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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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경춘(韓慶春)·한여현(韓汝賢) 부자가 편찬한 충청남도 서산의 사찬 읍지. 『호산록(湖山錄)』은 1619년 서산의 사족[문벌이 높은 집안]인 한경춘·한여현 부자(父子)가 편찬한 사찬 읍지로, 1600년대 이전 서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조선 초기 사찬 읍지가 흔치 않은 가운데 특히 충청남도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사찬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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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개심사에서 매년 초파일에 열리는 의례. 개심사 초파일은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음력 4월 8일]에 개심사 영산회괘불탱을 걸어 놓고 지내는 불교 의례이다. 초파일은 불교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2월 8일 부처님 출가(出家)일, 2월 15일 열반(涅槃)일, 4월 8일 탄신(誕辰)일, 12월 8일 성도(成道)일 등이다. 불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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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고 최사(崔泗)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경주 최씨는 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시조로, 최사를 입향조로 하는 서산시 지곡면 일대의 세거 성씨이다. 서산의 경주 최씨는 고려~조선 전기까지의 기록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경주 최씨의 서산 입향조는 최사인데 바로 최몽량(崔夢亮)[1579~1627]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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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고구현은 현재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에 해당된다.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이다. 이후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고구현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운데 하나였다. 고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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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 개국에서 1392년 멸망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 고려 시대의 서산 지역은 부성군(富城郡)을 중심으로 지곡현(地谷縣), 정해현(貞海縣), 여미현(餘美縣), 고구현(高丘縣)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안의 드나듬이 심한 서산 지역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많은 군현이 설치된 것이다. 이 중 여미현은 백제 때 여촌현, 신라 때 여읍현이었다. 서산시 운산면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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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고려 시대에 고구현(高丘縣)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백제 때 우견현(牛見縣)이었고, 통일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목우현(牧牛縣)으로 고쳐서 이산군현(伊山郡縣)이 되었다가, 고려 전기에 고구로 고쳤다. 고려 태조 때 몽웅역(夢熊驛)의 한씨 성을 가진 이가 큰 공이 있어 대광의 작호를 내렸는데,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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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고 김연(金璉)을 중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인 김흥광을 시조로 한다. 김흥광은 고려가 삼한을 통일하며 신라가 멸망하자 경주를 떠나 무진주(武珍州) 서일동(西一洞)[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은거하였다. 그 후 고려 태조가 김흥광을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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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시화(市花)로, 쌍떡잎식물 국화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서산시는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되고 있는 국화가 지닌 인정 어린 순수함이 서산시의 이미지를 상징하여 시화로 정하였다. 한편 서산시 고북면에서는 매년 10월 말에서 11월에 국화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10만㎡ 규모의 전시장에서는 노란 국화 꽃밭을 배경으로 가을 햇살을 잔뜩 머금은 사과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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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에 있었던 운하. 고려에서 조선까지 수도가 개성과 한양에 설정됨에 따라 서해 연안 해로의 운송로 기능은 극대화되었다. 당시 세곡과 각종 공납품의 가장 중요한 공급지는 경상, 전라, 충청의 삼남 지방로서 물류의 대부분이 태안반도 연안을 경유하여 개성 혹은 한양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 조운의 과정에서 태안반도 안흥진 앞의 안흥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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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군(郡).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郡)·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시 일대는 기군(基郡)으로 편제되었다고 여겨진다. 기군에는 성대혜현(省大兮縣), 지육현(知六縣)의 2개 성(城)이 예속되었다. 삼국은 고대 국가로 발돋움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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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멥쌀가루에 술을 넣어 발효시켜 만든 떡. 서산 지역에서는 기주떡을 기주병·기지떡·증편(蒸片)·술떡 등으로 다양하게 부른다. 멥쌀가루를 막걸리 등의 술로 반죽하여 발효시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술로 반죽을 하므로 쉽게 상하지 않고, 술맛이 나면서 새콤달콤하여 여름철에 별미로 만들어 먹는다. 기주떡은 고려 시대 때 원(元)에서 만들어 먹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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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불교의 중심지로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면, 예산군 덕산면에 걸쳐 있는 산.