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돌석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소재하는 관동팔경 중의 망양정과 월송정. 울진은 경상북도 동쪽 최북단 해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6만여 명이 사는 고장이다. 원래는 북쪽에는 울진군, 남쪽에는 평해군으로 다른 행정체제를 갖고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두 군을 합쳐 지금의 울진군이 되었다. 또 그동안 강원도에 속해오던 것을 1963년부터 경상북도로 옮겨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및 독립운동가. 김용욱(金容旭)은 신라 헌강왕(憲康王)의 39세손이다. 1869년 3월 6일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에서 김이수(金履洙)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용욱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0월 7일 500명의 의병으로 기병하여 영덕군 서면[현 창수면] 불영사에 임시 사령부를 설치하고 일본군에 대항하였...
-
1905년 러일전쟁 중 울진의 고포 앞바다에서 일어난 러시아 군함과 일본 군함의 전투. 조선 지배를 선점하려던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 후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으로 일시 저지되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명성황후 민씨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키고 단발령을 내리지만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함으로써 친러 정권이 수립된다. 그 결과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일본의 조선에 대한 이권...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했던 평민 의병장.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순경(舜卿). 신석주(申錫柱)의 아들이다. 신돌석(申乭石)의 본명은 신태호(申泰浩)이고, 신태홍(申泰洪)·신태을(申泰乙)·신대호(申大浩) 등으로도 불렸다. 경상도 영해(寧海)[현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신돌석은 19세의 젊은 나이로 1...
-
과거부터 울진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선인들은 ‘등허리 긁어서 안 닿는 곳’이라는 말로 찾아가기 힘든 울진을 표현하였다. 국도 7호선은 지리적으로 오지에 위치한 울진을 연결하는 주요한 연결 도로이다. 경상북도의 동북단이라는 위치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동해안의 남쪽과 북쪽을 잇는 주요한 연결망인 국도 7호선의 중심점에 울진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국도 7호선은 동해안의 도시...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군은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는 군이다.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봉화군과 영양군, 남쪽은 영덕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와 접한다. 경상북도 23개 시·군 중에서 8번째로 면적이 크다. 지금의 울진군은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북쪽의 울진 지역과 남쪽의 평해 지역으로 구분되어 서로 다른 행정 체계로 되어 있...
-
1876년에서 1910년 사이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의병운동. 한말 일제의 침략으로 식민지화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를 반대하는 민족운동이 광범하게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사회경제적 이해 관계, 운동의 방법에 따라 의병항쟁(義兵抗爭)과 계몽운동(啓蒙運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병항쟁은 반일(反日)적인 입장에 있던 모든 세력이 모여 계급 연합적인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러...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우계(羽溪). 이명(異名)은 경학(敬學), 자는 동하(東廈). 백인당(百忍堂) 이장달(李章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이태진(李泰鎭)이다. 1906년(대한제국 고종 10)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의병장 신돌석(申乭石)이 영덕과 울진에서 의병을 일으켰을 때 군령장(軍令將)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순종 1) 2...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인필(仁必). 문성공(文成公) 장말익(張末翼)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장사식(張師軾)이다. 1905년 12월 7일 신돌석(申乭石) 막하 중군장(中軍將) 김용욱(金容旭)을 비롯한 의병 8명, 청송 출신의 이하현(李夏玄)과 함께 의거하였다. 1906년 6월 이강연(李康秊) 의병장의 지령을 받은 김형규(金炯奎)가 울진으로...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백헌(白軒). 청주한씨 시조인 한난(韓蘭)의 31대손이고, 울진 입향조 한위(韓緯)의 15대손이다. 할아버지는 한재린(韓在麟)이며, 아버지는 한필석(韓弼錫)이다. 덕릉참봉(德陵參奉)을 지냈다. 1905년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전국에서 의병 운동이 일어나자 1906년 3월 6일 영해에서 의병을 일으킨 신돌석(申乭石...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애국지사 한영육의 비. 한영육(韓永育)의 호는 백헌(白軒)이며, 자는 낙삼(樂三)으로 본관은 청주이다. 시조 삼한삼중대광문하태위(三韓三重大匡門下太尉) 한난(韓蘭)의 31세손으로 청주한씨 울진 입향조인 한위(韓緯)의 15세손이다. 조부는 한재린(韓在麟)이며, 부친은 한필석(韓弼錫)이다. 1992년 8월 15일 정부에서 고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