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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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河均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승갑 |
[정의]
1915~1975. 정치인. 건국 초 국회의장을 지낸 신익희의 큰아들로 광복군과 정치인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생애]
1915년 9월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여 1923년에 어머니와 함께 상해로 아버지 신익희를 찾아갔다. 1941년 중국 상해 광화대학(光華大學) 상과를 졸업하였다. 중일전쟁중인 1941년 중국국민정부감찰원 위임관을 비롯하여 국민정부군의 소교복무원(少校服務員), 중앙은행 과원조장(科員組長), 중앙신탁국조장(中央信託局組長) 등 여러 직책을 역임하였다. 전쟁 말기에는 충칭(重慶)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전지공작, 초모공작 훈련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여 정위(正尉)가 되었다. 뒤늦게 중국에서 귀국하여 한국연건기업(韓國聯建企業) 사장으로 사업계에 투신하기도 하고, 1955년에는 한국외국어대학 강사로도 있었다.
[활동사항]
정계 진출의 계기는 아버지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서 선거 유세차 전주로 내려가던 호남선열차 안에서 사망한 뒤부터였다. 당시 국회의원이기도 한 선친의 뒤를 이어 광주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제3대 국회 진출의 첫발을 내디딘 데 이어, 4.19 뒤인 1960년의 제5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역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분당과 함께 민주당 구파인 신민당(新民黨)에 들어갔으며 5.16 이후인 1963년의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지난날의 민주당 구파가 주류를 이룬 민정당(民政黨) 후보로서 당선되었다. 민정당 경기도당위원장에 이어 통합야당인 민중당 정치훈련원장을 지냈다. 그는 삼선 의원 일 뿐만 아니라 서예에도 뛰어났다. 1958년 귀국기념 서예전에서는 한국 최초로 중국 고대의 해서체인 학보자비체(學寶子碑體)를 소개한 데 이어 서예전을 열었다. 1960년대 중반 관훈동의 민중당중앙당사 간판에 그의 필적을 남겼다. 1968년에 대통령표창을 받고, 1977년에 건국포장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