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1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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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喪輿- |
영어공식명칭 | Funeral S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원철 |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서 장례 때 부르는 의식요.
[개설]
시흥시에는 각 동네마다 장례 때 「상여소리」를 부르던 소리꾼이 있었지만 근래는 몇 명 남지 않았다. 최근까지 활동한 소리꾼으로는 월곶동과 거모동의 방연근, 방산동과 포동의 김인삼, 금이동과 목감동의 신현돌인데, 지금은 연로하여 활동을 중지했거나 타계하였다.
월곶동의 경우 방연근이 「상여소리」를 불렀는데, 운구할 때 부르는 소리는 여느 지역의 가사와 대동소이하다. 방연근이 부르던 「상여소리」는 2008년과 2009년 채록되었고, 월곶동에 사는 국악인 박일엽이 배워 방연근과 함께 무대에서 발표하였으며 2011년 국립민속박물관의 시흥 상여소리 발표회 때 박일엽이 소리를 메겼다.
「긴상여소리」의 후렴구는 4음보를 메긴 후에 “어~어어어~ 어화넘차 넘~어”로 받는다. 빠른 걸음으로 걸을 때에는 소리꾼이 2음보 사설을 메기면 후렴을 “어화넘차 넘~어”로 받는다. 방산동 김인삼이 부른 「상여소리」는 2011년 제18회 경기도 민속예술제에 출전하여 민속상을 수상하였다. 방산동 마을 주민과 김인삼, 박일엽이 함께 출전하여 소리를 메기고 받았다. 「긴상여소리」와 「노호소리[자진상여소리]」, 「회다지소리」, 「사디오[자진회다지]소리」, 「유회소리」로 되어 있다. 후렴구를 “에화넘차 로오화”라고 하는데, 통상의 두음 법칙을 무시한 '로오화'라는 발음이 눈에 띈다. 「긴상여소리」의 후렴은 “로~로로 로오오오 에화넘차 로오화”로 하며, 「자진상여소리」의 후렴은 “에화넘차 로오화”라고 받는다. 험준한 곳을 지날 때의 후렴은 “로오호 로오화”라고 받는다.
[구성 및 형식]
「상여소리」는 「긴상여소리」와 「자진상여소리」, 그리고 가파른 곳을 오르는 소리로 나뉜다. 방산동에서는 가파른 곳을 오르는 소리를 「노호소리」라고 한다. 「긴상여소리」는 상가를 떠나 마을을 돌아나갈 때까지 유족과 함께 마을을 돌아볼 때 하는 소리다. 유족의 마음을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위로하는 가사를 천천히 얹어 부른다. 4음보로 메기고 후렴도 4음보로 받는다. 「자진상여소리」는 통상 마을에서 노제를 마치고 난 뒤에 장지까지 갈 때 빠른 걸음으로 메기고 받는 소리다. 이때는 2음보로 메기고 2음보로 받는다. 「노호소리」는 상여꾼들이 가파른 곳이나 험준한 곳을 지날 때 힘을 덜어 주면서 빠르게 메기고 받는다. 역시 걸음걸이도 빨라진다.
[내용]
영결종천/ 간다간다 나는 간다 북망산천 나는 간다/ 천금같은 자손두고 금쪽같은 가족두고/ 구사당에 하직하고 신사당에 허배하고/ 한 번 가면 영 못올 길 다시 한 번 돌아보네/ 앞마당에 살구나무 뒷마당에 대추나무/ 대청마루 건넌방에 손주녀석 옹알이 소리/ 외양간에 쇠죽냄새 새벽닭이 홰치는 소리/ 일가친척 친구님네 이내 말좀 들어보소/ 오늘 내게 당해보니 대문 밖이 저승이라/ 황천길은 몇 만린가 집 떠나서 어딜가나/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돌아올 날 일러주어/ 다시 못 올 황천길로 동무 없이 떠나가니/ 청춘홍안 백발노인 불쌍허다 이내일신/ 어릴적엔 철없어서 부모은공 몰라보고/ 자식 낳고 살다보니 부모은공 또 잊었네/ 어이없고 애달프다 애닲고도 설운지고/ 인간 백 년 다살아도 걱정근심 다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 허송세월 절통하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북망산천 나는 간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너는 다시 피건마는/ 명년삼월 봄이온들 이내 일신 다시 올까/ 슬프구나 인생하직 눈물가려 못가겠네/ 황천길은 한 번 가면 다시 올 줄 왜모르나/ 북망이라 먼먼길에 노자돈을 얹어주오/ 일직사자 손을끌고 월직사자 등을 밀어/ 풍우같이 재촉하야 천방지방 몰아갈제/ 높은데는 낮아지고 낮은데는 높아진다/ 친구벗님 많다해도 어느 누가 동행하며/ 일가친척 많다해도 어느 일가 대신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대로 갈뿐이네/ 낯도 설고 물도 설은 북망산에 홀로남아/ 서산너머 낙조지고 뗏장이불 차가워라/ 동지섣달 호의호식 모두 놓고 떠날 인생/ 형제간에 우애있게 콩한쪽도 나누시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 간에 인사하게/ 잘들 사오 잘들 사오 부귀공명 수명장수/ 복사꽃에 꽃피는 내 고향 땅 일가친척/ 가는 나는 가거니와 고향산천 정자나무/ 재난 없고 우환 없이 모두모두 잘사시오
