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조 숙종이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1595~1671]의 문집을 읽은 느낌을 쓴 7언율시. 숙종이 백헌 이경석의 문집을 읽은 느낌을 적은 시부(詩賦)를 이경석의 후손에게 하사한 것인데, 후손들이 참죽나무 필갑에 넣어 뚜껑에 ‘肅宗聖製寶墨(숙종성제보묵)’이라 전각(篆刻)하여 보관하였다....
-
1709년(숙종 35) 숙종이 옛날 병자호란 때의 일을 상기하면서 지은 두 편의 7언절구. 이 시는 「망견남한산성야조(望見南漢山城夜操)」라는 제목으로 『남한지(南漢誌)』에 실려 있다. 1709년 9월 28일 남한산성에 들렀던 숙종이 옛날 병자호란 때의 일을 상기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충절을 기려 지은 두 편의 7언절구이다....
-
1670년(현종 11) 1월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에게 제1과록을 내린 녹패. 녹패(祿牌)는 이조 혹은 병조에서 종친과 관원들에게 녹과(祿科)의 등급[제1과~제18과]을 정해주는 증서로 녹패에 기재된 녹과에 의해 호조에서는 녹봉 인수증인 녹표(祿標)를 발급하였다. 관원은 녹표를 가지고 광흥창(廣興倉)에 가서 녹봉을 인수하였다....
-
1650년(효종 1) 1월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에게 제1과록을 내린 녹패. 녹패(祿牌)는 이조 혹은 병조에서 종친과 관원들에게 녹과(祿科)의 등급[제1과~제18과]을 정해주는 증서로 녹패에 기재된 녹과에 의해 호조에서는 녹봉 인수증인 녹표(祿標)를 발급하였다....
-
1663년(현종 4) 1월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에게 제1과록을 내린 녹패. 녹패(祿牌)는 이조 혹은 병조에서 종친과 관원들에게 녹과(祿科)의 등급[제1과~제18과]을 정해주는 증서로 녹패에 기재된 녹과에 의해 호조에서는 녹봉 인수증인 녹표(祿標)를 발급하였다. 관원은 녹표를 가지고 광흥창(廣興倉)에 가서 녹봉을 인수하였다....
-
1669년(현종 10) 1월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에게 제1과록을 내린 녹패. 녹패(祿牌)는 이조 혹은 병조에서 종친과 관원들에게 녹과(祿科)의 등급[제1과~제18과]을 정해주는 증서로 녹패에 기재된 녹과에 의해 호조에서는 녹봉 인수증인 녹표(祿標)를 발급하였다. 관원은 녹표를 가지고 광흥창(廣興倉)에 가서 녹봉을 인수하였다....
-
1668년(현종 9) 1월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에게 제1과록을 내린 녹패. 녹패(祿牌)는 이조 혹은 병조에서 종친과 관원들에게 녹과(祿科)의 등급을 정해주는 증서로 녹패에 기재된 녹과에 의해 호조에서는 녹봉 인수증인 녹표(祿標)를 발급하였다. 관원은 녹표를 가지고 광흥창(廣興倉)에 가서 녹봉을 인수하였다....
-
1648년(인조 26) 1월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에게 제1과록을 내린 녹패. 녹패(祿牌)는 이조 혹은 병조에서 종친과 관원들에게 녹과(祿科)의 등급을 정해주는 증서로 녹패에 기재된 녹과에 의해 호조에서는 녹봉 인수증인 녹표(祿標)를 발급하였다. 관원은 녹표를 가지고 광흥창(廣興倉)에 가서 녹봉을 인수하였다....
-
1623년(인조 1) 5월 2일 진사(進士)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문과 병과(丙科)에 제5인으로 급제하였음을 증명하는 교지. 교지란 조선시대 국왕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관직, 품계, 자격, 시호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서, 관료에게 관작·관직을 내리는 고신(告身), 문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홍패(紅牌), 생원시 및 진사시 합격자에게 내리는 백패(白牌), 향리의 면...
-
1626년(인조 4) 9월 14일 중직대부행(中直大夫行) 이조좌랑(吏曹佐郞)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문과 중시(重試) 갑과에 제1인으로 장원급제하였음을 증명하는 교지. 교지란 조선시대 국왕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관직, 품계, 자격, 시호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서, 관료에게 관작·관직을 내리는 고신(告身), 문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홍패(紅牌), 생원시 및 진사시...
-
1666년(현종 7) 1월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에게 제1과록을 내린 녹패. 녹패(祿牌)는 이조 혹은 병조에서 종친과 관원들에게 녹과(祿科)의 등급을 정해주는 증서로 녹패에 기재된 녹과에 의해 호조에서는 녹봉 인수증인 녹표(祿標)를 발급하였다. 관원은 녹표를 가지고 광흥창(廣興倉)에 가서 녹봉을 인수하였다....
-
1671년(현종 12) 1월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에게 제1과록을 내린 녹패. 녹패(祿牌)는 이조 혹은 병조에서 종친과 관원들에게 녹과(祿科)의 등급을 정해주는 증서로 녹패에 기재된 녹과에 의해 호조에서는 녹봉 인수증인 녹표(祿標)를 발급하였다. 관원은 녹표를 가지고 광흥창(廣興倉)에 가서 녹봉을 인수하였다....
-
1649년(인조 27)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을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겸 영경연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세자사(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兼 領經筵弘文館 藝文館 春秋館 觀象監事 世子師)로 임명하는 교지. 교지란 조선시대 국왕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관직, 품계, 자격, 시호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서, 관료에게 관작·관직을 내리는 고신(告身), 문무과 급제자에게...
-
1646년(인조 24) 3월 27일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을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중추부사(大匡輔國崇祿大夫 領中樞府事)로 임명한 교지. 교지란 조선시대 국왕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관직, 품계, 자격, 시호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서, 관료에게 관작·관직을 내리는 고신(告身), 문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홍패(紅牌), 생원시 및 진사시 합격자에게 내리는 백패(白牌),...