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갯가에서 바라보이는 가장 높은 산을 ‘개산’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개산은 그 지역의 해상 교통, 즉 항해와 관련하여 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대에는 해안선을 따라 높은 산과 같은 지표를 확인해 가며 항로를 잡는 연근해 항해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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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누각(樓閣)과 정자(亭子). 누정(樓亭)이란 누각과 정자를 포괄하는 용어이다. 누각은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 올린 곳에 세우므로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하였다. 정자는 누각보다는 작은 건물로,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트인 곳에 주로 입지하였으며, 건물은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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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주(鞠周)를 시조로 하고 임진왜란 후 입향한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담양 국씨는 조선 전기 서산의 지리지나 읍지의 성씨조나 인물조에 나타나지 않는 성씨로 임진왜란 이후 서산에 자리 잡은 것으로 추측된다. 1646년 『인조실록(仁祖實錄)』 5월 23일 기사에는 서산 사람 조시응(趙時應)이 정원에 나아가 유학(幼學) 국성유(鞠聖兪) 등의 역모를 상변(上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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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수석동에 있는 작은 망루. 서산 정씨 시조 정신보(鄭臣保)[?~1261]와 정인경(鄭仁卿)[1237~1305]과 관련된 사적이다. 양렬공 정인경은 14세기 고려의 정치인으로서 서산의 중흥조에 해당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정신보, 정인경 부자는 남송에서 망명하여 처음 간월도에 살다가 서산 시내 대사동으로 주거를 옮겼다. 서산에서 생활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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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망일산 170m 정도의 위치에 있는 망일사(望日寺)는 정충신(鄭忠信) 장군이 신병 치료 차 들렸던 절로 알려져 있다. 옛날 망일사에는 철마가 있었는데 한 청년과 더불어 외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청년이 휘두른 철도리깨와 철마는 현존하지 않지만 외적에 시달렸던 백성들의 바람이 잘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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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 망일사에서 칠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 망일사 칠성단(七星壇)은 인간의 수명과 탄생, 재물과 재능을 관장하는 칠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별도로 만들어 놓은 자리였다. 망일사(望日寺)는 망일산의 서향 사면 중상단부에 위치한다. 고려 8대 현종 때에 지선(知禪)이 수도를 위해 창건하였고, 1628년(인조 6)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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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서 철마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대산읍기」에서 이 전설을 인용하였다고 밝혀 놓았다. 망일사는 대산리 망일산 산중에 위치한 사찰이다. 이 절은 고려 현종 때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절 대웅전의 왼쪽에는 암대(岩臺)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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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에 있었던 역(驛). 몽웅역은 고려 태조 때 설치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현(縣)의 서쪽 9리에 있었다 하고, 딸린 지도의 서쪽에 역촌(驛村)이라는 지명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 역말이라는 마을에 해당된다. 몽웅역은 남동쪽으로는 운주[홍성]로 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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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문화재 보호법에 의한 지정의 유무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 문화재는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문화재 보호 조례에 의한 시·도 지정 문화재, 법령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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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고려 시대에 번창한 사찰.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상왕산 기슭의 보원사(普願寺)는 서산 마애삼존불, 백제의 미소에 가깝게 위치해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이다. 고려 시대의 절터라고 말하는 이유는 현재 이 폐사지를 지키고 있는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서산 보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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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부성산성(富城山城) 성내에서 백제 토기편과 기와편이 다량으로 수습되어 오래전부터 삼국 시대 백제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왔고, 성내에서는 삼국 시대 유물만이 아니라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도 수습되어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된 중요한 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성산성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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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성현[지금의 서산]에서 일어난 민란. 서산[부성현]에서 민란이 일어난 시점은 1182년(명종 12)이다. 