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리
-
현재 매화장터는 매화면사무소가 위치한 매화1리 주변이다. 그러나 과거 매화장터는 현재의 매화1리가 아닌 매화마을 초입이었다. 이곳이 영조 이래 울진군 아래 매화면 일대에 많음 사람들이 모였던 5일장이 들어섰던 과거 장터임을 ‘구장터’라 불리는 지명으로도 유추될 수 있다. 5일장이 열리는 곳임과 동시에 면사무소가 매화1리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 전 면사무소가 있던 곳으로 1945년까...
-
1919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윤병관, 장식 등이 주도하여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하여 평양·의주·원산 등지에서 독립선언식이 이루어짐으로써 전국적인 민족독립운동이 전개되자, 울진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1919년 4월 경상북도 울진군 원남면[현 매화면] 매화리 매화장터와 북면 부구리 흥부(興富)장터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일본제국주의는 1910년...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매점이 있었다 하여 갈매점 또는 갈매동이라 한 것이 점차 변하여 갈면동으로 되었다고 한다. 1574년 경에 사람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본다. 본래 울진군 매화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갈면리가 되었다. 갈면리의 북서쪽은 금장산 지맥이 중첩되어 있고, 고초령(高草嶺)의 대령산(大嶺山)이 높이 솟아...
-
남수산 주봉의 북동쪽으로 좌측 봉우리 정상을 구신곡동이라 한다. 구신곡동은 마치 거북이의 등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격암 남사고 선생이 공부한 곳으로 알려진 이곳은 현재도 주변에 둘러친 돌담의 잔해가 남아 있으며, 주변으로 적송 3그루가 위치하고 있다. 남사고 선생이 공부했을 때 굽고 작았던 나무는 키 큰 소나무가 되어 현재는 고사되었다. 격암 남사고 선생의 문...
-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달충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경주이씨의 시조인 이알평은 신라 개국공신이다. 중시조 원대손 이거명은 신라의 좌명공신이다.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중시조 직계 계대에서 성암공파, 이암공파, 익재공파, 호군공파, 국당공파, 부정공파, 상서공파, 사인공파 등 8개, 지손 계대에서는 판전공파, 월성군파, 직장공파, 석탄공파,...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 건립된 최시창·최면 부자를 기리는 제단비. 최시창과 최면 부자가 단종 복위와 관련하여 순절하고 나서 1458년(세조 2) 동학사(同鶴寺)의 한 스님이 사육신(死六臣)을 제사하였는데, 이를 들은 세조가 비단 등을 내렸고, 1464년(세조 10)에 각(閣)을 전(殿)으로 만들고 다시 혼을 불러 숙모전(肅慕殿)이라 하였으며, 1807...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 분포하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가 낮은 지형. 울진군의 지형은 태백산맥과 태백산맥 동록의 해안저지로 대별될 수 있다. 또한, 태백산맥은 지형적 특성에 의해 다시 중앙산맥과 해안산맥으로 구분된다. 이중 중앙산맥은 온정리-매화천-울진을 연결하는 구조선 서쪽에, 해안산맥은 그 동쪽의 산열을 의미한다. 한편, 해안저지는 태백산맥이 동편에 있고...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종목(郭鍾穆)은 매화리의 만흥학교(晩興學校)를 졸업하고 경상북도 영해[현 영덕군]의 송천의숙(松川義塾)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가족을 데리고 서간도(西間島) 유하현(柳河縣) 구산자(溝山子)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민족학교인 구산자학교(溝山子學校)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
1950년대 매화마을에서는 청년들이 군입대를 할 때 마을 동민들이 모두 모여 군대를 가는 청년들을 환송해 주었는데, 이시기 군대에 입대할 경우 전사자가 많이 생겨 돌아올 수 없는 청년들이 종종 발생하였다. 이를 위해 입대 시에는 집안이 아닌 마을 차원에서 청년들을 환송해 주었다. 당시 매화마을에는 정기적으로 군입대를 하는 청년들이 있었으며,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았으며, 30대가...