-
1645년(인조 23)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을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우의정겸 영경연사감 춘추관사 세자부(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右議政兼 領經筵事監 春秋館事 世子傅)에 임명한 교지. 교지란 조선시대 국왕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관직, 품계, 자격, 시호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서, 관료에게 관작·관직을 내리는 고신(告身), 문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홍패(紅牌),...
-
1645년(인조 23)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을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우의정겸 영경연사감 춘추관사(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右議政兼 領經筵事監 春秋館事 世子傅)에 임명한 교지. 교지란 조선시대 국왕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관직, 품계, 자격, 시호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서, 관료에게 관작·관직을 내리는 고신(告身), 문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홍패(紅牌), 생원시...
-
1647년(인조 25)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에게 제1과록을 내린 녹패. 녹패(祿牌)는 이조 혹은 병조에서 종친과 관원들에게 녹과(祿科)의 등급을 정해주는 증서로 녹패에 기재된 녹과에 의해 호조에서는 녹봉 인수증인 녹표(祿標)를 발급하였다. 관원은 녹표를 가지고 광흥창(廣興倉)에 가서 녹봉을 인수하였다....
-
1647년(인조 25)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을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겸 영경연사감 춘추관사 세자부(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左議政兼 領經筵事監 春秋館事 世子傅)에 임명하는 교지. 교지란 조선시대 국왕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관직, 품계, 자격, 시호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서, 관료에게 관작·관직을 내리는 고신(告身), 문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홍패(紅牌)...
-
1648년(인조 26)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을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겸 영경연사감 춘추관사(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左議政兼 領經筵事監 春秋館事)에 임명하는 교지. 교지란 조선시대 국왕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관직, 품계, 자격, 시호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서, 관료에게 관작·관직을 내리는 고신(告身), 문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홍패(紅牌), 생원시 및...
-
1646년(인조 24)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을 대광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左議政兼 領經筵事監 春秋館事)로 임명하는 교지. 교지란 조선시대 국왕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관직, 품계, 자격, 시호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서, 관료에게 관작·관직을 내리는 고신(告身), 문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홍패(紅牌), 생원시 및 진사시 합격자에게 내리는...
-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기인이었던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이 행한 기행과 선행을 적은 야담. 『토정비결』의 저자로 유명한 이지함은 고려 말 학자 이색의 후손으로 현령을 지낸 이치(李穉)의 아들이다. 어려서 맏형인 이지번(李之蕃)에게서 배웠고 뒤에는 서경덕에게서 배웠다. 수리, 의학, 복서(卜筮), 천문, 지리, 음양, 술서(術書) 등에 정통하였다. 그는 백성들...
-
조선 중기의 문신 권득기(權得己)가 기록한 잡록. 『연송잡록(然松雜錄)』이라고도 한다....
-
조선 정조가 지은 칠언절구 시. 『남한지(南漢志)』권8 제영(題詠) 중 「정조대왕어제(正祖大王御製)」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1779년(정조 3)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군사훈련을 보기 위해 들렀을 때 쓴 작품으로, 옛날 병자호란의 치욕을 생각하면서 그때 일을 절대 잊지 말도록 남한산성을 지키는 장수에게 경계하는 내용이다....
-
조선 중기 문신인 이경류(李慶流)[1564~1592]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이야기. 이희준(李羲準)이 지은 『계서야담(溪西野談)』에 전한다. 이경류는 본관이 한산, 자는 장원(長源), 호는 반금(伴琴)이다. 아버지는 이증(李增)[1525~1600]이고, 어머니는 사직 이몽원(李夢黿)의 딸이다. 1591년(선조 2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전적을 거쳐 예조좌랑이 되었다. 임진...
-
이택구가 소장하고 있는 완의를 새긴 판각. 완의(完議)는 입의(立議)라고도 하는데, 종중, 가문, 계 등에서 제사, 묘소, 계 등 제반사항에 관하여 의논하고 그 합의된 내용을 적어 서로 지킬 것을 약속하는 문서이다. 완의로서 간단한 것은 한 장의 종이에 쓴 것도 있고, 두루마리에 쓴 것도 있다....
-
조선 영조가 남한산성에 들렀을 때 쓴 칠언절구 시. 『남한지(南漢志)』권8에 「영조대왕어제(英祖大王御製)」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는 3수의 영회삼수(詠懷三首)인 ‘알원릉추모(謁園陵追慕)’, ‘좌행궁유감(坐行宮有感)’, ‘등장대강개(登將臺慷慨)’ 가운데 세번째 작품이다....
-
18세기 후반에 민간에서 제작된 크기 52x32cm의 목판본 지도첩에 수록된 경기도 지도. 조선 전기에는 원칙적으로 민간의 지도 소장을 금했으나 17세기 이후에는 민간에서도 지도를 소장하고 훌륭한 지도들이 민간 사대부들에 의해 제작되기도 했다. 이 지도 역시 민간에서 이용되던 대표적 지도이며, 전체 구도는 조선전기의 『동람도』를 계승하고 있다. 바다와 하천을 파도무늬대신 흑색으로...
-
유상(柳相)이라는 의원이 경기도 광주의 판교(板橋)를 지나던 중 어명을 받고 궁에 들어가 임금의 마마(천연두)를 고쳐주었다는 이야기. 조선 후기의 야담집인 『청구야담(靑丘野談)』에 전한다....
-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경기도 35개 군의 읍지 필사본. 『경기읍지』는 경기도 35개 군의 읍지를 합편한 6책의 필사본으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있다. 『경기읍지』에는 수원, 강화, 광주 등 경기도의 주요 유수부의 읍지가 빠져있는데 편찬 당시부터 빠진 것으로 보이며, 편자는 미상이다. 각 읍지의 첫머리에는 군의 채색지도가 첨부되...
-
1842년(헌종 8)에 편찬된 경기도 33개 군과 영종진의 읍지 필사본. 『경기지』는 경기도 33개 군과 영종진의 읍지를 합편한 4책의 필사본으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있다. 편자는 미상이며, 각 군 읍지의 첫머리에는 군의 채색지도가 부착되어 있다....
