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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노점상이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B030201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을경

시장 길목에는 예전의 시장을 연상하게 하는 노점상들이 시장 앞에 나란히 늘어서 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노점상을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했다는 윤희훈 씨(75)를 만나 많은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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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재래시장 앞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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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희 할머니

“내가 여기서 장사한 지 벌써 40년이 넘었나봐. 아니다. 50년 정도 되었나보다. 나 노점상 아냐. 자꾸 사람들이 나보고 노점상이 어쩌구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냥 내가 농사지은 걸로 할아버지랑 둘이서 먹다가 남으면 그냥 집에서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나와서 장사하는 거야. 노점상이라고 하면 매일 나와서 이 수입 가지고 뭘 할라고 아등바등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거 아냐. 그냥 여기 자릿세도 없고, 내 자리도 없어. 그냥 좀 비는 자리에 앉아서 먹다 남는 거 버리기는 아까워서 저기 보이는 저 노란 끌차에 몇 개 챙겨 가지고 나와서 팔아보는 거야. 그래서 장서는 날에는 사람구경도 할 겸 농협 앞에 앉아서 좀 팔고, 평소에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여기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시장사람들이랑 이야기도 하느라고 여기 나와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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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끌차

지나가는 말이라도 노점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투가 별로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연산시장이 생겼을 때부터 장사를 해왔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연산시장이 북적거렸던 시절의 이야기를 부탁했다.

“벌써 오래 전이네. 아직도 여기 장서든 모습이 눈에 선해. 연산시장이 서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여기서 장사를 했어. 감도 팔고 고들빼기(씀바귀)도 내다 팔고, 그때는 별거 다 내다 팔았던 거 같아. 남들은 연산장도 갔다, 조치원장도 갔다, 참 멀리도 잘도 돌아다녔는데 나는 연산장만 다녔어. 나는 연산장이 좋드라고. 집이랑도 가깝고, 그냥 연산장이 좋아서 연산장 서는 날만 장사했던 거 같어.”

파라솔 밑에 펼쳐놓은 물건들을 보니 각종 채소와 이것저것 특이한 것이 많아 무엇을 팔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가지, 호박, 호박잎이야. 이거는 돈보고, 이 돈보가 참 맛있어. 밥에 넣어도 맛있고 그냥 쪄서 먹어도 맛있고. 아 이건 앵두 잼이야. 이거 내가 직접 방부제 같은 거 하나도 안 넣고 만든 거라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하나 사. 이거 얼마나 인기가 좋나 없어서 못 판다니깐. 요새 같은 때는 이렇게 가지나 호박 같은 거 팔고, 가을에는 감나무가 있으니까 감이나 고들빼기, 연시 이런 거 팔아. 봄에는 고사리, 취나물 이런 나물류를 주로 가지고 오고, 겨울에는 팔 게 없어. 너무 추워서 움직이기도 힘들고 그래서 겨울 한철만 좀 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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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물건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라, 비를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길거리 한 쪽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연산시장 상가를 얻을 계획은 없는지, 상가를 얻을 생각은 안한 것인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지금 하는 장사가 큰 장사가 아니잖아. 정말로 소일거리로 한다고 생각해야지. 저기 상가 세가 얼만지나 알어? 이렇게 장사해서 저기 세를 어떻게 내. 아예 꿈도 안 꿔봤어. 내가 예전에는 여기서 이렇게 장사해서 7남매 공부는 다 가르쳤어. 지금 둘이 아직 결혼을 안 해서 남았는데, 이 장사로 7남매 공부도 시키고 결혼도 시키고 다 했어. 지금도 자식들이 그만 나가서 장사하라고 하지 왜 안하겠어? 근데 아직까지는 자식들한테 손 벌리고 싶지가 않아. 그래서 놀면 뭐하나 싶어서 이렇게 편하게 나오고 싶을 때 나와서 장사하는 거야. 그래도 단골이 참 많아. 농약 하나도 안치고 내가 먹으려고 짓는 농사니까 그걸 손님들이 믿고 참 자주 오고 그래. 그 마음이 고마워서 자꾸 여기 나오는 거 같네. 그리고 여기 오면 같이 말동무 해주는 할머니들도 많고, 여기 사람들이 뭐래도 하나씩 챙겨주고 참 잘해줘. 그 재미로 나오는 거지 뭐. 그리고 뭐 농사지은 걸 파는 거니까 뱃속이 편해. 뭐 돈이 안 벌려서 걱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어디 물건 떼다가 파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 거 신경 쓸 일도 없고 나는 지금이 편해.”

그저 욕심 없이 살아가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혹여나 장사하시면서 힘든 일은 없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궁금했다.

“뭐 모르겠어. 아직은 걸어 다닐 만하니까 이러고 있는 거고, 자식들이 자꾸 하지 말라고 하니까 그것도 곤란하고 그래. 근데 여기 요새 사람이 너무 없어. 다 큰 시장으로 몰려서 그런지 몰라도 요새 여기서 사람구경하기가 너무 힘들어. 그래서 장사도 잘 안되지. 여기 상인들 다 죽는 소리하잖아. 그래서 여기서 장사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은 들어.”

[정보 제공자]

윤희훈(여, 1934년생, 청동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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