-
만흥학교가 설립된 후 30년 뒤 1937년 다시 매화리에는 울진군 근대 실용교육의 선두가 될 수 있는 농민학교가 설립된다. 공립농민학교는 1학년 약 31명으로 구성된 농업인 양성을 위한 최초의 농업 전문학교로서 울진군 매화면 매화2리 1번지에 설립되었다. 지금은 해군부대 남쪽 사택지와 본부대 건물이 일부 들어선 곳이다. 그러나 만흥학교와 달리 공립농민학교는 일본인에 의해...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기전동(基田洞)과 영양동(永陽洞)에서 ‘기(基)’자와 ‘양(陽)’자를 따 ‘기양(基陽)’이 되었다. 1466년 경에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본다. 본래 울진군 매화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기전동·영양동·두기동(斗基洞)·지품동(池品洞)이 통합되어 기양리로 개편되었다. 기양리는 기양1리, 기양...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기양리에 있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국도 7호선을 따라 가다 매화면소재지인 매화리에서 매화천을 건너 남쪽으로 가면 기양2리 여양동이 나온다. 여양동 옹기점들로 건너가서 매화천을 따라 내려가면 오른쪽에 충적대지와 충적대지의 동쪽 끝에 해발 100m 전후의 구릉이 형성되어 있다. 기양리 유물산포지는 시시골과 바까미골 사이에 형성된...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형이 지르매(길마)처럼 되었다 하여 지르매 또는 길마·길곡이라 하였다. 1400년 경에 구씨(具氏)·고씨(高氏)·안씨(安氏)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원남면[현 매화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길곡리가 되었다. 길곡리의 여러 산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 매화천을 이루며, 이 하천은 북쪽 근남면의...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및 독립운동가. 김용욱(金容旭)은 신라 헌강왕(憲康王)의 39세손이다. 1869년 3월 6일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에서 김이수(金履洙)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용욱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0월 7일 500명의 의병으로 기병하여 영덕군 서면[현 창수면] 불영사에 임시 사령부를 설치하고 일본군에 대항하였...
-
매화마을의 깨끗한 쌀로 만든 상품은 다양하다. 쌀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상품화하여 마을 사람들은 매화쌀의 우수성과 함께 자연이 담긴 건강한 먹거리를 사람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먼저 매화쌀엿을 만들기 전 과정에서 나온 조청이 있다. 조청은 겨울철 고구마와 떡 등을 찍어먹고, 벌꿀과 설탕을 대신하여 음식에 넣는 조미료로 사용되었다. 매화마을의 쌀엿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한익(漢翊). 목사공(牧使公) 남회의 후손으로 1898년 2월 7일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마을에서 남병선(南炳旋)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재량은 애국지사 백운(白雲) 주진수(朱鎭洙)가 강학하던 매화면 매화리의 만흥학교(晩興學校)에 재학하였다. 그러던 중 1919년에 3·1운동이 전개되자 이...
-
1907년 황만영이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세운 근대 교육기관. 설립자인 황만영은 조선 고종 때의 독립운동가로서 1857년 6월 20일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도량이 넓고 의리가 강하였으며 한학과 병서를 읽고 연구하던 중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고 항일구국운동에 참여하여 의병장 현오우에게 사재 800냥을 희사하기도...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덕신리 후리동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덕신리 고분군은 덕신리 후리동의 뒷산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후리동에서 울진 쪽으로 난 국도 7호선 좌우 능선의 상부와 사면, 그 사이 계곡부에 분포한다. 국도 7호선의 울진-영덕 간 4차선 확장공사로 인해 고분군의 일부가 파괴됨에 따라 2002년 6월부터 12월까지 안동대학교박물관에 의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으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활동가들. 울진에서의 독립운동가는 크게 3·1운동, 청년운동, 신간회, 울진공작당, 창유계의 활동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식민지가 시작된 후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민족해방운동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것은 기존의 조선이 아닌 새로운 근대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
마을을 지키듯 감싸안 듯 지나가는 매화들은 매화리의 상징이자 마을의 곡창지대이다. 매화천은 영양군 일월산에서 발원하여 길곡에서 남으로 흘러 이곳을 지나는데 성류굴 앞에서 왕피천과 합류하여 수산교 동쪽에 만나 동해로 유입된다. 그리고 매화천이 만들어낸 넓은 매화들은 평지가 부족한 울진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가능하게 한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매화천의 매화들이 애초부터 풍요로...
-
매화리 개발위원회는 1967년 1월 5일 매화리 사람들 13명 개발위원 선출과 함께 발족되었다. 당시 개발위원회는 동회의와 별도로 마을의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모색을 위한 계획 및 실천을 하는 기구로서 동회가 마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기구의 역할을 하였다. 1967년 개발위원회는 당시 추심경과 객토 작업 그리고 동계 퇴비 등의 의견을...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매화리의 명칭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먼저 마을의 형상이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이라 하여 매화라 하였다는 설과, 조선시대 광해군 때 강원도관찰사 기자헌(奇自獻)이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 주위의 들에 해당화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야다강매(野多江梅)」라는 시를 읊었던 연유로 매야(梅野)라 하다가...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죽포동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매화리 고분군은 울진군의 남쪽에 있는 매화면의 소재지인 매화리의 동편 강당골을 둘러싼 해발 50m 내외의 능선에 위치한다. 남쪽에 새로 건설된 국도 7호선의 매화교차로가 있다. 2001년 11월 16일에서 12월 26일까지 안동대학교박물관에 의해 구덩식 돌덧널무덤 1기가 발굴 조사되어 신라 토기가...
