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
이진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강진이씨는 고려 후기 역적으로 몰린 이진(李珍)이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눌왕리]에 입향하면서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연기면의 수산리와 갈운리, 고정리[현 도담동, 아름동] 일대에 후손들이 거주하였다. 이진[1300년대 인물]은 고려 충렬왕조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308년(충선왕...
-
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주김씨는 태사공파, 판도판서공파, 장군공파, 학은공파 등 여러 계파가 입향하였다. 경주김씨 계파들은 금남면 대박리와 연동면 노송리·내판리·응암리, 전동면 심중리·청람리·송곡리, 전의면 다방리, 부강면 부강리 등지에 세거하여 왔다.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전하는 경...
-
전근대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세종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 세종특별자치시의 전신인 충청남도 연기군을 중심으로 세종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을 각각 조선시대부터 개화기, 일제강점기, 해방이후, 대학교육, 사회교육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은 관학인 향교, 사립교육기관인 서원과 서당이 있다. 세종[구 연기] 지역에는 연기현 연기향...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성강리에 있는 남이웅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사당. 금남 남산영당은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으로, 1906년 공주 유림들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남이웅의 영정은 모두 4점이며, 이 가운데 2점은 초본이다. 초본 2점 중 하나는 1627년 명나라 사행(使行)[사신이 임무를...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성강리에 있는 남이웅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사당. 금남 남산영당은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으로, 1906년 공주 유림들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남이웅의 영정은 모두 4점이며, 이 가운데 2점은 초본이다. 초본 2점 중 하나는 1627년 명나라 사행(使行)[사신이 임무를...
-
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에 세거한 화순최씨 사평공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는 화순최씨 사평공파 집성촌으로, 11세손 최은(崔垠)이 회덕에서 도암리로 입향한 이래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어 왔다. 도암리 전체 150가구 중 100가구가 화순최씨이다. 금남면 도암리 화순최씨 사평공파(司評公派)의 입향조는 최은으로, 도승...
-
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문신. 김경여(金慶餘)[1596~1653]의 자는 유선(由善), 호는 송애(松厓), 시호(諡號)[제왕이나 재상, 유현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는 문정(文貞)이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호종(扈從)[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던 일]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란하였다가 이듬해 청나라에 항복한 뒤에는...
-
조선 후기 세종 지역 경주김씨 상촌공파의 입향조. 김언신(金彦信)은 연동면 노송리 경주김씨 상촌공파의 입향조로 1624년 이괄의 난 때 공(功)을 세워 공신으로 책봉(冊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두 아들과 함께 싸우다가 순절(殉節)[충절이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하였다. 연동면 노송리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고려 공민왕 때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자...
-
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순손, 홍익청, 홍인성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에 남양홍씨는 남양군파와 문정공파가 거주하고 있다. 15세기 중엽 남양군파의 홍순손이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와 함께 외가인 연기현으로 입향하였고, 병자호란 때 홍익청이 처향인 전의현[전의면 서정리]으로 입향하였으며, 금남면 성덕리의 남양홍씨 문정공파는 홍...
-
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순손, 홍익청, 홍인성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에 남양홍씨는 남양군파와 문정공파가 거주하고 있다. 15세기 중엽 남양군파의 홍순손이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와 함께 외가인 연기현으로 입향하였고, 병자호란 때 홍익청이 처향인 전의현[전의면 서정리]으로 입향하였으며, 금남면 성덕리의 남양홍씨 문정공파는 홍...
-
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문신. 남이웅(南以雄)[1575~1648]은 병자호란을 전후한 시기에 정치권의 핵심에 있던 인물이다. 남이웅은 본관(本貫)이 의령(宜寧)이고, 자는 적만(敵萬), 호는 시북(市北)이다. 할아버지는 증좌찬성 남응운(南應雲)이다. 아버지는 군자주부(軍資主簿)를 지내고 참판에 추증된 남위(南瑋)이고, 어머니는 청주한씨이다....
-
1636년 12월부터 1640년 8월까지 남평조씨 조애중이 기록한 한글 필사본 일기. 『남평조씨 병자일기』는 남이웅의 처 남평조씨 조애중(曺愛重)[1574~1645]이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1640년(인조 18) 8월까지 4년여 간 쓴 한글 필사본 일기로, 겉표지에 ‘숭정병자일기(崇禎丙子日記)’라고 되어 있지만 세간에 ‘병자일기’로 알려진 이후 그...
-
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남이웅의 부인이자 병자호란 당시 한글 일기인 『남평조씨 병자일기』를 쓴 인물. 남평조씨(南平曺氏) 조애중(曺愛重)[1574~1645]은 인조 때 좌의정을 지낸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부인으로, 병자호란이 벌어지자 피난을 떠나며 당시 겪은 일을 상세하게 한글 일기로 남겼다. 남평조씨 조애중의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조...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 충렬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류형 장군의 호패와 교지. 류형(柳珩)[1566~1615]은 진주류씨이다.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어려서부터 무예가 출중하여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과 강화도에서 공을 세우고, 1595년(선조 28)에 무과 급제 후 이순신의 휘하에서 노량대전에 참전하였다. 정...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대리에 있는 밤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괄의 난을 피해 당시 충청도 연기군 금남면 금병산(金屛山)[372m]을 지나게 된 인조(仁祖)가 한 사찰에 들렀다가 밤으로 후한 대접을 받고 밤절[율사(栗寺)]이라는 이름과 상을 내렸다고 전해지는 사찰설화이다. 1997년 금남면향토지발간위원회에서 발간한 「금남면향토지」에...