-
조선시대에 간행되었던 광주에 관련된 읍지. 부·목·군·현 등의 지방 각 읍을 단위로 하여 작성된 지리지로서, 방리·도로·형승·풍속·능침·단묘·역원·군병·진공 등 해당 읍과 관련된 여러 사안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
조선 후기의 문장가인 남공철의 시문집. 남공철(南公轍)[1760년~1840년]은 본관은 의령, 자는 원평(元平), 호는 사영(思潁),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1792년(정조 16)에 급제하여 이후 영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부(군) 낙생면의 경작 상태와 전세(田稅)를 기록한 장부. 현존하는 『낙생면전부』가 없어 『여지도서』나 『호구총수』 등 당시의 다른 자료를 통해 유추 해설이 가능할 뿐이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남유용의 문집. 남유용(南有容)[1698~1773]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덕재(德哉), 호는 뇌연(雷淵)·소화(小華)이다....
-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군(부) 돌마면의 경작 상태와 전세(田稅) 관계를 기록한 장부. 현존하는 『돌마면전부』가 없어 『여지도서』나 『남한지』 등 당시의 다른 자료를 통해 유추 해설이 가능할 뿐이다....
-
조선 후기의 문신 권득기의 문집. 권득기(權得己)[1570~1622]는 본관은 안동, 자는 중지(重之), 호는 만회(晩晦)이다....
-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입암 민제인의 시문집. 민제인(閔齊仁)[1493~1549]의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희중(希仲), 호는 입암(立巖)이다. 1520년(중종 15)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에서 독서하다가 다음해 승정원주서가 되었는데, 이때 「척간유생도기(擲奸儒生到記)」를 가필하였다가 탄핵되었다. 광주목사,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했고 명나라에도 다녀왔다....
-
1846년(헌종 12) 광주부윤 겸 수어사이던 홍경모(洪敬謨)가 편찬한 경기도 광주 읍지. 1779년(정조 3)에 서명응(徐命膺)이 수어사 재직 중에 왕명을 받고 착수하여 미완으로 그친 『남성지(南城志)』와 『여지승람』 등 여러 사서와 지리지를 참고, 수정, 보완하여 홍경모가 편찬한 것으로 사찬읍지에 속한다. 남한산성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남한지』라 하였고, ‘남한(南漢)’이란...
-
우리나라 팔도를 그린 아름다운 채색필사본 지도. 1869년에 함경도 후주(厚州)가 후창(厚昌)으로 개칭되었는데, 이 지도에는 후창으로 표기되어 있어 1869년 이후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도로 보인다. 지도 이면에는 도별 민호, 전결, 군정 자료와 각 군현에서 사방경계에 이르는 이수(里數)와 서울과의 거리 이수도 수록되어 있다. 도별지도는 『동람도』처럼 군현명, 주요 산천명 등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 있는 조몽정의 묘. 조몽정[1535~1593]은 조선 전기의 인물로 본관은 창녕, 자는 응길(應吉), 호는 경헌(敬軒)이다. 호조좌랑 조언박(曺彦傅)의 아들로 11세에 부친상을 다하자 어른들처럼 묘 아래에 제실을 짓고 정성을 다하여 효자로 칭송을 받았다. 향시에 응시하여 여러 차례 추천되었으나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않는다는 지조를 지...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마을에 있는 덕수이씨의 선영. 이의번[생몰년 미상]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증좌찬성 이추(李抽)의 아들이며, 군호는 풍성군(豊城君)이다. 성종 때 인능산 아래 고등동 등자리마을에 이의번의 묘를 쓰고 그의 아들인 해풍군(海豊君) 이함과 후손들이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불곡산(佛谷山)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사찰. 창건된지 약 250여년 된 조선 후기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이나 현재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원래의 사찰명은 불곡사(佛谷寺)였으나 성오 주지스님이 과거 이 지역 지명인 ‘골안’을 따와 골안사로 바꾸었다. 그 이유는 분당신도시 개발과정에서 고향을 떠난 주민들이 이곳을 다시 찾아왔을 때 옛 지...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불곡산(佛谷山)에 위치한 골안사 대웅전. 골안사는 창건된 지 250여년 된 조선 후기의 사찰로 분당구 구미동 불곡산에 위치한다. 골안사 대웅전 안에는 결가부좌한 석가모니 삼존불이 봉안되어있고, 산신도와 칠성탱화를 비롯한 다수의 불화, 영가(靈駕)의 위패를 모신 단 등이 설치되어 있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의 골안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불(石佛). 골안사 석상은 분당구 구미동 불곡산에 위치한 골안사 대웅전 계단의 좌우에 각각 1기씩 놓여 있는 석불을 말한다. 원래는 현재 대웅전에 봉안된 본존불(本尊佛) 좌우에 각각 안치되어 있었던 협시불(夾侍佛)이었는데, 본존불은 새로 금도금을 하여 대웅전에 안치하고 본존불 양 옆에 있던 합장 형태의 두 석불은 지금과 같이...
-
고려시대에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525개의 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설치된22개 역도 중의 하나.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525개의 역이 있었으며 이들은 22역도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중 8개 도는 개경 북쪽에 배치되었으며, 청교도(靑郊道)·춘주도(春州道)·평구도(平丘道)·명주도(溟州道)·광주도(廣州道)·충청주도(忠淸州道)·전공주도(全公州道)·승나주도(昇羅州都)·산남도(山南道)...
-
경기도 광주시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행정구역. 조선이 건국되면서 토착적인 지방 호족·향리의 사적 지배권을 박탈하여 수령의 지배아래 예속시킴으로써, 지방 세력을 약화시키고 행정사역인화시켜 중앙집권적 행정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지방편제에 의해 구획된 8도의 하급행정지역(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 중의 하나로서, 1504년(연산군 10) 이후 관읍이 혁파되기 도하고 부 또는 유수부로...
