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朴訓
영어음역 Park Hoon
이칭/별명 초명 박흔, 자는 학고(學古)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전통인물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조선/조선 중기
집필자 박철희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성별 남
생년 1599년(선조 32)
몰년 1650년(효종 1)
본관 무안
[정의]
조선 중기 이산[尼山(논산 상월)] 명학당부[鳴鶴塘府(학당리)]에서 태어난 문신.
[가계]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학고(學古), 초명 박흔.
파조 처사 증호조참판 박증(朴增)의 4대손이며, 증조부는 증형조참판 참봉 박대성(朴大成)이다. 조부는 증공
조판서 봉사 박윤(朴尹), 부친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통천군수 박종원(朴宗元), 외조
부는 감찰 유명(柳蓂)이고, 부인은 사직령 김변(金?)의 딸 광주김씨(光州金氏)이다. 아들 상문(尙文)은 효자
정려를 받았다. 동생으로 통덕랑 겸(謙)이 있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가학(家學)으로 집안 어른들로부터 경전(經典)과 사서(史書) 등을 익혔으며 1617(광해군 9)년에 동생 겸(謙)과 함께 서당 보인당(輔仁堂)에서 공부한 기록으로 동서제생록에 나온다. 아버지 박종원 등 무안
박씨 20여 명이 보인당에 입록된 것으로 전해온다. 기숙학교 보인당은 노성현감 유몽열이 자비로 세우고,
1566년(명종 21) 율곡 이이 선생의 기문을 받아 뛰어난 청소년들의 장수지소로 운영되었던 학교이다. 공은
이 보인당에서 호서사림들과 교유하였다.
벼슬은 사계(沙溪) 김장생의 청으로 아버지 박종원에게 공으로 내려졌던 벼슬을 부모를 모시기 위하여 초개
처럼 버리고 귀향하니, 신독재(愼獨齋) 김집의 청과 상촌(象村) 신흠의 품계로 아버지가 공을 다 누리지 못하
였다하여 그 아들 학생에게 이어서 수령직을 내린 특별한 경우이다. 아버지 판추공이 글을 써서 경계하기를
‘국은(國恩)을 생각하고 직무에 힘쓰라’ 하니 여러 곳에 게시하고 조석으로 게을리 하지 않으니 얼마 안 되어 정사를 이루었다.
1629년(인조 7) 선교랑 아산현감(牙山縣監), 1630년(인조 8) 승훈랑행전의현감(全義縣監),
1631년(인조 9) 승의랑행전의현감(全義縣監) 조산대부행전의현감청주진관병마절제도위 등을 역임하였는데, 방백의 친척이 옥(獄)에 계류된 자가 있었으나 법으로 논죄하여 방백도 칭찬하였다고 전한다. 이로부터 방백
이 양현(연산, 니산)의 인읍에서 의옥이 있어 공을 천거하니 한번 보고 즉석에서 판결하니 백성이 다 탄복하
였다고 묘표에 전한다.
1631년(인조 9) 현감 박흔(朴?)은 역적과 동명이라 예문관개명첩지에 의거 박훈(朴訓)으로 개명 후 조산대
부행전의현감청주진관병마절제도위를 역임 중 4년 만에 사직하고 돌아왔다. 마침내 1629년에는 모부인이
세상을 뜨고, 이어 1631년에 조모가 돌아가시니 부친은 상중에 효질을 얻어 1633년 하세하였다. 1641년(인
조 19) 박훈헌마조군(朴訓獻馬助軍)기사에 군대를 돕기 위하여 기마(騎馬) 2필을 희사한다.
향년 51세로 하세하였다.
[상훈과 추모]
아버지의 공으로 학생이 현감에 직배된다. 기마(騎馬) 2필을 희사하니 주상이 상을 내리라는 하명이 있었다.
묘표는 광성부원군 김만기가 짓고, 판서 이정영의 글씨이다. 묘소는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 당점산
(당마루) 임좌병향이다. 만사를 남긴 이는 장악원정 송희조, 광흥창주부 족제 박수, 사헌부감찰 족제 박규,
공조참의 황세구, 홍주목사 남원 윤형정 등이 애도를 표한다.
부인 영인김씨가 하세하니 명재 윤증, 동토 윤순거, 윤절 만사가 전한다.
[참고문헌]
『국역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서석집』(P145~P177)
『암천 박증의 도학정신과 유물유적』(충남대학교유학연구소편, 2005)
강성복 · 박철희, 『암천 박증과 모곡서원』(디오, 2003, P137~P138)
교첩 3매, 개명첩 1매
[관련항목]
• 박종원 묘표 • 학당리 • 박증 묘소 • 박증 묘표
• 박증 • 박상문 • 박상문효자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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