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
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 가운데 경기도 시흥시의 옛 모습을 포함한 지도. 우리나라 지방 지도 가운데 1872년 당시 인천부(仁川府)와 안산군(安山郡)에 속했던 지역을 포함하는 지도로 그림과 같은 형태로 제작된 회화식 채색 지도이다. 지도의 오른쪽이 동쪽이고 왼쪽이 서쪽이다. 주요 산과 물줄기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각 읍마다 1장으로 된 경기도 각 군현의 지도와 영종도...
-
19세기에 제작된 『광여도』에서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는 지도. 『광여도』는 19세기 초반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제작된 회화식 지도이다. 전국의 군현을 개별적으로 그린 군현별 지도와 각 도를 그린 도별 지도로 구성되며, 주요 군사 요충지를 표기하였다. 국가에서 편리하고 합리적인 기호식 지도집을 활용하게 되면서 과거의 회화식 지도의 의미가 감소하게 되었고, 당시의...
-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 포함된 현재 경기도 시흥시 일대의 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에 편찬·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전국 지도첩으로 70여 장의 목판에 새겨 22첩으로 만들어졌다. 당시의 지리지를 집대성한 지도로서, 우리나라를 북에서 남까지 동서로 끊어 22폭으로 나누어 담...
-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여 각 지역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 1863년경 김정호가 편찬한 지리지. 『대동지지(大東地志)』는 모두 32권 15책으로 구성된 사찬(私撰) 지리지이다. 정부에서 편찬한 것이 관찬(官撰) 지리지인 데 반해 사찬 지리지는 개인이 편찬한 것이다. 1863년경 김정호(金正浩)가 『동여도지(東輿圖志)』를 근간으로 『여도비지(輿圖備誌)』의 내용을 추...
-
16세기에 제작된 목판본 『동국지도』에서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는 지도. 『동국지도(東國地圖)』는 16세기 중반에 목판본으로 제작되었으며, 『동람도(東覽圖)』와 유사한 방식으로 그려져 있으나 각 군현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당시에 간행본(刊行本)으로 제작된 도별 지도 중 가장 상세한 지도이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으로 보아 국가가 주도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
경기도 시흥시 일대가 포함된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 『여지도(輿地圖)』는 지도에 포함된 지명으로 미루어 1757년(영조 33) 이후부터 1766년(영조 52) 사이에 제작된 지도로 추정된다. 지도의 전반적인 양식은 18세기에 그려진 정상기(鄭尙驥)의 『동국지도(東國地圖)』와 다르게 전통적인 특성이 강한 회화식 필사본이다. 지도의 표현 기...
-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에서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는 지도. 『해동지도』는 1750년대 영조 대에 홍문관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의 회화식 지도이다. 각 군현 지도에 주기(註記)를 첨부하였으며, 국가 차원에서 제작하여 정책적 목적에 사용되었다. 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제작되었으며, 조선 전도를 비롯하여 도별도, 군현 지도, 세계 지도 등을 포함하고...
-
19세기 후반 우리나라를 그린 『해좌승람』에서 경기도 시흥시가 포함된 지도. 『해좌승람(海左勝覽)』은 조선 팔도를 그린 지도로 각 군현의 명칭과 산 이름 중심으로 간략하게 제작되었다. 『해좌승람』 「경기도」는 조선 팔도를 그린 채색 필사본 지도첩의 경기도 부분으로 크기는 가로 28.8㎝, 세로 30.6㎝이다. 2018년 현재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남한과 북한의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발발하였으나, 경기도 시흥 지역은 북한군의 주 공격 방향에서 비켜나 있어서 1950년 7월 초 북한군에게 점령되었다. 1950년 9월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시흥...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산지 간의 통로 역할을 하는 고도가 낮은 부분. 고개란 산의 능선에서 높이가 낮은 부분으로 일찍부터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주요한 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현재는 도로 여건이 개선되어 고개가 교통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크지 않은 편이지만,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산 너머를 연결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시흥시는 한반도의 서부에 자리하고 있으...
-
경기도 시흥시 목감동과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에 걸쳐 있는 고개. 곤두레미고개는 시흥시 목감동과 안양시 박달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안양시에서 안산시로 연결되는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두 지방을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로였다. 예전에는 고개가 있는 곳의 산림이 우거져 험준한 데다 후미진 곳이어서 산적이나 강도 등이 많아 이곳을 지나갈 때는 황급히 서둘러 곤...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장현동·능곡동에 걸쳐 있는 산. 군자봉에는 ‘세 자 세 치가 깎인’ 전설이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유씨 집안의 여종 하나가 주인으로부터 벌을 받아 숨을 거두었다. 죽은 여종의 아들이 금강산으로 들어가 스님에게 풍수를 배우다가 스님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풍수에 조예가 깊은 스님이 마을에 왔다는 소식에 유씨 집안에서 그를 불러 가문의...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선인들의 무덤들. 시흥시는 산수가 수려하고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많아 선인들의 묘역이 많이 있다. 수리산에서 이어지는 마산[246.1m], 군자봉[198.4m], 범배산[140.2m] 일대는 100~200m의 구릉이 많아 묘를 쓰기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시흥시의 묘는 대략 300기 정도 된다. 이 가운데 일제강점...
