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6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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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校村里觀漁臺刻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 산4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용만 |
현 소재지 | 교촌리 관어대 각석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 산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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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암각 |
관련 인물 | 최치원 |
크기(가로) | 70㎝ |
크기(세로) | 20㎝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각석.
[건립 경위]
교촌리 관어대 각석은 자연 암벽에 새겨진 각자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비안현(比安縣)조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늦어도 1530년 이전에 새겨진 것으로 확인되나, 각자를 한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위치]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 산42에 있다. 교촌리의 선돌 마을 남쪽 위천 강변에서 500m가량 내려간 지점에 있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형태]
절벽에 가로 새김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관어대(觀漁臺)’라고 새겨져 있다. 글자의 전체 크기는 가로 70㎝, 세로 20㎝이고, 깊이는 1.2㎝이다.
[현황]
교촌리 관어대 각석이 새겨진 암석의 석질 상태가 좋지 않아 마모가 심하다. 글자를 새긴 위쪽 몇 곳에 성혈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된다. 관어대 각석에서 서쪽으로 5m 떨어진 곳에는 개구리 모양의 바위라는 의미의 ‘와암(蛙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글자의 크기는 가로 63㎝, 세로 34㎝이다.
[의의와 평가]
관어대는 거친 바위에 새긴 일반적인 형태의 각석이지만,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비안현조에 그 존재가 기록되어 있어 각석을 새긴 시점이 늦어도 1530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관어대(觀魚臺)’로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관어대(觀漁臺)’로 새겨져 있는 점이 다르다.
1758년에 간행된 『비안현여지승람(比安縣輿地勝覽)』에서는 이 각석에 대하여 “안정현 5리에 위치하며, 신라 최치원이 대를 세웠는데 물과 돌이 아름답고 아래에 소가 있다[在安貞縣五里新羅崔致遠建臺水石佳麗下有淵]”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교촌리 관어대 각석이 일찍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고, 최치원과 관련되었다는 전승이 있을 정도로 신성시되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