이때는 무인 정권 시대로 당시 무인의 집권에 자극받은 각 지역에서 농민 혹은 천민들이 난을 일으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충청 지역에서는 1176년(명종 6) 공주에서 망이·망소이의 난을 시작으로 충청도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서산에서 민란이 일어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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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불교문화는 백제 시대부터 근현대 불교의 중흥에 이르기 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고구려는 북조 전진의 아도로부터 372년(소수림왕 원년)에 받아들였고, 백제는 남조 동진의 마라난타로부터 384년(침류왕 원년)에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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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지역 향촌 사회의 지배 계층. 사족(士族)은 대체로 고려의 향리 가문의 후예로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에 첨설직(添設職)·동정직(同正職)·군공(軍功)·과거(科擧) 등을 통하여 사족으로 신분이 상승하였거나, 고려 후기 이래 서울로 가서 벼슬을 하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었다. 사족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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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사찰은 부처님의 불상이나 불화 등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스님들이 수행을 하거나 불교 신자들이 찾아가서 수행과 부처님의 법음을 듣는 곳이다. 서산 지역에 있는 사찰은 백제 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불교의 큰 자취를 남기고 있다. 불교의 수용과 더불어 우리나라에도 전국 각지에 사찰이 세워졌다.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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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산동(山洞), 내동(內洞), 부성동(富城洞)이 합해지면서 산동에서 ‘산’자와 부성동에서 ‘성’자를 따서 산성리(山城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부셩동, 산동, 내동 등의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 이살리였으나,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부성동, 산동, 내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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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에 있는 법인국사 탄문(坦文)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탄문[900~975]은 자는 대오(大悟), 속성은 고씨(高氏), 광주(廣州) 고봉(高熢) 사람이다. 15세 때 장의산사(莊義山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고려 태조의 왕사로 있으면서 신명순성왕태후가 임신하였을 때 축수하여 광종이 태어났다. 968년(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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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 석조. 보원사(普願寺)는 통일 신라 시대 화엄 10찰로 불린 사찰일 뿐만 아니라 고려 광종 때에는 국사를 파견한 큰 사찰이었다.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普願寺址石槽)는 보원사가 가장 융성하였던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사찰에서 물을 담기 위한 용도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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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의 오층 석탑.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1968년과 2003년에 각각 한 번씩 모두 두 번의 해체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1968년 해체 복원 시 사리 내갑(內匣), 외갑, 사리병, 납석 소탑(蠟石小塔) 등이 출토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상륜부에는 긴 찰주만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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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고분군.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음암 임대 아파트 신축 공사 부지에 대한 문화 유적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219-2번지 일대이다. 조사 지역의 자연 지형을 살펴보면, 해발 35~50m 정도의 구릉으로 주변에 대교천이 집수되는 성암저수지가 있어 구릉과 계곡부, 평야 지대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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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익(宋文翊)을 시조와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송씨는 고려 충렬왕 때 봉익대부판도판서(奉翊大夫版圖判書)를 지냈으며 서산군(瑞山君)에 봉해진 송문익을 시조로 하며, 봉해진 지역을 관향으로 삼고 후손이 거주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대 편찬된 각종 읍지류의 서산군 성씨조에 송씨가 기록되어 있는데, 1619년에 편찬된 서산의 사찬읍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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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鄭臣保)를 시조로 하고 정인경(鄭仁卿)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정씨는 서산의 토착 성씨이며 서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인 정신보[?~1261]는 원래 중국 송나라 사람이었지만 나라가 망하자 바다를 건너 고려로 들어와 망명하였다. 그 후 아들 대호군(大護軍) 정인경의 공으로 인하여 1182년(고려 명종 12)에 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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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市). 서산시는 태안반도에 속하는 지리적인 이점과 최근의 대산항 건설 및 서해안고속국도 개통이 맞물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어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도시이다. 가야산 인근의 내포 지방 문화가 발전한 지역이며, 백제 조상미술의 선진 지역이다. 서산시를 상징하는 새는 가창오리와 장다리물떼새이다. 가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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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이른바 ‘4대강 사업’으로 운하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연안 해로를 중요한 교통로로서 사용해왔던 만큼 운하의 필요성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찍이 태안반도에 운하를 개착한 것은 매우 특이한 사건이었다고 할 만하다. 