(浦)에서 진(津)으로 1900년대 이후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항구로 탈바꿈하면서 오늘날에는 동해안의 어업기지로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죽변의 이러한 변화는 어디서 기인되는 것일까. 『한국수산지』에는 죽변의 입지적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죽변의 용추갑은 높은 언덕을 정점으로 해서 북서쪽보다 남동쪽으로 뻗어...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구리에 있는 군립공원. 덕구계곡은 계곡 중간 중간에 선녀탕·옥류대·무릉·형제폭포 등 수려한 경치와 주변으로 울창한 원시 수림대가 형성되어 있는 지역으로, 자연을 보존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하여 1983년 10월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덕구계곡은 해발 998.5m인 응봉산(鷹峰山)에서 울진원자력발전소가 있는 부구리까지 2...
-
울진군은 동해안 제일의 온천 휴양지이다. 인구가 6만여 명이 되지 않는데도 오랜 역사를 이어온 온천단지가 덕구온천·백암온천 등 2곳이나 된다. 덕구온천은 응봉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덕구계곡에서 솟아나는 자연 용출온천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곳이다. 울진 사람들은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백암산을 자랑한다. 백암산 중턱에는 예로부터 뛰어난 효...
-
일찍이 거일2리의 앞바다는 대게잡이 배들이 가득한 중요한 어항이었다. 대게를 실은 배가 해변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대게와 화목(땔감) 등을 바꾸기 위해 마을을 찾아왔던 등짐장수와 봇짐장수들이 몰려들었고, 만선의 배를 타고 올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로 해변은 사람들로 붐볐다. 후포항이 축조된 후 더 이상 항구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였지만, 변변한 정박시설이 없어도 배들이 정박할 수...
-
1895년과 1896년에 울진과 영해의 유진소에 침입한 왜군을 사살한 사건.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그 결과 청·일 양국 간에는 마관조약(馬關條約)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을 부인함으로써 조선에서의 우위를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독일·프랑스와 함께 일본의 요동반도 점령이 동양 평화에 해롭다는 구실을 붙여 반환을 요구하는 삼국간섭(三國...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있는 해수욕장. 백사장은 길이 약 250m의 규사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사장 뒤편에는 넓은 송림이 있어 야영이 가능하다. 시설로는 화장실, 탈의실, 샤워장, 식당, 매점, 약국 등이 있다. 봉평해수욕장은 1984년 해수욕장으로 문을 연 이래 매년 7월 10부터 8월 말까지 개장하고 있다. 봉평해수욕장은 덕천리 백사장에서 후...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에 있는 고려 전기 토축 읍성지. 산내성에 관한 사료로는 『울진군지』 울진읍 성곽 산내성조에 있다. 죽변면에 있는 장산성(長山城)이 신라 말 왜구에 의해 폐허가 되자, 고려 초에 장산성에서 내륙으로 서쪽 5리 떨어진 산내성에 축성하여 이읍(移邑)하고 군민을 위무하여 이산(離散)되었던 민심을 결집하여 대읍을 이룩하였다. 성종 때 삭방...
-
죽변의 새벽은 어판장에서 울려 퍼지는 호루라기 소리에서 시작된다. 동이 트기 전 아직 어둠이 깔린 시간 죽변항에는 오징어 또는 게를 잡기 위한 출항준비로 분주한 어선들의 밝은 불빛으로 대낮을 방불케 한다. 작게는 3톤 크게는 6톤에 이르는 대게잡이 자망어선과 오징어잡이 어선은 해무를 가르며 선단을 이루고 바다를 향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검은 바다 위 불빛들이 앞서 가는...
-
죽변만의 위치와 형상이 어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되지만, 이것만큼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죽변항 일대의 생태적 특징이다. 동해안의 어로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해류는 쿠로시오의 지류인 쓰시마 난류와 한류계인 오야시오의 지류인 북한한류이다. 쓰시마 난류의 일부는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는데 여름철에는 함경북도 연안까지 이르고, 겨울철에는 울릉도 죽변 근처에 머문다. 이 두...
-
농지가 부족한 산골에서 여옥란 역시 선질꾼이 떠난 자리에서 개간한 농지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여옥란이 부르는 오늘날 화전을 ‘산전’이라 부른다. 갈아 먹을 땅이 부족하니 해마다 산에 불을 놓아 산전을 일구었다. 산전은 개인 산에서는 할 수 없고 국유림에서만 가능하였다. 국유림도 산전은 국가에서 금지해 놓은 일이니 몰래 몰래 숨어서 행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먹고 살기 힘든 때...