-
1919년 매화장터 만세사건 이후 일본인의 감시는 더욱 심해지고, 1943년 3월 조선독립공작당과 농민조합사건 이후에 독립운동은 침체기를 겪게 된다. 항일운동을 재기하기 위해 울진군에서는 다양한 활동들이 재개되는데 그 과정에서 매화리에서 창유계 사건이 발발하였다. 창유계는 당시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학도병과 지원병, 보국대, 징용을 강요하고 물적으로는 식량을 위...
-
매화리는 남수산 정상에 바라보면 마을의 형상이 매화꽃잎과 같고 그 부근의 산봉우리가 매화꽃가 같다고 하여 연유된 이름이다. 일설에서는 조선조 광해군 때 강원도관찰사(江原觀察使) 기자헌(奇自獻)이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 주위의 들에 해당화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야다강매(野多江梅)」라는 시(詩)를 읊었던 연유로 매야(梅野)라 하다가 후에 매화(梅花)로 바...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원래 명칭이던 원남면은 울진읍 내에서 남쪽으로 멀리 있는 곳이라고 하여 유래된 명칭이며, 2015년 4월 개칭된 명칭인 매화면은 매화나무 단지가 있는 지역 특성에서 유래되었다. 매화면은 본래 울진군 지역으로서, 대잠(大岑)·북수(北水)·이울(以蔚)·길곡(吉谷)·갈면(葛綿)·지품(池品)·영양(永陽)·기전(基田)·두기...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길곡리에서 발원하여 갈면리, 기양리, 매화리를 북류하여 근남면 노음리에서 왕피천에 합류하는 하천. 매화면 매화리 앞을 지나는 하천이므로 매화천이라 한다. 매화리는 마을의 형상이 남수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흡사 매화꽃잎과 같고 또 부근의 산봉우리가 매화꽃과 모양과 같은 연유와 강원도관찰사 기자헌(奇自獻)이 이 곳을 지나다가 마을 주위의 들에...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한 각 면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 면사무소는 시(市)나 군(郡)에 속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의 하나이자 보통 몇 개의 리(里)로 구성된 면(面)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일선 공공 행정 기관이다. 2015년 현재 경상북도 울진군에는 북면, 죽변면, 금강송면, 근남면, 매화면, 온정면, 기성면, 후포면 등 8개의 면이 속해 있으며 각 면마다...
-
가을걷이가 끝나고 농한기가 되면 매화마을의 부녀자들 손길은 바빠진다. 먹을거리가 많지 않은 과거 마을에서는 겨울 동안 먹기 위한 군것질거리를 가을에 만들어 두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손으로 빚은 쌀엿이며, 이를 마을 사람들은 매화쌀엿이라 부른다. 쌀엿은 과거 사대부 자녀들이 과거급제를 기원하며 만들어 먹었으며 벌꿀이 귀하던 시절 새 신부가 시집갈 때 꿀단지에 넣어 보내지던 예물이...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북수동·대잠동·이을동을 병합하고 새로 번창하라는 뜻으로 신흥리라 하였다. 1520년 경에 순흥안씨(順興安氏)인 언문(彦文)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그 뒤 여러 성씨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매화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북수동(北水洞)·대잠동(大岑洞)·이울동(...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군은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는 군이다.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봉화군과 영양군, 남쪽은 영덕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와 접한다. 경상북도 23개 시·군 중에서 8번째로 면적이 크다. 지금의 울진군은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북쪽의 울진 지역과 남쪽의 평해 지역으로 구분되어 서로 다른 행정 체계로 되어 있...
-
매화리의 친환경농업에서 사람과 더불어 가장 큰 일꾼은 오리들이다. 오리농장에서 집단적으로 키운 태어난 지 10여일 되는 오리들은 논 적응훈련을 마친 뒤 각자가 맡은 논으로 투여된다. 오리들은 논을 휘젓고 다니면서 잡초를 밟아서 없애기도 하고 먹어서 없애기도 한다. 또한 오리들이 지난 자리는 흙탕물이 일어나면서 잡초에 햇빛이 가는 것을 막아 잡초의 번식을 막아주기도 한다....