운하 건설은 1134년(인종 2)에 처음 시작되어 1669년(현종 10)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에 걸쳐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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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는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 석남동 은행나무는 수나무로, 높이 30m, 가슴 높이 둘레 8.6m이다. 가지 길이는 동쪽으로 11.3m, 남동쪽으로 11.7m, 남서쪽으로 10.6m, 북동쪽으로 11m이다. 석남동 은행나무는 남원마을에 있는데, 남원은 행정 구역상 서산시 석남동에 속하는 마을이며, 남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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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각 지역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광산물, 수공업품, 해산물, 농산물 등 각종 특수 물품을 생산하는 특수한 하급 행정 구역이었다. 또한 소는 향(鄕)이나 부곡(部曲)과 마찬가지로 일반 양민이 아닌 노비·천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특수한 촌락 집단이었다. 향과 부곡은 신라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소는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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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과 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에 해당된다. 이후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여미현(餘美縣)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운데 하나였다. 여미현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다. 『삼국사기(三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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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와 문화. 한반도의 중서남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자리한 서산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물이 해양을 통해 충청 내륙 지방으로 전달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으며, 법인국사 탄문, 정인경(鄭仁卿)[1237~1305], 유숙(柳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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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에 위치한 고려 시대 13조창(漕倉) 중의 하나. 고려 시대에는 육상 교통로가 충분히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고자 선박을 통해 지방의 세곡을 중앙으로 운송하는 조운 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조운 제도의 시행을 위하여 고려는 전국에 13조창을 설치하였다. 13조창은 흥원창[원주], 덕흥창[충주], 하양창[평택], 영풍창[서산], 안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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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왜구가 침입한 사건. 14~15세기에 왜구는 한반도 전 지역을 위협하였다. 그 가운데 일부는 충청남도와 서산 해안 지역에도 침입하여 민생을 더욱 도탄에 빠뜨리는 결과를 빚었다. 서산에 대한 왜구의 침입은 1352년(공민왕 1)부터 기록에 등장한다. 14세기 공민왕 때는 고려가 원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시기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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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 지역에는 기군과 그 영현으로 지육현(知六縣), 성대혜현(省大兮縣)의 1군 2현이 설치되었다. 반면, 현재 서산시와 홍성군이 인접한 해미면·고북면 일대를 중심으로 마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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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孔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 및 맹자(孟子), 주자(朱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유교에도 중심 경전이 있지만 일정한 계통을 갖춘 사원이나 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교조화된 신앙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즉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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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천문학자. 유방택[류방택, 柳方澤][1320~1402]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천문 지리에 밝았다. 그가 만든 역서(曆書)는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중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부름을 받아 천문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제작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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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천문학자. 본관은 서령[서산(瑞山)]. 호는 금헌(琴軒). 서령부원군 유성간(柳成澗)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유굉(柳宏)이고, 아버지는 유성신(柳成臣)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손애(孫埃)의 딸이다. 자식은 유백유(柳伯濡)·유백종(柳伯淙)·유백순(柳伯淳) 세 아들과 딸 둘을 두었다. 서산의 서령 유씨는 대부분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의 셋째 아들인 유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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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유숙(柳淑)[1324~1368]은 고려 후기 공민왕을 호종하여 정국을 이끈 당대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1340년(충혜왕 1) 과거에 급제한 뒤 연경에서 공민왕을 호종하였고, 즉위 초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홍건적이 침입하자 또 다시 왕을 호종하여 남행하였고 이에 공신으로도 책록되었다. 