-
도성 양재에서 해문역(남양)에 이르는 교통로. 양재→ 천천현로→낙생역→구흥(용인)→ 금영(용인)→ 좌찬(죽산)→ 분행(죽산)→ 무극(음죽)→강복(안성)→가천(양성)→청호(수원)→ 장족(수원)→ 동화(수원)→해문역(남양)에 위치했던 역 중의 하나이다. 낙생역지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파악되고 있지 않지만, 현재 수내 제2동에 위치한 중앙공원 앞의 수내로와 돌마로가 갈라지는 분기점인 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에 있는 전주이씨 묘역. 조선 중종의 다섯째 왕자인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1524~1581]와 그 후손들이 대대로 묘를 쓴 묘역이다. 덕양군 이기를 비롯하여 손자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 증손 봉래군(蓬萊君) 이형윤(李炯胤), 봉산군(蓬山君) 이형신(李炯信), 현손 충좌위부사과(忠佐衛副司果) 이숙(李塾) 등의 묘가 집중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권괄(權佸)의 묘. 권괄[생몰년 미상]의 본관은 안동이며 안양공(安襄公) 권반(權攀)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충훈도사(忠勳都事)나 승정원(承政院)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권잉(權仍)의 묘. 권잉[생몰년 미상]의 본관은 안동이며 화성군(花城君) 권굉(權硡)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사옹원판관(司饔院判官)이나 승지(承旨)에 추증되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권징의 묘 및 묘갈. 권징[1538~159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이원(而遠), 호는 송암(松菴)이다. 사직(司直) 굉(硡)의 아들이며, 배위(配位)는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전주이씨이다. 1562년(명종 17) 문과에 급제한 후 전주부윤, 안변부사, 강원도·충청도·함경도·평안도 관찰사, 병조판서를 지냈다. 1592년 임...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권형의 묘. 권형[1571~1633]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자성(子誠)이며, 대호군(大護軍) 권긍(權兢)의 아들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 덕포만호(德浦萬戶)를 거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후 지방 군수와 부사를 차례로 거친 후 1621년(광해군 13) 가선대부(嘉...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남원윤씨의 묘역. 조선시대 이 지역에 세거하였던 남원윤씨의 선영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 윤극신(尹克新)과 그의 아들 윤돈(尹暾)과 윤엽(尹曄), 윤돈의 아들 윤형철 등의 묘소가 안장되어 있다. 이외에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 활동을 했던 윤재옥의 묘가 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안동권씨의 선영. 조선 전기의 문신 안양공(安襄公) 권반(權攀)이 예조참판 겸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할 때 장자인 권괄이 사망하였으나 장지를 구하지 못하자 세조가 그 사정을 듣고 청계산 아래 금현동을 하사하였다. 이로부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은 안동권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중앙공원 내 영장산(靈長山) 정상에 있었던 제단 터. 이 터는 숲안과 역말 주민들이 날이 가물면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라고 한다. 기우제는 산봉우리나 냇가, 연못 등지에 제단을 만들고, 그 일대를 신역(神域)으로 정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낸 행사였다. 이곳은 지금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대신 영장대(靈長臺)라 이름붙여진 8각정과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다...
-
조선 중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가선대부로 평안병사와 부총관을 역임한 김윤제(金允濟)의 손자로, 아버지는 통훈대부 군자감(軍資監) 판관을 역임한 김자호(金自湖)이며, 어머니는 승지를 역임한 정성근(鄭誠謹)의 딸 진주정씨(晉州鄭氏)이다. 아들은 현령을 지낸 김장(金檣)이다....
-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낭향(郞鄕). 아버지는 참봉 김유(金裕), 할아버지는 김언국(金彦國)이며, 중종 때 군수와 부사를 역임한 김윤탁(金尹濯)의 현손이다. 부인은 남양홍씨 홍백순(洪百順)의 딸이며, 아들은 김굉(金鍠)과 김환(金鋎)이다....
-
조선시대에 지금의 성남시 분당 지역에 설치되었던 역참(驛站). 역참(驛站)은 중앙과 지방 사이의 공문서 전달, 왕래하는 관리나 사신의 접대, 관수 물자의 운반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치된 조선시대의 교통·통신 기관이다. 낙생역은 조선시대에 양재→천천현로→낙생역→구흥(용인)→김령(용인)→좌찬(죽산)→분행(죽산)→무극(음죽)→강복(안성)→가천(양성)→청호(수원)→장족(수원)→동화(수원)→...
-
조선시대 삼남지방에서 서울에 이르는 교통로에 있던 낙생역의 터. 낙생역지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분당중앙공원 앞의 수내로와 돌마로가 갈라지는 분기점인 역말광장 일대와 수내동 푸른마을 주변 일대로 추정되고 있다. 낙생역은 고려시대의 안업역(安業驛)이 조선 초에 이르러 개칭된 것인데,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돌마역(突馬驛)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에...
-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부(군)에 개설되었던 향시(鄕市)의 하나. 지방에서 개시되는 시장을 장문(場門) 또는 상시(上市)라고도 하였다. 그러므로 분당장문 또는 분당상시라고 불려졌을 것으로 생각되나 분당장의 현재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15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지방의 향시는 16세기에 보편화되어 전국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조선 중기부터 정비된 면리제로 인해 낙생면도 16세기말의 읍지...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는 남계하(南啓夏)의 묘. 남계하[1643~1705]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양백(養伯)이다. 활인별제를 지낸 남수신(南守身)의 아들로 음서로 선공감(繕工監)에 나간 후 의금부도사를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청하현감을 지냈다. 평소 학문에 뜻이 있어 윤원거(尹元擧)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쌓았으며, 특히 윤증(尹拯)으로부터 가례...
-
생몰년 미상.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에 살았던 사비(私婢)이다. 효녀로 유명하다....
-
경기도 성남시의 분당지역을 일컫던 옛 지명인 당우리의 원표기. 당우리 지역은 옛날 신창맹씨(新昌孟氏)의 사패지(賜牌地, 나라에서 내려준 토지)로 세조 때 신창군(新昌君)에 봉해진 맹석흠(孟碩欽)의 묘를 성덕산(불곡산의 다른 이름) 동북쪽 기슭에 쓴 후, 그 후손이 묘 아래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는데 그 후부터 인근에서 이 마을을 가리켜 당모루라 하고, 한자어로 당우리라...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 불교 경전.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 또는 『능엄경』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을 것을 주요 사상으로 하고 있으며, 스님들이 수련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경전이다. 『능엄경』은 전10권으로 되...
