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
고려의 건국에서부터 멸망[918~1392년]에 이르기까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역사와 문화. 탐라는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기 9년 전인 925년(고려 태조 8)에 고려에 조공을 하고 있었다. 약 350여 년 동안 탐라는 ‘국(國)’으로서 고려와 대외 관계를 계속해 오다가 1161년(의종 15)에 현령관 최척경이 파견되어 오자 비로소 고려 군현 제도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우리나라 최남단 항구 도시 서귀포시는 한라산을 주봉으로 하고 곳곳에 기암절경과 도서, 천연기념물·희귀 식물·특용 작물·해수욕장 등이 분포하고 있어 경관이 다른 지역과 판이하게 다르다. 이 때문에 시 전체가 관광지로서 보호 또는 개발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제주도 내에서도 기후가 가장 온화하고 바람이 적어 관광 개발적인...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부를 관할하고 있던 옛 행정 구역. 조선이 개창된 이후 제주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이미 고려 시대 원에 의해 설치된 목마장에서 생산된 제주의 말이 대명 외교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전시(戰時)에는 전쟁 수행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중앙 정부의 이와 같은 인식은 제주에 대한...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메밀반죽을 얇게 밀어 편 다음 손가락 길이로 굵게 썰어서 무채와 함께 끓인 음식. 메밀반죽을 밀어서 칼로 굵게 조각조각 썰어 무채와 함께 물에 끓인 면을 숟가락으로 떠먹는다고 해서 메밀칼국수라 하지 않고 ‘메밀칼국’이라고 한다. 보통 육지의 칼국수와 만드는 방법은 비슷하나 모양은 칼국수 보다 두껍고 넓으나 길이는 짧다. 또한 메밀에는 독이...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소·말·양·돼지 따위의 가축을 기르고 경영하는 직업이나 사업. 제주는 전근대 시대부터 말 목장이 있는 등 목축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다. 그러나 1960년 이전까지 제주의 목축업은 양축농가가 가축을 증식시킬 여력과 생산물의 유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1962년 축산진흥계획 수립에 따라 제주에서도 인공수정사업, 젖소사육 등 제한적인 증...
-
1374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범섬 일대에서 최영 장군과 목호 세력(牧胡勢力)이 제주 관할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인 전투. 범섬 전투는 1374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소재 법환 포구 앞바다에 자리잡은 범섬 일대에서 최영(崔瑩) 장군과 제주 몽골족의 목호 세력(牧胡勢力)이 제주 관할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인 최후의 결전이다. 당시 1374년(공민왕 2...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관음사 소속 사찰. 법화사는 고려시대 제주 최대의 가람으로 전해지며, 창건 연대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으나 현재 통일신라시대의 장보고에 의한 창건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법화사의 중창은 고려 1269년(원종 10년)부터 1279년(충렬왕 5년)까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원나라...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법화사는 고려의 비보사찰(裨補寺刹)로서 국가 차원의 각종 지원을 받는 산남[한라산 남쪽 지역]의 대표적 사찰이었다. 발굴 조사 결과 법화사지에서는 고려의 왕궁지인 개성의 만월대와 몽고 왕궁에서 출토되는 것과 흡사한 용과 봉황문 막새가 출토되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태종실록(太宗實...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제주도의 불교 전래에 관해서는 크게 존자암(尊者庵)과 관련한 남방 전래설과 삼국 시대에 전래 되었다는 북방 전래설이 있다. 전래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물로는 곽지사지(郭支寺址)의 삼국 시대 도기편과 강림사지(江臨寺址)의 신라 시대 토기편, 고내리 사지의 통일 신라 시대의 질그릇, 수정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과 교법을 설하는 승려들이 거주하는 장소. 사찰은 가람(伽藍) 또는 사원(寺院)이라고도 하는데, 가람이란 범어 Sañghãrãma를 음역하여 만든 용어이다. 이는 중원(衆院) 또는 정사(精舍)라는 뜻으로 남자 승려[비구(比丘)]·여자 승려[비구니(比丘尼)]·남자 신도[청신남(淸信男)]·여자 신도[청신녀(淸信女)]와 같은 4중...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중심의 서북쪽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 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산방현(山房縣)은 1300년(충렬왕 26년)부터 1416년(태종 16년)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산방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339번지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 일대에는 북동으로 바...