-
울진교육사에 의하면 울진군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학교는 1907년 매화2리에 생긴 만흥학교를 시작으로 1908년 4월 사동리에 대흥학교가 세워지고, 1908년 8월 읍내리 향교에 동명학교, 1909년 3월 평해리 향교에 평명학교, 1922년 4월 제동학교가 설립되었다고 전한다. 그 중 만흥학교는 1907년 가장 먼저 설립된 울진의 근대교육기관으로 1910년 일본에 의해 폐지될 때까지...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탑. 경상북도 울진군의 3·1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1일에 시작되었다. 1910년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이래 울분에 차 국권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던 울진군민 중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4월에 매화면 만흥학교(晩興學校) 학생과 청년들이...
-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매화리는 윤촌과 최촌이라 불리기도 한다. 과거 파평윤씨(坡平尹氏)가 기성면 삼산리에 입향하여 살다가 1558년경에 이 마을에 와서 개척(開拓)하여 대대(代代)로 살았으므로 윤촌(尹村)이라 불리며, 마을의 또 일부분은 강릉최씨(江陵崔氏)가 지금의 북면 고목리 무령현(武靈峴)에 입향하여 살다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이곳에 와서 최씨(崔氏)가 집단을 이루고 살았으므로...
-
조선 후기에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이가동의 효행을 기념하는 비. 이가동의 자는 후립(厚立)이며, 경주인으로 이제현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대인(李大仁)으로 통덕랑에 증직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들었을 때는 빙어와 설순을 어렵게 구하여 약으로 사용하였고, 한겨울에 산딸기를 구하여 부모에게 올려 효험을 보았다. 또한, 부모가 돌아가...
-
오리가 떠난 자리에 벼는 우렁이를 동반자로 무럭무럭 자라나는데 이 과정에서 해충이 생겨도 친환경농업에서는 어떤 농약도 뿌릴 수는 없다. 8월 초순이 되면 벼에서 이삭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이를 이삭패기라 한다. 굵은 씨방을 맺고 벼꽃을 피워내기 시작하면서 이삭패기가 마무리가 되면 마을에서는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지 점검하는 심사가 이루어진다. 친환경농법 심사는 비료는 어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운석(云石).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학산(鶴山) 전윤(田潤)이고, 아버지는 전인상(田絪相)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돌아가자 6년 동안 시묘를 살았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자, 울진군에서도 만세 운동에 동참하여 매화리와 부구리 장날에 만세...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울진초등학교 앞에 있는 애국지사 주진수를 기리는 기념비. 주진수(朱鎭洙)는 진수(鎭壽)라고도 하는데, 호는 백운(白雲)으로 신안(新安) 사람이다. 부친은 주병휘(朱秉徽)로, 1878년 7월 11일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매정동에서 태어났다. 주진수는 1907년 10월 매화만흥학교를 설립하여 신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 노력하였으며,...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촌락. 울진군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로 구성된 부계혈연집단의 성원들이 특정 마을에서 다수를 이루고, 이들이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마을을 가리킨다. 이런 특성을 보이는 마을에 동족부락·씨족부락·동성촌락·동족촌 등의 용어를 적용하고 있다. 여러 성씨들로 구성된 마을이나 특정의 우세...
-
윤촌과 최촌으로 구분되는 매화리에는 가옥에서도 구별된 특징을 갖는다. 윤촌의 가옥들은 오래되었지만 손을 본 흔적이 적거나 또는 새롭게 개조를 하지만, 최촌의 가옥들은 비교적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손을 본 흔적을 가지고 있다.윤촌과 인접한 최촌의 뒤쪽 산록 남쪽에 위치한 최진탁 가옥은 넓은 장방형 대지에 동남향한 본채와 그 앞으로 큰 마당을 둔 것이 특징이다. 정면 4칸...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출토된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토기는 신석기시대에 들어와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토기는 흙을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그릇을 말하며, 과거 수렵 및 채집 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 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게 되었다.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진다. 아직까지...
-
5월이 되면 각 농가에서는 친환경농법에 사용될 미강을 배급받는다. 오리가 잡초를 제거한다면 미강은 햇빛차단제로서 이용된다. 미강은 모내기를 한 뒤 한 달 뒤 한 번, 그리고 한 달 뒤 한 번 논 300평에 미강 250㎏ 정도를 뿌려준다. 미강은 물에 녹으면서 친환경퇴비가 되고 논바닥에 하얀 막을 형성하면서 햇빛을 차단하는 차단제 역할을 한다. 모가 자라는 동안에는 물관리가 각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