-
고려 및 조선시대의 역원제도(驛院制度)에서,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일대에 두었던 것으로 보이는 원. 원이란 전국 각 역의 중간지점에 둔 일종의 국립여관으로서 대야원도 이에 해당된다. 원주(院主)의 관할하에 있는 원은 공무연락자의 숙식을 제공하였고, 공적 임무를 띤 사람에게 공무의 편의를 보아주는 야간휴식소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대야원은 현재로선 찾아볼 수 없지만,...
-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부(군) 대왕면에 개설되었던 시장. 15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지방의 향시는 16세기에 보편화되어 전국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조선 중기부터 정비된 면리제로 인하여 대왕면도 16세기말의 읍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대왕장도 16세기 말이나 17세기 초에는 확실히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 당시 농민들은 농업기술의 향상으로 생산고의 증대, 농업경영의...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참. 『여지도서』에 돌마역[현재 수내동 역말]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과 달리 『여지도서』 이전과 이후 즉, 조선 전기, 후기에 편찬된 다른 자료인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도로고』, 『만기요람』, 『대동지지』 등에는 모두 낙생역으로 기재되어 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과 과천시 모계동 경계인 청계산 정상 근처에 있는 대. 조선 초 고려 유신 조견(趙狷)이 전 왕조인 고려 왕실을 염모하였던 곳으로 전하는 곳이다. 조견은 조선조 성립 후 매일 이곳에 올라 고려 수도 개성을 바라보면서 통곡으로 나날을 보냈다고 전하는 곳으로 세상사람들이 망경봉(望京峰)을 망경대라 부르게 되고, 당시 「망경대가(望京臺歌)」가 널리 유행하였다고...
-
조선 현종 9년(1668년) 11월 27일,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현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의자와 지팡이. 백헌 이경석은 인조, 효종, 현종의 3대 50년에 걸쳐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한 명상(名相)으로, 말년에 관료로서 최고의 영예인 궤장을 하사받는 영예를 누렸다. 현종이 즉위한 뒤 송시열(宋時烈) 등 집권 서인으로부터 여러 번 배척을 받았음에도 불...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위치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2001년에 실시한 토지박물관의 문화유적 지표 조사와 2002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지표 조사를 통해 분당구 백현동에서 발굴된 유물산포지이다. 2개의 유물산포지가 유사한 지역적 분포와 입지, 동일한 유물상을 보여 하나로 통합하였다....
-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청(淸)의 침입에 의한 조선과의 전쟁. 제1차 침입인 정묘호란(1627년) 이후 맺은 조약에서 ‘형제의 맹약(盟約)’을 ‘군신의 의(義)’로 바꿀 것을 요구한 것이 직접적인 동기였다. 당시 조정은 서인이 집권하면서 숭명반청(崇明反淸) 외교노선을 취하여 오랑캐인 청나라에 대해 척화(斥和)하자는 논의가 팽배해 있었다. 이때 청은 개...
-
경기도 광주시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참. 현재 봉안역에 대한 자료는 거의 전해오고 있지 않아 확실한 위치를 알 수 없다. 대부분의 자료는 조선시대에 관한 것으로서, 『세종실록지리지』의 표를 보면 경기도에 속한 역도는 모두 3개로(좌도충청도, 우도충청도, 경기·강원도), 경기, 강원도에는 다시 5개의 역도(중림도·평구도·도원도·월화도·경안도)가 있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묘지와 편병. 조선시대에 제작된 장방형 기둥 모양의 분청사기 상감사각묘지와 동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 인화문 사각편병은 2006년 1월 17일 보물 제1450호로 지정되었으며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소재하고 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에 있는 양성이씨 묘역. 조선 초기에서 중기에 대대로 무반 가문을 이루었던 양성이씨의 묘역이다. 최상부에 이사치(李思恥)의 묘가 있고, 진도군수를 역임한 이몽(李蒙), 수군첨제사 이윤종(李潤終), 상호군 이양정(李養正), 선략장군 이운(李芸) 등의 묘가 순서대로 자리하고 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지명. 사촌리와 송현리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의 옛 지명이다. 송현리[솔고개] 남쪽에 위치한 사촌리는 전주이씨·의령남씨·평택임씨가 세거하였고, 크게 남쪽 웃말과 북쪽 아랫말로 구분되는데 웃말에는 주전소(鑄錢所)가 있었다. 송현리는 사촌리와 모랫말 사이에 위치한 마을로서 진전송씨·남양방씨·파주염씨·단양우씨 등이 세거하였으며, 수...
-
조선시대 광주군 세촌면(細村面)에 있었던 주점. 광주부로부터 남쪽으로 15리, 경안(慶安)의 막감점(暯甘店)으로부터 10리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판교읍내가 이곳에 해당된다. 주점(酒店)은 술과 밥을 팔면서 나그네 및 상인들을 숙박시키던 집으로 주막(酒幕) 또는 점막(店幕)이라고 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 가마 터.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수십 명의 일꾼들이 옹기를 굽던 곳으로 '동이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뚜렷한 가마터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곳곳에서 옹기 파편 등이 확인되었다....
-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로서 청의 요구에 강하게 척화소(斥和疏)를 올린 세 사람의 학사. 홍익한(洪翼漢)[1586~1637], 윤집(尹集)[1606~1637], 오달제(吳達濟)[1609~1637]를 말한다. 1671년(현종 12) 송시열이 지은 『삼학사전(三學士傳)』에서 이들을 ‘삼학사’라 불러 그 이름으로 전하게 되었다....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서 발굴된 조선시대 백자 가마 터. 상대원동 백자가마터는 발굴된 자기의 바닥굽이 대나무 마디가 튀어나온 것처럼 생긴 죽절굽(대마디굽)인 점과 색조 등으로 미루어 임진왜란 이전에 조성된 가마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와 중원구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지명. 조선시대에 오늘날 성남시의 근간을 이루는 광주군 세촌면·낙생면·대왕면과 함께 광주군 돌마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현재 상동리는 성남시 분당구 북동부 및 중원구 남부에 해당하며, 하동리는 분당구 남동부 일대에 해당된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에 있었던 관아 터. 관아(官衙)는 조선의 지방 행정 기구의 청사가 위치한 마을로 읍치라고도 불렀다. 관아에는 수령의 정청인 동헌, 국왕의 위패를 모시는 객사, 고을 양반들의 대표자인 좌수와 별감이 있는 향청, 아전들의 근무처인 질청, 기생과 노비들이 사용하는 관노청, 그리고 군사를 관장하는 군기청이 포함되어 있었다....