2. 방산동 「긴상여소리」
로~오와 오호오호 구사당에 하직하고/ 오~이 신사당에 허배하고~/ 어~ 이헤 영결종천 여러분들 안녕히 계셔요/ 에화넘차 로오화 이제가면 언제 오나/ 천금같은 자손을 두고 금쪽같은 가족을 두고/ 산도 설고 물도 선데누굴 바라고 나여길 가나/ 산도 설고 물도 선데 나 여기가네 나 여기가네/ 에화넘차 로오화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설워마라 동삼석달 죽었다가/ 너는 다시 피련마는 초로같은 우리 인생/ 한 번 아차 실수하면 만수장림에 운무로다/ 에화넘차 로오화 길이 험하니 잘 모십시다/ 춘초는 연년록이오 왕손은 귀불귀라/ 인간 세상에 나온 동포 뉘 덕으로 나왔느냐/ 석가세존 공덕으로 아버님전 뼈를 빌고/ 어머님전 살을 빌어 칠성님전 명을 빌고/ 삼신제왕 마련을 하여 에화넘차 로오화/ 우리 부모 나 기를 적에 어떤 공력을 들였드냐/ 겨울이면 추울세라 덮은데다 더덮어주고/ 마른자리는 아기를 뉘고 쓰디쓴 것은 어머님 잡수시고/ 한두 살에 철을몰라 부모은공 갚을소냐/ 무정세월 여류하여 원수백발 돌아오니/ 없든 망녕 절로난다 구석구석 웃는모양/ 애달고 설운지고 닫은 문을 박차면서/ 여보아라 청춘들아 내가 본래 청춘이며/ 내가 본래 백발이냐 나도 엊그저께 청춘이드니/ 오날백발 설었구나 인간백년 산다해도/ 달로 더불어 논하면 일천하고 이백달이고/ 날로 더불어 논하면 삼만육천 오백일인데/ 병든 날과 잠든 날을 제하면은 단 사십을 못사는 인생/ 어제 오늘 성한 몸이 저녁나절 병이들어/ 실낱같이 가는몸에 태산같은 병이 들어/ 부르나니 어머니요 찾느니 냉수로다
3. 방산동 「노호소리」
길이 험하니 잘모시자(로오호 로오화)/ 차근차근히 잘 모시자 가이 없는 이내 몸은/ 거처없이 되었구나 낮이나 등에 솔질시/ 대한팔경을 유람헐까 노세노세 젊어놀아/ 늙고 병들면 못노나니 일품 재상 이완용아/ 이군불사할지라도 삼천강 이 강토를/ 사백만원에 도매하여 마자마자 마쟀더니/ 님의 생각이 절로난다 밥을 먹다 돌아보니/ 님의 생각에 목이메니 마자마자 마쟀더니/ 님의 생각이 절로 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근래 장례 풍속이 매장(埋葬)에서 화장(火葬)으로 급속도로 바뀌었다. 그래서 상여로 운구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몇 동네를 거치면 소리꾼이 남아 있고, 동네 청년을 모으면 운구와 상여소리를 받을 수도 있다.
[현황]
시흥시는 지금도 가끔 상여가 나가지만 동네에서 공동으로 상여를 보관하던 풍속은 거의 사라졌다. 또 장지를 자택 인근의 선산으로 모시는 경우에 예전처럼 만장(輓章)[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 또는 그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과 운삽(雲翣)[발인할 때에 영구(靈柩) 앞뒤에 세우고 가는 널판. 구름무늬를 그린 부채 모양의 널판]을 든 긴 행렬은 아니지만 꽃상여를 이용하여 운구한다. 소리꾼이 「상여소리」를 메기지만 받는 것이 어설프게 느껴지는데, 상여를 메 본 경험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흥시는 아직 현재 진행형인 「상여소리」가 있으며, 그 소리를 이어받아 시흥 향토민요의 이름으로 시흥문화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도시에서는 그 지역의 「상여소리」를 들어볼 데도 없고 채록할 곳도 거의 없는 지경이지만, 시흥시는 무대에 올리고 공원이나 야외 공연장에서 시연을 하기도 한다. 또 국악인 박일엽이 시민에게 「상여소리」를 메기고 받는 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전통문화의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