-
경상북도 울진군의 산업 중 수산물의 채취·어획·양식·가공과 관련되는 업종. 수산업은 수산물을 생산하는 업태에 따라 어업·양식업·수산 가공업 등으로 구분된다. 어업과 양식업은 유용 동식물을 생산하는 1차 산업으로서 어업은 천연의 수산물을 채취·어획하는 것이고, 양식업은 수산 자원의 번식과 성장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증식시키는 수중 농업이다. 그리고 수산가공업은 수산물을 원...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생선 또는 무를 소금에 절여 먹는 향토음식. 식해는 울진의 해안 지역 사람들이 겨울과 봄에 밑반찬으로 먹는 음식으로 넣는 재료에 따라 소식해, 고기식해로 나뉜다. 고기식해는 다시 물고기의 종류에 따라 구분되는데, 바다에서 대량으로 잡히는 어종들은 대부분 식해로 만들었다. 생선은 깨끗하게 손질하고 무는 채 썬다. 생선과 채 썬 무를 소금으로 절인 뒤,...
-
과거부터 울진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선인들은 ‘등허리 긁어서 안 닿는 곳’이라는 말로 찾아가기 힘든 울진을 표현하였다. 국도 7호선은 지리적으로 오지에 위치한 울진을 연결하는 주요한 연결 도로이다. 경상북도의 동북단이라는 위치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동해안의 남쪽과 북쪽을 잇는 주요한 연결망인 국도 7호선의 중심점에 울진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국도 7호선은 동해안의 도시...
-
1930년대 동해안의 어업은 정어리가 풍년이 되면서 약 10년 동안 번성기를 맞이한다. 일본인 이주와 더불어 정어리의 풍년은 죽변항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당시 죽변에서 잡힌 많은 정어리들로 정어리 기름공업이 발달하였는데, 1940년경에는 어민을 비롯한 유지제조, 운반, 판매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동해안 일대에만 10만명에 달했다. 죽변항에도 정어리와 관련된 공장이 10여곳이...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오천동(烏川洞)과 초산동(草山洞)에서 ‘오(烏)’자와 ‘산(山)’자를 따 ‘오산(烏山)’이 되었다. 1520년경에 김해김씨(金海金氏)인 김상희(金商喜)라는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는 울진군 매화면 지역으로, 1916년 4월 1일 오천동과 초산동이 통합되어 오산리로 개편되었다. 오산리...
-
성지는 축성(築城)의 목적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첫 번째로 거주주체인 주민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행정·군사적인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있으며, 두 번째로 순전히 군사적인 목적으로 축성한다. 전자는 읍성이 그 대표적 형태이며, 후자는 산성이 이에 해당단된다. 죽변4리에 위치한 죽변성은 후자의 것에 속한다. 죽변성에 관련된 기록은 지지(地誌)에는 전하는 바가...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울진장씨 장백손 유허비와 장양수 제단비. 용호정 유허비는 죽변면 후정리 매정마을에 있는 울진장씨 장백손 유허비와 장양수 제단비를 통칭하여 말한다. 장백손 유허비는 후손인 장헌규, 장인환, 장영철 등이 실기(實記)를 바탕으로 남영진이 지은 비문을 새겨 1967년 10월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매화마을에 세웠다. 장양...
-
19세기 전반 서울에서 봉화에 이르는 길이 간선도로로 승격되어 7대로가 형성되면서 울진군 북면에서 봉화를 연결하는 교통로인 십이령 길이 동서를 연결하는 대표 도로가 되었다. 울진의 흥부장·읍내장·봉화의 내성장 등 장시가 열리면서 이들 장시가 십이령 길을 통해 연결되었다. 십이령을 넘나들며 울진과 봉화 지역의 장시를 장악하였던 보부상이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퇴조하자 그 역할을 대신...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는 원자력 홍보관. 에너지 바로알기를 주제로 에너지 역사, 에너지 발전의 효율성 및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도모하고 청소년들에게 원자력에 관한 올바른 체험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한국형 표준 원전에 대한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5년 울진 원자력 홍보관을 개관하였다. 이후 2002년 9월에 기존의 노후화된 홍보관 건물의...
-
동해안으로 길게 드리워진 울진군에는 북쪽에 죽변항, 남쪽에 후포항이라는 대표적 항구가 있고, 울진의 어업은 두 항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죽변항은 울진의 북단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위치하고 있는 어항으로, 높이가 15.6m인 울진등대가 서 있는 곳으로도 이름난 동해안에서 손꼽는 어로 기지다. 다양한 어획고만큼이나 어항 주변에는 크고 작은 수산물 가공 공장들이 줄지...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울진대게 및 활어회 유통 센터. 죽변수산업협동조합이 어민들이 잡은 수산물을 중간 유통 과정 없이 직접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게 함으로써 어가 소득을 증대시킴과 동시에,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울진대게 및 활어회를 보다 저렴하게 제공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2004년 12월에 준공되었으며, 군비 2억 원, 도비 11억 원, 죽...