-
경기도 성남 지역을 일컫던 옛 이름. 과거 성남에서 이 지역을 일컬어 부르던 지명으로 ‘성의 남쪽’이라는 뜻이며, ‘성내미’라고도 한다. 이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 지금의 성남(城南)이 되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의 봉국사 대광명전에 있는 조선시대 불상. 봉국사 대광명전의 주존불(主尊佛)로서 조선시대인 1674년(현종 15) 대광명전이 건립될 때 함께 조성되었다. 좌우에 협시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은 1993년에 조성된 것이다....
-
1772년(영조 48)~1832년(순조 32). 조선 후기 정조~순조대의 여성 성리학자이자 문인. 충북 제천 출생으로 일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고, 사후에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선영에 묻혔는데, 그의 묘소는 성남시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일당의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강재수(姜在洙)이고, 어머니 안동권씨는 권서응(權瑞應)의 딸이다. 아명은 지덕(至德)이며,...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복정동 및 중원구 상대원동, 하대원동 일대에 있었던 지명.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군에 속했던 지방행정 구역으로, 7개 동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1913년 신설된 광주군 중부면으로 편입되었고,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 경기도 직할 성남출장소, 성남시청 등 시대에 따라 주요 행정기관이 위치하며 성남시 초기 발전의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
조선 중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조선 중기의 문신인 송언신은 성남 지역의 지명과 관계가 있는데, 일설에 조선 후기의 문신 이집의 서원이 있는 곳을 하대원이라고 한데 대하여, 송언신의 서원이 있었던 지역을 상대원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었던 지명. 본래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수내촌이었는데, 마을 어귀에 숲이 많았으므로 숲안 또는 수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역말을 병합하여 수내리가 되었다. 1973년 성남시에 편입되었고, 1975년 돌마출장소에 편입되었으며, 1991년 분당구 수내동이 되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에 있는 느티나무. 수령 300년의 노거수(老巨樹)로 높이가 20m, 가슴둘레가 4.9m, 나무와 잎이 달려있는 폭이 20m인 느티나무이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에 있는 우물. 심곡동 마을회관에서 심곡1길을 따라 안국사를 지나서 심곡동 361번지[심곡로37번길 20] 주택과 인접한 작은 길에 있는 우물이다. 이 우물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위치나 수심이 옛 모습 그대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예로부터 물이 많이 솟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미루어 오래 전부터 이곳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되어 오다가 조선...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양지동에 있는 암각비. 조선 후기의 문신인 수어사 서명응(徐命應), 부윤 홍익필(洪益弼), 이명중(李明中) 세 사람이 백성을 사랑한 공적을 ‘잊지 말자(不忘)’는 내용을 하나의 바위에 각각 3기의 비 형태로 새긴 것이다....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있는 순천김씨 묘역. 충정공은 도승지를 지낸 김유양(金有讓)의 시호로, 여수동에는 그의 손자인 합천군수 김윤탁(金允濯)을 비롯하여, 증손 부호군(副護軍) 김자한(金自漢), 현손 어모장군(禦侮將軍) 김언국(金彦國), 5세손 헌릉참봉(獻陵參奉) 김유(金裕), 6세손 김양필(金良弼) 등 5대에 걸친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연못. 연지는 분당신도시 개발 당시만 하더라도 연꽃이 크고 풍성하기로 유명하였으며, 연꽃의 개화기에는 황새, 백로 등의 서식지이기도 하여 인근에서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 정도의 명소였다. 이곳 연꽃은 다른 곳에 옮겨 심으면 살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서 출토된 영창대군 이의(李㼁)의 묘지석. 영창대군은 조선 선조의 14명의 왕자 중 막내이며, 인목왕후의 유일한 소생이다. 선조는 이미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光海君) 대신 영창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할 것을 영의정 유영경(柳永慶) 등과 비밀리에 의논하였다. 그러나 선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서인(庶人)으로 강등되고 만 8세의 나이에...
-
경기도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참. 조선시대 경기도에 속한 역도는 크게 『세종실록지리지』와 『경국대전』을 통하여 파악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경기도에 속한 역도는 3개(좌도충청도, 우도충청도, 경기·강원도)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종6품 찰방이 배속되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에 있는 유계문의 묘. 유계문[1383~1445]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숙행(叔行)으로, 우의정 유관(柳寬)의 아들이다. 1408년(태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언관을 제수받았고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1430년(세종 12) 대사헌으로 있던 중 제주 감목관(監牧官) 태석균(太石均)이 많은 말을 죽이고 은폐하기 위하여 대간에...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유석보의 묘. 유석보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 자는 여익(汝翼)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유종선(柳從善)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여 조산대부(朝散大夫)를 지냈다. 1620년(광해군 12) 이귀(李貴), 김자점(金自點), 최명길(崔鳴吉) 등이 한 당파가 됨을 보고 개탄하여 김자점과 최명길의 모의...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에 있는 윤경지의 묘 및 묘갈. 윤경지[1604~1659]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해평(海平)이고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지낸 윤휘(尹暉)이고 어머니는 사평(司評) 이기명(李耆命)의 딸이며, 부인은 숙인 연일정씨로 참판을 지낸 정립(鄭岦)의 딸이다. 세마(洗馬)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후일 훈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윤돈의 묘. 윤돈[1551~161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원, 자는 여승(汝昇), 호는 죽창(竹窓)이며, 아버지는 찬성공(贊成公) 윤극신(尹克新)이다. 이황(李滉), 기대승(奇大升)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585년(선조 18)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윤형철의 묘. 윤형철[1577~163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원, 자는 응명(應明)이다. 관직은 호조좌랑을 지냈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의령남씨 묘역. 과거 서근(三斤)이나 되는 밤이 생산되었다고 풍자할 만큼 밤(栗)의 명산지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는 율동(栗洞)에는 순흥안씨, 진주유씨, 청주한씨, 의령남씨 등의 선조와 그 후손들의 묘역이 다수 안장되어 있다. 이 중 의령남씨 묘역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 남준과 그의 아들 남염, 조선 후기의 문장가이자 정치가로 형조판서로 치사하여 봉...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청주한씨 묘역. 과거 서근(三斤)이나 되는 밤이 생산되었다고 풍자할 만큼 밤[栗]의 명산지에서 마을이름이 유래하는 율동[栗洞]에는 순흥안씨, 진주유씨, 청주한씨, 의령남씨 등의 선조와 그 후손들의 묘역이 다수 안장되어 있다. 이 중 청주한씨 묘역은 율동 자연공원내 저수지 맞은편의 낮은 구릉 일대에 일가 전체의 묘소가 다수 안장되어 있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구릉. 조선 성종의 어태(御胎)를 안치하였다고 구전되는 곳으로, 율동의 문정공(文靖公) 한계희(韓繼禧)와 공간공(恭簡公) 한사문(韓斯文) 묘역 중간에 불룩하게 솟아오른 나지막한 구릉이다....