관직이 첨의평리(僉議評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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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음암면 탑곡리와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에 걸쳐 있는 산. 은봉산(隱鳳山)은 봉황이 숨어들은 산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또는 봉황이 숨어 있는 형상과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은봉산 일대의 지질은 원생대의 태안층이 서산층군에 속하는 편암류 및 편마암류 위에 부정합으로 놓여 구성되었다. 정미면 봉화산에서 시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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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 이전 시기의 교육.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 시대의 서산 지역 교육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이 현존하지 않아 상세한 모습을 알 수 없다. 통일 신라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당시 부성군(富城郡)의 태수로 최치원(崔致遠)[857~?]이 부임했던 기록을 통하여 최치원이 당시 서산 지역의 교육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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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가 망한 후 고려에 망명해 서산에 살았던 중국인. 서산 정씨의 시조. 부인은 고창군부인 오씨로, 고창[현 덕산]의 세력가였던 오세재(吳世才)의 손녀딸이다. 아들은 정인경(鄭仁卿)·정준경(鄭俊卿)이다. 아들 대에 서산을 본관으로 하사받아 서산 정씨의 시조가 되었다. 정신보(鄭臣保)는 송나라에서 상서형부원외랑(尙書刑部員外郞)을 지냈으며, 몽골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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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산. 자는 춘수(春叟). 아버지는 송나라가 망하자 고려로 귀화한 정신보(鄭臣保)이다. 이후 정신보는 서산에 정착하여 살았다. 어머니는 고창군부인 오씨이고, 부인은 양주군부인 진씨이다. 동생은 정준경(鄭俊卿)이다. 정인경(鄭仁卿)[1237~1305]은 1254년(고종 41) 과거에 급제하고, 1256년 원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고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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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공신인 정인경(鄭仁卿)이 받은 공신 녹권. 정인경[1237~1305]은 고려 원종 대에 태자인 심(諶)[훗날 충렬왕]을 호종하여 두 차례 원나라에 입조하였다. 1261년(원종 2) 쿠빌라이 즉위 축하 사절로서 입조하는 태자를 호종하였고, 섭교위(攝校尉)의 직에 있던 1269년(원종 10)에는 호위무관 겸 통역관으로 태자를 시종하였다. 특히 귀국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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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정해현은 현재의 서산시 해미면 지역에 해당된다. 고려 태조 때에 고구현(高丘縣)의 땅을 분할하여 정해현이 만들어졌다.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에 해당된다.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정해현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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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양. 고려 충선왕(忠宣王) 때의 공신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9세손이다. 조광국(趙匡國)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전관으로 신립(申砬)을 도와 출전하였다. 당시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였던 신립을 도와 충주 탄금대(彈琴臺)에서 배수진을 치고 북상해 오는 왜군과 접전하였으나 4월 28일 고니시 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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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평양. 자는 희보(熙甫), 호는 낙분당(樂分堂). 고려 충선왕(忠宣王) 때의 공신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으로 아들 형제를 두었다. 조목(趙穆)은 연일현감[연일은 현 경상북도 포항]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아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것을 맹세하였다. 조목 부자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의병을 모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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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었던 서산군과 해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산군과 해미현은 독자적인 역사 문화적 배경과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서산군은 본래 백제의 기군(基郡)이었으나 통일 신라 때 부성군(富城郡)으로 고쳐졌다. 이어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지다가 지서산군사(知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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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현물로 거둬들인 조세를 중앙으로 운반하던 제도. 조운은 조전(漕轉)·조만(漕輓)·해조(海漕)라고도 한다. 주로 내륙의 수로(水路)나 해로(海路)를 이용하였다. 내륙의 수로를 이용하는 경우는 수운(水運) 또는 참운(站運), 해로를 이용하는 경우는 해운(海運)이라고 하였다. 서산은 개경으로 이어지는 서해 연안 항로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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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평양. 자는 성천(聖天), 호는 연소(蓮巢). 고려 충선왕 때의 공신인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으로, 여러 대에 걸쳐 태안 풍천촌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조의석(趙毅錫)이고 어머니는 파평 윤씨이다. 조존화(趙存華)[1804~1889]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을 잘 지어 고을에서 이름을 떨쳤다. 평생 독서와 시부(詩賦) 공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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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평양, 자는 중오(中五), 호는 난사(蘭史). 