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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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가음면은 북쪽의 비봉산을 비롯하여 동남부에 북두산·선암산 등이 솟아 산지가 많다. 면의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는 쌍계천 유역에 평야가 발달했고 촌락도 주로 이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장리(長里)·이리(梨里)·양지리(陽地里)·가산리(佳山里)·귀천리(龜川里)·순호리(蓴湖里)·현리리(縣里里) 등 7개 법정리와 18개 행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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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 조선 시대 관료는 과거(科擧)와 음서(蔭敍), 천거(薦擧) 등의 방식을 통해 선발되었다. 과거는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대과(大科)[문과(文科)·무과(武科)], 소과(小科)[사마시(司馬試), 생원(生員)·진사(進士)], 잡과(雜科) 등으로 나뉘며, 능력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이다. 음서는 조상의 음덕(蔭德)에 따라 그 자손을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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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字)는 수옹(壽翁), 호(號)는 송계(松溪)이다. 고려 말기의 충신으로 좌정승 벼슬을 지낸 송은(松隱) 구홍(具鴻)의 손자이고, 능성 구씨 좌정승파의 파조(派祖)이다. 구익령(具益齡)[?~?]은 능성 구씨 9세손으로 조선 태종 때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의성 군사(義城郡事)가 되었는데, 이때 의성으로 내려와 세거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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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창(咸昌). 할아버지는 목은 이색(李穡)의 외숙부인 함녕군(咸寧君) 김요(金饒)이다. 안렴사 신우(申祐)와 사돈간이다. 함창 김씨(咸昌 金氏) 의성군 단밀면 입향조이다. 김안도(金安道)는 생몰년 미상이며, 조선 태종 때 봉훈대부(奉訓大夫) 종성 부사(鍾城 府使), 재령 군수(載寧 郡守), 진주 목사(晉州 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고려 멸망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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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사방을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은 건물.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부 문헌에서 누(樓), 정(亭)을 비롯하여 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포함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에 누정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누정은 사방의 벽을 틔우고 언덕이나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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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사방을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은 건물.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부 문헌에서 누(樓), 정(亭)을 비롯하여 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포함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에 누정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누정은 사방의 벽을 틔우고 언덕이나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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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숙종 20) 울릉도에서 안용복(安龍福), 박어둔(朴於屯) 두 사람이 일본 오야 가문의 어부들에 의해 일본에 납치되었다. 일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울릉도를 ‘본국의 죽도(竹島)’라고 하면서 조선인의 어로 활동을 금지해 달라는 요구를 해 왔다. 이것이 ‘울릉도 쟁계(鬱陵島爭界)’[일본에서는 ‘죽도 일건(竹島一件’]라고 한다. 조선 정부에서 ‘울릉도 쟁계’ 해결을 위해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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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의성의 화산 서원에 배향된 인물.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노부(魯夫), 호는 지곡(智谷), 시호는 문간(文簡). 증조할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회령군(會寧君) 마치원(馬致遠)이고, 아버지는 태종 대 좌명공신에 녹훈되어 병조 판서 집현전 대제학을 지낸 장흥 부원군(長興 府院君) 마천목(馬天牧)이고, 어머니는 목사 이빈(李彬)의 딸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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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의 화산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군련(君戀), 호는 오천(梧川), 시호(諡號)는 충정(忠靖). 할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회령군(會寧君) 마치원(馬致遠)이고,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회령군(會寧君) 마영(馬榮)이며, 어머니는 대장군 신용재(申用材)의 딸 정경 부인(貞敬 夫人) 평산 신씨(平山 申氏)이고, 부인은 목사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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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병산(屛山)[비안(比安)]. 호는 율정(栗亭), 시호는 문충(文忠). 