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719
한자 呂元弼
영어공식명칭 Yeo Wonpi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강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8년연표보기 - 여원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9일 - 여원필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오남리 만세 시위에 참여
출생지 오남리 -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3·1운동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여원필(呂元弼)[1888~?]은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오남리에서 태어났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활동 사항]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에서의 만세 운동은 3월 중순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만세 시위가 있은 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다가 3월 24일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금곡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양주군 진건면 오남리[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수십여 명의 주민이 참여한 만세 시위는 일제에 의하여 해산되었고, 여원필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제7조, 「조선형사령」 제42조 위반 혐의로 나상규(羅相奎)·손삼남(孫三男)·엄본성(嚴本成)·이종갑(李鐘甲)·권노적(權魯赤)·한백석(韓白石) 등과 함께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해당 판결문은 여원필이 “손병희(孫秉凞) 등의 조선 독립 선언의 취지에 찬동하여 모두 정치 변혁의 목적으로, 1919년 3월 29일경 피고들의 거주지인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오남리에서 수십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침으로써 안녕질서를 방해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3·1운동 이후 여원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여원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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