-
조선 후기 음촌참(陰村站) 부근에 있었던 주점(酒店). 조선시대의 역참제도는 수도 한성을 중심으로 간선도로는 전국에 10대 도로를 개설하고 이를 좌로, 중로, 우로로 크게 나누었다. 각 도로는 30~40리(약 4㎞) 정도의 거리를 두고 역참을 설치하고, 역마(驛馬)와 역정(驛丁)을 배치하여 관청의 공문을 전송하는 외에 마필과 숙식을 알선, 제공하였다....
-
조선 후기 성남지역에 역과 함께 설치되었던 공공 숙박시설. 우리나라의 역참제도는 삼국시대부터 시행되었으나 구체적인 제도로 드러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이다. 역도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더욱 구체화되면서 간선도로와 지선도로로 나누고 다시 그 중요성에 따라 대로, 중로, 소로로 구분하여 시행되었다. 수도 한성을 중심으로 간선도로는 전국에 10대 도로를 개설하고 이를 좌로, 중로, 우로로 크...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이경류의 말 무덤. 이경류(李慶流)[1564~1592]는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장원(長源), 호는 반금(伴琴)이다. 문렬공 이계전(李季甸)[1404~1459] 6세손이자 아천군 이증(李增)[1525~1600]의 아들이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고 병절교위로 있을 때 문과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 제수 받았고 이...
-
조선 중기의 문신 이경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유품들. 백헌(白軒) 이경석[1595~1671]은 인조, 효종, 현종의 3대 50년에 걸쳐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한 명상(名相)으로, 말년에 관료로서 최고의 영예인 궤장을 하사받고, 각종 교지를 받는 영예를 누렸다....
-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용(李景容)의 묘. 이경용[1580~1635]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복(汝復), 호는 두곡(杜谷)으로, 순천군수(順天郡守) 이통(李通)의 아들이다. 1618년(광해군 10) 문과 급제 후 전라도관찰사로 재임 중 사망하였다. 부인 안동권씨는 첨정(僉正) 권질(權耋)의 딸이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있는 이경인의 묘와 묘갈. 이경인[1575~164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극보(克甫), 호는 정촌(亭村)이며, 인원수(仁原守) 이강(李橿)의 아들이다. 이경인의 묘소가 위치한 정자동의 명칭은 그가 이곳 탄천 상류에 정자를 짓고 학문에 열중하였다고 하는 정자터(태인정)와 그의 호인 정촌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1610년(광해군 2...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이산중(李山重)의 묘. 이산중[1717~1775]은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자정(子靜)이다. 아천군(鵝川君) 이증(李增)의 5세손이자 호조정랑(戶曹正郞) 이병건(李秉健)의 아들이며, 노론(老論) 사대신(四大臣)의 한 사람인 우의정 조태채(趙泰采)의 손녀사위이다. 관직은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였으며 죽은 뒤에 이조판서에...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있는 이상안(李尙安)의 묘. 이상안[1575~1627]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정이(靜而)이다.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 이광록(李匡祿)이며, 어머니는 권적(權適)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광국(李匡國)에게 입양되었다. 1603년(선조 36) 식년무과(式年武科)에 급제하고 이듬해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며 1615년(광해군 7...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있는 이상항(李相項)의 묘. 이상항[생몰년 미상]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를 지낸 것 외에는 약력이 자세하지 않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에 있는 이양정의 묘. 이양정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양성(陽城)이다. 진도군수 이몽(李蒙)의 아들로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 배위(配位)는 숙인(淑人) 진주정씨이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이오의 묘. 이오(李澳)[1659~1720]는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첨백(瞻伯)이다. 아천군(鵝川君) 이증(李增)의 현손이자 김제군수 이정룡(李廷龍)의 아들이며, 영의정 홍명하(洪命夏)의 손녀사위이다. 사마시에 합격하고 벼슬에 나아가 영양군수와 부평부사를 역임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에 있는 이운의 묘. 이운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양성(陽城)이다. 수군첨제사 이윤종(李潤終)의 아들이며, 선략장군(宣略將軍)을 역임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이정룡(李廷龍)의 묘. 이정룡[1629~1689]은 현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몽경(夢卿)이다. 아천군(鵝川君) 이증(李增)의 증손이자 대구부사 이제(李穧)의 아들이며, 이조참판 이정기(李廷蘷)의 동생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홀어머니를 봉양함에 효를 다하였고 성격이 온화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이증(李增)의 묘. 이증[1525~1600]은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가겸(可謙), 호는 북애(北厓)이다. 대사성(大司成) 이우(李堣)의 현손이자 한평군(韓平君) 이지숙(李之菽)의 아들이다. 25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36세에는 과거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제수 받았다. 이후 사헌부지평과 도승지 등의 요직을 거...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에 있는 이철영의 묘. 이철영[1613~166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사명(士明)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이경석(李景奭)이고, 어머니는 관찰사로 영의정에 추증된 유색(柳穡)의 딸이다. 1646년(인조 24) 진사시에 합격하여 금부도사에 임명되고 후에 귀후서별제(歸厚暑別提), 사섬시주부, 사복시주부를 역임하였다. 후에 통진(通津...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에 있는 이통의 묘. 이통[1556~1620]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천구(天衢)이다. 해풍군(海豊君) 이함(李菡)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이원근(李元謹)이나, 나중에 재종숙부인 이인상(李麟祥)의 양자로 갔다. 이경안(李景顔), 이경민(李景閔), 이경용(李景容), 이경헌(李景憲), 이경증(李景曾) 등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문...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이확(李穫)의 묘. 이확[1583~1658]은 효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군실(君實)이다. 한평군(韓平君) 이지숙(李之菽)의 증손이자 진사 이경홍(李慶洪)의 아들이다. 1615년(광해군 7) 사마시에 합격하고 벼슬에 나아가 현풍현감(玄風縣監)을 역임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에 있는 이희의 묘. 이희[1492~1551]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성종의 16남 12녀 중 막내이며, 어머니는 숙의(淑儀)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부왕의 사랑이 매우 두터워 3세에 특별히 양원군(楊原君)으로 봉해졌고, 1506년(중종 1) 정국공신원종일등훈(靖國功臣原從一等勳)에 사하여졌다. 시호는 정혜공(貞惠公)이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있는 전주이씨 태안군파의 선영. 전주이씨태안군파묘역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팽수(李彭壽)와 그의 아들 이강, 그리고 이강의 아들인 이경인(李敬仁)과 생몰년 미상의 이석명 등 4기의 묘소가 있다. 태안군 이팽수는 성종의 제12남인 무산군의 다섯째 아들로 임진왜란 때 왕을 호위한 공을 인정받아 호성공신에 봉해졌다. 이경인은 태안군의 증손으로 이천도호부사...