-
‘서귀포 칠십리(西歸浦七十里)’라는 말은 조선 시대에 지금의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었던 정의현성의 관문에서 서귀포의 서귀진[또는 서귀포 방호소]까지 거리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뒤에, 오늘날은 서귀포를 상징하는 말로 개념이 확대되었다. 조선 시대 초기에, 제주도를 세 고을[제주목·정의현·대정현]로 나누고 난 뒤에, 정의현청의 관문에서 서귀포의 서귀진의 관문까지 거리가 7...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홍동 일대에서 발원하여 연외천의 본류와 합류하는 하천. 서홍천은 서홍동 2568번지 부근에서 발원하여 하류에서 연외천과 합류하여 바다로 나가는 건천이다. 연외천의 지류이며 유로 연장은 5.7㎞, 유역 면적은 1.37㎢이다. 서홍천은 물이 발원하는 지명에서 하천명이 유래됐다. 서홍천은 본래 홍로촌을 경유하기 때문에 '홍로천...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었던 고려 후기의 목장. 1273년 삼별초 항쟁이 여몽연합군에 의해 진압된 후, 몽골[원]은 일본 정벌의 야망을 품고 군마 생산을 위해 1276년 몽골식 탐라목장을 수산평에 설치했다. 이 목장은 『원사(元史)』에도 등장하며, 원나라가 점령지에 설치한 14개 황가목장(皇家牧場) 중의 하나였다. 원은 1277년경 수산평에...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서 음식을 조리·가공·분배·소비하는 과정이나 먹는 음식에 관한 생활상의 신념과 관행. 서귀포 지역의 식생활은 아열대 화산섬의 지형적 조건, 외세의 침공과 가계의 다문화, 토착신앙과 유교문화의 충돌, 중앙의 가혹한 공납과 억압 등 자연환경과 사회·인문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은 종합문화의 결정체이다. 오래 전 서귀포는 자연환경적으로 어...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쓰이는 음성과 문자로 표현되는 언어적 현상. 제주어는 제주도(濟州島)를 비롯하여 우도·비양도·가파도·마라도 등 인근 섬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말한다. 9개의 단모음과 20개의 자음 체계를 갖는다. 또한 접사의 다양성, 특이한 처격과 여격의 발달, 주체 높임법이 없는 점, 3등급의 상대 높임 체계, 질서 정연한 동작상 등의 문법적 특징을 지닌다...
-
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역사.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제주도에는 소위 탐라국(耽羅國)이라는 국가의 발생이 있었다. 탐라국은 독자적인 언어·사상·문화를 지니며 주변 지역과 끊임없이 교역을 하였고, 고구려·백제·신라뿐만 아니라 일본·당에도 사신을 파견하여 교역을 행하였던 것을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 구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으로는 천지연...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가지의 서쪽을 관통하여 흐르는 하천. 연외천은 서귀포시 서홍동 북쪽 한라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천지연폭포를 경유, 서귀포항을 통해 바다로 들어간다. 서귀포시의 중심 하천이며, 유로 연장은 9.06㎞, 유역 면적은 18.65㎢이다. 주민들은 ‘솟밧내’ 또는 ‘솜반내’라 부르는데, “소(沼)[천지연]의 바깥에 있는 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하예동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예래현(猊來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예래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서귀포시 상예동 1239번지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현재 상예1동·하예1동 마을 중심인 네...
-
변안열(邊安烈)을 시조로 하고 변세청(邊世淸)을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는 성씨. 원주변씨의 시조 변안열은 본래 심양(瀋陽) 사람인데, 중국 원나라 병부 상서로 있다가 고려 공민왕 때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따라 들어와 원주[지금의 강원도 원주시]를 사향(賜鄕)으로 받고, 공민왕의 인척인 원주 원씨(原州元氏)의 딸과 혼인해 원주에...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구 남제주군) 동부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옛 행정 구역. 1273년(원종 14년) 원의 직할령이 되었던 탐라가 고려에 환속되어 1년이 지난 1295년(충렬왕 21년)에 제주의 행정단위는 제주목으로 개편되었다. 이와 더불어 1300년(충렬왕 26년)에 이루어진 탐라의 행정단위 개편 즉, 탐라 지역의 행정단위가 분화․확대 개편된 사실은 당시 탐라 사회...
-
좌형소(左亨蘇)를 시조와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 좌씨의 연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 태사(太師) 좌구명(左丘明)에서 비롯되었다. 좌구명은 당시 대유(大儒)로서 좌구명(左丘明)이 주석한 『춘추좌씨전』은 『논어』와 『맹자』처럼 이름 있는 고전이다. 좌씨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1273년(원종 14)으로...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1리와 토산2리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토산현(兎山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토산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표선면 토산리 1475-1번지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 일대에서는 14~15세기 분청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대대로 살고 있던 씨족 집단의 성씨.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는 제주의 토성(土姓)이 고(高)·양(梁)·부(夫)라고 하였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와서는 토성이라는 명칭이 없어지고 본주(本州)의 성씨에 고(高)·양(梁)·부(夫) 이외에 고씨의 사위인 문(文)씨가 추가되었다. 이로 인해 고(高)·양(梁)·...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하례리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호아현(狐兒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호아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남원읍 하례리 238번지 일대 속칭 ‘대궐터’로 추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일대에서는 고려...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포시 서홍동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홍로현(洪爐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홍로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서귀포시 서홍동 150번지 일대 속칭 ‘대궐터’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속칭 ‘대궐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