-
경기도 시흥시 광석동, 하중동, 하상동에 걸쳐 있는 산. 범배산은 시흥시청에서 동북쪽으로 약 1㎞ 지점에 있는 높이 140m의 산이며, 광석동에서는 광석산이라고도 부른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김홍도가 화첩을 들고 범배산을 거닐며 그림 구상을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광석동 둔터골 사람들은 범배산을 개나리봉으로 부르며 달맞이를 비롯한 마을 행사를 하기도 했다....
-
조선시대 시흥 지역의 문벌이 높은 집안 또는 그 자손. 지금의 시흥시는 조선시대 인천부와 안산군에 속해 있었는데, 전통적으로 왕도의 직할지로서 중앙 정계에서 활동하던 유력 정치 세력의 재향(在鄕) 기반이기도 하였다. 경기 지역의 사족(士族)들은 향촌에 세거의 터전을 마련하여 거주하다가 관직으로 현달(顯達)하면 생활 기반을 한양으로 옮겨갔다. 그러면서도 향촌에 존재한 그들의 선영(先...
-
경기도 시흥시에서 주변 지역보다 높은 자연 지형. 경기도 시흥시는 경기도 중서부의 해안가에 자리한다. 남서쪽은 서해에, 나머지 부분은 경기도의 내륙과 접한다. 지형은 전체적으로 광주산맥의 남서단에 해당하며 150~200m 내외의 낮은 구릉성 산지가 분포한다. 그 사이를 흐르는 소하천들에 의해 형성된 곡저 평야(谷底平野)와 하천의 하구 및 경기만의 소규모 내만(...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대나무, 싸리나무 등을 이용해 갯벌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밀물과 썰물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방식 또는 그 장치. 살[어살(魚-), 어전(漁箭), 어량(魚梁)]은 서해안 지역에서 행해지던 전통적인 어로법 중의 하나이다. 개울이나 수심이 낮은 강가, 바다의 갯벌 등에 싸리나무·대나무 등으로 반원형 또는 날개형 울타리를 쳐서 물고기를 잡는...
-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인천과 안산에 속해 있었다. 조선 초기 인천에는 이(李)·공(貢)·하(河)·채(蔡)·전(全)·문(門)의 토착 성씨가 있었고, 내성(來姓)으로 박(朴)이 있었으며, 망성(亡姓)으로 최(崔)가 있었다. 안산에는 김(金)·안(安)·방(方)의 토착 성씨와 망성으로 임(林)이 있었다. 이들 토성 중 안산의 안산 김씨(安山金氏)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씨가 조선...
-
경기도 시흥시에서 특정한 성씨가 모여서 대대로 살고 있는 곳.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김(金), 이(李), 박(朴) 등 혈연에 기초한 성을 사용하였지만 일반화되지는 않았고 차츰 중국의 성씨 제도를 수용하면서 고려 초기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의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賜性)을 비롯하여 모성(冒姓), 변성(變姓), 자칭성(自稱性) 등의 방법으로...
-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과 신천동,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에 걸쳐 있는 산. 소래산은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과 신천동에 걸쳐 있으며,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과 경계하고 있다. 시흥시 산세의 주맥은 소래산에서 발원한다. 조선시대 인천도호부의 진산(鎭山)이기도 했던 소래산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소래산은 부 동쪽 24리[9.4㎞] 되는...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사용되는 말이나 문자의 총칭. 시흥 지역의 언어는 우리나라 중부 지역인 경기 방언과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점차 서울 표준말과 동일하게 변하고 있다. 시흥 지역은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가 영향을 미치면서 세 나라의 언어가 동화되거나 마찰을 빚기도 하면서 경기도 방언으로 자라났다고 볼 수 있다. 시흥시와 안산시는...
-
경기도 시흥 지역을 이루는 땅의 모양이나 형세. 지형(地形)의 특징은 기복(起伏)에 의해 결정된다. 기복이란 지표의 들쭉날쭉한 정도를 가리킨다. 일찍부터 인간은 땅의 기복이 복잡할수록 새로운 외부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들만의 고유한 생활 양식을 발전시켰던 것처럼, 지형은 인간이 접하는 자연 환경의 일부로서 인간 생활과 매우 관계가 깊다. 광주산맥의 남서단에 자리하는 시흥시...
-
1834년(순조 34) 김정호가 제작한 경기도 시흥시 일대가 포함된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축척이 동일한 고지도 가운데 가장 정밀하게 제작되었으며 이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기초가 된 채색 필사본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전국의 지도를 제작하던 과정에서 만들어 낸 중간 단계의 결과물로서 현재 전해지는 것은 후대의 필사본이다. 『청구도』...
-
경기도 시흥시에서 음양오행설을 토대로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風水)란 땅의 해석과 활용에 관한 동아시아의 고유한 사상이다. 풍수지리는 토지에 대하여 형이상학적이며 신비하고 오묘한 실체를 인정하는 일종의 민간 신앙에 뿌리를 두며, 이론 체계는 명당을 정하는 택지론(宅地論)에 집중되어 있다. 혈(穴) 또는 명당(明堂)이라는 것은 자연 상태의 조건에서 인간이...
-
1945년 광복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역사. 1945년 광복 이래 경기도 시흥 지역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영광을 함께하였다. 분단과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의 성취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고통과 기쁨을 직접 겪었다. 1973년 부천군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된 이후 시흥군의 거듭되는 분리를 통해 인접 도시들이 만들어졌으며, 1989년 시로 승격한 시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