-
세종 지역의 사찰 및 사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옛 연기 지역[현 세종특별자치시] 사찰(寺刹)은 산간이나 마을 인근에 많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폐허가 되어 전통을 계승하여 유지하고 있는 사찰은 매우 드물다. 근래에 옛 사찰의 터전을 가꾸어 새로운 사원을 경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산간이나 부락 인근에는 사찰이 산재해 있다. 새...
-
조선 전기 세종 지역에 은거한 인물. 신준미(申遵美)[1491~1562]는 본관(本貫)이 평산(平山), 자는 사휴(士休), 호는 초려(草廬)이다.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스승인 조광조가 사사(賜死)[죽일 죄인을 대우하여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던 일]되고 자신의 과거급제가 취소되자 공주현[현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에 은거(隱居)[세상을 피해서...
-
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세거한 경주김씨 상촌공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 노산은 경주김씨 상촌공파(桑村公派) 집성촌이다. 노송리는 1구와 2구로 나뉜다. 노송1구의 중심 마을은 노리미와 웅동이며, 노송2구의 중심 마을은 강당이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노리미와 웅동에 살고 있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고려 공민왕...
-
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세거한 경주김씨 상촌공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 노산은 경주김씨 상촌공파(桑村公派) 집성촌이다. 노송리는 1구와 2구로 나뉜다. 노송1구의 중심 마을은 노리미와 웅동이며, 노송2구의 중심 마을은 강당이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노리미와 웅동에 살고 있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고려 공민왕...
-
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세거한 남양홍씨 남양군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1리에 입향하여 300 여년간 뿌리른 내린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홍주(洪澍)를 파조로 하는 남양군파(南陽君派)로, 입향조는 홍순손(洪順孫)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의 신대리와 이웃한 성제리에는 남양홍씨 남양군파가 세거하고 있다. 예로부터 연기 지역은 ‘천홍만...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장응헌의 처 언양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언양김씨 정려는 결성장씨 장응헌(張應軒)[1609~?]의 처 언양김씨(彦陽金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언양김씨는 첨정(僉正) 김징(金澄)의 딸로, 16세에 장응헌에게 출가하여 시아버지와 남편을 정성껏 섬겼다. 1636년(인조...
-
이공정을 시조로 하고 이상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우봉이씨(牛峰李氏)는 감찰공파(監察公派) 이상(李翔)[1620~1690]이 17세기 중엽에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에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우봉이씨의 원조는 신라 때 공신이 된 이두창(李頭昌)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후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연기군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월하리는 민후건의 호 월하(月河)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조선 후기의 세도가(勢道家) 민후건이 정치를 접고 풍류를 즐기면서 보냈는데 세월 좋은 마을이란 뜻에서 월동(月洞)이라 불렀다. 월하리에는 가래터, 구서원, 전동, 월동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가래터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논밭을...
-
조선 후기 인조반정 직후 논공행상 불만과 반란을 일으킨다는 무고를 받은 이괄이 일으킨 내란 사건. 이괄(李适)[1587~1624]의 난은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조선 왕가 종실 흥안군 이제를 왕으로 추대하며 일으킨 반란이다.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를 당하자 난을 일으켜 한양까지 함락시켰다. 조선 내란으로는 처음으로 왕...
-
조선 후기 충청오현 중의 한 명으로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문신.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신독재 김집(金集)의 천거(薦擧)[어떤 일을 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쓰도록 소개하거나 추천함]로 1634년(인조 12)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다. 이어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 대군...
-
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성희, 성중의, 성한취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창녕성씨는 금남면 달전리에 회곡공파 성희가 15세기 중엽, 연서면 와촌리에 동고동파 성중의가 15세기 후반, 연동면 내판리에 상곡공파 성한취가 18세기 중엽에 각각 입향하여 세거해 오고 있다. 창녕성씨(昌寧成氏)는 고려시대 호장(戶長)을 지낸...
-
1750년대 초 전국의 군현을 회화식으로 그린 고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세종 지역 지도. 『해동지도』는 제1책 경기도, 제2책 해서전도관서전도, 제3책 관동전도·북관전도 및 군현지도 외에 「조선여진분계도(朝鮮女眞分界圖)」와 「요계관방도(遼薊關防圖)」가 수록되어 있다. 또 제4책 서북피아양계전도, 제5책 영남전도, 제6책 호서전도, 제7책 호남전도, 제8책 팔도총도 등으로...
-
최세기를 시조로 하고 최은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화순최씨는 부정공파인 직장공 최은이 1400년대 후반에 금남면 도암리에 입향하였다. 화순최씨는 도암리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으며 성덕리, 신촌리, 금천리와 인근의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봉암리 등에도 거주하고 있다. 화순최씨의 시조 최세기(崔世基)는 고려 때 평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