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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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후삼국 시대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은 주도권을 둘러싸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이때 의성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왕건과 견훤 모두가 중시하는 곳이었다. 양자가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의성의 호족 홍술(洪術)이 고려에 귀부하자 왕건은 이를 우대하기 위해 이 지역에 의성부(義城府)를 설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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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원구(元龜), 초명은 서정(瑞廷). 아버지는 충렬왕, 충선왕 대의 관료로 찬성사를 지낸 김훤(金晅)이다. 김개물(金開物)[1272~1327]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충선왕이 세자 때 총애를 받아 즉위한 후 감찰사(監察史), 전부시 승(典符寺 丞) 등을 제수받았다. 그런데 당시 왕의 측근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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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용회(用晦)이다. 김훤(金晅)[1234~1305]은 1260년(원종 1) 과거에 합격했다. 1269년(원종 10) 임연(林衍)이 원종을 폐하고 원종의 아우인 안경공(安慶公) 창(昌)을 세웠을 때 뒷날 충렬왕이 되는 세자는 원에 있었다. 원 황제가 세자를 동안공(東安公)으로 책봉하고 군대를 고려로 보내 임연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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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 고도동 일부와 덕동을 병합하였는데 두 마을이름 "도"자와 "덕"자를 취하여 "도덕동"이라 하였다. 자연부락으로 고도전(高道田) 혹은 고두밭은 북쪽으로는 높은 고도산이 있으며 마을의 앞에는 화두산(花頭山)이 있는 산협이라 밭농사를 주업으로 하여 왔던 이유로 고도밭[高道田] 혹은 고두전(高頭田)으로 불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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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첫 이름은 신원유(申元濡)이다. 부인은 성주 이씨(星州 李氏)이다. 아주 신씨(鵝洲 申氏) 의성 입향조이다. 신윤유(申允濡)는 생몰년 미상이며,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냈는데, 고려가 멸망하자 현재의 의성군 단밀면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그의 고려에 대한 충성과 절의에 대해 당대 사람들은 당개(唐介)에 버금간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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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휴를 시조로 하고 신윤유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세거 성씨. 아주 신씨(鵝洲 申氏)는 평산 신씨(平山 申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평산 신씨의 시조는 고려의 개국 공신인 신숭겸(申崇謙)으로 그 12세손인 신익휴(申益休)는 고려 말에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金紫光祿大夫 門下侍郞)을 지내고 아주군(鵝洲君)에 봉해졌다. 한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조선 씨족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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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의성 지역은 일찍부터 문화가 발달하여 청동기 시대에 삼한의 소국이 이곳에 성립되었다. 삼한의 소국 가운데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단밀면]·여담국(如湛國)[금성면 탑리리], 조문국[금성면] 등이 의성 지역에 존재하였다고 비정되고 있다. 185년(신라 벌휴이사금 2)에 조문국을 정벌한 신라는 조문군(召文郡)을 설치했다. 신라가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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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지역의 옛 지명. 열혜현(熱兮縣)은 니혜현(泥兮縣)이라고도 하는데, 757년(경덕왕 16) 12월에 일계현으로 개칭되면서 고창군(古昌郡)[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에 예속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고구현(高丘縣)과 함께 의성부(義城府)로 통합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1 고창군조에는 “일계현(日谿縣)은 본래 열혜현(熱兮縣)[혹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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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자연 마을 작승골의 이름을 따서 작승동이라 하였다. 작승골의 본래 이름은 작상골인데 700여 년 전 고려 충렬왕 때 개척되었으며 마을 앞산의 지형이 배혈이어서 문무 관인과 정승이 많이 배출된다고 작상(作相)이라 했는데, 그 후 여러 성씨들이 시기를 하여 동명을 작승(作承)으로 바꾸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