-
일찍이 연안어업도시로 성장한 죽변면의 죽변리는 4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마을에서 토박이를 찾을 수 없다. 인구는 많지만 상대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은데, 이는 죽변항의 경제생활과 역사적 환경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나타난다. 죽변의 경우 일본인의 이주와 더불어 1900년대 초반 대거 일본인이 들어와서 마을에 정착하였지만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들이 떠나면서 동반적으로 경제생활을 누렸...
-
죽변의 행정구역 변천을 살펴보면 1906년까지는 울진군 근북면에 속하였다. 1915년 울진지구 하군면에 병합하여 삼화면에 속한다. 이후 1917년 울진면에 속하고, 1979년 울진읍으로 1986년 대통령령 제1187호로 죽변면이 되었다. 1906년부터 1986년 분할되기 전까지 죽변은 독립된 행정구역이 아닌 근북면 또는 울진읍에 소속된 것으로 분리된 확실한 통계를 확인할...
-
경상북도 울진군 지표상에서 전개되는 인간활동으로 나타나는 인문 사상(事象)을 지역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분야.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며 동쪽은 동해안, 서쪽은 봉화군, 남쪽은 영덕군·영양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대상지는 평해읍 월송리에 자리하고 있다. 울진군은 총 면적 988.9㎢의 85%가 산지로, 평지가 적고 태백산맥...
-
1900년 이후 죽변은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특히 인구변동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심하게 나타난다. 공동체 영역에서 마을을 이루며 거주하는 이들은 약간의 인구 이동이 일어나지만 기본적으로 3대 이상이 거주하거나 또는 장기적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옆집의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이웃의 근황에 대해서 먼 친척보다도 더 자세하게 알고 있을...
-
1967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건립된 장백손을 기념하는 유허비. 장백손(張伯孫)은 조선 전기 세종 때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매정동마을에서 태어나 1471년(성종 2)에 사마시에 합격 하였고, 1487년(성종 18)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장백손은 갑산진 병마사 밑에서 만호 벼슬을 하면서 여진족 우적합이 조산보를 점령하였다가 도원수 허종에게 쫓겨 달아나자 허종을...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우진읍성의 옛터로 전해오는 신라시대 토축 산성. 신라 말 국력이 쇠잔해졌을 때 왜적이 죽변항의 방비가 소홀함을 보고 죽변항을 거쳐 장산성으로 내침하여 성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고려 때 읍의 치소를 울진읍 고현성(古縣城)으로 옮기고 이곳 장산성을 수축하지 못하였다. 죽변면 후정1리 서편으로 장평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 일...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 본관은 울진(蔚珍). 이명은 군칠(君七). 장말익(張末翼)의 24세손으로 아버지는 장사묵이다. 1882년 일본 어선 5척이 죽변 앞바다에 들어와 불법으로 해삼을 잡자 울진유진소에서 명령을 받은 중군장 최재린이 포병 50명을 이끌고 죽변곶 죽림에서 잠복하였다. 어선 3척이 죽변항에 상륙하려 하자 포병들이 사격을 가하여 일본인 31명을 사살하였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정어리 가공 공장. 정어리는 청어목 청어과의 바닷물고기로 큰 무리를 지어 다닌다. 지방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정어리 기름은 각종 공업용 원료로 이용되었고, 나머지는 사료와 비료로 이용되었다. 학명은 ‘Sardinops melanostictus’이다. 정어리 떼는 두만강에서 흘러 내려오는 붉은 흙탕물이 남쪽으로 흐르면 이 물길을 따라...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라 하여 죽빈이라 하다가, 뒤에 죽변동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근북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봉수동이 통합되어 죽변리라 하여 울진면에 편입되었다. 1986년 4월 1일 울진읍에서 죽변면이 분리, 승격되었다. 죽변리는 죽변1리에서 죽변5리까지 다섯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죽변리...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성황사에서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제사. 성황사는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297-2번지에 위치하는데, 죽변1리·죽변2리·죽변4리·죽변5리와 후정3리 주민들의 마을 제당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인근의 죽변3리[봉개마을]와 봉평리·후정리 주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사실상 죽변면을 대표하는 마을 제당으로 기능한다. 서낭고사는 죽변어촌계...