-
조선시대에 군사 훈련을 하거나 사열을 하던 평원. 정금원평(定今院坪)으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촌동과 복정동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판단된다. 정금원 앞의 넓은 평야로 처음에는 군사를 위한 시초지(柴草地 : 땔감으로 쓰는 풀을 마련하는 토지)로 활용되다가 왕이 사냥을 나서면서 군사 훈련과 사열 장소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왕이 이곳에서 군대 사열을 하고...
-
1392년에서 1863년까지 경기도 성남의 역사. 조선시대 성남 지역은 광주에 속해 있었으며, 돌마면·세촌면·대왕면·낙생면 지역이 성남 시역에 포함된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2동 천림산 봉수에서 근무했던 조선시대 군사 명칭. 천림산봉수대는 현재 성남시 수정구 금토2동 산35번지, 일명 달래내 고개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 군사통신 시설의 하나이다. 봉수란 외적의 침입을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써 중앙에 알리는 군사통신 수단으로서 1423년(세종 5) 전후하여 천천산(穿川山)봉수를 설치한 데서 유래하였으나 오늘날은 천림산봉수...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고개. 천천현은 청계산과 천림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천천산 또는 천천령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부터 남쪽 삼남지방에서 한양 남산에 이르는 주요한 봉수로가 위치한 곳이었으며, 또한 한양에서 동래에 이르는 주요 교통로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오야동에 있는 최기남의 묘 및 신도비. 최기남[1559~161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여숙(與叔), 호는 만곡(晩谷), 만옹(晩翁), 양암(養庵)이다. 최수준(崔秀俊)의 아들이며, 병자호란 당시 주화론을 주장한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의 아버지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던 중 호남의 선비들이 왕의 뜻...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있는 정자 터. 1586년 무렵에 태안군 이팽수[1520~1592]의 증손 정촌 이경인(李敬仁)[1575~1642]이 정자를 세워 학문에 전념하던 곳으로, 그 뒤로도 후손 3대가 학문을 배우고 익혀 백여 명의 인재를 배출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있는 연안이씨의 세장(世葬 : 대대로 묘를 씀) 묘역. 판교동 너더리마을의 북쪽 구릉에 위치하며, 여기에 연안이씨 연성군파(延城君派) 이곤(李坤)[1462~1524]을 비롯한 수십기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참. 조선시대에는 행려자에게 교통 등 편의를 주기 위하여 설치된 숙발시설로 역로제도 뿐만 아니라 원과 관이 운영되고 있었다. 즉, 일반 공무여행자의 숙식을 위해 각 요지에 원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며, 빈객을 접대하기 위해서는 지방 각 관읍에 객사라는 관을 두었다....
-
경기도 성남 지역 판교원(板橋院)에 딸려 있었던 토지. 원(院)이란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사신은 물론이고, 상인 등 일반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공공 여관이었다. 성남과 광주 주변 역시 원과 주점이 발달하여 행인에 대한 숙식 제공과 물자유통 및 상공업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18개 숙박시설의 하나. 임진왜란 이후 폐지된 원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 생겨난 시설로서 주막(酒幕)이 생겨나게 되었다. 역로제도와 함께 공무여행자에게 교통편의를 주기 위해 설치된 숙박시설인 원이 임진왜란 이후 폐지됨에 따라 원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생겨난 시설로서 점막 또는 흔히 주막이라고 칭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 있는 한효순의 묘 및 신도비. 한효순[1543~1621]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 자는 면숙(勉叔), 호는 월탄(月灘)이다. 한상경(韓尙敬)의 아들로 1576년 식년문과에 급제 후 영해부사(寧海府使)가 되어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영해전투에서 전공을 세우고, 그 후 경상좌도 관찰사에 특진하여 순찰사를 겸임하였다. 1610년(광해군 2)...
-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낙생면 소재 험천에서 벌인 전투. 험천은 현재 분당구 구미동에서 탄천에 합류한 동막천을 말하는데, 예로부터 기우단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당시 약 12만명의 청 태종의 군대가 침략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가 임금을 구하기 위해 수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청군과 전투를 벌인 곳이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에 있는 재실. 흥모재는 조선 중기의 문신 권득기(權得己)를 배향하는 재실이다. 권득기는 본관이 안동이고, 호는 만회(晩悔)이며, 조선 광해군 때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예조좌랑 등을 지냈으나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위하는 등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은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