고려 문화시중을 역임하고 벽상공신으로 병산군(屛山君)에 봉해졌던 박우(朴瑀)는 병산 박씨의 1세가 되는 중시조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판도사 판서(版圖司 判書)를 지낸 박계오(朴繼五)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직장(直長) 박종주(朴宗柱)이고, 할아버지는 예부 낭중(禮部 郎中) 박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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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병산(屛山)[비안(比安)]. 호는 율정(栗亭), 시호는 문충(文忠). 고려 문화시중을 역임하고 벽상공신으로 병산군(屛山君)에 봉해졌던 박우(朴瑀)는 병산 박씨의 1세가 되는 중시조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판도사 판서(版圖司 判書)를 지낸 박계오(朴繼五)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직장(直長) 박종주(朴宗柱)이고, 할아버지는 예부 낭중(禮部 郎中) 박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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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금은(琴隱). 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한 박윤후(朴允厚), 할아버지는 판윤부사(判尹部事) 박사직(朴斯直), 증조부는 전객령(典客令) 박원두(朴元㺶), 부인은 첨사(詹事) 정승계(鄭承桂)의 딸 정부인(貞夫人) 동래 정씨(東萊 鄭氏)로 알려져 있다. 박성양(朴成陽)[?~?]은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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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현령을 역임한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상산(尙山)]. 초명은 안신(安信). 자는 백충(伯忠). 시호는 정숙(貞肅). 아버지는 박문로(朴文老), 할아버지는 박전(朴瑔), 증조할아버지는 박원정(朴元挺)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손자 박사춘(朴士春)이 1462년 현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에 은거하면서, 이곳의 상주 박씨 입향조가 되었다고 한다. 박안신(朴安臣)[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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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丹北面)에 있었던 삼한 시대의 저수지. 대제지는 우리나라 수리 관개 농업의 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저수지로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위치하였다. 우리나라의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에 그 기원이 밝혀지고 있으나, 커다란 저수지를 축조하는 데 노동력을 대규모로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발전은 초기 국가들이 등장하는 때와 맞물리는 기원 전후한 시기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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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원래 본관은 전주(全州)이나 고려가 멸망한 후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으로 낙향하였는데, 그 후손들이 이연계(李連桂)를 시조로 하여 대흥 이씨(大興 李氏)로 분관하였기 때문에 본관은 대흥(大興)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6촌형이며, 태종에 의해 대흥군(大興君)으로 봉함을 받았다. 대흥 이씨(大興 李氏) 의성 입향조이다. 이연계[?~1407]는 고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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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일어난 태풍·홍수·산사태·해일·폭설·가뭄·황사 등의 이상 기상 현상과 지진·화산 등의 자연 현상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재해. 한반도의 경상북도의 내륙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의성군은 낙동강의 지류 하천인 위천과 쌍계천이 가로지르고 있어 여름철 집중 호우나 태풍으로 인한 풍수해를 입기도 한다. 또한 하천의 유로가 짧고 겨울철 강수량이 부족하여 봄철에 가뭄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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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전통 시대와 개항기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忠)을 실천한 신하. 전통 시대에 신하에게 가장 강조하고 요구하였던 덕목은 충(忠)이다. 이 덕목은 자신보다 높은 존재인 임금을 위해 행동하고, 개인보다 국가를 위해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 따라서 충신은 왕조의 교체기나 국난의 시기에 많이 나타난다. 왕조의 운세가 다하여 기울어져도 새로운 왕조에 협력하지 않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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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화(下禾)란 마을 앞 들이 넓고 기름져 특히 벼농사가 잘되는 곳인데, 큰 소(沼) 아래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아랫수일[水逸][아랫실]이라 하였는데 수일 아래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 수침(水浸)은 옛날에 마을 위쪽에 깊은 소가 있는데, 제방이 튼튼하지 못하여 홍수가 나면 물이 넘쳐 잠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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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설 교육 기관. 화산 서원(禾山書院)이 위치한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는 장흥 마씨(長興 馬氏)의 집성촌이다. 입향조는 마온종(馬溫宗)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한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1855년(철종 6) 마온종의 후손들이 11세조 마천목(馬天牧)[1358~1431]을 기리기 위해 오천 영당(梧川影堂)을 설립하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