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원삼국시대·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죽변리 유물산포지는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죽변중고등학교 북쪽에는 해발 41.4m의 얕은 구릉이 남동으로 흐르고 있었으나 학교 개설로 인해 절토되었으며, 구릉의 남은 부분은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유물산포지1은 이 구릉의 남서 사면에 위치한다. 유물산포지2는 죽변항의 동쪽...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서 열리는 재래시장. 죽변시장은 1965년 2월 5일 정기 시장으로 개설되었다. 매월 3일·8일 열리는 5일 장이다. 수산물 생산 기지인 죽변항에 위치하기 때문에 ‘경매를 알리는 종소리에 새벽을 여는 어판장’, ‘지역 농산물 집산장’으로 유명하다. 시장의 부지 면적은 4,746㎡, 건물 면적은 120㎡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어항. 죽변면의 옛 지명은 용추곶(龍湫串)으로, 항공사진을 보면 용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한 형상이 나타난다. 옛 선인들은 용추곶을 용이 노닐면서 승천을 꿈꾸다가 그 꿈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전한다. 죽변항은 후포항과 더불어 울진군의 주요 어업 중심 기지이다. 후정해수욕장과 봉평해수욕장이 있으며, 죽변리·후정리·...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나타나는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1. 하구 충적평야 울진군 내에는 태백산맥의 서사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넓은 충적평야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일부 하천[왕피천·남대천] 하구 부근에서 소규모 충적평야가 발견될 뿐이다. 이 충적평야들은 약 6,000년 전부터 현재까지 해면이 지금 높이에서 비교적 안정되었을 동안에...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숙종(肅宗) 28년(1689) 5월 기유(己酉) 기사에는 ‘울진 죽변진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로 갔다’라는 기사가 있다. 당시 울릉도로 가기 위한 주요 항로로서 죽변이 이용되었음을 대변해 준다. 그러나 일찍이 울릉도로 가기 위한 해로로 죽변이 이용되었음은 기록에서만 확인되는 바는 아니다. 실제로 죽변항은 울릉도와 80마일(128㎞)의 거리로서...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문화 행사.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는 축제에는 울진대게축제, 울진송이축제, 백암온천축제, 성류문화제, 평해 남대천 단오제, 해맞이 행사가 있다. 2008년 경상북도 축제 현황을 살펴보면, 포항 2개, 경주 1개, 김천 1개, 안동 5개, 구미 1개, 영주 4개, 영천 2개, 상주 1개, 문경 3개, 경산 2개, 군위 5...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에 있는 자연휴양림. 울진군은 지역 주민의 건강·오락·휴식과 소중한 자연을 보호 및 보존하기 위해 통고산 자연휴양림을 건립하여 1992년 8월 20일 개장하였다. 시설로는 체력단련장, 물놀이장, 강의동, 급수대, 방문자 안내소, 산림문화휴양관, 숲속의 집, 자연관찰로, 목공예전시실, 등산로, 산책로 등이 갖추어져 있다. 전체 구역...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총 24개 어항을 중심으로 어선이 정박하고 어획물의 양륙, 판매, 수송에 관한 설비나 저장 시설 등을 갖춘 곳. 동해에 인접한 울진군은 산업 중 수산업이 최대 분야를 차지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울진 지방의 토산품으로 연어·대구어·문어·황어·은어·방어 등 여러 어종들이 기록되어 있다. 동해는 한난(寒暖)의 조류가 항상 유동하고 있...
-
경상북도 울진 지역 바닷가를 중심으로 해수욕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 울진군에서는 1984년 죽변 봉평해수욕장과 기성 구산해수욕장을 개장한 이래 1997년까지 6개의 해수욕장이 추가로 개장되어 1998년 현재 총 8개의 해수욕장이 개장되어 있다. 특히 북면 나곡리의 나곡해수욕장은 군내 8개 해수욕장 중 가장 넓은 면적의 백사장을 자랑하고 있으며, 기성면...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해수욕장. 백사장의 길이는 약 300m이며, 규사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심은 1~2m로 얕은 편이다. 푸른 송림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야영을 하기에도 적당하다. 화장실 1개, 파출소, 샤워장 1개, 식당, 매점, 방갈로, 야영장, 그리고 차량 40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후정해수욕장은...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어항. 후포항 인근에는 선박 모양으로 지은 후포수산업협동조합, 후포수협수산물유통센터, 어판장, 후포어시장, 횟집 등이 있으며, 수산물을 가공하는 공장들이 영업 중에 있다. 후포항 뒤쪽 등기산[64m]에는 1968년부터 가동된 후포등대가 있고, 그 주변으로 후포등기산공원이 있다. 후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는 울릉도까지 운항하는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