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남한과 북한의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발발하였으나, 경기도 시흥 지역은 북한군의 주 공격 방향에서 비켜나 있어서 1950년 7월 초 북한군에게 점령되었다. 1950년 9월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시흥...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을 비롯한 주변 일대의 천일염을 생산하였던 염전. 전통적인 소금 생산 방법은 가마솥에 바닷물을 끓여 얻는 것이었는데 이 제조법은 높은 생산비 때문에 효과적이지 못하였다. 값싼 중국산 소금이 수입되다가 천일염이 생산된 것은 1907년 인천에 주안염전이 조성된 이후이다. 일제는 이를 더욱 확대하고자 염전 조성에 유리한 경기만을 주목하여, 1925년 시흥...
경기도 시흥 지역의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에서 소금을 채취·저장·운반하는 등의 염전 노동을 했던 사람. 시흥 지역의 염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자본으로 개발되었다. 군자염전은 1924년 오이도와 정왕동 일대 해안가를 중심으로, 소래염전은 1936년 월곶동·장곡동·방산동·포동 일대에 형성되었다. 시흥의 염전 개발은 시흥의 마을 생성과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1950년 북한에 점령된 상태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투표를 통해 인민위원을 선출한 행위. 북한은 점령 지역의 일선 정치·행정을 수행할 인민위원회를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선거를 통해 구성하였다. 경기도 시흥군에서는 1950년 7월 26일~7월 27일 면·리 단위의 선거를 실시하여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시흥군인민위원회는 토지 개혁에 착수했으나, 1950년 8월부...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포리[지금의 시흥시 포동] 어업의 상징이었던 포리호가 1960년 12월 납북될 뻔했다가 수장되었던 사건. 일제강점기 시절과 달리 남북 정부 수립 이후 삼팔선(三八線)이 생기면서 남한 주민은 이북의 주요 어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자 보다 발전된 장비를 갖추고 선박이 소형에서 중형화되는 추세가 이어졌다. 포리호(浦里號)...
1907년부터 국권 회복을 위해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전개한 항일 무장 투쟁.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계기로 시흥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서부 지역의 의병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의병들은 일제의 탄압 기구인 순사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진회원(一進會員)을 위시한 친일파를 처단하였으며, 부자들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1909년까지 소규모 유격전 형태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