고려 충선왕 때의 공신인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길주목사를 지낸 조존항(趙存恒)이고 어머니는 영산 신씨이다. 조희천(趙羲天)[1845~1924]은 어려서부터 명민하였고, 유려한 문장과 단정한 필법을 구사하였다. 아버지 조존항과 스승 조존화(趙存華)에게서 학문을 배워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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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의 다양한 종교가 발달되어 있는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면서 한국 종교계가 탄압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들 종교는 독립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지역 문화 발전 창달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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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대산읍·성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지곡현은 현재 서산시 지곡면, 대산읍, 성연면 일대에 해당된다. 고려 시대에 현재 서산시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부성현(富城縣)에는 속현이 2개 있었다. 지곡현은 소태현(蘇泰縣)과 함께 부성현에 소속되어 있었다. 지곡현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다. 『삼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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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시 전체를 관할하는 기군(基郡) 예하에 지육현(知六縣)이 편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 편입 이전에 서산은 마한의 치리국국(致利鞠國)이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육현(知六縣) 설치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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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韓蘭)을 시조로 하고 한정덕(韓正德)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청주 한씨는 서산의 유력한 세거 성씨로 서산의 사찬읍지인 『호산록(湖山錄)』을 찬술한 한여현(韓汝賢)의 가문이다. 『호산록』을 비롯해 서산의 지리지와 읍지 인물조에 등장한다. 서산의 청주 한씨는 원래 본관이 면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산에서는 1500년대 이후 크게 번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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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한의 소국. 기원전 3~2세기 무렵 한반도 중·남부 경기·충청·전라 지역에서는 세형동검 문화의 발전 및 점토대토기의 파급과 함께 다수의 소국으로 구성된 마한 연맹체가 새롭게 성장·발전하였다. 기원후 3세기 후반 무렵에 편찬된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 한조(韓條)에는 마한에 54개 소국이 있었다는 사실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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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서산 보원사(普願寺)에서 입적한 승려. 자는 대오(大悟), 호는 성사미(聖沙彌). 속세의 성은 고씨(高氏)이다. 탄문(坦文)[900~975]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5세 때 승려의 뜻을 품었으며 원효(元曉)가 살던 향성산(鄕聖山)의 옛 절터에 암자를 지어 수년간 수행하였다. 북한산 장의사(莊義寺) 신엄(信嚴)에게서 『화엄경(華嚴經)』 등을 배운 후 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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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임시로 설치한 태안군 치소. 태안군은 고려 후기인 1373년(공민왕 22)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화를 모면하기 위해 서산으로 치소(治所)를 이전하게 된다. 현재 서산시의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9, 충청도 태안군(泰安郡) 궁실(宮室)조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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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趙椿)을 시조로 하고 조아(趙雅)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평양 조씨의 시조는 조춘으로 고려 시대 금자광록대부 추밀원부사(金紫光祿大夫樞密院副使)를 지냈다. 당시 남송(南宋)에 들어가 금(金)나라를 정벌한 공로로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고 한다. 조춘의 선조는 중국에서 귀화하였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역사적 사실은 확인하기 어렵다.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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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지역의 세거 성씨인 청주 한씨의 입향조. 본관은 청주. 아버지 한홍서(韓洪瑞)는 고려 충선왕 때 벼슬이 판도판서(判圖判書) 추밀원직학사에 이르렀으며, 하정사(賀正使)로 원나라에 들어갔다가 원나라의 관저에서 세상을 떠났다. 서산 지역에서 청주 한씨의 가계를 잇는 것은 한정덕(韓正德)의 아우인 한정수(韓正粹)의 후손들로, 한서정-한윤련(韓允璉)-한익-한영희(韓暎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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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최초로 서산에 입향한 청주 한씨 입향조. 본관은 청주. 할아버지는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한준(韓浚)이며, 아버지는 군기감사(君器監事)를 지낸 한경선(韓敬善), 어머니는 판관 구연(具珚)의 딸 능성 구씨이다. 부인은 해주 최씨로 고성군수 최광준(崔光俊)의 딸이다. 아들로는 판서를 지내고 서산에 입향한 한정덕(韓正德)과 예조참판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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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의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친 현. 해미현(海美縣)은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합한 서산 지역의 옛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정해현은 고려 태조 때 몽웅현(夢熊縣)의 아전 한씨(韓氏)가 큰 공이 있어 대광(大匡)의 작호를 내리고, 홍주(洪州)의 속현이었던 고구현(高丘縣)[현재의 서산시 해미면(海美面)·고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